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사랑에 대하여. 19화
사람들은 연애를 많이 해보라고 한다. 또 사계절은 함께 지내봐야 한다고도 말한다.
그런데 내 주위에는 연애를 거의 해보지 않고 결혼해서 행복하게 사는 사람도 있고, 연애를 하다하다 지치기 일보 직전에 짝을 찾았다며 결혼한 후에 역시 결혼은 하는 게 아니라는 사람도 있다. 또 5년 동안 사귀면서 한 번도 싸우지 않았다더니 결혼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하루도 싸우지 않은 날이 없다더니 급기야 죽어도 결혼은 하지 말라는 친구가 있는 반면 3개월 간 연애하고 결혼해서 수년간 행복하게 사는 사람도, 각자 외국과 한국에서 결혼하기 전까지 이메일로만 연락을 주고받다가 일주일 정도 얼굴 보고 데이트를 한 후 다음 만남에선 결혼을 준비하고 잘 사는 사람도 있다. 연애 기간과 횟수에 대한 통념에 반하는 이런 사례들은 우리 주위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이러한 통설이 잘못된 것은 아니다. 핵심은 사실 횟수나 기간이 아니라 '어떻게'에 있다. 연애를 많이 했더라도 자신은 상대에 맞추기 위해 노력하지 않고 본인이 불편하거나 힘들면 이별을 통보해 온 사람은 결혼생활이 불행할 수밖에 없다. 이는 연애할 때는 상대에게 모든 것을 맞출 수 있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지만 평생을 그럴 수 있는 사람이 없기에 결혼 후에는 두 사람 모두 어느 정도 자신을 내려놓고 양보를 해야 하는데, 자신에게 무조건 맞춰주는 사람들만 만난 사람은 자신을 상대에게 맞출 줄 모르기 때문이다. 반면에 연애를 많이 하면서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어디까지 맞출 수 있고 맞추기 힘든지, 자신에게 무엇이 중요한 지를 고민하고, 알아간 사람은 연애를 많이 했을수록 더 행복한 가정을 꾸릴 확률이 높아질 것이다. 이는 그런 경험을 한 사람은 자신이 맞춰주지 못할 면은 없는 사람을 선택할 것이기 때문이다.
반면에 연애를 얼마 해보지 않았던 사람들은 보통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모르고, 상대에게 맞춰보는 경험을 해보지 않았기 때문에 원만한 결혼생활을 하기가 쉽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여기에도 예외는 있다. 정말 운이 좋게 두 사람이 서로에게 잘 맞출 수 있는 사람을 만나면, 연애를 많이 해보지 않은 사람도 충분히 행복한 결혼생활을 할 수 있다. 또 타고난 성품 자체가 상대에게 잘 맞춰주는 사람이 그걸 당연하게 여기지 않는 사람을 만나면 두 사람의 연애 경험과 무관하게 두 사람은 행복한 가정을 꾸릴 수 있을 것이다.
연애기간 역시 마찬가지다. 사람들은 사계절은 만나봐야 한다고 말하지만 사실 정말 둔한 사람이 아닌 이상 사람들은 상대가 어떤 사람인지는 2-3개월이면 충분히 파악하고도 남는다. 이는 어느 연인이나 초반에 엄청나게 연락하고 만나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는 연애를 1년 정도 한다면 연애 초기 3개월 간 연인의 접점은 나머지 9개월보다 더 많을 정도로 압축되어있다고 생각하는데, 그렇기 때문에 우린 사실 같이 살지 않고 파악할 수 있는 상대의 기본적인 성향은 3개월이면 충분히 파악한다. 다만, 그 시기에는 호르몬 작용이 일어나기 때문에 상대의 부정적인 면이나 나와 맞지 않는 면들을 괜찮을 것이라고 생각하거나 느끼지 못하고 지나칠 뿐이다.
사실 생각해보면 연인들은 처음 3개월 정도 서로를 새롭게 알아가고 그 후에는 서로를 알아가기보다는 만나서 같이 놀고 스킨십을 하는 경우가 많다. 그 과정은 엄연히 말하면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이 아니라 그저 서로 '노는' 기간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호르몬 작용에 쓸려가지 않는, 감정적인 호감을 충분히 느끼면서도 상대의 말과 반응들을 면밀히 관찰하면서 만난다면 그렇게 2-3개월 만나고 결혼한 사람들이 흘러가는 대로, 형식적인 데이트와 대화, 스킨십을 하면서 3-4년 만난 사람들보다 잘 맞는 사람을 만날 수 있는 확률이 훨씬 높다고 생각한다. 이는 3-4년을 만났어도 서로의 일상과 생각들을 세세하게 공유하지 않는 이상 두 사람은 가까워지고, 서로를 알아간다기보다는 그저 만나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왜 연애기간이 길어지면 결혼하기 힘들다고 할까? 이는 연인은 보통 3개월 정도는 서로를 밀도 있게 알아가고, 서로에게 익숙해진 이후에는 6-9개월 정도를 다양한 데이트와 경험을 한 후에는 두 사람 사이에서 새롭게 느껴지는 것은 많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 서로에게 그렇게 익숙해지고 나면 두 사람은 서로에게 자신의 일상을 공유하고, 공감해주는 관계를 형성하지 않은 이상 새로운 자극이 다가오면 그 방향으로 마음을 돌리게 될 수도 있다. 그렇지 않더라도 두 사람이 서로의 일상을 공유하고 감정에 공감하는 관계를 형성하지 못한 상태라면 두 사람은 그저 연인이란 형식과 틀에 들어가 있을 뿐 서로를 더 깊게 알아가고 있다고 할 수는 없는 반면, 나이가 들고 사회적 지위가 바뀌면서 두 사람의 현실은 계속 바뀌기 때문에 두 사람은 상대에 대해서 모르는 면이 많아지고, 이처럼 서로에 대해 모르는 현실과 상황이 어느 정도 이상 축적되면 두 사람 간에는 갈등이 폭발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사람들이 결혼 전 연애기간이 1년 정도가 적당하단 것은 두 사람이 연애를 1년 정도 하면 두 사람이 새롭게 할 '꺼리'가 떨어지기 때문에 결혼을 통해 새로움이 더해지기 때문이고, 결혼 후 2-3년 정도가 지나면 아이를 가지란 것 역시 신혼의 재미와 행복은 대부분의 경우 2-3년이 지나면 사그라들기 때문이다.
물론, 이에 대한 예외들은 적지 않다. 두 사람이 서로의 일상과 감정을 거의 항상 같이 있는 수준으로 공유하면서 대화를 많이 하면 두 사람은 결혼하지 않고도 깊은 관계가 형성될 수 있고, 결혼해서 아이를 낳지 않고도 충분히 행복하게 살 수 있다.
문제는 대부분 사람들은, 특히 우리나라 남자들은 그렇게 일상과 감정을 공유하는데 익숙하지 않다는 데 있다. '남아일언 중천금'이란 말도 안 되는, 남자는 말이 많으면 안 된단 이상하게 왜곡된 유교적 문화는 어렸을 때부터 남자들의 입을 다물게 만들고 그 습관을 고치기는 쉽지가 않기 때문에 우리나라 남자들은 자신의 현실과 감정을 공유하는데 익숙하지 않은데, 결국엔 그런 경향성이 관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단 것이다.
그런데 그런 문화가 아니더라도 우리나라의 경쟁과 성공을 향한 무한질주와 물질만능주의는 연인이나 부부가 서로 많은 대화를 하는데 걸림돌로 작용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경쟁과 성공을 전 세계에서 가장 강조하는 듯한데, 그렇게 경쟁과 성공에 높은 가치를 부여하면 사람들은 관계, 연인, 가족보다 일을 우선시하게 되고,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연인이나 배우자와 대화는 줄어들게 되어있다.
예를 들면 '돈 벌어다 주면 됐지 뭘 더 바래!'란 말은 그런 문화적 맥락에서 나오는 말인데 그런 가부장적이고 물질주의적인 말이 관계에 무슨 도움이 될까?그건 보통 남자들이 하는 말이니 남자만 문제라고? 아니다. 이는 반대로 '돈도 못 벌어오는 남자'란 딱지를 붙이는 문화가 우리나라에 여전히 있기 때문이다. 상대가 경쟁과 성공의 기준에서 자신의 기준에 미치지 못하면 상대를 먼저 위로해주기보다 닦달하고 폄하하는 문화 속에서, 어느 정도의 선물은 줘야, 어느 정도 식당에서 외식은 해야, 어느 정도 크기의 집에는 살아야 한단 것을 상대와의 관계보다 우선시하는 문화 속에서는 두 사람 간의 대화가, 일상에 대한 작은 나눔들이 이뤄질 수가 없고, 그렇기 때문에 건강하고 지속가능한 관계가 형성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사람들은 엄청나게 나쁜 사람들이 바람을 피우거나 불륜을 저지른다고 생각하지만, 정말 쓰레기 같은 바람둥이들을 제외하면 대부분 바람이나 불륜의 뿌리는 이처럼 대화가 단절된 연인이나 배우자 관계에서 시작된다. 돈 좀 벌어온다고 유세하면서 배우자를 종처럼 부리는 사람이나 사회적으로 승리자가 아니라고 구박만 하는 사람에게 지치고 힘든 시점에 누군가 감정적으로 위로해 주고 자신의 말을 들어주기 시작하면 사실 누구나 그 사람에게 넘어가기가 쉽지 않을까? 누군가 그렇게 다가오더라도 이성적으로 밀어내거나 연인 또는 부부관계를 정리한 후에 그 사람을 만나는 게 맞겠지만, 인간이 어디 그렇게 이성적인 존재인가? 바람을 피우거나 불륜을 저지르는 건 어떤 경우에도 용납되거나 정당화될 수는 없지만, 머리로나마 이해가 되는 바람과 불륜도 없지 않은 것은 이 때문이다.
이처럼 연인이나 부부간의 관계의 핵심은 대화와 공감에 있고, 사실 연애 횟수나 기간은 그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대화를 나누고, 자신에 대해 고민했는지에 따라 결혼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도 있지만 아무런 상관관계가 없을 수도 있다. 그보다 더 중요한 건 '내가 나 자신을 얼마나 알고, 상대가 얼마나 자신을 잘 알며, 두 사람이 얼마나 양보하고 맞춰갈 수 있는 사람이냐'이다. 그리고 그런 이해와 노력은 연애를 통해 길러질 수도 있지만 다른 관계에서 형성될 수도 있고, 다양한 인간관계를 경험한 사람일수록 '사람 보는 눈'은 어느 정도 발달되어 있기 때문에 연애 횟수가 적거나 연애기간이 짧다고 해서 두 사람이 꾸린 가정이 불행하진 않을 수 있다.
어느 면으로나 '양보다는 질' 그리고 모든 것은 말 그대로 '케바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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