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체질, 8 체질 같은 거 잘 믿지 않았다. 한약이 잘 받는 편이어서, 거의 복용 즉시 반응이 오는 편이어서 내과, 가정의학과 등에 가서 검사를 받아도 이상이 없으면 한약을 지어먹는 편이지만 체질검사를 해본 적은 없었다.
신뢰가 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단 모든 사람들을 4개나 8개의 체질로 분류한다는 것 자체가 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또 설사 그럴 수 있다 하더라도 인터넷에서 떠도는 몇몇 정보만을 가지고, 사람의 외형이랑 몇 가지 특성으로 사람을 분류한다는 게 정확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한의사들은 외형만 보고 '00인입니다'라고 규정짓는다는 것을 듣고, 그에 대한 비판도 접하면서 이건 믿을 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굳이 내가 무슨 체질인지를 궁금해하지도 않았고 알아보려 하지도 않았다.
이번에도 몸이 그런 상태가 되었다. 작년 8-9월부터 10월 정도까지 자려고 누우면 심장 두근거리는 게 느껴졌었는데 조금 나아지나 싶었더니 부스터 맞는 것을 기점으로 그게 더 심해지더니 급기야는 내게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과민성 대장증후군이 찾아오더라. 그러더니 완전 번 아웃된 듯한 느낌으로 아무 일도 잡히지 않는 지경에 이르더니 컴퓨터 앞에 앉기만 하면 가슴이 갑갑하고 조여 오더라.
그래서, 정말 어쩔 수 없이 제주로 떠났었다. 구정 연휴에 가족여행을 제주로 가기로 한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1월에 제주를 두 번 찾기로 했다. 이 정도 강도로는 아니지만 주기적으로 연 1회에서 많으면 2회까지는 있었던 일이었기에 긴장하지도, 걱정하지도 않았다. 실제로 제주에서는 모든 증상이 완화된 상태로 2박 3일을 보냈었다. 심지어 렌터카 사고가 나는 와중에도 심장은 그렇게 뛰지 않더라.
아니 사실 제주에 내려가기 전에 이 모든 게 스트레스 때문인 건 알고 있었다. 제주로 향하기 바로 전주에 3명이 모이는 송년회가 있었는데 그 장소로 이동하는 내내 배가 너무 아프더라. 장염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 자리에 가서 사람을 만나고 수다를 떨기 시작하니 배가 거짓말처럼 싹 낫는 게 아닌가... 그래도 혹시 모른다고? 장염환자였으면 그날 먹은 방어회, 소주, 맥주, 감자튀김을 소화해 낼 수는 없었을 것이다. 어느 하나 장에 무난한 메뉴가 없었음에도 나는 그날 너무 멀쩡했다.
손에 쥐고 있는 카드들을 놓고 어느 쪽에 집중해야 할지를 3년간 생계 해결에 집중하면서 했던 방황을 끝내기로 하자마자 찾아온 통증이었다. 그래서 이 모든 건 신경성이란 것을 알았기에 큰 걱정은 안 했는데 문제는 제주에 다녀온 후에도 그게 지속되더라. 이런 상태에서 제주를 최소 3박 4일 이상은 다녀와야, 보통은 한 일주일은 있으면서 쉬고, 늘어져야 회복되어서 돌아오는 데 2박 3일이라는 일정이 너무 짧기도 했지만, 그 어느 때보다 상태가 심각했다.
가장 큰 문제는 할 일은 쌓여있는데 상태가 이렇다 보니 일들이 계속 밀린단 것이었다. 방황을 끝내고 모든 일들에 최선을 다하기로, 당분간은 복잡한 고민하지 않고 주어진 모든 기회에 스스로를 밀어 넣어 보기로 했는데 몸이 이래서 일을 못하다니, 몸에 힘이 없진 않다는 걸 느끼는데 몸상태가 엉망진창이니 점점 화가 많이 나고 그럴수록 몸은 점점 안 좋아지더라.
그래서 어쩔 수 없이 한의원을 찾았다. 굉장히 꼼꼼하고 어지간한 곳은 추천하지 않는 친구가 '한약을 정말 잘 짓는다'라고 말해줬던 한의원이 우리 집에서 멀지 않았던 기억이 나서 어디인지를 묻고, 예약하고 그 한의원을 찾았다.
그런데 이 분... 내가 그렇게 불신하는 사상체질에 따라 한약을 지어주는 느낌이다. 아 이런... 거기다 한약 비용도 내가 지금까지 지었던 것들보다 나가는 편이다. 녹용이 들어가는지 여부 등도 알 수 없는데... 친구가 입에 침이 마르게 칭찬을 했고, 정말 믿을 수 있다고 했으며, 실제로 상담도 거의 40분 정도 할 정도로 꼼꼼하게 하시는 걸 보면 좋은 분 같긴 한데 체질 같은 거 믿지 않고 비용이 비싸기까지 하니 생각이 복잡해지고, 내 몸은 또 그대로 안 좋아지는 듯했다.
하지만 어쩔 수 있나... 이미 비용은 결제를 했고, 친구와 선생님에 대한 느낌을 믿고 가보는 수밖에...
그런데 이 한의사님은 어떤 체질인지 그 자리에서 말을 안 해주시더라. 그러더니 대뜸 증상 등을 봤을 때 두 가지 체질 중 한 가지일 듯하다고 하시더니 두 가지 약을 하루씩 먹어보고 어떤 게 더 편한지를 알려달라시는 게 아닌가? 리트머스 시험지처럼... 아니 이게 무슨... 내가 실험실 쥐도 아니고... 싶었지만 또 어느 두 체질이냐고 여쭤보니 '그걸 알려드리면 선입견이 생기기 때문에 말씀드릴 수 없다'라고 하시는 게 아닌가. 이러니 왠지 또 신뢰가 가는 듯도 하고...
다른 사람들은 차이를 잘 못 느낀다고 하는데, 한약에 곧바로 반응하는 사람답게 난 하나는 명확히 불편하고 다른 하나는 아무 느낌이 없더라.
그 후 두 번째 내원했을 때는 '원래는 약을 일단 먹어보고, 그 뒤에 반응을 들으면서 00인이 맞으면 식단이랑 생활습관 얘기를 하는데 00님은 상태가 워낙 안 좋으니 처음부터 그렇게 가보자'라고 하시며 내 몸에 좋은 음식과 나쁜 음식의 목록을 주셨다. 내 리트머스 시험지 한약 이름을 보고 내게 더 맞는 듯한 약을 검색해 보니 나온 체질 관련 음식 목록과 크게 다르지 않은 목록.
일단 의심은 가지만, 100% 믿을 수는 없지만 믿고 가보기로 했으니... 그러고 나면 항상 최선을, 진심을 다 하는 편이다 보니 그 길로 집에 가는 길에 마트에 들러 좋은 음식 목록에 있는 재료들을 사서 그제 하루를 그 음식들로만 먹었다.
그런데 정말 믿기 힘든, 말도 안 되는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작년의 2/3는 몸의 어떤 부위든지 부은 상태로 지냈는데, 두 번째 내원하기 전날에는 걱정이 될 정도로 손이 부었었는데 부기가 빠지는 게 아닌가... 그리고 놀랍게도 저녁에는 거의 한 달만에 컴퓨터 앞에서 가슴이 갑갑해지지를 않더라...
그러더니 어제는 아침에 일어나니 몸상태가 마치 39도에서 40도 정도 열이 나다가 37도 정도로 내릴 때의 느낌 같은 느낌이 들었다. 20대에 디톡스를 일주일 했을 때 처음 2-3일 때 같은 느낌이랄까? 거기에 더해서 살짝 미열이 오르면서 화장실은 조금 묽게(?) 가게 되었지만 전반적으로 몸이 회복되는 느낌이 들더니... 저녁에는 너무 멀쩡해져서 지금 현재 새벽 12시 43분에 이 글을 쓰고 있다. 약이 어제 저녁에 도착해서 한 포 복용했지만, 이미 복용하기 전에 몸은 지난 2달 중에 처음으로 개운한 상태로 돌아와 있었다. 음식만 바꿨을 뿐인데…
거짓말 같다고 해도 할 수 없고, 이해한다. 플라시보 효과라고 하기엔 무리적으로 너무 큰 차이가 있고, 나는 체질에 기반한 변화를 크게 신뢰하지 않던 사람이다. 그리고 이 글을 쓰는 지금도 모든 사람들에게 이 정도의 다이나믹한 변화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모든 사람이 4가지 또는 8가지 유형으로 분류될 수 없다고 생각하기도 하고, 8 체질의 경우 내용을 찾아 봐도 내 체질에 완벽하게 맞는 건 없더라. 어떤 사람들은 각 체질적인 요소를 몇 가지씩 갖고 있을 수도 있고, 이 분류에 완벽하게 들어맞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한약을 먹어도 큰 변화를, 때로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이 그런 부류가 아닐지...
자세한 건 나도 잘 모르겠다. 분명한 건 나는 항상 한약을 먹으면 거의 곧바로 몸에서 어떤 쪽으로든 반응을 했던 편이었다는 것. 홍삼 달인 물은 한 포만 마셔도 열이 오르고 심장이 뛰어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고, 공진단은 먹으면 곧바로 상태가 좋아졌던 경험이 있을 정도로 내 몸은 한약에 곧바로 반응을 하는 편이다. 상대적으로 다른 사람들보다 조금 더 한쪽에 치우친 체질을 가진 것인지는 몰라도 내 몸은 항상 즉각 반응을 하고는 했다.
그런데 이번엔 약도 아니고 음식만으로… 완벽하게는 아니어도 이 정도로 증상이 완화된다니... 나처럼 한의학에서 체질의 분류를 신뢰하지 않던 사람들은 '돈 받고 약 파나?'란 생각이 들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다시 말하지만 나는 모든 사람들이 나처럼 즉각적으로 반응을 느끼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내가 예민한 편이기도 하고, 나는 원래 몸이 이렇게 반응하는 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글을 여기까지 구구절절 쓴 것은, 음식의 중요성을 이번에 너무 절실하게 깨달았기 때문이다. 'You are what you eat'라는 표현도 있지만, 은유적으로 쓰이는 그 표현이 이렇게 물리적으로 맞는 경험이라니…
우리는 정말 무엇을 먹느냐에 따라 몸이 달라지고, 그에 따라 컨디션도, 마음도 달라지는 것을 경험하고 나니 많은 생각이 든다. 개인적으로는 컨디션이 본격적으로 올라오기 시작한 어제 늦은 오후부터 지금까지 영상을 두 개 편집하고, 브런치 글을 세 개째 쓰고 있는 건 지난 한 달 정도의 컨디션에 비춰봤을 때 절대로 불가능한 일이었다. 나는 몸이 너무 안 좋아서 하루에 영상이나 글 하나도 제대로 끝내지 못하는 날이 많았고, 영상 두 개 또는(or) 글 두 개를 작업하고 나면 그날 뻗어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상태로 한 달 정도를 살아왔다. 그러던 내가 지금 이 시간까지 글을 쓰고 있다는 건... 내겐 기적 같은 일이다.
조금 더 먹는 음식에 신경을 쓰게 되는 계기가 될 듯하다. 한의사님께서 '좋지 않은 음식이라고 해서 아예 먹으면 안 된다는 게 아니라 꾸준히 장복하지는 말라는 거고, 좋은 음식은 최대한 챙겨 먹는 게 좋다는 거예요'라고 말씀하신 것을 핑계 삼아 나는 앞으로도 튀김, 햄버거, 피자, 떡볶이를 종종 먹을 것이다. 다만, 원래도 자주 먹지는 않았지만 그 빈도를 더 줄이고 가능한 범위 내에서 최대한 내게 좋은 음식을 챙겨 먹을 수밖에 없지 않을까 싶은 것은 내가 섭취하는 음식이 곧 내 상태에 영향을 미치는 걸 너무 다이나믹하게 느꼈기 때문이다.
'얼마나 오래 살겠다고 그렇게 건강식을 요란하게 챙겨 먹어?'라는 말에 동의하는 편이었다. '오래 사는 게 반드시 좋을 것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맛있는 음식을 먹는 기쁨과 즐거움은 보장되어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왜 불확실한 미래를 위해 현재의 확실한 행복을 포기한단 말인가?'라고 생각했었다. 지금도 그 생각이 완전히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불행하게, 누리지는 못하고 오래 사는 것보다는 짧고 굵게 행복한 삶을 사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 전제에 결정적인 오류가 있다. 이는 인생의 짧고 긴 것 자체가 우리 마음대로 되지 않는단 것이다.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되는 경우가 아니면 우리가 얼마나 살지는 우리 마음대로 결정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해서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되는 삶이 짧고 굵게 행복한 것도 아니다. 극단적인 선택이 쉽게 해지는 것도 아니지 않나? 인간은 정말 극한으로 힘들어야 그런 선택을 할 수 있기에 그런 삶은 절대로 짧고 굵게 행복했다고는 할 수 없다.
그렇다면 삶의 길이와 무관하게 일단 살아있는 동안은 최대한 덜 고통스럽고, 최대한 행복하고 무탈하게 사는 게 목표가 되는 게 맞지 않을까? 아직도 젊은 편이긴 하지만 20대에 비하면 운동을 한 후의 회복 속도가 느려지는 걸 느끼는 나이가 되어가면서 '건강이 최고'라는 말이 더욱 진지하고 무겁게 다가오더라. 건강하지 않으면 아무리 많은 것을 가져도 그걸 누릴 수 없다는 것을, 긍정적으로든 부정적으로든 사소한 건강의 변화가 모든 것을 바꿀 수 있단 것을 이번 일을 통해 다시 한번 절실히 느낀다.
하루에 적으면 한 번, 간식 등까지 하면 많으면 5-6번까지 먹는 음식. 섭취하는 시간을 다 합쳐도 24시간 중 대부분 20%도 되지 않는 음식이 이렇게 많은 것을 좌우하는 게 한편으로는 억울하기도 하지만, 음식을 섭취하지 않는 시간도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는 그 20%도 되지 않는 시간에 조금 더 신경을 쓰는 게 손해 보는 투자는 아니지 않을까?
You are what you eat라는 표현이 유독 뇌리를 떠나지를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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