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의 연애는 시간과 함께 변한다.

나의 30대 회상. 4

by Simon de Cyrene

서른에는 결혼해서 가정을 꾸리고 싶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깨달았다. 내가 서른에 결혼했다면, 아마도 불행하게, 결혼에 대한 회의론자로 살거나 이혼했을 것이라는 사실을.


내가 그것을 확신하는 것은 나이가 들수록 이십 대 후반에서 삼십 대 초반의 난 누군가의 남편이나 아빠가 될 준비가 전혀 되어있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때의 난 이기적이었고, 상대를 하나의 인격체가 아닌 조건의 집합체로 봤으며, 상대와 맞춰갈 줄 모르는 사람이었다. 지금 내게 그런 면이 전혀 없다고 할 수는 없지만, 지금의 난 그나마 내가 그러한 모습을 보였을 때 진심으로 미안해하고 사과할 줄 알지만 그때의 나는 그럴 줄 모르는 사람이었다.


그런 나의 이십 대 후반에서 삼십 대 초반의 연애는 감정 중심적이면서도 과도하게 이성적이었다. 그게 말이 되냐고? 말이 된다. 상대가 좋아서, 좋아한다는 감정이 들어서, 호감이 생겨서 연애를 시작하지만 만나는 과정에서 갈등이나 부딪힘이 생기면 감정이 여전히 남아있어도 이성적으로 아니라는 판단을 내리고 관계를 끝내고는 했으니까. 지금 돌아보면 당시 나의 모습은 폭력적이고 이기적이라고 밖에 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나의 모습을 용서해주기로 한 것은, 간접적으로 지인들의 연애와 결혼생활을 들어보니 대부분 사람들이 그런 모습을 한 번은 지나간단 것을 알게 되었고, 우리가 그런 시기를 지내는 건 사실 사회가, 세상이 그렇게 될 것을 강요하는 면도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걸 알게 된 후에는 나 자신도, 다른 사람들도 함부로 판단하거나 비난하지 않기로 했다.


물론, 모든 사람이 그런 과정을 겪는 것은 아니다. 어렸을 때부터 부모에게 충분히 존중받고 사랑받은 사람들은 20대에도 충분히 아름답고 이타적인 연애를 하고, 또 그런 사람을 만나서 아름다운 가정을 꾸리더라. 그런 사람들은 자신이 존중받으며 자라왔기에 다른 사람을 존중할 줄 알고, 다른 사람의 말을 들어주면서 대화하며 맞춰갈 줄 알더라.


하지만 우리나라 사람들 중 적지 않은 이들은 자신의 모습 그대로 존중받고 사랑받기보다 어렸을 때부터 경쟁하고, 다른 사람을 이겨야 한다는 생각에 매몰된 상태에서, 항상 목표를 설정하고 그걸 달성해야 한단 생각에 사로잡혀서, 항상 [더 좋은 것]을 추구해야 한단 생각을 갖고 살도록 강요받고 교육받는다. 그런 사람들은 연애와 결혼을 무의식 중에 '더 좋은 스펙을 가진 사람'을 만나기 위한 과정으로 여겨고, 자신이 어떤 사람을 만나는지가 아니라 남과 비교했을 때 어떤 사람을 만나고 있는지를 의식하며, 연애나 결혼생활 중에도 나의 의견과 생각이 현실에 구현되고 반영되는 것을 우선순위에서 굉장히 높은 곳에 놓으면서 상대에게 그에 맞춰 살기를 강요한다.


그런 연애와 결혼에 대한 생각과 태도가 잘못된 것은, 연애와 결혼에는 객관적이고 절대적인 기준이 아닌 지극히 주관적인 기준이 적용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연애와 결혼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어떤 사람인가?'이고, 그에 따라 내가 함께 할 수 있는 사람이 달라진다. 물론, 우리는 모두 수용할 수 있는 범위에 한계를 갖는다. 어떤 이들은 일정 학력 이하의 사람들과는 잘 맞지 않거나 본인 안에 선입견이 있을 수 있다. 어떤 사람들은 특정한 외모의 사람에게만 매력을 느낄 수도 있다. 그런 지점들은 노력으로 극복될 수 없기 때문에 '나는 이런저런 사람이랑 만나야 할 것 같아'라고 말해야 한다.


하지만 우린 그것을 잣대로 삼아 누군가를 판단하고 평가하기보다 그것을 나의 한계로, 내가 수용 가능한 사람의 범위가 그 정도로 제한된다고 생각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이런 시선의 차이는 현실에서 생각보다 큰 차이를 가져온다. 이는 그것을 '기준'으로 삼아 누군가를 판단하기 시작하면 우린 모든 사람들을 평가하고 순위를 매기게 되지만, 그것을 '나의 한계'로 여기고 상대를 내가 있는 그대로 포용할 수 있는지를 고민하기 시작하면 상대를 조금 더 입체적으로 보면서 그 사람에게 어떤 좋은 면이 있는지도 같이 보게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누군가를 포용하기 힘든 게 '상대가 못나서'가 아니라 '내가 그릇이 그만큼 넓지 않아서'로 바뀌게 되는 것은 내가 세상과 사람을 보는 시선에 엄청난 변화를 가져오게 된다.


나의 30대는 누군가를 판단하고 평가하는데서 나 자신의 한계를 깨달아가는 과정이었고, 나와 다르면 상대를 잘라내던 사람에서 최대한 맞춰보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 되어가는 과정이었다. 그것을 머리로 알게 되었다고 해서 그게 나의 연애에 곧바로 적용된 것은 아니기 때문에 그 과정에서 난 실수도 많이 했고, 나 자신과 부단히 싸워야 했으며, 사실 지금도 그런 나 자신과 싸우고 있다.


만약 내게 '그래서 네 연애가 어떻게 달라졌는데?'라고 묻는다면, 30대 초반보다 후반에 조금 더 상대에게 맞추기 위한 노력을 할 수 있게 됐고, 상대를 물건이 아니라 사람으로 존중할 수 있게 되었으며, 나의 한계를 받아들였고 상대의 한계도 알게 되었기 때문에 상대를 덜 판단하게 되었다고 답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렇다고 연애가 쉬워지는 것은 아니다. 이는 아무리 내가 그렇게 노력하더라도 상대가 그럴 생각이 없거나 그럴 생각이 있다 하더라도 상대가 내가 포용할 수 있는 범위에, 그리고 내가 상대가 포용할 수 있는 범위 안에 들어가지 않으면 그 관계에는 갈등이 발생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확신할 수 있는 것은 지금의 내가 가정을 꾸릴 수 있게 된다면 30대 초반이나 30대 중반의 나보다는 좋은 배우자, 좋은 부모가 될 수 있단 것이다. 아직도 부족하지만, 그때의 나보다는 조금 큰 사람이 되어가는 중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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