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를 자르고 내가 사용하는 공유사무실로 향하는 길에 문득 배가 고파왔다. 백반이 먹고 싶어서 가는 길에 있는, 허영만 선생의 '식객'에도 나왔던 청국장을 하는 식당이 떠올라 그곳에서 끼니를 해결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특별하게 맛있는 청국장이라고 생각하진 않았지만 평균 이상의 맛을 내는 곳이고, 기본 이상은 해주는 집이니 훌륭한 끼니가 될 것이란 생각에 군침이 입 안에서 도는 걸 느끼며 눈발이 휘날리는 와중에도 발걸음을 재촉했다.
하지만 난 그곳에서 식사를 하지 못했다. 그 식당이 문을 닫았기 때문이다.
간판도 사라졌고, 가게 안에 있던 모든 것들이 치워져 있더라. 당혹스러웠다. 작년 말에도 갔었는데, 사무실에 돌아와 검색을 해보니 2021년 12월까지도 후기가 있는데 이렇게 완벽하게, 간판까지 철거해서 문을 닫았단 말인가? 마지막에 왔을 때도 사람은 붐비고 있었고, 작년 12월의 후기에도 사람이 많다고 썼던데 그 식당은 왜 문을 닫은 것일까? 코로나 시국에도 사람들이 꽤나 붐볐던 그곳은 왜...
눈발을 맞으며 검색해서 사무실 근처에 있는 백반집을 찾았지만 맛은 많이 아쉬웠다. 덕수궁이 내려다 보이는 건 좋았지만 밥은 먹을수록 문을 닫은 식당 생각이 나게 하는 맛이더라.
안 그래도 몸 상태가 안 좋아서 일이 안 잡히는 상태였는데, 밥까지 그렇게 먹고 나니 노트북을 꺼내 자리를 잡은 후에도 그 식당에 대한 생각이 사그라들지 않았다.
그러다 문득, 내가 인사동에서 정말 좋아했던 전통찻집이 떠올랐다. 학부시절에 종종 찾았던 그 찻집은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쌍화차 향이 온몸으로 느껴졌고, 그 찻집의 전통차는 절대 가루를 타서 낼 수 없는 맛을 갖고 있었다. 그 따뜻하고 포근한 느낌이 좋아서 인사동에 갈 때마다 찾았던 그 찻집은 취업을 하고 회사에 적응하느라 인사동을 찾을 여유가 없었던 1-2년 사이에 사라졌다. 그리고 그 자리에는 인사동과 어울리지 않는 번쩍거리는 외관의 한복대여점이 들어섰더라. 화가 치밀어 올랐고, 그 이후로는 일부로 인사동을 찾진 않게 되었다.
아쉬웠었다. 이렇게 갑자기 사라질 줄 알았다면 사진이라도 남겨놨을 텐데...라는 생각에. 그나마 이번에 사라진 식당의 경우 2년 전에 유튜브 영상을 만드느라 내외부를 찍어놓은 게 있던 게 기억이나 '다행이다...'란 생각이 들더라.
그때 문득 지금, 오늘의 서울에서 내가 좋아하고 아끼는 곳들을 기록해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워낙 빨리 바뀌고, 어제 있던 가게가 오늘 문을 닫아도 이상하지 않은 서울이라는 도시 안에서 내가 소중하게 여기는 것들을 기록하고, 남겨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안 그래도 유튜브 채널 두 개를 어떻게 운영할지가 걱정되던 상황이었고, 작년 12월에 한국어로 시작한 채널은 영상을 흑백으로 만들고 있어서 '서울의 모습을 흑백으로 남겨볼까?'라는 생각을 하고 있던 중이었다. 한 곳에서 가서, 같은 영상으로 구성과 이야기를 다르게 하면 두 개의 채널에 영상을 올릴 수 있으니까. 그렇게 만들면 한 영상은 영어로 한국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에게 한국을 소개하는 의미가, 또 다른 영상은 2020년대에 서울에 사는 한국 사람이 현재를 기록하는 의미가 있겠더라.
사실 뭘 해도 스스로 납득하고, 이해할 수 있어야 하는 피곤한 성격이어서 '원 소스 멀티 유즈'를 할까...라는 생각은 했지만 스스로 그건 너무 비겁하고 유튜브를 하기 위한 시도가 아닐까 싶어 망설이고 있던 중에 이렇게 의미가 부여되는 이유라니...
돌이켜보면 난 항상 기록을 남기는 것에 의미를 부여했다. 취미로 사진을 찍을 때도 작은 사물을 확대하고 뒷배경을 날려서 '예쁜' 사진을 찍는 것보다 '사람'이 들어가 있는 사진 찍는 것을 좋아했다. 사람 냄새나는,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 지를 보여주는 사진을 좋아했고, 그래서 내가 찍는 사진에는 항상 일상의 모습들이 담겼었다.
언젠가부터 '죽음'을 진지하게 생각하게 된 후로는 일상에서 부모님의 모습을 두 분 몰래 찍곤 했다. 내가 늦게 들어오는 날에는 TV를 켜 둔 상태로 소파에 누워 잠들어 계시는 어머니, 흔들의자에 앉아 입을 벌리고 잠들어 있는 어머니의 모습을 혼자 몰래 찍어 간직하고 있고, 두 분이 여행을 다니거나 일상을 찍어서 카톡으로 보내주시는 사진들도 모두 다운 받아놓고 있다. 언젠가는 그 사진을 보며 두 분을 그리워하게 될 것을 알기 때문에. 이번 구정 연휴에는 오랜만에 가족여행을 가기로 했는데, 그때는 아예 뒤에서 졸졸졸 따라다니며 영상을 찍을 생각이다.
내가 그 사진과 영상들을 계속 찾아보게 될 것을 확신하는 것은, 난 지금도 일 년에 한두 번은 두 분이 젊고 내가 어렸을 적의 사진들을 꺼내 보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들도 그러는지는 모르겠지만, 난 그 사진들을 보면 그때의 감정과 내가 경험했던 것들이 그대로 살아나서 그 시절을, 그때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그렇게 센티해진다고 해서 돌아가고 싶은 것은 아니다. 그때의 내가 부끄럽고, 그때 내가 처한 상황이 고통스러워 절대 돌아가고 싶지 않은 시간들도 분명 있다. 하지만 그런 시기들을 떠올리는 것 마저도 '내가 참 잘 버텼고, 괜찮게 살아왔구나, 지금 돌아보면 별게 아닌데 그때는 왜 그게 그렇게 크게 느껴졌을까' 싶어서 미소를 짓게 되더라. 그래서 나는 외장하드를 바꿔가며 20년째 매년 사진들을 업데이트하고 있고, 구글 포토를 쓰면서 사진들을 자동 저장하고 있다.
기록하는 것은, 지금 우리가 생각하기엔 아무 의미 없어 보이는 것이라도 어쨌든 기록하는 것은 결국 우리 자신에게 선물이 된다. 기록했던 시기의 무엇인가가 지금과 다르면 다른 대로, 같으면 같은 대로, 기록을 하는 건 그 의미가 있고 누군가에게는 선물이 된다. 사실 생각해보면 내가 지금 쓰고 있는 이 글도, 아니 브런치에서 내가 4년 10개월 동안 써온 글들도 그 글을 쓰는 시점의 내 생각들을 기록한 것이 아닌가?
그렇게 따지면 나는 결국 기록하는 사람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리고 문득... 브런치 올해까지 쓰겠다는 말을 취소해야 하는 생각도...
그건, 일단 올해 최선을 다해 쓴 다음에 생각해 봅시다. 계속 쓸 수도 있는 거지 뭐. 기록은 소중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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