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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mon de Cyrene Feb 13. 2021

나를 '팔아야'하는 세상에 산다는 것

나 자신을 “인위적으로” 브랜딩해야 한다고 생각한 적은 없다. 사실 취업을 할 때도 스펙’만’을 위해서 무엇인가를 해본 적은 없다. 하고 싶은 것들을 찾아 열심히 살다 보니 그게 내 이야기가, 스펙이 되었고, 그것들이 내 길을 열어주긴 했지만 스펙을 만들기 위해서 뭔가를 인위적으로 해본 적은 없다.


브런치에서도 이력을 썼다 지우기를 반복했지만 내 이력보다 글이, 글이 그 자체로 읽혔으면 하는 마음이 있어서 4년 중 대부분 시간을 이력에 공란으로 두고 있었다. 어제 클럽하우스에서 출판기획자분의 얘기를 듣고 이력을 넣을 필요성에 설득이 되어 넣긴 했지만, 브런치에 이력을 써놓는 건 여전히 불편하다. 내 글이 아니라 날 봐달라는 느낌 같아서...


그렇다보니 어느 순간부터 화두가 된 '자기 브랜딩'이란 말이 편하게 느껴지진 않았다. 물론, 자기 브랜딩은 중요하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명확히 규정함으로써 내가 나갈 방향에서 기회를 잡을 가능성을 높이는 것은 당연히 필요하고 중요하다. 하지만 난 자기 브랜딩은 자신의 마음이 움직이는대로 움직이면서 스스로를 다듬으면서 자연스럽게 이뤄지는 것인바, 인위적으로 무엇인가가 되기 위해서 자기 브랜딩을 위해 무엇인가를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이는 누군가에게 특정한 방식으로 보여지고 싶어서 하는 브랜딩은 본질적인 부분이 결여되어 있어서 얼마 가지 못할 뿐 아니라 그 한계는 얼마 지나지 않아 드러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 보니 난 '자기 브랜딩'이 얼마나 강조되는지, 사람들이 그걸 얼마나 중요시하는지에 크게 신경쓰지 않고 있었다. 그렇다보니 클럽하우스를 2주 정도 쓰면서 '자기 브랜딩'을 하기 위해 인위적인 노력을 하는 사람들과 자신들을 포장하기 위한 노력을 대놓고 물어보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에 놀라고 있다. 그리고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또 적지 않은 사람들이 본질보다는 소위 말하는 '네임드'에 얼마나 집착하는지, 자신이 네임드라 여기면 자신만큼 네임드인 사람이나 그에 상응하는 스펙을 가진 사람들은 존중하지만 그렇지 않은 것으로 느껴지는 사람들의 말은 본인의 취향과 다르면 무의식 중에 은근히 누르고 넘어가는 지를 보고 느끼며 브랜드의 본질과 형식의 본말이 전도된 느낌을 받았다.


개인적으로 그 연장선에 있는 수많은 글쓰기 클래스들도 편하게만 느껴지진 않는다. 주기적으로 글을 쓰고, 서로 그에 대해 합평하는 수준의 글쓰기 클래스들이야 문제가 없지만 개인적으로 자신이 이룬 성과를 갖고 이건 이렇게 쓰고, 매체 전략은 이런 식으로 하면서 하라는 식의 공식을 파는 사람들을 좋아하지 않는다. 이는 그런 식의 클래스를 하는 사람들 중에는 2-3개 정도의 책을 낸 후에는 본인은 더 이상 어떤 창작물도 내놓지 못하면서 클쓰기 클래스를 진행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고, 그런 사람들이 낸 책들의 특징은 글 자체보다 제목이나 주제로 관심을 끌어 팔린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많이 팔렸다고 해서 그 작가가 글을 잘 쓰는 것도, 그 책이 반드시 좋은 책인 것도 아님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그런 사람들의 글쓰기 노하우를 습득하면 단편적인 결과물이나 성과는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제대로 된 글쓰기는 [지속가능] 해야 한다. 그런데 지속 가능한 글쓰기능력은 단편적인 기술만 익혀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자료, 재료, 소재들을 접하면서 오래, 많이, 고민하고 정리하면서 함양된다. 글은 계속 쓰면 늘게 되어있고, 글을 더 쓰고 싶으면 더 많이 생각하고 고민하면 된다. 글쓰기 클래스나 강연을 하는 사람들은 적지 않은 경우 단기적이고 단편적인 성과를 내는 기술을 가르쳐주는데 그칠 뿐, 글쓰기의 본질을 익힐 수 있는 도움은 주지 못한다. 글쓰기 클래스들이 정말 효과적이고, 효율적이라면 우리나라에는 글을 쓰지 못하는 사람이 지금보다 훨씬 적어야 하지 않을까? 글쓰기 클래스와 작법서들이 얼마나 많나?


우리나라에서 가장 체계적으로 교육한다는 작가교육원에서도 막상 수업을 들어보면 하는 것이라고는 글 쓰고 합평받는 것이 전부다. 다만, 기한에 맞춰서 쓰고 글을 프로로 쓰고 보는 사람들이 합평해주는 것이 다를 뿐이다. 언론사 스터디들도 결국은 서로 글을 쓰고 피드백을 주면서 서로의 글 실력을 향상시킨다. 이는 글쓰기에는 지름길이 없기 때문이다.


뭔가 대부분 사람들이 성인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대학입시에 맞춰서 스펙을 갖추던 패턴에서 벗어나지 못한 느낌이다. 마음이 움직이는대로, 본인의 본성에 따라 움직이는 게 아니라 뭔가가 되기 위해서 가는 길을 고민하는 듯한 느낌. 아무래도 특정한 주제가 있고, 말로 커뮤니케이션이 오가다 보니 그런 경향이 클럽하우스에서 유독 자주 포착된다. 노하우, 기술, 방법을 물어보는 질문들 중 대부분은 사실 '나 고생하기 싫고, 힘들기 싫은데, 빨리 가는 지름길 알려주세요'란 말이 아닌가? 그런 질문에 대한 진짜 전문가들의 답은 보통 정해져 있고, 그건 항상 본질에 초점을 맞추라는 것이다.


예술을 하는 도구 또는 방법에 해당하는 글, 음악, 미술의 본질은 '나'다. 예술이 예술인 것은 그 결과물에 그 사람의 성향과 색이 묻어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나'에게서 시작되지 않는, 글을 써서 뭔가를 취하기 위한 것이 주된 목적인 글은 지속 가능할 수가 없다. 그리고 글이 '나'에게서 시작되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나 자신은 물론이고 주위에 대한 고민과 생각의 절대적인 양이 많아야 한다. 많은 사람들의 글이 특정 주제 주위를 맴돌고, 적지 않은 경우 같은 얘기를 다른 문장과 제목으로 하는 것은 그들의 생각과 고민이 그 안에만 집중되어있기 때문이다.


내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서, 내가 관심 있는 내용을 정리하기 위해서 글을 써보는 것은 좋고, 또 필요하다고도 생각한다. 그런데 나의 성공, 내가 알려지기 위한 수단으로 글을 사용하려 하는 것은 반짝할 수는 있지만, 그 한계는 드러날 수밖에 없다. 내가 내 글로 빛을 볼 수 있기 위해서는, 글에 나를 담기 위한 시간, 노력, 고민이 반드시 있어야 하고, 글쓰기를 지속적으로 하기 위해서는 나의 외연을 넓혀가기 위한 공부와 경험을 많이 하면서 그것을 생각과 고민을 통해 소화해야만 한다. 그걸 단축시킬 수 있는 지름길은 없고, 글은 그래서 쓸수록 늘 수밖에 없다. 글을 계속 쓰려면, 계속 고민하고 생각해야 하니까.


많이 팔리지 않아도 좋은 글을 쓰는 작가들이 책을 많이, 빨리 내지 못하는 것은 그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당신이 책방이나 인터넷에서 책을 사서 손에 들었을 때, 당신이 산 건 단순히 그 작가의 글이 아니라 전작부터 그 책을 쓸때까지 들어간 그 작가의 피, 땀, 눈물과 시간을 산 것이다.


싱어게인에서 30호였던 이승윤은 몇 년 전 한 인터뷰에서 '나의 가장 큰 야망은 얼굴이 알려지지 않는 것이다'라고 한 적이 있고, 싱어게인에서도 '내 노래가 나보다 앞에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라고 했다. 글도 마찬가지다. 글이 사람보다 앞에 있어야지, 사람이 글 앞에 있어서는 안 된다. 내가 작가로서 유명해졌다고 좋아할 필요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되는 것은 사실 내가 쓴 글은 이미 나의 일부이고, 글이 아닌 눈에 보이는 사람으로서 내가 주목받는 것은 내가 떼어낸 나의 일부가 아니라 나의 껍데기가 주목을 받는 것이기 때문이다. 어제 클럽하우스에서 출판사 기획자 분의 얘기를 듣고 이력을 썼지만, 구체적인 회사나 학교를 쓰지 않고, 내 책 링크를 걸지 않은 것은 나의 껍데기가 나의 글보다 앞에 서 있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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