실패

by Simon de Cyrene
이 브런치 매거진, 닫겠다고 했는데... 요즘 부쩍 두 글자로 된 단어들에 대한 얘기를 쓰고 싶단 생각이 많이 들어서 그냥... 흘러가는 대로 쓰기로 했습니다. 이참 민망하네요.


이 매거진에 다시 글을 써야겠다고 마음을 먹고, 과거에 썼던 글 중에 '실패'에 대한 글을 한 번은 썼을 것이라 생각하여 이 글의 제목을 [실패 2]로 하기 위해 매거진 글들을 쭉 내려봤다. 없었다. 세상에. 그렇게 실패를 많이 하고 힘들고 고통스러워했으면서 실패에 대한 글을 하나도 쓰지 않았다니. 뭐지? 무슨 심리지 이건?


어쩌면 그렇기 때문에 실패에 대한 글을 쓰고 싶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실패를 너무 많이 해봤기 때문에, 그에 대한 글을 쓰고 싶지 않았는지도 모르겠다. '실패'라는 말을 떠올리는 것조차도 고통스럽고 힘든데, 그에 대해 깊게 고민하고 생각하면서 글을 쓴다니... 그래, 지금 돌아보니 내가 '안' 쓴 게 아니라 '못' 쓴 것인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든다.


나의 20대는 성공으로 가득 차 있었고, 30대는 실패만 하나 가득 있었다. 보통은 20대보단 30대에 경제적인 요소가 많이 관련되어 있고, 나이가 들어서 하는 실패는 몸과 마음이 모두 감당하기가 힘들기 때문에 그 반대였으면 좋았을 텐데, 난 20대에 노력한 것에 대해서는 대부분 성공했지만 30대는 완전히 그 반대였다.


그래도 그 기나긴 터널을 지나, 이제는 조금 숨도 쉴 수 있고, 내가 가야 할 길도 보이는 상태로 40을 맞이했는데, 그 길에 발을 내딛지 못하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이상했다. 이해도 되지 않았다. 체력적으로 힘든 것도 아닌데, 내가 해야 할 일이 없는 것도 아닌데, 내가 못하는 일도 아닌데, 꾸준히 하기만 하면 성과가 나올 것 같은데도 내가 움직여지지 않았다. 무엇인가가 내 발목을 붙들고 있었다.


단순히 움직여지지 않는 것을 넘어 몸이 아파오기 시작했다. 아무 이유도 없이. 갑자기 어깨와 팔꿈치가 아파왔고, 근육이 뭉쳤으며, 어느 날은 열이 38도를 훌쩍 넘기도 했다. 그럴 이유도 없이. 놀라서 코로나 검사도 받아봤지만 음성. 아니, 검사를 받고 나니 열이 내리더라.


그런 경험을 몇 번씩 하다 보니 '내가 많이 아픈가?'라는 생각도 문득 들었지만, 그렇다고 하기엔 너무 운동을 많이 해낼 수 있었다. 작년 12월부터 올해 2월까지는 운동도 제대로 못했지만 3월부터는 매일 1시간씩 걷고, 주 3회 이상, 한 번에 1시간 이상씩 웨이트를 들었는데 그게 심각하게 아픈 사람이 소화할 수 있는 강도는 아니지 않나?


그러던 중 문득, 깨달았다. 내가 또 다른 실패를 두려워하고 있었다는 것을. 나는 원래 새로운 것을 잘 시도하는 사람이었다. 뭔가에 꽂히면 지금 쥐고 있는 것도 너무 쉽게 놔버리고 도전을 선택하는 사람이었다. 크고 작은 그런 시도를 항상 해왔고, 그러다 보니 실패도 자주 했지만 20대까지는 작은 것들에는 실패하고 크고 중요한 목표들은 항상 달성했다 보니 그 실패들이 문제가 되지 않았다.


문제는 30대의 실패들이었다. 30대에는 반대로 작은 성취들이 없던 것은 아니지만 인생을 좌우할 수 있는 큰 도전들은 모두, 처참하게 실패로 돌아갔고, 그 과정에서 주위에서 이런저런 하마평을 계속 들어왔다 보니 새로운 도전을 하는 게 두려워진 것이다. 실패한 후에 밀려오는 좌절과 절망이 얼마나 힘들고 아픈지를 알기 때문에, 다시 그 경험을 할 자신이 없어서 움직이지 못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머리로는 자신도 있고, 자존감도 있다고 생각했지만, 주위 사람들도 잘할 것 같다고 하고 내 인생도 그 방향으로 기회들이 주어지고 있지만, 거의 10년간 내 인생을 채워왔던 실패의 경험들이 내 발목을 잡고 있었다.


사람들이 '나이가 들수록 도전하는 게 어려워'라고 말하는 건 아마도 나이가 들수록 실패의 경험, 그리고 그로 인한 고통과 아픔의 기억이 축적되기 때문일 것이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다시 일어나거나 새로운 도전을 하지 못하고 다른 사람들의 기준에서는 '인생의 낙오자'가 되는 것도 인생에서 축적된 실패와 수반되는 고통이 너무 컸기 때문일 것이다.


나약한 게 아니다. 내 바닥까지 경험해봤기 때문에 엄두가 나지 않는 것이다. 그렇게 힘들어하는 사람에게 '나약한 소리 하지 마. 지금 일어나서 빨리 해야지.'라고 채찍질하는 것은 마치 운동을 수년간 쉰 사람에게 지금 당장 벤치프레스 100kg를 들라고 요구하는 것과 같다.


예전에 운동했던 사람이라면, 벤치프레스 100kg를 들었던 사람이라면 그 무게를 다시 회복할 수 있다. 다만, 시간이 필요할 뿐이고, 다시 그 무게를 들기 위해서는 가벼운 무게부터 무게를 올려가며 운동을 꾸준히 해야 한다.


그렇다면 인생에서 실패로 인해 좌절한 사람에게 '가벼운 무게부터 무게를 올려가며 하는 운동'은 무엇일까? 작은 성공의 경험들이 그런 운동의 기능을 할 수도 있지만, 그보다는 '이번에는 다를 것이란 확신'이 더 필요하고, 그런 확신은 옆에 있는 사람들의 격려와 응원, 특히 신뢰할 수 있는 사람들의 어느 정도 근거 있는 합리적인 격려와 응원들을 통해 생긴다.


작은 성공들이 벤치프레스 100kg를 다시 들기 위해 하는 운동이라면, 사람들의 그러한 격려와 응원들은 실패를 반복한 사람들에게 근육을 만드는데 필요한 영양소나 보충제의 역할을 해준다. 벤치프레스 100kg를 들 수 있는 몸은 반드시 운동과 좋은 영양공급을 병행해야만 다시 만들어질 수 있듯이, 실패로 다시 움직일 힘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작은 성공의 경험과 응원, 격려가 있어야 한다.


실패로 인해 바닥에 나앉은 사람에게 지인들이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은, 진정성이 담긴 응원과 격려다. 주위의 채찍질은 이미 스스로 회복될 수 없는 상처를 가득 안고 있는 그 사람의 마음에 상처를 더 낼뿐이다.

이 글을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브런치에서 다양한 주제의 글을 씁니다. 혹시라도 감사하게도 '구독해야지!'라는 생각이 드셨다면, 2021년에 제가 쓸 계획(링크)을 참조하셔서 결정하시는 것을 권장합니다. 브런치에는 '매거진 구독'이라는 좋은 시스템이 있으니, 관심 있는 매거진만 구독하시는 것이 나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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