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30대 회상. 6
마흔이 된 내 모습은 상상도 해본 적이 없다. 20대에 내가 상상할 수 있는 한계는 30대 어딘가의 나의 모습뿐이었고, 나는 30대 중후반이면 당연히 아내도, 차도, 아이도, 집도 있을 줄 알았다. 조금씩 현실을 깨닫기 시작한 후에는 현실적으로 내 집이 있긴 힘들겠단 것은 알았지만 30대 초반까지도 나는 30대엔 아내도, 차도, 아이도 있는 삶을 살고 있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아니, 의심은 커녕 당연히 그럴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리라 생각했던 30대를 지나 이젠 단 한 번도 상상해 본 적 없는 나이, 아니 어쩌면 상상하고 싶지 않았던 나이, 마흔이 되었다. 마흔이 된 나의 현실은 집은 물론이고 아내도, 차도, 아이도 없는 상태다. 차야 내가 여러 이유로 어느 정도는 자발적으로 포기했다고 치더라도 아내도, 아이도 없는 상태일지는 몰랐다. 심지어 빚도 없지만 잔고도 가벼울 뿐 아니라 아직도 불안정한 현재와 미래를 마흔에 경험하고 있다니... 누군가 내게 20대의 나에게 나의 '마흔'이 이럴 것이라 말해줬다면 난 그 사람을 불신하는 것을 넘어 '저주하지 마!'라며 그 사람을 가만히 두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30대면 대부분 사람들이 다 어느 정도는 안정된 삶을 산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건 안정된 마흔을 전제로 하는 것이기도 했다. 마흔이면, 큰 걱정거리는 없을 줄 알았다. 내 미래도 어느 정도는 윤곽이 잡혀있고, 예측 가능할 것이라 믿었기에. 하지만 지금 나의 현실은 그와 매우, 매우, 매우 (한 100번 정도 반복해야 할 정도로)거리가 멀다.
나만 이럴까? 물론,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다. 정서적으로 안정되어 있고 경제적으로도 성공한 부모에게 사랑받고 물려받은 게 많은, 본인이 무엇을 하든지 충분히 존중받으면서도 본인이 받은 것이 자신의 힘과 노력만이 아닌 사회구조와 상황의 영향이 있었기에 가능하다는 것을 인지하며, 이른 나이에 마찬가지로 정서적으로 안정되어 있고 경제적으로도 성공한 부모를 둔 사람과 결혼해 부모가 마련해 준 집에서 가정을 꾸린, 건물이나 고정적인 수입원이 될 시스템 또는 회사를 갖고 있어서 죽을 때까지 먹고 살 걱정은 하지 않는 사람들은 내가 상상했던 30대를 살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경제적으로 성공한 부모들 중 상당수는 남을 짓밟고, 경쟁에서 승리해야만 부자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을 넘어서 사람보다 돈에 더 많은 가치를 부여하며, 돈이 인생의 핵심적인 목표로 설정되기 때문에 자녀들도 그 틀에 끼워 맞춘다. 그런 부모를 둔 사람들의 30대는 또 다른 방식으로 고통스럽고 힘들 수밖에 없다. 더군다나 정서적으로 안정되어 있고 경제적으로도 성공한 부모를 둔 사람이 마찬가지로 그런 부모를 둔 사람을 만날 확률은 로또를 맞을 확률에 가까울 것이다. 세상에는 돈이 많은 사람과 결혼해서 인생역전을 하려는 사람이나 본인보다 조금 더 가졌거나 덜 가진 사람들을 깔보고 물질을 중심으로 사람을 평가하는 사람들도 많으며 그런 사람과 가정을 꾸리는 순간 그 인생은 힘들어진다.
반면에 정서적으로 안정된 부모에게서 경제적으로 물려받은 것은 많지 않거나 없는 사람들은 30대에 결혼을 해도 고민이 많아질 수밖에 없다. 이는 우리나라 경제가 고도로 발전하면서 노동을 통해 큰돈을 벌 수 있는 시장은 거의 사라졌고, 집을 포함한 부동산 가격은 미친 듯이 오른 반면 회사원의 연봉은 아무리 높아도 '빚 없이 집을 사면서 현재도 여유 있고 풍요롭게 사는 삶'을 사는 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빚을 내서 집을 산 사람들은 현실에서 다른 것들을 줄일 수밖에 없고, 적정한 빚을 지고도 여유 있게 살 수 있는 연봉을 받는 회사원들은 보통 그걸 누릴 시간이 없으며, 그렇게 일을 하다 보면 결혼해서 아이를 낳았어도 그 관계에 문제가 생기기 시작한다.
이는 20대에 내가 생각했던 [당연한 삶]은 사실 누구에게도 당연하지도 않고, 대부분 사람에게는 불가능한 삶이란 것을 의미한다. 이는 본인과 본인 환경이 괜찮아도, 본인이 아무리 노력해도 이를 방해하는 다른 요소들이 세상에는 너무 많기 때문이다. 내가 30대에 실패를 거듭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안정된 직장과 어느 정도 이상의 연봉을 받고 있었다 하더라도 다른 무엇인가가 내가 당연히 여긴 그 삶을 방해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단 것이다.
예를 들어보자. 내 주위에는 억대 연봉을 받는 사람들이 수두룩하게 많다. 이는 내가 다녔던 회사가 연봉이 우리나라에서 10년째 다섯 손가락 전후를 오가고, 로스쿨을 졸업했다 보니 변호사들이 내 주위에 많기 때문이다. 그런 그들은 걱정과 불안이 없을까? 아니다. 높은 연봉을 받는 내 동기들은 지금 당장 경제적 부족함은 없지만 그들도 10년 넘게 모은 돈만으로 집을 살 수는 없을 뿐 아니라 운 좋게 청약이 되었거나 집값이 미친 듯이 뛰기 전에 대출을 끌어서 집을 사지 않은 이상 집이 없고, 무엇보다 이제는 임원이 될 가능성이 여전히 있는 사람과 그게 불가능해진 게 보이는 사람들이 갈린 상황이라 미래에 대한 불안감은 절대 작지 않다.
변호사들의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다. 기존의 변호사 시장은 이미 포화상태고, 대형 로펌에서도 무조건 생존할 수 있는 게 아니며, 자신의 사무실을 차릴 경우 말 그대로 '별의별' 사람들을 다 상대하면서 영업하고, 일해야 하기 때문에 에너지 소모가 어마어마하다. 더군다나 소송을 주로 하면 변호사들은 수백, 수천 페이지가 넘는 사건들을 수 십 개씩 동시에 맡아서 매일 상담과 서면을 몇십 페이지씩 쓰는 삶을 반복해야 한다.
물론, 우리 사회에는 그들보다 연봉도 훨씬 적게 받으면서도 미래가 불확실한 사람들이 그런 사람들보다 훨씬 많다. 내 지인들은 경제적으로는 그래도 우리나라에서 상위 10-20% 전후에 들어가는 사람들일 확률이 높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80-90%는 그보다 더 힘들고 불확실한 삶을 살고 있단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무엇이 사람들을 가장 힘들게 만들까? 심지어 지금 당장 적지 않은 연봉을 받는 사람들까지도? 사람들은 왜 더 좋은 직장에 가도, 연봉이 엄청 올라도, 사업이 엄청나게 흥해도 불안해하는 것일까?
그 가장 큰 이유는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간의 욕심이 끝이 없다고 힘들어하거나 불안해하지 않는다. 우리를 힘들고 불안해하는 것은 '예측가능성이 결여된 미래' 때문이다. 일 년에 수십억을 버는 연예인들도 불안하고 공황장애를 겪기도 하는 것도, 4대 보험이 보장된 회사에서 엄청난 연봉을 받는 사람들도 불안해하는 것도, 완전히 자리 잡은 사업을 하거나 전문직종에 속한 사람들도 불안하고 힘든 것은 자신의 현재 지출은 현재 수입에 맞춰져 있는데 그게 지속 가능할지는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여기에 더해서 '예측가능성을 담보하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것에서 무기력함까지 느낀다. 회사원들, 특히 10년 이상 회사를 다닌 회사원들은 특히 그렇다. 회사원들은 10년 이상 '조직의 부품'으로 사는 것에 익숙하고 회사 안에 대해서만 알기 때문에 안에서는 언제 잘릴지 모르는데 잘리고 나면 또 할 수 있는 게 없을 뿐 아니라 회사생활에 길들여져서 하고 싶은 게 뭔지도,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도 모르게 되어버리기 때문에 불안함을 떨치지 못한다.
그런 상황들 속에서 내가 마흔에 불안정함에도 불구하고 괜찮은 것은 내 현재는 지인들에 비하면 비참할 수 있고, 미래도 여전히 불안정하지만 내가 무엇을 해야 하고, 하고 싶은지는 확실히 알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길을 잘 가면 그 과정에서 내게 어느 정도의 경제적 안정도 찾아올 수 있다는 계산이 서기 때문에, 죽을 때까지 일이 끊기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나는 불안하고 힘들긴 하지만 괜찮은 오늘을 살고 있다.
이런 나의 삶이 억대 연봉을 받는 지인들보다 나은 점이 있다면, 그들은 잘 닦인 4차선 도로를 달려왔지만 저기 앞에 비포장 도로가 보이는 반면 나는 작은 일방통행 도로를 달려왔고, 한동안 계속 그렇겠지만 저 앞에 도로가 넓어지는 지점이 보이긴 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어디로 가야 할지에 대한 방향키를 잡고 있지 못하지만 난 방향은 최소한 잡았으니 그런 면에서는 내 삶은 그들의 삶보다 나은 점도 있단 것이다.
그런 지인들은 이런 류의 대화를 하면 실제로 '너는 그래도 할 게 있고, 하고 싶은 게 있잖아.'라고 말한다. 그런 말을 들으면 난 항상 같은 답을 한다. "내가 얼마나 힘들게 버티고, 고민하고, 울면서 고생해서 찾게 된 길인데. 그런 과정 겪지 않고 너가 그 길을 하루아침에 찾으면 내가 좀 억울하지."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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