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사랑에 대하여. 21화
대화 : 마주 대하여 이야기를 주고받음.
연인과 부부는 깨어있는 시간 중 물리적으로 함께 있는 시간보다 떨어져 있는 시간이 훨씬 길다. 두 사람이 같은 회사, 같은 팀에서 일하거나 함께 사업을 하고 있거나 모두 집에서 일하는 프리랜서가 아닌 이상 대부분 그렇다. 코로나 시대에 부부가 모두 재택근무를 하면서 갈등과 다툼이 많아지는 것도, 우리 부모님 세대에서 경제활동을 하던 아버님들이 퇴직하고 나서 집에 있으면 어머님들과 계속 부딪히게 되는 것도 두 사람이 물리적으로 한 공간에 있는 게 익숙하지 않아서, 그런 시간들이 워낙 짧아왔기 때문이다.
이는 연인들도 마찬가지다. 사회생활을 하기 전에야 일주일에 3-4번도 만나지만, 부부와 마찬가지로 같은 회사, 같은 팀에서 일하거나 함께 사업을 하고 있거나 프리랜서이거나 서로의 집이 매우 가깝지 않은 이상 사회생활을 하는 연인들은 일주일에 많아야 2번, 보통은 1번 정도 만난다. 한 번 만날 때 함께 보내는 시간은 길면 10여 시간도 되겠지만 보통은 3-4시간 정도일 것이다. 조금 더 긴 커플들이라 해도 한 번의 만남에 5-6시간 이상을 함께 보내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그렇기 때문에 연인과 부부는 서로의 일상을 모를 수밖에 없고, 서로의 일상을 모르다 보니 두 사람은 대화를 하지 않으면 서로의 삶을 이해할 수가 없다. 아니, 거기에서 멈출 수 있으면 그나마 나을지도 모른다. 서로 함께 보내는 시간이 워낙 적으니 상대가 바람을 피우는 것은 아닌지, 다른 짓을 하는 건 아닌지를 의심하게 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문제는 우리나라 사람들은 대화하는데 그렇게 익숙하지 않다는 데 있다. 물론, 그런 경향은 여자보다 남자들이 훨씬 강하다. 우리나라에서 남자들은 어렸을 때부터 과묵한 게 남자다운 것이라 학습되고, 남자들이 말이 많으면 '사내자식이 뭐 저렇게 말이 많아'라는 말을 듣다 보니 말을 많이, 잘하는 사람들도 말을 많이 하지 않게 되고, 그러다 보면 남자들 중 상당수는 말을 잘하지 못하게 된다. 여자들은 그래도 여자들끼리 수다라도 떨지, 남자들은 사실 여자들보다 단순하고 많은 것에 관심이 없다 보니 남자들끼리 모여도 여자, 스포츠, 연예, 정치 얘기만 하다가 결국은 술을 마시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남자들 간의 대화 주제를 보고 뭔가 '갸웃'하신 분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다. 남자들은 남자들끼리 모여도 자신의 얘기는 잘 안 한다. 이는 자신의 힘든 얘기를 꺼낸다고 해서 다른 남자들이 그 얘기를 받아주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자신이 '남자답지 못하게 보일 것'으로 생각되기 때문이다. 또 좋은 얘기는 '잘난 척한다'는 말을 들을 수 있기 때문에 하기가 쉽지 않다. 그렇다 보니 남자들은 동성과의 관계에서 자신의 얘기를 하지 않고, 그 자리에 있는 사람들과 크게 상관없는 신변잡기적이거나 찌라시 같은 소재를 갖고 대화를 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고 해서 여자들이 다 '대화'를 잘한다는 것은 아니다. 이는 '대화'에 대한 정의에서 알 수 있듯이 대화는 이야기를 주고 '받음'이기에 상대의 말을 들을 줄도 알아야 하는데, 여자들의 대화는 적지 않은 경우 제대로 듣기보다 본인의 이야기를 하고, 상대의 이야기에 피상적인 반응을 보이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심지어 앞에서는 들어주고, 이해하는 척해놓고 뒤에서는 시기와 질투를 하는 대화도 적지 않게 이뤄진다. 여자들의 경우에도 정말 친밀한 사람들과의 대화가 아니면 솔직한 자신의 얘기를 하는 대화는 오가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여자들 중에서도 '듣기'에 약한 사람들은 생각보다 많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우리나라 연인이나 부부관계에서 제대로 된 대화를 주고받는 사람들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남자들은 자신의 얘기를 연인이나 아내에게 꺼내놓는 것에 익숙하지 않고, 우리나라의 '남자다움'에 해당하는 '든든함'과 같은 표현들은 남자들이 여자들 앞에서 자신의 약점을 꺼내놓지 못하게 만들고, 여자들은 연인이나 남편이 자신의 편이 되어야 하는 것 아니냐며 자신의 얘기들만 쏟아놓고 상대의 얘기는 들을 생각을 하지 않는 경우가 적지 않다. 여자들은 그런 상대가 답답하다고 하지만, 또 남자의 입장에선 무슨 말을 하면 그에 대해 '남자답지 못하다'을 듣거나 '남자로서의 역할'을 할 것을 요구받게 되는 경험을 몇 차례 하면 다시 입을 다물게 된다. 또 않은 남자들은 순수한 '대화'에는 익숙하지 않다 보니 연인이나 아내가 고민을 얘기하면 그것을 일처럼 해결하려 들기도 해서 연인이나 아내와의 관계에 갈등을 유발하기도 한다.
이처럼 연인이나 부부간에 대화가 원활히 이뤄지지 않는 건 어느 한쪽의 잘못이 아니다. 그 뿌리에는 사실 우리나라의 '남자다움'과 '이기주의'가 깔려 있고, 우리나라엔 남녀공학이 많지 않아서 가장 호르몬 작용이 활발한 시기인 청소년기에 남녀가 서로에 대한 이해를 할 수 없는 구조가 만들어져 있어서 남자와 여자들의 대화 패턴이 어느 정도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성별에 따라 갖고 있는 성향이나 패턴을 심화시키기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인과 부부가 대화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것은, 아니 반드시 대화를 최대한 많이 해야 하는 것은 서두에서 설명했듯이 연인이나 부부는 함께 보내는 시간이 많지 않기 때문에 대화를 하지 않으면 서로에 대해 더 모르게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서로 대화를 많이 하지 않다 보면 상대와 상대의 일상에 대해 잘 모르게 됨으로 인해 상대에 대한 신뢰를 갖지 못하기 시작할 가능성도 높아지고, 연인과 부부간의 신뢰에 금이 갈수록 두 사람의 관계도 멀어지고, 갈등도 잦아질 수밖에 없다. 그러던 중에 누군가 친절하게 다가오거나, 자신의 말을 들어주면, 어떤 사람이라도 처음에는 브레이크를 잡아도 그런 경험이 반복될수록 자신의 말을 들어주는 사람에게 끌릴 수밖에 없다. 바람이나 불륜은 적지 않은 경우 그런 패턴으로 발생한다.
문제는 두 사람이 이렇게 대화를 많이 하는 패턴은 두 사람이 관계를 형성하는 초기에 만들어진다는데 있다. 연애 초기부터 서로의 소소한 일상을 상대와 카톡이나 문자 몇 줄로만이라도, 전화로라도 거의 매일 공유하는 습관이 들면 두 사람은 관계가 그렇게 이어지지만 연애 초기에는 대화도 거의 하지 않고 일주일에 두세 번 만나서 '내 얘기'가 아니라 연예, 스포츠, 지인 얘기만 하고 스킨십을 하다 헤어지면 두 사람은 절대로 자신의 얘기를 상대와 하는 습관이 들 수가 없다. 연인과 부부들 중 상당수가 대화가 안 되는 것은 첫걸음을 후자처럼 내딛음으로 인해 서로 대화를 하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 (사실 연애 초기만큼 이런 패턴을 만들기 좋은 시기도 없다. 이는 누구나 연애 초기에 호르몬 작용으로 인해 상대에 대한 관심이 커지기 때문에 호르몬 작용의 도움을 받아서 상대의 일상과 작은 것들에 대해 물어보기도 그만큼 쉽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연인이나 부부간에는 어떤 대화가 필요할까? 사실 연인이나 부부간에 '큰 대화'는 필요하지 않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연인이나 부부가 매일 또는 2-3일에 한 번씩이라도 서로의 일상을 나눈다면 '큰 대화'는 그 과정에서 이뤄지게 되어있다. 그렇기 때문에 연인과 부부는 '스몰 토크'를 하는데 익숙해져야 한다. 오늘은 뭐를 먹었냐, 몸은 어떠냐, 일은 어땠냐 등의 일상적인 얘기들을 하루에 단 몇 분이라도 꾸준히 하면 그 얘기들이 축적되어서 두 사람이 서로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게 되어있고, 서로를 깊게 이해하면 말을 할 때 상대의 마음과 상황을 먼저 고려하고 배려하게 되어있다.
이런 패턴이 초기부터 형성되는 것이 중요한 것은 인간은 누구나 상대를 어떻게 인식하게 되느냐에 따라 같은 말도 다르게 해석하고 받아들이게 되어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부모님이 어렸을 때부터 이것 해라, 저것 해라, 이건 했냐, 저건 했냐고 묻고, 따지고, 혼낸 사람들은 부모님은 악의 없이 '밥은 뭐 먹었어?'라고 물으면 그것을 간섭으로 받아들이게 되어있다. 반면에 서로 걱정해주고, 잘 먹으라고 챙겨준 연인이 똑같이 '밥은 뭐 먹었어?'라고 물어본다면 그 사람은 연인이 자신을 위해주는 마음으로, 걱정해 주는 마음으로 물어본다고 느낄 것이다.
이런 패턴을 놓고 본인이 그런 의도가 아니었는데 상대가 자신의 말을 곡해해서 부정적으로 듣는 게 억울하다면, 그 사람을 탓하기 전에 자신이 그 사람에게 지금까지 어떻게 했는지, 어떤 얘기들을 했는지를 돌아보길 권하고 싶다. 이는 그 사람이 본인의 말을 그렇게 듣는 데는 본인이 상대에게 했던 말들이 그 사람 안에 본인에 대한 이미지를 만들게 하고, 그 이미지가 각인되어 있기 때문에 같은 말도 다르게 해석되는 것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관계가 그렇게 형성되지 않았다고 해서 희망이 없단 것은 아니다. 이는 서로의 소소한 것들을 물어보고, 상대의 말을 듣는 습관은 두 사람이 3-6개월 정도 꾸준히 노력하면 형성되기 때문이다. 물론, 그게 처음에는 익숙하지만 두 사람이 관계의 문제가 있음을 인지하고 서로 대화하고, 자주 연락하기 위해 매일, 매일 노력하다 보면 그렇게 노력하는 근육이 생겨서 그렇게 하는 게 어느 순간 어렵지 않은 걸 넘어서 쉬워지게 되어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헬스를 최소 3-6개월 정도는 PT를 받고 식사조절도 체계적으로 해서 근육이 어느 정도 만들어져야 운동이 재미있어 짐에도 불구하고 그 시간을 참지 못하고 그만두듯이 그런 노력을 하는 게 처음에 어색하기 때문에 아예 시작을 하지 않는다.
그런데 대화가 단절되는 순간 두 사람은 멀어질 수밖에 없다. 이는 앞에서 설명했듯이 연인이나 부부는 서로 함께 보내는 시간이 생각보다 많지 않고, 서로 함께 하지 않은 시간 동안 일어났던 일들과 그때 본인이 느꼈던 감정을 상대와 대화로 공유하지 않는 이상 두 사람은 그 함께 하지 않는 시간의 공백을 채울 수가 없기 때문이다.
연인이나 부부의 틀에 들어가면 서로를 그냥 알아가게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굉장히 많은 듯한데, 세상에는 '그냥' 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우리 인생은 계속 앞으로 가기 때문에 우리는 가장 친하고 나를 가장 가까이서 보고, 이해해주는 친구인 연인이나 배우자와 앞으로 가면서 경험하는 것을 업데이트해야 서로에 대한 두 사람의 이해와 신뢰가 깊어질 수 있다. 그냥, 되어지는 건 세상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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