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사랑에 대하여. 8화
'일 년은 만나 봐야지'
'사계절은 같이 지내봐야지'
'동거를 해 봐야지'
'집은 있어야지'
'집안이 어느 정도는 살아야지'
'가임기가 지나지 않아야지'
언제, 누구와 결혼을 해야 될지에 대해 사람들이 말하는 기준이다. 개인적인 경험에 의하면 이 모든 말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느껴지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위에서부터 아래로 내려올수록 더 불편하게 느껴졌을 가능성이 높고, 또 어떤 이들은 중간 즈음이 가장 불편하게 느껴졌을 것이다. 사람들은 아무리 객관적이려고 노력해도, 본인의 상황과 입장에 따라 다른 명제를 다르게 받아들이기 때문에 아래 세 가지는 사람에 따라 불편함이 느껴지는 수준이 다를 것이다.
그런데 사실 이런 조건들 중 실제로 의미가 있는 조건은 하나도 없다. 나의 이전 글들에서 자주 언급했듯이 우리가 누군가를 일 년을 만난다고 하더라도 사실 매일 1시간씩 통화하고, 주 2회씩 만난다 하더라도 두 사람이 일주일에 함께 하는 시간은 많아야 15시간인데 이는 일주일의 1/7도 되지 않고, 그중 상당 시간은 상대에게 잘 보이기 위해, 잠시 불편함을 감당하더라도 상대에게 맞춰주면서 지나간다. 전화를 끊고 '피곤해 죽겠네'라고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데이트를 마치면 친구에게 전화해서 연인에 대해 불평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 일 년, 사계절을 지낸다고 행복한 결혼생활이 보장되진 않는다. 사실 '데이트와 연인'의 수준에서의 관계에서 서로의 새로운 모습을 알아가는 것은 서로 의도적으로 노력하지 않는 이상 길어야 2-3개월이면 끝난다. 그 이후에는 만나는 순간의 즐거움과 호르몬 작용이 그 관계를 유지시켜주고, 두 사람이 지속적으로 많은 대화를 하지 않는 이상 두 사람이 서로를 '새롭게' 알아가는 지점은 사실 많지 않다. 그렇게 관계를 유지하다 서로가 느끼는 불편함이 축적된 양이 일정 한계를 넘어설 때 두 사람이 헤어질 뿐, 두 사람이 만난 기간이 꼭 두 사람이 서로를 잘 안단 것을 의미하진 않는다.
경제적인 부분이나 '가임기'를 운운하는 것 역시 마찬가지다. 지금 그 사람이 집이 있다고 해서 그 집을 계속 갖고 있을 수 있는지도 알 수 없고, 어떤 이들은 부자인 사람과 결혼하면 상대의 재력이 자신의 것이 되는 줄 알지만 자신도 상대만큼 부자가 아닌 이상 그냥 그렇게 공짜로 주어지는 것은 절대로 없다. 부모님의 도움을 받아서 결혼한 사람들은 도움을 받은 만큼 부모님의 요구에 휘둘릴 수밖에 없고, 이는 '집안'이 잘 사는 사람과 결혼하면 자신도 그 정도의 집안에서 자라지 않은 이상 종종 '팔려간 사람'처럼 대우를 받게 될 것이란 것을 의미한다. 그런 결혼생활이 과연 행복할까? 또 가임기를 따지는 사람들의 경우 왜 최근에는 남자들의 문제로 인해 아이가 생기지 않는 경우도 굉장히 많다는 사실과 나이가 있는 사람이어도 충분히 임신할 수 있는 생물학적 상태일 수 있다는 점은 왜 간과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이처럼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결혼하기 위한 조건'은 행복한 결혼생활을 보장해주지는 못한다. 물론, '내 주위를 보면 그런 조건을 따져서 결혼해 행복하게 사는 사람이 있던데!'라던지 '그러면 그런 걸 전혀 따지지 않고 대충, 사람만 좋으면 다 된다는 거냐'라고 따지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전자의 경우, 물론 [같은 조건의 사람이라면] 그런 조건들을 잘 갖춘 사람과 가정을 꾸리는 것이 더 좋을 수 있다. 하지만 그런 조건을 따져서 결혼한 사람이 행복한지 여부는 첫 번째로 그 사람이 정말로 행복한지, 아니면 그러는 척하는 지를 살펴봐야 하고, 두 번째로 그 사람이 정말 행복하게 해주는 '결정적인 요인'은 사실 그 조건이 아니라 상대가 갖고 있는 다른 면들 때문인지를 면밀히 살펴봐야 한다. 후자의 경우, 그런 것 자체가 행복한 결혼생활을 보장해주지 못한단 의미지 그런 조건을 따지면 안 된다거나 필요하지 않단 것이 아니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한계를 갖고 있고, 그에 따라 자신의 한계로 인해 어느 정도 조건은 따질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다.
그렇다면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결혼생활을 행복하게 해주는 결정적인 요인'은 무엇일까? 그 첫 번째는 사실 상대가 아니라 본인에게 있다. 내가 행복하기 위해서는 우선 내가 상대의 말을 잘 들어주고, 상대를 존중해 주는 법을 아는 사람이어야 한다. 자신의 불행한 연애와 결혼생활을 모두 상대의 탓으로 돌리는 사람들이 없지 않은데, 그런 사람들은 사실 적지 않은 경우 세상 모든 일이 자신 마음대로, 자신에게 맞춰서 이뤄지지 않으면 짜증내고 불평, 불만을 토로한다. 그런 사람들은 어떤 경우에도, 누구를 만나도 행복해질 수 없다. 이는 세상은 절대로 누군가를 중심으로 돌아가지 않고, 때때로 그렇게 돌아가는 순간이 있어 보여도 평생, 모든 일에 있어서 그럴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특히 배우자와의 관계에 있어서 행복하기 위해서는 모든 관계에 있어서 상대의 말을 이성적이고, 합리적으로 듣고, 이해할 줄 알아야 한다. 우리는 본인이 상대의 말을 그렇게 듣고, 소화한 후 자신의 생각이나 주관과 어느 정도 타협할 줄 알아야 지속 가능한 행복을 누릴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린 상대 탓을 하거나 상대 조건을 따지기 전에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돌아보고, 관계를 형성하고 만들어 나가는 데 있어서 자신의 말과 행동을 돌아보는 습관을 기르고, 상대에게 고마워하고 미안할 줄 알아야 한다. 그건 건강하고 행복한 관계를 형성하는 데 있어서 기본이 되는 덕목이다.
결혼생활을 행복하게 해주는 두 번째 조건은 상대도 그런 사람이어야 한단 것이다. 문제는 연애할 때는 적지 않은 사람들이 '일단' 상대에게 맞춰주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데 있다. 그래서 사실 연애할 때도 상대가 원하는 것을 모두 맞춰주기보다는 본인이 맞출 수 있는 수준의 범위 내에서 맞춰주면서 본인이 맞춰주기 힘든 부분들에 대해서는 잘 소통할 줄 아는 사람을 만나는 게 낫다. 한 번쯤은 모든 것을 상대에게 맞춰주는 사람을 만나는 것도 나쁘지 않을 수 있지만, 그런 대접을 받을 때 우리는 그 사람이 평생 그럴 수는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적지 않은 사람들은 결혼하기 전까지 그렇게 다 맞춰주다 같이 살기 시작하면 돌변한다.
상대에게 모든 것을 맞춰주겠다는 말 중에 절대 믿어서는 안 되는 말의 대표적인 예는 '결혼하면 000할 게'라는 류의 말들이다. 결혼하기 전에 상대를 교회에 억지로 다니게 만들고, 상대는 싫어하지만 내 마음에 드는 옷을 입히고, 상대가 불편해하는 것을 알면서도 무엇인가를 루틴 하게 하는 등의 행위는 결혼 후에 깨질 수밖에 없는 약속을 결혼을 볼모로 강요하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상대가 이해하고, 마음으로 받아들여서 바뀌는 게 아니라 본인이랑 계속 만나고 싶다면, 결혼하고 싶다면 000해라 라고 요구하는 것은 지켜질 리 없는 약속을 강요하는 것일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연인은 결혼하기 전에 서로에게 불편한 것을 '솔직하게' 털어놓아야 하고, 상대의 불편한 지점에 대한 타협점을 찾아보는 '이성적 합의'를 해야 한다. 그렇게 합의를 해도 그 합의가 온전히 지켜지지는 못하겠지만, 그렇게라도 해야 그 합의가 이행되지 않음으로 인해 상대가 불편한 이유를 두 사람이 알고, 넘어가고, 또 노력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러한 솔직함이, 결혼을 앞두고는 반드시 필요하다.
문제는 대놓고 그런 시간과 과정을 갖는 걸 힘들어하거나 그때도 거짓말로, 일단 상대와 관계를 유지하거나 결혼하기 위해 합의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데 있다. 아니, 적지 않은 사람들은 본인을 모르기 때문에 심지어 그런 대화를 하는 게 의미가 없을 때도 있다. 그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그런 경우를 위해서 우리는 연인이나 결혼할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잘 알기 위해서는 상대가 본인이 아닌 다른 사람과의 관계 또는 자신의 일을 할 때와 같은 일상에서 어떤 태도나 모습을 보이는지를 살펴봐야 한다. 이는 그런 모습 속에서 그 사람의 '진짜 모습'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상대를 잘 알기 위해서는 '상대가 내게 어떻게 하는지'가 아니라 상대가 어떤 사람들과 어울리고, 그 사람에 대한 평판이 그 안에서 어떤지, 관계를 어떻게 형성하고 있는지, 일할 때는 어떤 마음과 생각을 갖고 있는지를 알아가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이는 누구든 자신의 연인을 대할 때는 대부분 긴장하고, 상대의 마음에 들기 위해 어느 정도는 인위적인 노력을 하는 반면 자신의 일상에서는 자신의 진짜 모습을 드러내고, 상대가 편하게 느끼는 사람들은 그 사람과 비슷한 면이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인간은 누구나 분명한 목적이 없을 때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 드러나기 때문에 그럴 때 상대가 어떤 사람인지를 파악해야 한단 것이다.
적지 않은 사람들은 자신에게 잘해주고, 자신 앞에서 좋은 모습을 보이는 상대의 모습에 속아서 가끔씩 보이는 상대의 부정적인 모습이나 불편한 점들을 간과하고 넘어간다. 그런데 두 사람이 결혼해서 가정을 꾸린 후에는 적지 않은 경우 그렇게 간과한 지점들이 문제를 증폭시키면서 결혼생활을 불행하게 만든다.
결혼해서 가정을 꾸린다는 것은 상대와 가장 가까운 사이가 된다는 것, 내가 상대의 인생에 들어가고 상대가 내 인생에 들어온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기 때문에 최소한 결혼에 대한 얘기를 하는 상황이라면 서로의 인생에 들어가 상대의 주변 사람들을 만나고, 그 사람들과 있을 때 자신의 연인의 모습을 보면서 상대의 또 다른 면들을 알아갈 필요가 있다. 이는 그렇게 알아가는 상대의 모습들이 사실 그 사람이 나와 있을 때의 모습보다 실제 본인의 모습에 가까울 확률이 높고, 결혼생활을 한다는 것은 결국 어느 순간에는, 신혼의 마법이 끝난 후에는 그 사람의 실제 모습이 우리가 함께 지내야 하는 사람의 모습일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결국 상대와 결혼해도 될지를 결정하는 과정에는 상대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한 [신뢰]와 어느 정도의 [예측가능성]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상대에 대해 모든 것을 알 수는 없다. 하지만 상대가 어떤 환경에서 자랐고, 무엇을 추구하는 사람인지를 안다면 대략적으로나마 상대가 어떤 결정을 하고 일상에서 어떤 모습을 보일 지를 예측하는 것은 가능하다. 그리고 이러한 신뢰와 최소한의 예측가능성은 두 사람이 서로에게 솔직하고 진실되어야 형성되거나 일정 수준으로 담보될 수 있고, 두 사람의 솔직함과 진실됨은 사실 두 사람의 장점이나 갖고 있는 것이 아니라 부족한 점이나 한계를 서로에게 어느 정도 공유하고 있는지를 보면 알 수 있고, 두 사람이 그런 지점을 상대와 공유하고 또 받아줄 수 있을 때는 두 사람이 결혼을 해도 된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는 결혼은 단순히 경제공동체를 형성하거나 생물학적으로 대를 이어가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삶을 하나로 합치는, 두 사람이 하나가 되기로 약속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최소한 결혼하기 전에는 두 사람이 서로의 깊은 속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서로에게 털어놓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상대의 깊은 얘기까지 듣고도 두 사람이 모두 상대와 함께 평생 함께 해보고 싶단 마음이 든다면, 그때는 결혼을 해도 되지 않을까. 그래야 두 사람이 서로를 조금은 더 믿고, 서로 존중하며 더 가까워질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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