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결혼을 막는 것들

사람과 사랑에 대하여. 9화

by Simon de Cyrene

우리나라는 국가적인 차원에서 결혼하는 부부, 정확히 말하면 아이를 낳아서 기르는 부부가 필요한 상황이다. 중국은 산아제한 정책으로 한 가정에 아이를 한 명으로 제한하고 있지만 우리나라에는 오히려 한 가정에는 아이를 한 명이라도 갖도록 강제해야 할 정도로 아이를 낳는 사람들이 없다. 그런데 인구는 곧 그 국가의 시장과 경제규모를 결정하고, 한 세대에 아이들이 많아 경쟁을 통해 국가와 사회가 발전할 수 있는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이러한 상황은 사실 '국가적인 차원'에서 위기다.


그렇다고 해서 그걸 국가에서 강제할 수는 없다. 조선시대도 아니고, 아니 조선시대에도 누가 아이 낳는 것을 강제할 수 있었나? 개인의 자유가 가장 중요한 가치로 여겨지는 근대 헌법 하에서 결혼과 출산을 강제하는 법제도는 만들어질 수가 없다. 상황이 이렇다면, 30-40년 후에 대한민국이라는 국가는 인구의 감소로 인해 엄청난 어려움을 겪을 것이 분명하다면 국가에서는 이를 방지하기 위해 젊은 사람들이 결혼하고 아이를 낳을만한 유인을 충분히 제공해야 하는데 우리나라는 그런 유인을 거의 제공하고 있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우리나라가 정말로 그렇게 위급한 상황에 처해있냐고? 그렇다. 그 조짐은 이미 대학교 입학정원에서부터 나타나고 있는데, 우리나라는 이미 고3 수험생의 숫자가 전국 대학교 입학정원보다 적어져서 입학정원을 채우지 못하는 대학들이 나오기 시작했고 이런 현상은 더 악화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대학교들은 문을 닫을 수밖에 없을 것이고, 그 대학에서 가르치거나 일했던 사람들은 일자리를 잃게 될 것이다.


이건 그나마 규모도 작은, 낮은 수준의 위험이다. 1955년에서 1963년까지 태어난 우리나라의 베이붐 세대가 본격적으로 세상을 떠나기 시작하는(?) 시기를 상정해보자. 평균수명을 기준으로 따지면 이들은 30-40년 후에 많이 세상을 떠나셨을 것으로 예상되는데, 그때의 부동산 가격은 어떻게 될까? 그들은 세상을 떠나기 전에 지금 지고 있는 은행빚을 갚을 수 있을까? 그들이 집을 시장에 대거 던지기 시작하면 어떤 상황이 벌어질까? 그들은 아마도 10-20년 후에는 대거 집을 시장에 던져야 할 텐데, 그때는 집을 많이 살 연령대인 30-40대들은 그보다 숫자가 훨씬 적을 것이다. 이런 상황은 집값이 폭락하고 은행을 위험하게 만들고, 궁극적으로는 국가를 경제위기로 몰아갈 수 있다.


자, 그건 20년 정도 후의 얘기다. 하지만 지금의 현실은 어떤가? 베이붐 세대는 유일하게 갖고 있는 재산인 집을 시장에 내놓지 못하고, 집값은 계속 올라가서 지금의 20-30대는 집을 살 수가 없으며, 그들은 대부분이 연봉도 그렇게 높은 수준이 아니다. 거기에 대출까지 막힌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결혼을 하라고? 출산은커녕 결혼도 생각할 수 없는 게 현실이다. 결혼은커녕 본인의 노후를 준비하고 먹고살기도 힘들어 연애도 미룰 수밖에 없는 현실에 처한 사람들도 적지 않다. 이러한 현실이 한국에서 결혼을 막는 가장 큰 원인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것만이 우리나라 사람들의 결혼을 가로막는 요소란 것은 아니다. 그런 상황에도 불구하고 만약 우리나라 사람들이 함께 하는 것의 즐거움을 중요시하고 공동체 의식이 강했다면 무리해서라도 결혼을 할 것이다. 하지만 70년대에 엄청난 경제발전을 경험한 후 IMF를 1997년에 경험한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가장 큰 화두는 '경제'와 '물질'이 되어버렸고, 그 과정에서 '경쟁'이 강조되면서 우리나라 사람들이 돈을 많이 벌고, 승진하고, 높은 사회적 지위를 갖는 것을 제일의 가치로 여기기 시작한 것이 결혼을 가로막는 문화적인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우리 민족의 정(情)과 서로에 대한 배려를 강조하곤 하는데, 우리 주위를 냉정하게 바라보자. 우리나라 사람들이 다른 사람에게 베푸는 배려는 다른 나라에서도 사회적으로, 관습적으로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 항상 그랬던 것은 아니다. 90년대 초중반까지만 해도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도 서로에 대해서 욕을 해도 위, 아래층에 누가 사는지를 알았고, 필요한 게 있으면 나눠 쓰기도 했다. 90년대 초중반까지 서울에서 아파트에 산 나도 그런 경험이 있으니 그런 문화는 우리나라 전반에 있었을 것이다. 응답하라 1988에서 나오는 정겨운 모습은 수유리에만 있던 문화가 아니란 것이다.


그때는 다른 나라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우리나라만의 정이 있었다고 할 수 있지만, 오늘날의 한국은 어떠한가? 오늘날 한국에는 그런 정이나 배려가 존재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보자. 층간소음, 물론 심각하다. 그런데 층간소음은 90년대 아파트에서는 없었을까? 그때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때는 위, 아래층 사람들이 서로 알았기 때문에 위층 사람들도 조금 더 조심했을 것이고 아래층 사람들도 조금 소리가 나도 '00 이가 많이 신났나 보네'라면서 넘어가는 문화가 있었다. 이것도 서울에서 90년대 초중반에 아파트에 살았던 나의 경험에 의하면 그렇다. 지금은 누가 사는지도 모르고, 안다 하더라도 서로 가깝지 않으니 모든 것에 더 날카롭게 반응하거나 아래층 사람들을 배려할 줄 모르는 사람들이 그만큼 늘어난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들 중 상당수는 어느 순간부터 그렇게 자신만 생각하는 과거보다 확연하게 이기적이 된 것이다. 우리는 왜 그렇게 됐을까? 그건 사실 경제, 물질, 경쟁을 강조하는 사회에서 필연적으로 일어날 수밖에 없는 현상이다. 돈과 재화에는 한계가 있고, 그걸 많이 갖는 게 우리를 행복하게 해주는 가장 큰 요소라고 생각하면 그걸 더 갖기 위해서는 남을 짓밟고 경쟁에서 승리해야 하고, 그렇다 보니 물질만능주의적인 사고방식은 필연적으로 이기주의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여기에서 우리는 이기주의와 개인주의를 구분할 필요가 있다. 이는 개인주의는 '개인'이 중요하다고 여기는 것으로, 개인주의자는 다른 사람도 나만큼이나 소중하게 여기는 반면, 이기주의는 자신만 중요하게 여긴다는 점에서 다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개인주의적'이라기보다는 '이기적'인 경향이 강하다.


그렇다면 생각해보자. 모든 것에 있어서 내가 최우선인 사람이, 돈과 물질을 최우선시한다면 어떤 라이프스타일을 선택하는 게 가장 현명할까? 결혼을 하지 않는 것이다. 이는 결혼을 하면 내가 버는 돈도 다른 사람이 쓰게 되기 때문이다.


물론, 모든 사람들이 그런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런 문화가 우리나라에 적지 않은 것이 현실이라는 점을 감안하고 그런 상황에서 내가 누군가와 결혼을 한다고 생각해보자. 상대가 결혼을 결심할 때 어떤 생각과 마음을 갖고 있는지를 어떻게 알 수 있을까? 금전적인 가치를 최우선으로 여기고 이기적인 사람이 많은 사회에 산다면, 상대의 마음과 의도를 한 번 이상 의심해 보는 게 '합리적인 인간'의 선택이 아닐까? 실제로 상대의 집안이나 경제력을 보고 결혼을 결정하거나 결혼을 미끼로 상대의 돈을 뜯어내는 사람들이 남녀를 불문하고 현실에서 존재하지 않나?


사람들이 전반적으로 이기적이 되었다 보니 이젠 상대를 신뢰하기가 힘들어졌고, 그만큼 결혼을 결심하는 것도 힘들어진 것이다. 상대만 문제가 아니다. 내가 가장 중요하고, 경제적인 풍요로움이 행복의 전제조건이라고 여기는 사람들은 '내가 과연 결혼생활을 행복하게 이어갈 수 있을까?'에 대해서도 의구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그렇게 학습되어 왔고, 그런 방향으로 살아왔기 때문에.


이러한 현실은 젊은, 결혼을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딜레마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머리로는 단순히 경제적이고 물질적인 것 이상의 무엇인가가 있다는 것을 알겠는데, 그걸 경험해보지 않았으니 그게 뭔지도, 그걸 어떻게 누려야 할지도 모르겠는 것이다. 더군다나 1980년대 이후에 태어난 사람들 중 상당수는 부모들이 대부분 한두 명만 낳아서 애지중지 키우며 자신의 인생을 쏟아부은 사람들이다 보니 부모의 간섭도 엄청나게 심하고 부모들은 보통 본인들이 '투자'한 것만큼 자녀들에게서 '회수'하고 싶은 심리가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런 상황에서 결혼을 선택하는 것이 말처럼 쉬울까?


그런 사람들에게 '옛날에는 단칸방에 여섯 식구도 살았어' 따위의 말을 절대 와 닿을 수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의 '어른'들은 본인들이 경제적이고, 물질적인 것을 우선순위에서 제일 높게 놓도록 만들어 놓고는 정작 그런 얘기들을 젊은 사람들에게 하니 세대 간 갈등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이는 작게 시작해서 크게 만들어 가는 건 경제성장률이 두 자릿수를 기록할 때나 가능한 일이지 경제가 상당한 수준으로 발전한 지금의 우리나라에서는 대부분 사람들에게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현실은 우리나라에서 결혼은 단순히 경제적, 현실적 문제들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분위기와 가치관으로 인해 배제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런데 그러한 사회적 분위기와 가치관은 결혼 적령기의 나이의 사람들의 부모들이 형성한 것이기도 하다. 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이런 문화가 지금처럼 심각하진 않았으니까. 그렇다면 우리나라에서 젊은 사람들이 결혼을 많이 안 하고, 결혼을 하더라도 출산 생각이 없는 것은 누구의 잘못일까?


확실한 것은 젊은 사람들의 잘못은 아니란 것이다. 다른 글에서도 말했지만, 결혼과 출산이 개인에게 줄 수 있는 놀라운 경험과 선물이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그에 대해 부정적인 관점을 주로 갖게 된 사람들은 오히려 결혼과 출산이 줄 수 있는 선물을 인식하거나 누리지 못하도록 학습된 피해자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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