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에 미혼인 게 다행인 이유

나의 30대 회상. 5

by Simon de Cyrene

40에도 싱글일 줄은 몰랐다. 40에 싱글이라니. 빼도 박도 못하는 노총각이란 의미가 아닌가? 지인들은 위로한답시고 만으로 38이다, 요즘엔 늦게 결혼하는 사람도 많다고 하지만 그런 말을 하는 건 더 구차하고 추해 보인다. 경험상 이런 건 차라리 내 입으로 인정하는 게 낫다. 40이나 처먹은 노총각이라고. 내가 먼저 그렇게 말하면, 사람들은 더 이상 그에 토를 달거나 이런저런 말을 함부로 하지 못한다.


40에 싱글인 사람들은 대부분 그렇듯, 나도 결혼 얘기를 했던 사람이 있었다. 서로를 굉장히 사랑했고, 서로 어떻게 이런 사람이 세상에 있는지 모르겠다고 생각했으며, 만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는 꼭 평생 함께 살자면서 부모님들에겐 얘기도 하지 않고 우리끼리 날짜를 알아본 사람도 있었고, 오랜 기간을 오빠, 동생으로 지내다 사귀었기에 이 사람과 가정을 꾸리게 될 것이라 혼자 생각했던 사람도 있었다.


그런 사람들과 왜 헤어졌냐고 묻는 사람들에게 뭐라 답할지 모르던 시절이 있었다. 이제는 다르다. '내가 미숙했고 이기적이었기 때문.'이라고 답한다. 상대를 탓하려면 탓할 수도 있겠지만 (사실 탓할 수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 사람들은 가정을 꾸려서 아이까지 갖고 살고 있으니까. 행복한지는 물어본 적이 없으니 모르겠다.) 설사 상대의 과실이나 부족함이 있었다고 해도, 내가 조금 더 나은 사람이었다면 그런 부분들을 품고 수용해 줄 수 있었을 테니 결국 내 탓이다. 또 혹여나 정말 상대가 문제였다고 하더라도 지금 와서 남의 탓을 해서 뭐하겠나? 내 문제를 기억하고 같은 실수를 하지 않는 게 생산적이니 내 탓만 하는 게 낫다.


어떻게든 아닌 척해보기 위해 말장난을 쳤지만, 내가 그분들과 결혼하지 못한 것은 내 탓이 맞다. 어디 결혼까지 생각하고 얘기해 본 사람들과의 관계만 그럴까? 결혼까지 생각이나 얘기하지 않았던 분들이나 썸만 타던 분들과의 관계에서도 내가 보통 미숙함이나 단호함으로 포장하는 나의 이기심으로 인해 상대를 더 알아가지 못하게 되었던 적도 몇 번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난 왜 그렇게 못난 놈일까!'라며 분노하지 않는다. 정확히 말하면, 그렇게 분노했던 시절도 있었지만 이제는 그러지 않는다. 30대를 지나면서 그 당시의 내가 어떤 상황에 있었고, 무엇이 내가 그렇게 반응하게 했으며, 그런 감정은 어디에서 오는지를 알게 되었고, 그때의 나는 부족한 모습도 있는 그대로 존중하고 인정해주기로 했다. 나부터 나 자신을 위로할 줄 모르면 누가 날 위로하고 사랑해 줄 수 있겠나? 그것과 별개로 내가 미안한 마음이 들었던 분들에게 30대 후반에 연락이 닿는 방법으로 사과를 하기도 했다. 물론, 상대가 날 차단했다면 그 사과 메시지도 보지 못했겠지만.


그런 시간을 보냈다고 해서 내가 완벽한 사람이 된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40에 싱글인 게 다행인 것은, 이제는 누군가를 만나면 그 관계에서 부정적인 감정이나 경험은 30대의 나보다 덜 쌓을 자신은 있기 때문이다.


20대나 30대에, 아직 건강하지 않은 자아를 가졌거나 본인 중심적인 상태에서 결혼한 사람들 (우리나라 사람들 중에는 적지 않은 사람들이 그런 듯하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신혼 초기에 싸우고, 그때 남은 섭섭한 마음과 감정이, 심할 경우에는 상처가 계속 남아있는 경우가 적지 않은 듯하고, 그때의 기억을 삭제하지 못한 상태로 때로는 애들 때문에, 때로는 사회적 평판이나 자존심 때문에 부부관계를 유지하는 사람들도 상당히 많은 듯하다 (죽어도 결혼은 하지 말라고 싱글들을 세뇌하는 사람들이 보통 그렇다). 그런 사람들의 부부생활을 보면 행복한 순간들도 있지만 해결되지 않은 그 문제가 발목을 잡는 경우가 많다.


그건 그들의 잘못이 아니다. 인간관계에서 처음 가진 인상이나 느낌이 그 관계를 지배하는 경우가 굉장히 많다. 예를 들어 정말 온화한 사람이 있다고 치자. 그 사람이 아무리 온화하더라도 그 사람이 굉장히 힘들고 예민할 때 그 사람과 처음 만나고 관계를 형성한 사람은 그 사람의 온화한 면을 일정기간 이상 경험하지 않으면 그 사람의 말이나 태도를 그 사람이 힘들고 예민할 때 받은 이미지로 '해석'하게 되어있다. 많은 사람들이 어렸을 때의 트라우마나 부모, 형제와의 부정적인 경험으로 인해 가족을 돌리게 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이처럼 그 관계가 처음 형성될 때의 이미지나 느낌은 그 사람에 대한 커뮤니케이션을 왜곡하기도 한단 것이다.


적지 않은 부부들이 서로를 오해하고, 싸우는 것은 그 때문인 듯하다. 다른 사람과 함께 사는 법, 나를 양보하는 법을 전혀 모르는, 결혼을 해서 같이 살면 초창기에 그로 인한 갈등이 있을 것이라고 예상을 못했거나 자신이 직면한 방식으로의 갈등을 예상하지 못했던 사람들은 결혼 초창기의 다툼과 갈등으로 인해 당황하고, 상대를 그때 자신이 인지했던 방식으로 해석하고 왜곡하더라. 그런 선입견이 자리를 잡은 이후에는 상대가 뭘 어떻게 해도 다 거슬리는 것이다! 평생을 불행하지는 않지만 행복하지도 않게 사는 적지 않은 부부들은 보통 그런 과정을 겪더라.


30대 초중반의 나의 모습을 보며 나는 더했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나는 그런 경험을 하는 사람들보다도 더 자기중심적이었으니까.


지금은 다를 것 같냐고? 완전히 다르지는 않을 것이다. 나도 어느 정도는 같은 방식의 갈등은 겪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젠 화를 내거나 상대를 탓하기 전에 잠시 물러나 대화로 해결하기 위한 노력을 하거나 작은 것들은 내가 맞추면서 살 수 있는 정도는 할 수 있을 듯하다. 근거도 있다. 부모님께서 시골에 내려가신 지 1년이 넘도록 빨래는 딱 한번, 내가 제주도에 있을 때 하고 청소는 한 번도 하지 않는 동생과 살아보니 이젠 내가 그 정도는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더라 (심지어 그 한 번 한 빨래도 섬유유연제를 넣지 않아 수건이 걸레 같았는데도 난 아무 말도 하지 않을 수 있는 경지에 이르렀다!!)!


이제는 '이 사람과 평생 함께 하면 행복할 수 있겠다.'는 착각을 할 수 있게 해 줄 정도의 사람이라면, 결혼 초기를 나쁜 기억보다는 좋은 추억과 경험들로 많이 채워갈 수 있는 사람 정도는 된 듯한 느낌이다 (물론, 이것도 경험해봐야 알겠지만). 설사 내가 그런 정도의 사람이 되지 못했다 하더라도 주위에서 결혼한 사람들을 보고, 30대의 내 모습을 보면, 내 결혼생활이 어떤 경험과 기억들로 채워졌을지가 보인다. 그리고 그때의 내가 아이를 가졌다면, 내가 그 아이를 얼마나 힘들게 했을지도. 그 이유만으로도 사실 40에 싱글인 건 충분히 나쁘지는 않은 상황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만약 내게 '어떻게 30대의 당신보다 나은 남편이나 아빠가 될 것이라고 확신하냐?'라고 누군가 묻는다면, 그 가장 큰 이유는 어쩌면 30대와 40이 된 내가 보는 나 자신에 대한 시선이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30대의 나는 내가 꽤나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한 반면, 40이 된 나는 내가 얼마나 부족한 사람인지를 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30대에 결혼했다면 상대가 나와 결혼한 게 얼마나 운이 좋은 것인지를 묵상하고 기억했을 것이나, 40인 난 (그리고 아마 우리 부모님도) 나와 함께 가정을 꾸려주겠다는 결단을 하는 사람에게 고맙고, 고맙고, 또 고마울 것이다.


나는 '그래도 내가 이런 사람인데 말이야'라는 생각을 가진 사람과 진심으로 '나와 결혼해 줘서 고마워'라고 생각하는 사람의 결혼생활에는 꽤나 큰 차이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아직까지는 40에 싱글이라 다행이다. 물론, 싱글로서의 삶을 굳이, 일부러 더 갖고 싶은 생각은 없다. 사람들은 내게 '결혼 [안]한 거라 그래'라 말하라고 하지만, 난 결혼을 [못]한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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