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과 출산을 막는 것들

사람과 사랑에 대하여. 18화

by Simon de Cyrene

이 글 아래에도 박스에서 써놓은 글은 사실 내 글을 읽으신 분들을 위한 것이 아니다. 언제든지 구독을 취소하거나 구독하지 않으셔도 된단 내용의 글은 사람들에게 읽힐 글을, 포장해서, 불편하지 않게 쓰기보다 구독자들을 의식하지 말고 내가 충분히 고민하고 내가 맞다고 생각하는 얘기는 글로 써야 한다며 나 자신을 다그치는 수단이다.


그래서일까? 글을 쓰면서도 '이 글은 구독자가 조금 떨어져 나가겠군'이라고 생각하면 여지없이 구독자가 줄어든다. 적으면 2-3명에서 많게는 6-7명까지. 브런치에서 글을 쓰던 초기, 구독자에 집착하는 면이 없지 않았던 시기에는 그렇게 구독자가 줄면 가슴이 조마조마하고 '내가 뭘 잘못한 거지?' 싶기도 했는데 이젠 오히려 글을 발행한 후 구독자가 줄면 나 자신에게 뿌듯함을 느낄 때도 있다. 구독자가 즉각 주는 것은 그 글이 누군가를 불편하게 했단 것이고, 그건 그만큼 내가 읽는 사람들 눈치를 보지 않고 내 생각을 풀어냈단 것을 의미하니까. 그리고 그분들께는 죄송한 말씀이지만, 내 글이 불편했던 만큼 내 생각이 그분들 무의식 어딘가에 박여있을 테니까. 나처럼 주관이 명확한 글을 쓰는 사람들은 글을 쓰는 여러 이유 중 하나가 사람들을 설득하기 위한 것인데, 그런 차원에서 봤을 때는 누군가를 불편하게까지 한 글은 최소한 내 생각은 분명하게 드러나 있단 것이니까.


[출산]에 대한 글들 역시 그랬다. 불편해하시는 분들이 있을 것을 알았고, 아니나 다를까 구독자가 뚝뚝 떨어져 나갔다. 이 글도, 그럴 각오를 하고 쓰는 출산에 대한 마지막 글이다.


결혼과 출산을 결심하기 힘들단 것을 누구보다 잘 안다. 누구보다 잘 안다고 장담할 수 있다. 나 역시 그 딜레마 가운데 빠져있으니까. 잘되면 터질 수 있는 가능성들을 쥐고는 있지만 어느 하나 확실한 것은 없고, 지금 당장 경제적으로는 여유가 있는 편은 아니며, '내가 아이를 가져도 될까?'란 생각도 종종 하는 나이가 되었다. 집값이 말도 안 되게 뛰는 것을 보며 '자력으로 내 집 마련은 불가능해졌군'이라는 생각과 경제적인 측면에서 고민이 되는 것은 물론이고 내가 올해 사람을 만나서 결혼을 해서 내년에 아이가 생긴다 하더라도 아이가 10살일 때는 내가 50일 텐데, 우리 때보다 결혼연령대가 높아져서 나이가 있는 부모가 그때는 지금만큼 어색하지 않을 것이라고는 하지만 아이에게 미안할 것 같은 마음이 들어서 가끔은 내가 이젠 아이를 가지면 안 되는 나이가 아닌가 싶을 때도 있다.


사실 적지 않은 사람들은 여기까지 가기 전에 (1) 경제적인 부담과 (2) 내 일에 대한 애착 때문에 아이를 갖는 것은 물론이고 결혼도 놔버린다. 그럴 수 있다. 특히 회사원으로 살고 있는 게 아니라 평생 할 수 있는 자신의 일이 있는 사람들, 시스템에 들어가야만 뭔가를 할 수 있는 것들이 아닌 미술, 음악, 글처럼 자신의 힘으로만 혼자서 뭔가를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정말 타고난 예술가들에게는 아이를 갖는 것은 물론이고 결혼도 짐이 될 수 있다. 자신의 일에는 집중하지 못하게 되니까. 여기에 더해서 그렇게 일하는 사람들은 많은 경우 경제적으로 안정되기가 쉽지 않다 보니 더군다나 아이를 갖는 것은커녕 결혼도 부담스럽고 무겁게 느껴질 수 있다.


그런데 회사원들의 경우에는 조금 다르다. 냉정하게 얘기해서 회사는 오래 다녀봤자 50대까지다. 인구가 너무 빠르게 줄고 있어서 우리 세대는 정년이 조금 더 늘어날 수 있다고 쳐도 60대까지다. 그리고 회사에서 판단하기에 도움이 안 되는 사람들은 그전에 얼마든지 내쳐질 수 있는 것이 회사원의 삶이다. 그런 일에 엄청난 애착을 갖는 것이, 자신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1순위로 여기는 것이 맞는 걸까? 피라미드 구조인 회사에서 잘려나가면 회사원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마치 회사원들만의 문제인 것처럼 썼지만 사실 회사원들만 그런 것은 아니다. 미술, 음악, 글을 업으로 하는 사람들도 나이가 들면 새로운 작업을 하기가 힘들어진다. 이는 창조적인 작업에는 엄청난 에너지가 소모되기 때문이다. 미술가들 중에 틀만 자신이 잡고 칠하는 사람을 고용하는 사람들이 나오는 것도, 자신이 고용한 작곡가와 작사가의 저작권을 탈취하는 음악인이 나오는 것도, 표절을 하는 작가들이 나오는 것도 창조적인 작업은 나이가 들수록 하기가 힘들어지기 때문이다. 계속 새로우려면 계속 공부하고, 노력하고 고민해야 하는데 그 과정에 에너지가 엄청나게 소모되니까.


이는 사실 회사원들도 마찬가지다. 나이가 들어서도 계속 회사에서 일하고 싶은 사람은 없다. 그런데 또 사업을 시작하면 사업은 회사생활보다 더 불투명하고, 더 에너지가 많이 소요된다. 그렇기 때문에 사회에서 그렇게 생각하도록 강요하니 20-30대에는 일이 전부이고 엄청나게 중요한 것처럼 여겨질 수는 있지만 인생을 길게 놓고 보면 [일]을 1순위로 두는 것은 그렇게 지혜로운 생각은 아니다.


사실 이 부분보다 더 현실적이고 힘든 부분은 경제적인 요소다. 기성세대들은 '우리 때는 더 힘들어도 결혼해서 애 낳고 다 살았어'라고 하지만 그건 그때니까 그럴 수 있었던 것이다. 60-70년대, 아니 80년대까지만 해도 우리나라는 그래도 이웃끼리 아이를 봐주고, 이웃이 형편이 조금 안되면 나눠주면서 맞춰가는 사회적 분위기가 많이 있었기 때문에 경제적으로 조금 여유가 없는 사람들도 아이를 낳아서 키울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시대에는 사실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사는걸 '왜?'라는 질문도 하지 않고 당연한 것으로 여겼기 때문에 그러한 생각에 매몰되어 무작정 결혼한 후 어려움을 감당해 낼 수 있었지만 다양한 가치관이 공존하는 현재에서는 그렇게 살기를 강요할 수도 없고, 그렇게 강요하는 것이 먹힐 수도 없다.


결정적으로 지금의 20-30대는 그렇게 해서 살아온 기성세대의 노년을 눈 앞에서 보고 있는데, 그 결과는 전 세계에서 가장 높은 노인빈곤율이며 (한국의 노인빈곤율은 2018년 43.4%로 OECD 평균의 3배에 달한다), 심지어 황혼이혼을 하는 경우도 적지 않게 보고 있다 (2020년을 기준으로 황혼이혼이 이혼 전체의 35%에 달했다고 한다.). 여기에 더해서 이혼을 하지 않은 부부들의 삶도 그렇게 행복해 보이지 않고, 결혼한 지인들마저 결혼하지 말라는 얘기를 계속해대는데 결혼을 하고 싶은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본인들도 행복하게 살지 못하고 있으면서 왜 젊은 사람들에겐 결혼하고 애를 낳으라고 하는 것일까?


대부분 사람들은 치열한 삶을 살기 때문에 이 정도 지점에서 결혼과 출산의 문제를 정리해 버린다. 그런데 우린 여기에서 '그들은 왜 불행할까?'에 대한 질문을 던져야 한다. 기성세대가 불행한 결혼생활을 한 것은 믾은 경우 그들이 당시에 특별한 고민 없이, 상대와 나에 대한 생각과 고려 없이 결혼을 해야 하는 것으로 받아들였고, 그들이 결혼할 때까지만 해도 지금보다 훨씬 심했던 가부장제로 인해 여성들이 지금의 기준으로는 말도 안 되는 대우를 받으며 살아야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90년대 이후 엄청난 변화를 경험했고, 오늘날의 기준에서 자신의 삶을 돌아본 기성세대들이 자신이 불행하다고 여기게 된 것이다.


젊은 부부들이 지인들에게 결혼하지 말라고 하는 얘기들은 조금 다르다. 그들 중에는 나름 고민을 많이 하고 결혼한 사람들도 적지 않지만 그들은 반대로 자신이 가장 중요하거나 그런 사람과 가정을 꾸리고 서로 맞춰가는 법을 몰라서 불행해지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리고 이전 글에서도 설명했지만 우리가 듣는 불행한 결혼생활의 함정 또는 모순은 결혼생활의 좋은 얘기들은 사람들이 잘 얘기를 하지 않거나 주목을 받지 못한다는데 있다. 사람들은 좋은, 행복한 얘기들은 입밖에 잘 내지도 않고, 그런 얘기들은 대부분 자극적인 불행의 얘기들에 묻힌다.


현실을 냉정하게 바라보자. 내가 결혼하지 않고 아이를 갖지 않았다고 생각해보자. 나는 무엇을 위해 열심히 돈을 벌고, 노력할 것인가? 그 돈으로 누리게 된 것들이 우리에게 주는 행복과 즐거움은 어떤 것이며 그 행복과 즐거움은 얼마나 오래가는가? 우리가 그 행복과 즐거움에 익숙해지면 그 후에 어떤 것을 추구하게 될까? 그걸 추구하기 위해서 필요로 되는 노력과 물질은 얼마나 되나? 그 과정에서 우리가 감당해야 하는 힘듦은 전혀 없나? 그렇게 추구하는 행복과 즐거움이 지속 가능한가? 얼마나 오래 유지될까?


이런 고민들을, 우리의 인생을 놓고 길게, 시나리오 쓰듯이 상상하다 보면 우린 어느 순간 우리가 돈을 많이 벌고, 열심히 일한 것을 갖고 가까운 사람들과 함께 나누며 즐길 수 있을 때 가장 행복하고 즐겁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런데 아무리 가까운 친구여도, 아니 때로는 스스로를 가까운 친구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더 우리의 그런 순수한 행복과 즐거움을 착취, 강탈해서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경우도 있다. 가까운 사이에서 사기와 배신이 난무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그나마 가족은 덜하지만 수년째 터지는 부모와 형제가 가족을 착취하고 배신하는 이야기들은 성인이 된 가족조차도 자신을 위해서 다른 가족에게 등을 돌리거나 칼을 꼽을 수 있단 것을 보여준다.


그래서 사실 그래도 가장 믿을 수 있는 관계는 결국엔 내 사람인 배우자와 나의 아이일 가능성이 그나마 높다. 물론, 이를 위해서는 서로를 신뢰할 수 있는 배우자를 찾아서 가정을 꾸리고 아이와의 관계에서도 건강한 애착관계를 형성해야 하기에 또 그러기 위해서는 내가 먼저 좋은 사람, 그런 관계를 형성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건 모든 관계에서 전제되는 조건이다. 내가 그럴 수만 있다면 사실 내가 열심히 노력하고 이룬 것을 함께 누리는, 줄 수 있는 가장 좋은 관계는 결혼해서 가정을 꾸리고 그 안에서 아이를 양육하는 구조다.


이즈음 되면 '누가 그걸 모르냐? 너도 말했듯이 지금 당장 나 하나 먹고살기도 힘든데 그럴 여유가 어디 있냐?'라고 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힘들다'의 기준이다. 사람들은 때때로 '내가 준비가 되고 나서 결혼하려고'라면서 경제적인 수준 등을 말하는데,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는 금수저가 아니라면 그런 준비를 완벽하게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런 생각을 갖고 있는 것은 '언젠가 준비될 수 있을 거야'라는 착각으로 자신을 일과 돈 속으로 몰아가게 만들 것이다. 사람은 항상 힘들다. 이는 우리 눈 앞에 항상 더 좋은 것, 더 많은 것이 보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지 않기 위해서는 우리의 가치와 기준을 바꾸는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결혼과 출산에 부정적인 것은 사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자신도 모르게 '물질만능주의적 가치관'을 어느 정도 이상 갖고 있기 때문이다. 더 많은 물질과 돈이 반드시 더 큰 행복을 가져다줄 것이란 생각. 우리나라 사람들이 때로는 무조건 결혼과 출산에 부정적인 것은 그런 가치관의 영향이 굉장히 크다.


사실 조금 불편해도, 조금 작게 살아도, 아이에게 조금 저렴한 것들을 주더라도 우리는 더 행복할 수도 있다. 단칸방에서 네 식구가 살아도 행복할 수 있단 식의 구닥다리 얘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기준보다 조금씩 기준을 낮춰도 된단 것이다. 이렇게 얘기하면 '그게 아이에게 할 짓이냐?'라고 할지도 모르는데, 죄송한 말씀이지만 부모들이 '좋은 것'이라면서 엄청난 돈을 쓰면서 아이에게 해주는 것들 중 상당 부분은 사실 아이가 편하고 행복하게 해 주기보다는 '내가 이런 걸 아이에게 해줬어'라는 부모의 자기만족적인 면이 훨씬 더 크다. 아이에게는 사실 그런 것들보다 부모를 더 보고, 부모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게 더 큰 행복인데, 우리 세대 중 상당수는 본인 부모들과 그런 경험이 없어서인지 그것보다 세상이 말하는 행복의 기준은 물질과 돈에 더 집착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리고 사실 때로는 가족과 아이가 우리 삶의 동력이 되어주기도 한다. 흔히들 결혼하면 책임감이 커지기 때문에 더 열심히, 잘하기 위해 노력한다고 하지 않나? 그렇게 사는 삶이 꼭 나쁜 삶은 아니다. 그런 게 없는 사람들은 사실 일할 동력이 없음으로 인해 자신의 능력을 100% 발휘하지 못하거나 중간에 포기하게 되기도 한다. 그렇게 가족과 아이가 자신의 삶의 이유가 되어도 된다. 그렇게 가족과 아이를 위해 무엇인가를 해주기 위해 열심히 사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사랑이 아닌가? 그런 사랑을 경험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사실은 엄청난 축복이란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어느 정도 건강한 자아를 갖고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가진 사람들만 알고, 그렇기 때문에 결혼하지 않은 사람들은 그런 행복을 알기는커녕 상상할 수도 없는 것이다.


사람들은 주위에서 결혼생활에 대해 부정적인 얘기만 듣는다고 하는데, 나도 사실 주위에서 결혼생활 자체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얘기를 더 많이 듣는 듯하다. 그런데 아이에 대해서는 다르다. 내 주위에서는 결혼하기 전에 아이를 반드시 갖겠다고 생각한 사람들은 거의 없었던 반면 아이는 갖고 싶지 않다고 한 사람들은 적지 않게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 중 대부분이 아이를 가졌고, 그들은 대부분 지금은 아이가 없는 결혼은 할 필요가 없을 것이라거나 아이가 삶의 전부이고 아이를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며, 아이 때문에 더 열심히 일하게 된다고 말한다. 자신의 자유가 일부 박탈된 것이 답답할 때가 없는 것은 아니나 아이만 보면 그런 생각이 사라진다고.


결혼하지 않고 아이를 갖지 않은 삶에 힘듦과 어려움이 없다면 나 역시 비혼을 택하겠다. 하지만 결혼하지 않은 남녀들은 대부분 결혼하지 않았다고 해서 삶이 완벽한 것은 아니란 것을 안다. 결혼하지 말라는 사람들이 그런 얘기를 하는 것은 본인들이 결혼한 나이 이후에 싱글로 사는 삶을 모르기 때문이고, 이혼한 사람들이 자유로움을 느끼는 것은 싱글이 된 삶이 자신의 불행했던 결혼생활보다 낫기 때문에 그 삶이 완벽하기 때문은 아니다.


세상에 완벽한 삶은 없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결국에는 어떤 힘듦과 어떤 행복과 즐거움을 삶에서 갖고 갈지를 결정해야 한다. 세상 모든 것에 어느 정도의 즐거움과 행복이 있지만, 결혼을 아직 못한 노총각의 나이가 된 입장에서 주위에 결혼, 비혼, 미혼, 이혼한 사람들의 삶을 관찰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가장 지속 가능한 즐거움과 행복은 본인이 다른 사람과 타협하고 맞춰갈 수 있는 사람이 되고, 본인과 그럴 수 있는 지점이 많은 사람과 가정을 꾸려서 아이를 낳고 사는 삶인 듯하다. 다만 사람들은 자신이 경험한 것이 삶이 세상의 전부라고 생각하기에 자신이 알고, 자신의 생각이 미치는 범위 내에서만 상상하기 때문에 그 이상의 경험을 하지 못할 뿐이다.


그 삶이 완벽하단 것이 아니다. 그 삶에도 힘듦은 많다. 단기적으로는 특히 결혼해서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가진 사람들이 희생해야 할 것들이 엄청나게 많다. 그런데 인생을 길게, 죽음의 시점까지 시나리오 쓰듯이, 내가 일을 하지 못하거나 않게 될 때까지 상상해보면 볼수록, 그런 생각은 점점 확신이 되어간다. 그리고 단기적인 힘듦과 어려움은 몸을 만드는 과정에 비유하자면 체지방율을 낮추고 근육을 키우는 과정에서 반드시 거쳐야만 하는 운동과 식사조절의 과정과 비슷하단 생각이 든다.


운동과 식사조절을 하지 않고 체지방이 쌓이도록 방치하며 살 수도 있다. 그래도 살아진다. 하지만 그렇게 사는 것이 지금 당장, 오늘, 이 시간은 행복하지만 그게 쌓이면 몸이 안 좋아져서 결국 우리의 일상이 망가질 수밖에 없듯이 지금 당장의 즐거움과 행복에만 집중하는 것은 장기적으로는 우리 삶을 힘들게 만들 수도 있다.


물론, 운동을 하지 않고 심지어 술, 담배를 엄청나게 해도 평생을 건강하게 사는 체질의 사람들도 있다. 마찬가지로 결혼하지 않고 아이를 갖지 않아도 행복하고 즐거운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 그게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다만, 내가 정말로 그런 사람인지는 진지하게, 자신이 행복과 즐거움을 느끼는 지점과 인생을 장기적으로 시나리오를 그려보고 나서야 알 수 있을 것이다.



이 글을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브런치에서 다양한 주제의 글을 씁니다. 혹시라도 감사하게도 '구독해야지!'라는 생각이 드셨다면, 2021년에 제가 쓸 계획(링크)을 참조하셔서 결정하시는 것을 권장합니다. 브런치에는 '매거진 구독'이라는 좋은 시스템이 있으니, 관심 있는 매거진만 구독하시는 것이 나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