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사랑에 대하여. 20화
'결혼은 도대체 언제 할래?'
서른 살부터 지금까지 일 년에 한 번 이상은 들어온 얘기다. 일 년에 한 번이 뭔가? 많으면 하루에도 몇 번씩 들었던 것 같다. 나뿐이겠나? 심지어 처음 대화를 하는 사이에도 나이를 들으면 아직까지 결혼도 안 하고 뭐했냐고 묻는 세상인데. 남자인 나도 면접에서 결혼은 언제 하려고 하냐는 질문을 받아본 적이 있으니 우리나라 여성들은 그런 질문에 얼마나 자주 노출되는지는 상상조차 하기 싫을 정도다.
그런데 그런 질문은, 잘못되었다. 이는 '결혼'은 엄연히 말해서 형식에 불과하고 사실은 결혼보다 결혼해서 꾸리는 '가정'이 결혼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사실 '결혼'은 냉정하게 얘기하면 길게 따져봤자 결혼식을 준비해서 신혼여행을 다녀올 때까지 만의 문제고 그 이후에 '가정'을 꾸리는 게 '결혼'이라는 관문의 핵심인데, 사람들은 물리적으로 결혼을 했는지만 따지지 가정생활이 어떤지에 대해선 관심을 갖지 않는다. 심지어 결혼생활에서 문제가 생기면 '다들 그러면서 살아~'라고 말하는데, 이건 뭔가 잘못되고 이상한 것 아닐까?
우리나라에서 많은 가정들이 무너져 있는 것은, 기혼자들 중에 결혼하지 말라고 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은 이러한 문화의 영향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사람들은 '결혼'이라는 껍데기에 초점을 맞추다 보니 상대가 어떤 '사람'인지보다 당장 결혼식을 준비하는 시작점에서부터 신혼여행까지에 초점을 맞추게 되고, 그렇다 보니 당장 상대의 외모나 경제력처럼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는 것을 중심으로 상대를 평가하다 보니 살면서 문제가 생길 때는 당황하게 되는 것이다. 훌륭한 외모를 가진 사람과 살면 눈이 즐겁고 행복할 줄 알았는데, 돈이 있으면 큰 문제는 없을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은 현실을 마주하면,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 발생하면 그걸 어떻게 극복할 줄 모르기 때문에 곧바로 불행한 결혼생활로 이어지는 것이다.
그래도 요즘엔 부부상담을 받는 게 과거보단 이상하게 받아들여지지 않아서 상담을 받으면서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사람들도 있지만 대부분 부부들은 그런 상담을 받는 것을 꺼리거나 그런 상담을 받을 여력이 되지 않는다. 아니, 여력이 안 되는 경우도 있지만 '겨우' 상담에 그런 비용을 지출하는 걸 아까워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죄송한 말씀이지만 그런 사람들은 이혼을 하지 않는 이상 그 불행의 굴레에서 빠져나오기가 쉽지 않다. 아니, 이혼을 하고 나서도 자신의 결혼생활과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갖지 않는 이상 또다시 비슷한 결혼을 하게 될 것이다.
외모나 경제력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 아니다. 외모와 경제력은 굉장히 중요하다. 외모가 훌륭한 사람과 결혼을 하면 둘 사이에 갈등이 있을 때도 상대의 외모를 보고 있으면 화가 어느 정도는 누그러지기도 하고, 또 외적인 매력에 끌려 스킨십을 하다 보면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더 많은 걸 양보하고 맞춰줄 수 있게 되어 줄 수도 있다. 또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으면 아무래도 할 수 있는 게 많고, 갈등을 풀 수 있는 방법도 많기 때문에 외모와 경제력은 갖추지 않은 것보다는 갖춘 게 낫다.
하지만 그 두 가지는 관계를 임시로 붙여놓는 '풀'과 같은 역할을 할 뿐, 관계를 유지시켜주진 않는다 ('본드'가 아니라 '풀'이다.). 이 두 가지는 사실 관계에 부정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외모가 워낙 훌륭한 ㅏ람은 배우자와 갈등이 있을 때 자신의 외모를 활용해서 외도를 하기도 더 쉽고, 이는 경제력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경제력'은 사실 두 사람이 동등한 수준이 아니면, 한 사람이 너무 상대에게 의존적일 경우 오히려 관계에 악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이는 본인의 경제력은 바닥인 사람이 상대의 경제력을 보고 결혼하게 되면, 그 경제력의 차이만큼 그 사람에게 종속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 모든 것은 사실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이냐에 따라 달라진다. 즉, 외모와 경제력과 같은 스펙이나 조건은 '칼'일뿐이고, 핵심은 그 칼을 쥔 '사람'에 있단 것이다. 칼이 누구 손에 쥐어지느냐에 따라 요리에 쓰이고, 회를 뜰 수도 있지만 반대로 사람을 죽이는데 쓰일 수 있는 것처럼. 그렇기 때문에 우린 상대의 외적인 조건을 보지 않을 수는 없지만, 그 '사람'을 먼저 봐야 한다. 이는 지금 당장 그 사람이 외적으로 조금 덜 매력적이어도 그건 화장이나 헤어스타일, 옷으로 어느 정도 보완할 수도 있고, 경제력 역시 지금 당장 조금 부족해도 자신의 계획과 능력이 있으면 그 부족분도 만회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어떻게 알 수 있냐고? 그건 그 사람의 작은 행동과 말들 하나, 하나에서도 드러나고, 결정적으로 결혼에 대해서, 결혼 후 가정생활에 대해서 나누는 대화에서 드러난다. 이에 대해서 '결혼하기 전에 다 좋다고 하지 본인은 이것, 저것, 저것은 하지 않겠다고 하는 사람이 어디 있냐?'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그건 그 사람이 결혼 후 가정생활에 대해 얼마나 구체적이고 진지하게 고민했는지를 들여다보면 잘 드러난다. 이는 그냥 생각한 척, 고민한 척한 사람들은 예를 들면 집안일을 분배하는 것에 대해서 두리뭉실하게 '그럼, 그럼 요즘에는 남녀가 평등하게 나눠서 해야지'라고만 말하고 자신은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싫어하는 등에 대한 얘기는 안 하는 게 아니라 못한다면, 그 사람은 결혼 후 생활에 대해 고민을 해보지 않은 사람일 것이다. 구체적으로 고민하고 생각해봤다 하더라도 결혼생활이 현실이 되면 사람은 바뀌겠지만, 그래도 그런 고민을 귀찮아하지 않고 진지하게 해 본 사람과 가정을 꾸리는 게 더 '안전'할 것이다.
사실 '결혼' 자체에 집착하는 사회적 분위기 자체가 부자연스럽고 이상하며 잘못되었다. 이는 두 사람이 연애를 하기 위해 연인이 되는 게 아니라 상호 간에 어느 정도 호감이 있기 때문에 연인이 되는 것이듯이, 결혼 역시 마찬가지로 결혼 자체가 목표가 아니라 두 사람 간에 신뢰가 어느 정도 형성되어 있고 하나의 공동체를 꾸리고 싶은 마음이, 꾸려야겠단 생각이 들어서 결혼을 하는 것이 '정상'이기 때문이다.
물론, 우리가 상대를 완벽하게 알고 연애를 시작하거나 결혼을 할 수는 없다. 상대를 100% 알거나 신뢰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상호 간에 완전한 신뢰는 없더라도 현실적으로 가정을 꾸려야 할, 꾸리고 싶은 시점이 되었다면 어느 정도 지점들과 어느 정도 신뢰는 '그랬다 치고' 넘어가거나 면밀히 확인하지 않고 넘어가도 된다. 이는 지금 당장 눈에 보이는 것이 평생 유지될 것도 아니고, 우리 인생에는 변수가 워낙 많기 때문에 지금 우리가 무엇을 생각하거나 예상하든지 앞으로 벌어질 일들은 다를 것이기 때문이다.
연애는 그냥 그렇다고 치자. 끝내면 되는 거니까. 상대가 너무 이상한 사람이어서 이별 후에도 집착하거나 힘들게 하면 경찰에 신고하면 되니까. 최소한 같은 공간에 함께 살거나 재산과 현실을 합한 것은 아니니까.
그런데 결혼해서 가정을 꾸리는 것은 완전히 다른 차원의 문제다. 각방을 쓰던, 아이를 갖거나 그렇지 않든, 어쨌든 결혼을 하기로 결심한다는 것은 상대와 하나의 공동체를 평생 만들어 나가겠다는, 서로 상대에게 어느 정도 양보하고 맞춰가며 살겠다는 약속을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린 최소한 상대가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며 일상에서 최선을 다할 사람인지, 아니면 그저 외롭고 힘들고 경제적이거나 생리적인 필요에 의해 누군가를 잡으려 하는 것인지는 구분해야 한다. 그리고 그걸 구분하기 위해서는 그 사람의 조건을 보기에 앞서 그 '사람'을 봐야 한다. 그리고 그 '사람'을 본다는 것은 그 사람의 인품, 책임감, 다른 사람의 말을 듣고 존중할 줄 아는지 등을 봐야 한단 것을 의미한다. 그걸 봐야 그 사람과 매일, 매일, 같은 공간에서 일어나 최소한 아침, 저녁과 주말을 같이 보내고 밥을 먹을 때 최소한 불행하진 않을 수 있는지는 알 수 있으니까.
이처럼 '결혼' 자체가 목표가 되는 것과 '가정'을 생각하는 건 우리의 기준을 상당히 크게, 많이 바꾼다. 결혼이 목표인 사람들은 주위 사람들의 시선도 의식하게 되고, 지금 당장 보이는, 겉으로 보이는 상대의 모습과 조건을 중심으로 상대를 판단하고 선택하게 된다. 현실에 대해서, 하루, 하루에 대해서 미시적으로 고민을 하지는 않게 되니까. 하지만 결혼 후의 '가정'을 생각하는 사람들은 상대의 지금 당장의 조건과 외적인 요소들보다 그 사람의 작은 습관, 성향, 성품 등에 초점을 맞추게 된다.
둘 중 어느 사람이 더 행복할까? 난 망설임 없이 후자라고 말하겠다. 이는 우리는 보통 큰 틀에서 거시적인 관점에서 말하고 보는 것을 좋아하지만 사실 우리 인생은 순간, 순간, 하루, 하루의 작은 것들이 모여서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순간, 순간, 하루, 하루가 행복하거나 평안할 수 있으면, 최소한 덜 불행할 수 있으면 우리 삶은 전체적으로 조금은 덜 불행하거나 조금은 더 행복하거나 평안할 것이다.
우리가 '결혼'이 아니라 '가정'을 생각해야 하는 것은 이처럼 그 작은 관점의 차이가 엄청난 큰 차이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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