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에는 빚도 능력이라지만

나의 30대 회상. 7

by Simon de Cyrene

빚을 내고 그 빚을 갚는 것을 삶의 원동력으로 삼는 사람들이 있다. 일이 하기 싫어질 때면 '빚을 갚자!'라고 다짐하고 엑셀을 밟기 위해서 빚을 내서 갖고 싶은 것을 사거나, 할부로 질러놓는단 것이다. 머리로는 이해되지만, 평생 빚이란 걸 져본 적이 없는, 은행권 대출도 받아본 적이 없는 사람 입장에선 공감은 가지 않는 라이프스타일이다.


그렇다. 난 꽤나 운이 좋은 편이었고, 평생 빚을 지거나 대출을 한 적도 없다. 아버지께서 다니셨던 회사에서 학비를 대줬기에 학자금 융자를 받을 필요는 없었고, 학부시절에 부모님께서 용돈을 끊으셨지만 난 그 대가로 오롯이 내 용돈을 해결할 일감들을 찾아다녔으며, 대학원 학비는 회사에 다니면서 모은 돈으로 해결한 후에 조교를 하면서 장학금을 받아서 해결했다. 박사과정 시절에는 운 좋게도 프로젝트에 참여해서 내 생계 정도는 해결하며 살 수 있었다. 박사를 받고 나서도 나는 놀라울 정도로 운이 좋아서 4대 보험을 보장해주는 직장 없이도 내 생계를 해결할 수 있을 수준의 수입을 올리고 있다.


이걸 다른 버전으로 압축하면 난 금수저로 오해받기 딱 좋은 삶을 살아왔다. 잘 다니던 대기업 때려치우고 금수저들만 간다는 로스쿨에 갔다가 심지어 속 편하게 박사과정까지 마친 후에도 정규 직장이 없는 사람. 그런 인간이 어떻게 먹고 살아왔을까? 가장 간편하면서 상식적인 듯 들릴 수 있는 답은? 금수저다. 세상에 거기다 대출도 한 번 받아본 적 없다니...


위에서 설명했지만 난 말 그대로 '운이 좋아서', 나의 종교적인 표현을 빌리자면 '하나님의 보호와 인도하심과 은혜로' 지금까지 버텨왔다. 실패를 거듭하며 힘든 시간을 보낼 때면 'ㅆ0 신이 어디 있어!! 신이 있으면 이렇게 치열하게 사는 애를 이렇게 방치하지 않지!!'라며 약 일주일 정도 무신론자로 산 적이 있었지만 그 과정에서 계속 의심하고, 물음과 동시에 내 삶에서 '운'으로 밖에 표현될 수밖에 없는 일들을 경험하면서 난 내가 믿는 세계관에 대한 믿음이 더 확고해질 수밖에 없었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와서. 이렇게 버티며 30대를 살아왔다 보니 나는 한 번씩 '야, 나도 빚 좀 내보고 싶다.'는 생각을 종종 한다. 이는 알아본 적도 없지만 내 통장 잔고와 거래내역, 지금 하는 일의 성격에 비춰봤을 때 난 빚을 '안'내는 것이 아니라 '못'낼 것임을 너무 잘 알기 때문이다. 담보가 없는, 안정성이 보장되어 있지 않은 사람에게 누가 빚을 내주겠나? 40대 정도 되었으면 사실 마통도 뚫고, 빚도 좀 팍팍 낼 수 있고 해야 그럴듯해 보일 텐데 나이는 40씩이나 먹어서 빚도 내지 못할 내 상황이 가끔이라고 하기엔 자주, 자주라고 하기엔 가끔 한심해 보이기도 한다.


그런데 난 사실 빚을 내지 못하는 내 상황을 그렇게 싫어하지만은 않는다. 왜냐고? 빚을 낼 수 있는 상황이었다면 난 100% 빚을 냈을 테니까. 내 시간과 노력 외에 다른 자원을 투자해야만 할 수 있는 일을 벌일 생각이었다면 난 분명 빚을 냈을 것이다. 우리는 '빚'이라고 말하지만 계획이 있다면 그건 빚이 아니라 '투자'니까.


그런데 무슨 일에든 과도하게 책임의식을 갖고, 계획에 따라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내 기본적인 성격상 난 빚을 냈으면 엄청나게 스트레스를 받았을 것이고 또 그 스트레스에 매몰되어서 100%의 성과를 내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내가 빚을 낼 수 있었다면, 나는 빚을 최대한 낼 수 있는 방법을 찾아서 빚을 낸 후 최대한으로 일을 크게 벌려서 최대한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일을 찾았을 것이다. 즉, 내가 빚을 낼 수 있었다면 난 나의 인생이 아닌 돈과 물질적 풍요로움을 최고의 가치로 두고 살았을 게 분명 하단 것이다.


앞에서 내가 종교 얘기를 꺼낸 것이 불편하신 분들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많은 고민 끝에 내가 종교적 얘기를 꺼낸 것은, 사실 내게 믿는 종교는 다른 사람들이 말하는 종교적 겉치레나 형식이 아닌 'way of life', 삶의 방식에 대한 해설서에 더 가깝고 나는 역설적이게도 실패를 하고, 빚도 내지 못해서 돈이 들어가는 일을 하지 못하게 되면서 어떤 삶이 가장 행복할 수 있는지에 대한 기준과 방법을 나름 정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빚을 낼 수 있었다면, 돈을 투자해서 더 많은 돈을 벌어들일 수 있는 기회를 빚을 통해 잡을 수 있었다면 난 진정한 행복을 모르고 돈과 성공에 매몰된 삶을 살았을 것이다. 돈과 물질적 풍요로움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다. 수단으로서 돈과 물질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물질적으로 풍요로워지면 우린 그만큼 더 많은 자유를 보장받으니까. 생각해보자. 우린 왜 돈을 많이 벌고 싶어 하나? 우린 하고 싶은 것을 하기 위해서, 선택에서 자유롭고 싶어서, 그리고 역설적이게도 더 이상은 돈 걱정을 하고 싶지 않아서 돈을 많이 벌고 싶어 한다.


문제는 적지 않은 사람들은 삶의 목표 자체가 돈과 물질적 풍요로움이 되어있다는 데 있다. 그런 사람들은 자신이 돈을 왜 버는지도 모르고, 아니 잊어버리고 돈을 버는 것에만 집착하다 무리수를 두고, 그 과정에서 실수를 하면 그 실수를 만회하기 위해 또 무리하다 더 큰 규모로 실패를 경험한다. 수단으로써 돈과 물질적 풍요로움은 필요하고 선하지만, 돈과 물질적 풍요로움이 인생의 목적과 목표가 되는 순간 그 인생은 결국 망가질 수밖에 없단 것이다. 우리가 축적할 수 있는 돈과 물질적 풍요로움에는 끝이 없으니까.


이처럼 아이러니하게도 내겐 빚을 낼 수 없는 상황이 내가 '본질'에 대해 고민할 수밖에 없게 만들었다. '삶의 본질을 겨우 40이 되어서 통달했단 것이냐?'라고 비아냥 거리는 사람들이 분명 있을 것이나, 내가 통달했단 것이 아니라 최소한 머리로는 삶의 본질과 의미를 이제는 이해한 듯하고, 마음으로는 어느 정도는 받아들인 듯하단 것이다. 오해하지 않았으면 좋겠는 것은 내가 탁월하거나 위대해서, 대단한 사람이라서 그런 것이 아니라 이미 그에 대한 수많은 고민을 한 인생 선배들이 남겨 놓은 기록들을 곱씹고, 빚도 내지 못하고 생각하고 주위를 관찰할 시간만 많아지자 결국 본질을 파고들게 되었고, 이미 인생 선배들이 쌓아놓은 고민들 덕분에 이해의 속도가 조금 빨라질 수 있었을 뿐이다.


지인들과 이런 대화를 하면 '도 닦았냐?'라고 묻는데, 돌아보면 난 어쩌면 정말 도를 닦는 것과 유사한 30대를 보낸 것도 같다. 세상에서 고립되어 책 읽고, 고민만 했고 심지어 생계를 해결하는 수입도 결국에는 생각과 글을 통해 해결했으니까. 맨날, 주구장창 생각하고 고민하는 것과 도 닦는 것은 비슷하지 않나?


그렇게 생각해보면 난 40에 빚을 낼 능력과 인생과 사람에 대한 최소한의 이해를 맞바꾼 것일 수도 있다. 실제로 내 주위에서 꽤나 잘 나가는 지인들은 현재의 문제에 매몰되어서, 집값과 주식의 변동추이를 추적하느라 자신이 무엇을 위해, 왜 일하고 집을 사고 주식으로 돈을 벌면 무엇을 하고 싶은지에 대한 생각은 거의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게 이상하단 게 아니다. 그럴 수 있는 기회가 눈 앞에 있으면 누구나 그렇게 될 수밖에 없다. 우리는 무의식 중에 그런 것들이 우리 삶에 안정과 예측가능성을 담보해 줄 것이라 생각하니까 (물론, 그런 것들이 일단 많은 게 더 안정적이긴 하다. 하지만 그런 것들이 주는 안정도 한시적이고 미래에 일어나는 작은 일이 모든 것을 뒤집어 버릴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부분 사람들은 그걸 잊어버리거나 생각하지도 않고 앞으로 돌진한다. 그걸 받아들이면 생각이 복잡해지고, 현실에 방해가 되니까.).


반면에 나처럼 애초에 집은 살 수도 없었고, 주식에 투자해서 수익률이 300% 나 나봤자 여유자금(원금)이 애초에 적어서 큰 의미가 없을 것이며, 빚을 낼 수 없기 때문에 빚투는 애초에 불가능한 사람들은 그런 시간과 노력을 들일 수가 없다. 대신 남들이 자산을 불리는데 시간과 에너지를 쓸 때 나 같은 사람들은 '아 ㅆ0 내 인생 왜 이러지?'에서부터 시작해서 본질적인 고민들을 파고들 수밖에 없다. 인생이 너무 힘든데, 인생을 좀 이해해야 살 수 있을 것 같으니까. 살기 위해서.


둘 중에 한 가지를 선택하라고 하면, 난 40에 빚을 낼 능력보다는 인생에 대한 이해와 어느 정도의 수용을 받아들이겠다. 이는 위에서도 설명했지만 내가 30대에 빚을 낼 수 있었다면 엄청나게 일을 벌였을 텐데, 그 과정에서 나는 심하면 완전히 망가졌을 듯하고 최소한 행복하지는 않았을 듯한 반면, 지금의 나는 현실을 어느 정도는 이성적이고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게 됨으로써 많이 안정되고 충분히 만족스러울 정도로 나름의 행복을 누리고 있을 뿐 아니라 [새로운 관점]을 단련한 덕분에 미래에도 꽤나 행복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 모든 게 사실 내가 빚 낼 능력이 되지 않은 덕분이다. 그래서 40에 빚을 낼 능력이 없는 삶도, 완벽하지는 않지만 또 그렇게 나쁘지만도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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