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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mon de Cyrene Jun 18. 2020

바다에 돌을 던져도 바다는 변하지 않는다.

이 매거진에서는 비정기적으로 에세이나 팩션을 씁니다. 아마 주로 저녁에 쓰게 될 듯합니다. 생각이 많고 센티할 때 논리적이지 않은 저의 사적인 이야기와 생각들로 채워나갈 예정입니다. 

모태신앙으로 교회의 테두리 안에서 자란 나는 항상 '큰 꿈'을 꾸도록 요구받았다. '비전'이란 거창한 표현으로 뭔가 남들과는 다른 나만의 무엇인가를 가져야 할 것 같은 분위기 속에서 자란 나는 나이브하게도 20대 초반까지 정말 그런 꿈을 꾸며 살았다.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사무총장이 되는 순간, 대륙과 국가별로 나눠 먹기를 하는 그 자리에 나는 갈 수 없을 것이란 사실에 진지하게 좌절했다고 말하면 대부분 사람은 농담인 줄 알고 코웃음을 치겠지만 모두가 기뻐하고 좋아할 때 난 정말 진지하게 웃지 못했다. 


학부에서 정치외교학을 전공하고 대학원에서 법학을 한 내게 사람들은 정치할 생각이 있냐고 묻지만 난 그럴 생각이 없다. 학부시절에 들었던 유명한 아나운서 선생님 수업 후에 국회의원 보좌진으로 들어갈 생각이 없냐고 제안을 받은 적도 있었고, 지금도 국회에는 대학 선후배들이 보좌진으로 많이 있으니 기회가 없지도 않았고 지금도 기회가 없지는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난 정치를 할 생각이 없고, 앞으로도 없을 가능성이 높다. 여러 이유가 있지만 가장 큰 이유는 내가 그 안에서 나 자신을 지킬 자신이 없고, 난 나 자신을 지키는 것이 가장 중요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내겐 더 이상 교회에서 강요받았던 거창한 비전 같은 건 없다. 다만 내가 인생의 소명으로 삼는 것이 있다면 그건 어떤 형태로든 글을 계속 쓰고 그 글을 통해 한두 사람에게 위로가 되거나 힘을 줄 수 있고 싶다는 것이다. 예전에는 그게 참 작은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어느 순간 깨달았다. 사실 한 사람이 위로를 받는 건 어마어마한 것이란 것을 말이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세는 기준으로 그 사람은 한 사람에 불과하지만 그 사람의 기준에서 그건 자신의 온 세상이 위로를 받는 게 아닌가? 그렇다면 한 사람에게 위로, 깨달음, 도움을 줄 수 있는 건 한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것 아닌가?


그렇다고 해서 글을 쓰는 과정이 항상 즐겁고 좋기만 한 것은 아니다. 학부시절에는 여의도로 향하는 교수님들의 결정이 이해되지 않았고, 그분들을 폴리페서라 손가락질할 때도 있었는데 나이가 들면서 그분들이 모두 권력욕에 취해 그런 결정을 내리는 것은 아닐 수 있겠단 생각이 들더라.


글을 쓴다는 것은, 특히 학문적 글쓰기를 한다는 것은 아무 반응도 없는 커다란 바다, sea가 아닌 ocean인 바다에 계속 작은 조약돌을 던지는 것과 같은 과정이다. 누구도 보지 않고, 세상에 어떤 변화도 일어나지 않아도 계속 나의 생각을 갈고닦으면서 세상에 쓴소리를 하고 던지는 것. 어디 학문적 글쓰기만 그런가? 사실 대부분의 글쓰기는 그 글을 읽은 사람들은 어떤 마음으로 읽는지 알지 못하고 쓰고, 쓰고, 쓰기를 반복하는 과정이고 작업이다. 


교수님들 중에는 그 과정을 참고, 참고 버티다 본인이 나서면 세상이 바뀔 것이라고 믿고 여의도로 발걸음을, 인생을 옮긴 분들이 적지 않으실 것이다. 생각보다 많은 교수님들이 정교수가 된 이후 펜을 놓으시는 것 또한 조약돌을 계속 던져도 세상은 바뀌지 않는다는 것을 온몸으로 깨달았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여의도로 향한 발걸음 또한 또 하나의 조약돌에 불과하다는 것을 나는 안다. 세상은, 사람의 욕심은 참으로 무서워서 그렇게 불구덩이로 향한 많은 발걸음들은 그 불을 끄기 전에 자신이 그 안에서 한 줌의 재가 되어 연소된다. 자신을 잃고, 그 안에서 자신도 모르는 무엇이 되어 언디가를 떠도는 사람들이 여의도에는 많다. 


사실 우리가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답은 이미 수많은 책들 속에 수도 없이 반복적으로 이미 설명되어 있다. 매일 같이 쏟아지는 책들은 사실 같은 말을 다른 방식으로, 다른 영역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을 뿐,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많지 않다. 우리가 그것을 받아들이기 싫어서 부인하거나 현실의 작은 것들에 구속되어 이미 발견된 진리를 바라보지 않아서 그 진리를 인지하지 못할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이라는 바다에 계속 돌을 던지는 사람들이 있다. 내 돌이 밑에 가라앉더라도, 누군가의 돌이 내 위에 쌓여서 바다 위로 올라와 섬이 되지 않을까. 내가 던진 돌이 섬이 된 거대한 돌무덤의 구석에라도 있을 수 있다면 그 돌은 충분히 의미가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가지고. 


계속 그렇게 돌을 던질 수 있는 사람이고 싶다. 내게 소원이, 소망이 있다면 그렇게 꾸준히 다양한 돌을 던지다 조용히, 평화롭게 잠드는 것이다. 그게 지금 이 시점에 내 인생의 목표고, 계속 그게 나의 목표였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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