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30대 회상. 2
한국에서 대부분 사람들은 거북이가 아니라 토끼가 될 것을 부모님께 강요받다. 우리나라에서는 어쩌면 부모님이 아니라 국가적으로 그것을 강요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모든 것을 빨리, 빨리하고 항상 경쟁하면서 남들보다 앞서야 한다고 하니까.
우리 부모님 역시 마찬가지였다. 경쟁에서 이기고, 남들보다 좋은 학교, 좋은 직장에 가는 것은 물론이고 빨리, 빨리, 빨리... 대부분 첫째들이 그렇듯 나 역시 그런 부모님의 요구를 들어드리기 위해서, 충족시켜드려야 한단 막중한 책임감을 갖고 항상 스스로를 채찍질하며 살아왔다. 더 높이, 잘하는 것을 넘어서 더 빨리 이루는 것까지.
그렇다 보니 대학입시에서 재수를 한 건 엄청나게 뒤처지는 것으로 여겨졌고, 학부시절에는 가능하면 빨리 졸업해서 돈을 벌어야 한단 생각에 휴학은 생각하지도 못했다. 매 학기마다 들을 수 있는 최대 학점을 가득 채우고,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을 찾아야 한단 생각에 교내외 활동까지. 그 덕분에 나는 휴학하지 않고 많은 사람들이 선호하는 대기업에 입사할 수 있었다. 재수하지 않고 대학에 진학한 친구들이 여러 가지 이유로 휴학하거나 졸업이 늦어져서 나는 친구들 중에 빨리 취업을 한 편에 속했고, 그때야 비로소 '따라잡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속도적으로나 연봉적으로나 내가 잠시나마 앞질렀던 친구들은 내가 회사를 그만두고, 대학원에 간 후 온갖 실패를 하고 있을 때 경력, 연봉은 물론이고 결혼에서도 나를 앞질러 갔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턴가 나보다 훨씬 어린 동생들도 나를 앞질러 가고, 그들 결혼식에 축의금을 내는 일이 잦아지는 것을 넘어서 익숙해지더라.
나의 30대는 동기와 친구들은 물론이고 동생과 후배들도 돈을 모으고, 차를 사고, 결혼하면서 전세계약을 하거나 빚을 내서라도 집을 사는 것을 바라만 보고 있어야 하는 시간들로 채워졌다. 그 과정에서 나는 "아프니까 청춘이다"와 같은 말은 물론이고 "힘내라"는 말도 폭력적이고 가학적일 수 있다는 것을 느끼고, 경험했다.
아직 만으로는 30대, 한국 나이로는 40인 올해를 앞두고 30대를 돌아보며 나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고통스럽고, 후회스럽고, 원망스럽기만 했을까? 아니다. 난 오히려 진흙탕 속에서 허우적대기만 한 것 같았던 나의 30대가 고마웠고, 눈에 보이는 것은 아무것도 손에 쥐고 있지 못한 지금의 상황은 예상했던 것보다는 조금 덜 아프다. 이는 그 진흙탕에서 빠져나와 보니 그 안에서의 시간이 의미가 없지 않았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나보다 빨리, 높이, 멀리 가는 것처럼 보였던 그들 중에 행복하고 안락하며 평안한 삶을 사는 이들도 있다. 최소한 겉으로 보기에 그래 보이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그들 중 적지 않은 이들은 자신을 모르는 상태로 달리고, 날아서 지금 자신의 위치에 도착해 이젠 방향을 돌리기엔 너무 많은 것을 가진 상태가 되어있는 이들도 적지 않다. 그런 지인들은 자신이 그 길을 따라가면 어디로 향하는지가 보이고, 그 끝이 내키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짊어진 수많은 짐들로 인해 그 길을 가야만 하더라. 그것이 그들의 [책임]이니까.
그렇게 가야 하는 것까지는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있다. 문제는 아직 본인도, 세상도 모르면서 내린 결정들의 결과물을 떠안은 상태에서 나이가 든 지인들 중 상당수는 더 많은 것을 보고, 듣고, 알게 되면서 그들은 자신도 예상하지 못한 갈등과 장애물에 직면하고, 때로는 그로 인해 인생이 나락의 길로 가거나 가정이 깨어지는 것을 보고, 듣고 있다. 40이란 나이는, 주위에서 그런 일들이 일어나는 것을 보거나 간접적으로 경험해서 그런 일들에 무뎌지는 나이인듯하다.
내가 빨리, 멀리, 높이 갔다면 달랐을까? 나의 30대를 돌아보면, 내가 빨리, 멀리, 높이 갔다면 그들보다 더 힘들고, 심각한 갈등을 겪었을지도 모르겠단 생각, 아니 확신을 갖게 된다. 그런 문제들은 보통 20대와 30대 초반까지의 나처럼 빨리, 멀리, 높이 가는 것만 보고 옆에서 일어나는 일에는 시선도 돌리지 않은 채로 경주마처럼 살아온 사람들이 많이, 심각하게 경험하니까.
그럼 경험은 '빨리' 보다는 '방향'에 초점을 맞추게 한다. 이는 속도는 내가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누군가가 빨리 선택하느냐에 달려있고, 내가 선택되기 위해서는 맞는 방향으로 가고 있어야 한단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 능력이 조금 부족해도, 그 방향으로의 평균적인 재능도 없지만 않다면 내가 한 방향으로 꾸준히 가고 있는 한 언젠가는 선택받을 것이란 사실도 안다.
'언젠가는 선택받을 것을 안다'라고 확신할 수 있는 것은, 대부분 사람들이 한 방향으로 가는 길 위에서 오래 버티지 못하기 때문이다. 지금 당장 성과가 나지 않고, 내가 선택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한 방향으로 가는 것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그렇게 가는 과정은 불확실성도 너무 크고, 그 불확실성으로 인해 몰려오는 두려움이 엄청나기 때문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균 정도의 재능이 있다면, 결국 그 길에서 버틴 사람들이 자리를 잡거나 자신이 예상한 자리가 아니더라도 그 자리에서 버틴 덕분에 새로운 길을 찾아가는 것을, 그런 원리를 이해하고 받아들이게 될 수 있게 되는 정도의 나이가 40이 아닐까?
그렇다고 해서 '무조건 큰 꿈을 좇고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모든 재화와 자리는 제한되어 있고, 세상에는 타고난 능력과 노력하는 능력을 겸비한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기 때문에 내가 최초에 설정한 꿈은 이루지 못할 수도 있다. 그리고 내 꿈도 기본적으로 먹고사는 것은 충족될 때야 비로소 본질을 지키면서 추구할 수 있다. 먹고살 수도 없는 상태에서, 본인의 한계가 보임에도 불구하고 포기할 줄 모르는 것은 용기가 아니라 아집이 아닐까? 그런 선택을 하지 못하는 사람들 중에는 자신이 가고 싶었던 방향의 본질과 초심과 꿈은 잊어버리고 껍데기만 추구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을 적지 않게 보는데, 그런 사람들보다는 본인이 정말 최선을 다했다면 자신이 생각했던 길에서 방향으로 조금 트는 것이 더 용감한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런 삶을 살아낼 수 있기 위해서는 초점이 그 길의 끝이 아니라 과정에 맞춰져야 한다. 이는 내가 대단한 성과를 내거나 다른 사람들의 기준에서의 성공을 이루지 못해도 그 길을 과정에서 즐겁거나, 보람을 느끼거나 의미가 부여가 되는지, 내가 무대 위에 서고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못해도 그 무대를 만드는 과정에서 충분히 행복할 수 있는지를 기준으로 선택을 하면 우린 생각보다 많은 것을 어렵지 않게 내려놓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대 위에 서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시간이 무한할 수 없다는 것이 받아들여지면, 그러한 선택을 하는 것이 거기에서 또 조금 덜 힘들어진다.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지 않은가.
내게 30대는 이처럼 속도보다 방향에, 그리고 세상이 말하는 크고 높은 것보다는 내가 가는 과정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것을 깨닫는 시간이다. 그리고 흙탕물에서 빠져나와 옷을 빨고 몸을 말리고 있는 요즈음 나는 그 안에서 허우적거리는 동안에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이 아니었음을 발견한다. 그 안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허우적거리면서 온 몸에 버티는 힘이, 마음의 잔근육이 많이 생겼고, 허우적거리면서 여기저기 뿌리고, 쏟았던 힘과 노력들이 하나둘씩 시너지를 내며 내게 새로운 기회를 끌어오는 것을 보면서 열매 맺는 시기와 열매의 종류가 다를 뿐, 열매를 맺지 않는 씨는 없다는 것을 조금씩, 조금씩 깨달아가고 있다.
40이면 세상일에 정신을 빼앗겨 갈팡질팡하거나 판단을 흐리는 일이 없게 된다는 불혹(不惑)은 거짓말이다. 그건 공자나 되니까 40에 그런 경지에 이를 수 있는 것이지 40이 되었다고 해서 흔들리고, 불안하고, 두렵지 않은 사람은 없다. 40이란 나이가 의미가 있다면, 그건 속도보다는 방향이 중요하다는 것을 이론과 머리가 아니라 마음으로 깨닫는 나이라는 것이 아닐까?
그리고 사람을 굳이 나누고 분류하지면, 세상에는 그것을 깨닫고 방향을 틀 수 있는 사람과 틀 수 없는 사람으로 나눌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방향을 잘 틀기 위해서는 가진 게 많은 것보다는 없는 게 유리할 때도 있기에 모든 것을 가진 완벽한 삶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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