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30대 회상. 3
"그때만 할 수 있는 걸 해"
사람들에게 20대와 30대 초중반까지 자주 들었던 말이다. 연애도, 여행도, 직업을 바꾸는 것도, 사람들은 그때만 할 수 있는 게 있다며 그것만큼은 꼭 해보라는 것들은 반드시 하면서 즐기라고 했다. 그런 것들은 대부분 과격하거나, 시간이 많거나 에너지가 많이 소모되는 것들이었다.
내가 그 모든 것을 다했던 것 같진 않다. 나는 30대의 대부분을 내 앞에 숙제처럼 놓여진 일들을 쳐내는 데 사용했고, 그 덕분에(?) 30대에 어느 정도 여유가 되는 지인이나 친구들이 누리고, 즐기는 것을 본의 아니게 멀리하며 살았다. 마치 다른 사람들에게 뒤처지는 느낌이었고, 그들을 따라잡을 자신이 없었다. 그건 사실 지금도 마찬가지다.
그렇다고 해서 30대를 재미없게만 보낸 것은 아니다. 나는 결혼한 지인들이 자유롭게 살라고, 결혼하지 말라고 하면 '내 기준에서 해보고 싶은 극단적인 건 다 해본 것 같아'라고 할 정도로 내게 주어진 시간, 공간과 범위 안에서 내가 해보고 싶은 것은 최대한으로 다 해보면서 살았던 것 같다. 산티아고 가는 길을 걸었고, 팟캐스트를 했으며, 30대에 구글에서 인턴도 해봤고, 박사과정을 마쳤다.
그중에서 가장 미친 짓이자 자유로운 결정은 아마도 박사과정을 마친 게 아닐까? 먹고사는데 아무 도움도 되지 않고, 남들은 관심도 없지만 내 마음이 가는 공부에 오롯이 시간을 쓰는 것만큼 극단적이고, 비생산적이며, 막사는 인생이 또 있을까? 사람들은 20-30대에만 해볼 수 있는 것을 '그때나 효율, 효과, 생산성 따지지 않고 자유롭게 살 수 있다'면서 권하는데, 그런 맥락에서 보면 나의 박사과정은 분명 20-30대에만 할 수 있는 것이었다. 졸업 후 직장도, 현실도 보지 않고 오롯이 돈도 안 되는 나의 공부에만 집중했으니까. 내가 결혼을 했다면, 그렇게 공부에 집중했을 자신은 없다.
혹자는 '뭘 그 정도로 하고 싶은 것을 다해봤다고 하냐'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자유롭게 유흥을 즐기면서 살거나, 직장을 그만두고 세계일주를 다닌 사람들에 비해서 나의 일탈은 모범적이고, 유치하게 느껴지는 면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사람들이 꼭 해봐야 한단 것들을 못하고 있을 때는 내가 뒤처지는 건가 싶으면서 '내 인생은 왜 이러지' 싶었던 때도 분명히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보니 남들이 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을 내가 꼭 해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과 남들이 즐겁고, 흥분되는 것들이 나를 즐겁거나 흥분시키지 못한다고 해서 내가 이상한 것도 아니고, 우린 그저 다른 사람일 뿐이라는 것을 시간이 지나면서 알게 되었다. 그 사실을 깨달은 후부터는 남들이 '그때만 할 수 있는 것'이라고 하는 것들을 하지 못한 게 아쉽지 않았고, 내 삶을 돌아보니 나도 나름대로 내 마음대로 살았기 때문에 큰 불만을 갖지 않을 수 이게 됐다.
그러한 관점의 변화에는 30대 중반을 넘어가면서 지인들이 해준 얘기들이 엄청난 영향을 미쳤다. 많은 사람을 자유롭게 만나던 자유로운 영혼의 지인이 어느 날 술이 엄청나게 들어가자 '이젠 잠자리에서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아'라면서 삶의 낙이 없다고 토로하고, 세계의 절반을 여행하고 돌아온 지인은 이젠 여행에 질려서 다신 가고 싶지 않다고 하는 말을 들으면서 사람들이 '그때만 할 수 있는 것'이라고 하는 것들을 하지 못한 게 오히려 감사한 일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물론,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다는 것도 안다. 20대부터 60대까지 자유롭게 살면서 마냥 행복해 보이는 사람도 있고, 여행만 하면서 사는 사람들도 있다. 그게 본인에게 맞는 사람들은 평생을 그렇게 살 수 있을지도 모른다 (물론, 기회가 된다면 그들이 새로운 자극이 느껴지는 일을 하지 않을 때 어떤 마음과 상태인지를 물어보고 싶긴 하다.). 하지만 그게 모든 사람들에게 맞는 것도 아니고, 그게 맞지 않는 사람에게는 '이때 아니면 할 수 없다'는 이유만으로 그런 경험을 폭발시킨 것이 오히려 독이 되어 돌아오기도 한다. 우리가 무엇인가를 하기 전에 우리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알아야 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30대를 지나오면서 내가 깨달은 가장 큰 교훈은 같은 경험도 사람과 세상과 나 자신을 알고 하는 것과 모르고 하는 것이 다르고, '그때만 할 수 있는 것'인 일들은 나이가 들어서 경험하게 되면 양적으로는 적게 경험하더라도 그 경험이 훨씬 깊을 수 있단 것이다. 욕정과 욕망에 휩싸여하는 스킨십은 자극적일 수 있지만 그 자극이 오래가지 못하는 반면 사랑의 표현으로 하는 스킨십은 조금 덜 자극적이더라도 스킨십을 통해 느껴지는 감정과 평안함은 지속 가능함과 동시에 깊고, 많은 곳을 찍지 못하더라도 내가 좋아하는 곳에서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여행하는 것은 나의 삶을 훨씬 풍요롭게 만들어준다는 것을 경험하고 나니 '그때만 할 수 있는 것'이란 말을 믿지 않게 되었다. 이는 어떤 것들은 오히려 '그때 하지 않는 것'이 경험의 깊이를 더해주기도 한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개인적으로는 [반드시 20-30대에 해야만 하는 경험]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굳이 삶에 적용할 수 있는 공식이 있냐고 물어본다면, 가능하면 20대에 다양한 경험을 얕고 넓게 해 보고, 그 과정에서 본인의 마음이 움직이는 경험이나 일을 찾아보고 30대에는 자신의 마음을 따라 움직이는 연습을 하는 것이 아닐까? 그 과정을 따라가다 보면, 사람들이 [반드시 20-30대에 해야 한다]고 했던 경험들을 다른 맥락과 형태로 30대 후반에서 40대에도 할 수 있게 되는 듯하다. 나의 마음이 그 방향으로 움직인다면.
이 땅에서 산 시간이 길어질수록 나의 마음이 피해 가는 일과 경험까지 해 봐야 하는 것은 아니고, 20대 후반과 30대 초반에만 해야 하는 것으로 느껴지는 경험들을 조금 늦게 하는 게 오히려 좋을 때도 있고, 속도보다는 방향, 양보다는 질이 중요하단 생각이 확고해진다. 나이가 몇 살이든, 내가 생긴 대로, 나 답게 살면 되지 않을까. 그게 가장 큰 행복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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