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30대 회상. 8
20대 후반, 30대 초반에 나보다 나이 몇 살 많은 형, 누나들이 '나이 들면 힘들다. 너희가 겪어보지 않아서 몰라'라고 할 때면 항상 속으로 비웃었다. '웃기시네'라고. 살집이 있는 편이지만 어떤 형태의 운동이든 항상 하는 편이었기에 건강은 큰 문제가 없을 것이라 생각했고, 운동을 하면 컨디션이 급격하게 좋아지는 편이라 운동을 끊이지 않고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사실 속으로 '그건 당신들이 운동을 게을리 해서지'라고 생각했던 적도 있었다.
30대 후반서부터 깨닫기 시작했다. 그건 나의 오만함이었음을. 역시 인간은 자신이 경험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함부로 판단해서는 안된단 것을.
운동을 계속하더라도 회복력이 달라지더라. 예전에는 웨이트를 들면, 헬스를 하면 몇 달 정도를 쉬어도 2주 정도 꾸준히 하면 예전에 들던 무게를 금방, 어렵지 않기 다시 들 수 있었는데 나이가 들면서 그 기간이 길어지는 것을 느끼기 시작했다. 한국 나이로 38살이던 시점에 2-3개월 운동을 쉬었더니 예전 무게를 다시 들기까지 3-4달이 걸리더라. 큰일 났다 싶었다.
그 이후로는 운동을 가능하면 쉬지 않으려고 하는 편인데, 작년에 코로나로 인해 헬스가 문을 닫으면서 홈트레이닝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커버되지 않는 부분들이 있었고, 이전의 운동 강도를 회복하기까지 2-3개월이 걸렸다. 이번에 4차 유행 가능성을 확인하고 내가 가장 먼저 확인한 게 헬스장에 대한 제한인 것도 그 때문이다. 다시 그 난리를, 그 피로도를 감당할 자신이 없어서.
그리고 체중이 많이 나가는 것도 예전에는 큰 문제가 되지 않았는데, 운동을 꾸준히 하고 근육이 많으니 몸무게가 많이 나가는 것도 커버가 됐는데 어느 순간서부턴가 하루, 하루를 버텨내는 게 체력적으로, 물리적으로 힘들어지기 시작했다. 예전에는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나도 좀 예쁜 옷을 다양하게 입고 싶어서 다이어트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면, 이젠 살기 위해서, 힘들지 않기 위해서 다이어트를 해야겠단 생각을 한다.
하지만 사실 이와 같은 신체적인 변화들보다 더 힘든 것은 '외로움'이다. 다양한 활동을 했고, 20대에서 30대 초반까지 주선한 소개팅이 세 자리가 넘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을 알았고, 주말도 보통 모임들로 가득 차곤 했다. 하지만 40이 되고, 지인들은 대부분 결혼을 했고 그중에 또 대부분은 아이들도 낳았다 보니 그런 모임들은 가뭄에 콩 나듯만 생긴다. 그나마 있던 모임들이나 약속들조차 이제는 코로나 때문에 잡히지 않은 지도 1년 반이 넘어가지만.
코로나 이전에도 사실 비슷했다. 지인들이 대부분 싱글일 때는 약속을 나 때문에 조정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그들이 가정을 꾸리면서 그들의 일정에 내 일정을 맞추는 게 일상이 되었다가 그들이 아이까지 갖게 되면서 1년에 한 번 보면 친한 사이일 정도로 서로 만나기가 쉽지 않아 졌다. 그리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가진 사람들과 만나면 대화는 항상 결혼생활, 시부모나 장인어른, 배우자, 아이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뤘기 때문에 싱글인 나는 공감대를 형성하기가 힘들어지더라.
그런 이야기들을 처음 들었을 때는 모든 게 흥미로웠다. 내가 어쩌면 결혼도, 이혼도, 육아도 해보지 않고 그래도 결혼, 이혼, 출산하신 분들이 '경험해보지 않고 어떻게 이 주제에 대해서 이렇게 글을 쓰냐'라고 해주실 수 있는 글을 브런치에서 4년 넘게 써왔던 것도 그런 대화들을 통한 간접경험의 영향이 절대적이었다. 그 이야기들이 너무 흥미로워 집중해서 들으며 하나, 하나 모았고 그 재료를 갖고 머릿속에서 '이건 저 방에, 저건 저 방에, 보자... 이것보단 저게 먼저네?' 하며 짧게는 5-6년에서 길면 10년 정도 정리하다 보니 내가 브런치에서 쓴 연애, 사랑과 결혼에 대한 글들이 나온 것이다.
하지만 내 개인적인 경함과 감정이 들어가 있지 않은 그런 류의 대화들은 거의 비슷한 이야기들이 비슷한 패턴으로 흘러가기 마련이고, 나는 이미 30대 중반 즈음에 그런 대화들에 지쳐있었다. 그건 그들 또한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내 나이에 싱글이었던 적이 없었던 그들은 내 상황에서 내가 겪는 것들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내 삶에 공감하기가 힘들어졌을 것이다.
이는 사실 결혼이 아닌 다른 프레임에서도 마찬가지다. 초중고등학교 때는 엄청 친했던 친구들도 대학교와 전공에 따라 갈라지고, 대학 졸업 후의 직장생활이나 사회생활에 따라 삶이 달라지면서 점점 공감할 수 있는 지점들이 사라지는 것을 누구나 어느 정도는 경험하지 않나? 대기업 다니는 친구는 해외여행을 일 년에 한 번 일주일밖에 못 간다고 짜증을 내면, 중소기업 다니는 친구는 그럴 금전적 여유가 없는 본인 상황 때문에 짜증이 나고, 거기에 속 없게 고등학교만 졸업하고 일찍 사업을 시작해 성공한 친구는 직원들이 일을 다 한다며 본인은 언제든 여행 갈 수 있다고 하는데, 옆에서 고시만 준비하다 취업 못하고 백수인 상황.
딱 그렇거나 이만큼 극단적이지는 않아도 우리는 살다 보면 한 때는 같은 선에 있던 사람들이 각자의 길로 흩어지고, 그 흩어짐으로 인해 초반에는 작았던 차이가 시간이 지날수록 커지면서 우리는 때때로 가장 친했던 친구가 가장 낯선 사람이 되어 있는 것을 발견한다. 화들짝 놀라며 그걸 처음 발견하게 되는 때가 40 즈음인 듯하다.
그나마 조금 더 어렸을 때는 부모님과 이런저런 대화도 할 수 있었고, 부모님께 투정도 부릴 수 있지만 40 정도가 되면 부모님들도 아무리 젊으셔도 60, 많으시면 70 이상이 되시기 때문에 부모님은 의지의 대상이 아니라 내가 버팀목이 되어드려야 하는 상황인 경우가 대부분. 그렇다 보니 가정을 꾸리지 않은 사람들은, 심지어 30대에는 커리어를 말하며 결혼도 출산이나 육아도 하지 않겠다던 이들마저도 입 밖으로 말하진 못해도 자신만의 시간을 가질 때는 어느 정도의 외로움을 안고 산다. 40 전후의 싱글들은 대부분 그런 듯하다. 그리고 그 순간들은 사실 꽤나, 최소한 쉽지만은 않다. 취미 등의 즐거움? 30대에 나름 하고 싶은 것들 하면서 산 편이라고 생각하는데, 거기에서 오는 재미와 즐거움도 시간이 지나니 시들해지더라.
물론, 결혼한다고 해서 모든 게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결혼해서 가정을 꾸렸어도 상대가, 또는 본인이 자신을 여전히 제일 중요시하고 상대와 '함께' 가정을 꾸리며 맞춰갈 줄 모르는 사람들은 가정을 꾸리고 아이가 있어도 40 즈음에는 외로움을 느끼고 힘들어한다. 그런 사람들이 꼭 한 번씩 '결혼 괜히 했어'라고 하는데, 결혼하지 않았어도 그 외로움은 왔을 것이고 결혼을 하지 않았다면 또 '00와 결혼할 것 그랬어'라며 후회했을 것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이 가지 않은 길을 아쉬워하고 궁금해 하기 마련이니까.
이처럼 40이 되니 생물학적으로도, 심리적으로도 힘든 면들이 생긴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30대에는 체력이 되니까 일에 몰두하고 주위를 보지 않으면서 어디에도 기대지 않아도 됐는데, 체력이 떨어지고 힘들어지면서 외로워지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고...
여튼 이래저래, 40이 되어보니 예상하지 못한 힘들어짐이 찾아오는 것은 사실이다. 이 글을 읽은 20-30대의 분들아 전혀 공감도 되지 않고 '오바' 같다고 해도 난 뭐라 할 자격이 없다. 나도 그렇게 생각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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