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사랑에 대하여. 17화
글마다 이 얘기를 쓰고 있지만 이 시리즈를 모두 읽으신 분들은 믿지 않으실 수 있는 말일지도 모른다. 내가 결혼과 출산을 꼭 해야 한다고 생각하진 않는단 말을 말이다. 하지만 진심이다. 난 결혼과 출산이, 아이를 갖는 것이 필수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다만 본인과 잘 맞춰갈 수 있는 배우자를 만나서 가정을 꾸린다면, 결혼에 출산까지 하는 게 가장 큰 행복을 줄 것이라고 믿는다.
여기에서 핵심은 사실 '본인과 잘 맞춰갈 수 있는 배우자'이다. 내가 쓴 모든 글들은 그걸 전제로 하고 있지만, 그 자체가 사실 쉽진 않다. 이는 이 시리즈 초반에서 짚었듯이 대부분 사람들은 자신도 잘 모르고, 사람을 잘 볼 줄 모르며, 인간이란 존재 자체가 불확실하기 때문이다. 우린 누구를 만나 누구와 결혼하든지 그 사람이 결혼 후에 어떤 사람이 될지를 100% 알 수는 없다. 그걸 안다고 하는 순간, 우린 상대에게 실망할 수밖에 없는 길로 들어선 것이나 마찬가지다.
결혼도, 아이를 갖는 것도 이처럼 불확실성을 전제로 하는 모험이다. 그렇게 생각해보면 사람들이 결혼도, 출산도 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강화되는 것은 어쩌면 '안정 지상주의'적인 사회적 분위기와 무관하지 않은 듯하다. 생계가, 생존이 가장 큰 목표가 되어서 모두가 공무원이나 교사가 되거나 최소한 대기업이 보장해주는 수준의 안정은 확보하기 위한 분위기가 우리 사회에 확고하게 자리 잡고 있는데, 그런 경향이 결혼과 출산의 문제에도 그대로 반영되는 느낌이란 것이다. 결혼하거나 아이를 가진 후의 삶이 행복할지, 자신이 감당할 수 있을지에 대한 답이 서지 않기 때문에, 힘든 부분은 분명히 알겠는데 좋은 것은 모르겠으니 리스크를 감당하지 않겠다는 생각이 우리나라 사람들의 생각을 지배하는 느낌이다.
금수저 집안에서 태어난 것도 아니고, 내가 하는 일이 어마어마하게 대박이 아닌 이상 죽기 전까지는 서울에 집을 장만하지 못할게 분명하기에 나 역시 그런 생각을 종종 해본다. 그리고 나의 다른 글에서도 밝혔지만 나는 지금 우리나라는 미래에 대한 투자의 개념으로 결혼과 출산을 장려할 수 있는 적극적이고 파격적인 유인책을 제공해야만 하는 상황에 있다고 생각한다. 일각에선 그걸 '과도한 지원'이락 하겠지만, 인구가 줄어들면 그만큼 시장도, 노동력도 줄어든단 것을 감안하면 이는 개인에겐 지원으로 받아들여지겠지만 국가적으로는 투자라고 보는 게 맞다. 개인적으로는 아이를 두 명 이상 낳은 가구에겐 방 세 개짜리 집을 최대한 낮은 월세나 전세로 20년까지 인상 없이 살게 해주는 수준의 지원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는 한국사회의 지금과 같은 현실에선 결혼하는 것도, 아이를 갖는 것도 불가능한, 가졌다가는 모두가 죽는 길로 가게 될 사람들이 분명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을 이해하기 때문에 결혼이나 출산이 필수라고는 말하진 못한다. 사실 나도 지금의 상황에선 결혼도, 아이를 낳아서 기르는 것도 엄두가 나지 않으니까. 나도 그런 현실 속에 있지만 이 시리즈는 그러한 현실들은 일단 배제하고 쓰고 있다. 이는 이 시리즈에서는 그런 문제들은 배제한 인간 본성과 사랑에만 집중하고 싶기 때문이다.
이상은 이상이고, 현실은 현실이다. 우린 그 사이 어디에선가 타협을 하며 살아가야만 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 타협 과정에서 결혼과 출산을 포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그렇게 타협할 때 우리는 무엇이 이상인지, 무엇이 중요한지를 제대로 알고 그것을 기준으로 타협할 지점을 잡아야 하고, 이 글에서 나는 그 기준에서 [잘 맞춰갈 수 있는 배우자와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갖고 양육하며 사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하고 싶을 뿐이다. 나는 장기적으로는 일보다, 내 취미생활을 지금 당장 조금 더 자유롭게 하는 것보다, 친구들과 자유롭게 어울려 다니고 여행을 다니는 것보다 그게 더 본질적인 행복을 보장해 줄 것을 믿고, 이 시리즈에서는 그걸 최대한 논리적으로 풀어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일은 그냥 대충 하고, 취미생활도 하지 않고, 여행도 다니지 말아야 한단 것은 아니다. 이 역시 균형을 잡고 타협을 하면서 맞춰나가야 한다. 미래의 행복만큼이나 현재의 행복도 중요하니까. 나 역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현재의 물질적 풍요로움이나 안정은 포기한 상태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본적인 취미생활에 필요한 지출은 하고 있으며, 자주는 아니어도 여행은 다양한 형태로 가기 위해 노력한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하고 싶은 만큼 다하는 것은 아니다. 현실은 현실이니까. 그리고 잘 맞춰갈 수 있다고 느껴지는 사람을 만나면, 지금보다 더 많이 포기하고 타협해야만 한다는 것도 안다.
물리적으로 정말 여유가 없는 사람들도 있지만 여유가 어느 정도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떤 이들은 현재의 자유, 물질적 안정 등을 포기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많은 경우 그들이 '결혼과 출산만 줄 수 있는 행복과 즐거움'을 모르기 때문이다. 경험해보지 않았는데 결혼과 출산에 대해서는 힘들고, 짜증 나는 얘기를 주로 접하다 보니 그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만 갖게 되는 것이다.
이는 직접 여행을 가보지 않은 나라에 대해 건너서 들은 얘기들만으로 그 나라로 여행을 떠나지 않기로 하는 것과 비슷한 결정이다. 그런데 생각해보자. 주위에서 정말 좋다고 추천해서 여행을 떠났다가 실망했던 적이 있나? 또 반대로 주위에서는 정말 별로라며 치를 떠는 나라에 우연히 가게 되었는데 그 매력에 푹 빠지게 된 적은? 코로나 시국에 여행에 대한 비유가 불편하다면 맛집으로 비유를 해보자. 사람들은 누구나 다른 사람들이 줄을 서고 인스타에서 유명해진 맛집에 가보니 막상 맛은 별로였던 경험도 하고, 다른 사람들은 별로라고 했는데 내 입맛에는 완전히 맞았던 경험도 한다.
결혼과 출산도 마찬가지다. 누군가에게는 결혼과 출산이 맞지 않았지만 내게는 그게 정말 잘 맞을 수도 있다. 아니, 사실 결혼이나 출산에 대해 남의 말에 의지해서 결정을 하는 것은 남의 말을 듣고 여행이나 맛집을 결정하는 것보다 더 어리석은 짓이다. 이는 여행이나 맛집은 고정적으로 있는 상태에서 그 여행지나 음식이 나의 입맛에 맞거나 맞지 않는 것인 것과 달리 결혼과 출산을 같이 하는 '나의 배우자'는 '결혼과 출산에 대해 부정적으로 말하는 사람의 배우자'와 다르기 때문이다. 사실 결혼과 출산에 대해 부정적으로 말하는 사람들은 만약 다른 사람과 결혼해서 출산을 했다면 행복해 살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마치 우리가 같은 식당에 가도 다른 메뉴를 먹었으면 그 집을 맛집이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는 것처럼 말이다!
이에 대해서 '결혼과 출산에 대해 부정적으로 말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라는 반박을 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맞다. 결혼과 출산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얘기들보다 부정적인 얘기들이 많다. 그런데 생각해보자. 우리는 좋은 일, 행복한 일이 많을 때 주위에 말을 많이 하고 다니나? 아니면 힘들고 짜증 나는 일이 있을 때 주위에 말을 많이 하나? 사람들은 보통 힘들고 짜증 나는 일이 날 때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서 그에 대한 말을 많이 한다. 사람들은 좋은 것은 그냥 좋다고 넘기고 힘들고 짜증 나는 얘기는 입 밖으로 자신의 관점에서 구체적으로 말하는 경우가 훨씬 많다. 그리고 좋은 것은 왜 좋은지 설명하기가 어려운 반면 싫은 것은 무엇이 싫은 지를 집어내기가 쉽고, 부정적인 것이 가십거리가 되기에 좋기 때문에 부정적인 얘기들이 보통 더 멀리 퍼지는 경향이 있다.
이런 걸 다 배제하더라도 분명한 것은 다른 사람의 결혼생활이 부정적이었다고 해서 나의 결혼생활이 그럴 것이란 근거는 0%란 것이다. 다른 사람의 결혼생활과 내 결혼생활은 그 사람들과 내가 다르고 내 배우자와 다른 사람의 배우자가 다르기 때문에 이는 종속변수가 아니라 완전한 100% 독립변수다. 그럼에도 그 길을 가보기 전부터 그에 대해 부정적인 선입견을 갖는 것은 마치 좌우 갈림길에서 우측에서 오는 사람이 그 길에 대한 부정적인 말을 하는 것을 듣고 좌측으로 가는 것에 대해서 부정적으로 생각하게 되는 것과 같다.
결혼하고 아이를 낳은 것의 결과가 행복이 아닐 수 있다. 하지만 반대로 결혼하고 아이를 낳음으로 인해 내가 몰랐던, 혼자일 때는 전혀 몰랐던 행복과 즐거움도 향유하게 될 가능성도 있다. 또 사회적으로 '노총각'으로 분류될 나이로 혼자 있어보니, 그리고 주위 또래 싱글인 남녀 지인들을 보니 싱글로 사는 삶 역시 어느 지점에선가 행복과 즐거움 총량의 정점을 찍은 후에는 그것이 행복, 안정과 즐거움을 보여주는 그래프가 하향곡선을 그리더라. 그렇다고 해서 내 지인들이 가난하거나 힘들게 사는 것도 아니다. 내 인스타그램 피드는 여행, 골프, 공연, 연주회, 전시회 사진들로 가득 차 있을 정도로 내 주위에는 여유 있는 사람들이 많지만 어느 순간부턴가 그들의 행복 곡선도 하향곡선을 내려가고 있는 것이 느껴지더라.
그러한 하향곡선을 그리지 않는 유일한 삶은 '자신도 상대에게 어느 정도는 맞출 줄 알고, 상대도 그러할 줄 아는 사람과 아이를 낳아서 가정 중심적으로 사는 삶'인 듯하다.
그리고 이는 우리 또래가 아니라 20-30년 후 미래를 조금만 생각해봐도 분명히 알 수 있다. 결혼도 하지 않고, 아이들도 없다면 회사에서는 대부분 퇴직하고 일할 게 없는 우리의 60-70대는 어떤 모습일까? 우리는 생물학적 한계 때문에라도 평생 왕성하게 일하고 취미생활을 할 수는 없을 텐데, 그때 우리가 결혼하지 않고 아이도 없다면?
그런 생각을 하다 보면 설사 젊은 시절의 결혼생활과 육아과정이 '어느 정도'의 힘듦을 수반한다 하더라도 그 과정에서 힘듦과 함께 주어지는 행복과 기쁨, 즐거움들, 그리고 그렇게 수고한 과정이 노년에 주는 열매들을 생각해보면 결혼과 출산은 충분히 해볼 만한 것이란 생각이 든다.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결혼도 하지 않고 아이도 갖지 않는 것이 오히려 노년의 불확실성을 가중시키는 면도 없지 않다.
물론, 앞에서도 밝혔듯이 이 모든 이야기의 전제는 나도 상대에게 맞춰 줄줄 아는 사람이 되고, 상대도 그러할 줄 아는 사람을 만난단 것이다. 이전 글들에서도 설명했듯이 내가 그런 준비가 되어있지 않고, 그런 준비가 되지 않은 사람과 가정을 꾸린다면 그 결혼생활은 하지 못한 것만도 못할 것이고, 그 관계에서 아이까지 태어난다면 그 삶은 고통으로 가득 찰 수도 있다. 결국은 내가 어떤 사람이고, 어떤 사람을 만나서, 어떻게 서로 타협하며 나가는지가 결혼생활을 결정하게 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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