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한 가정은 가장 좋은 노후 대책

사람과 사랑에 대하여. 24화

by Simon de Cyrene

'노후대책'이란 표현에 대부분 사람들은 대부분 반사적으로 경제적인 부분들만 생각한다. 그런데 과연 노후에 필요한 것은 물질과 경제적인 것들에 국한될까? 고독사에 대한 뉴스를 접할 때면 항상 고독사 하기까지 그 사람들이 가장 힘든 게 무엇 일지를 고민해보곤 했다. 돈이 없는 것일까? 아니면 삶의 의미 또는 함께 옆에서 지켜주는 사람이 없는 것일까? 고통에 순위를 매기는 것은 잔인하고, 잔혹하며 해서는 안 되는 일이지만 굳이, 굳이 해야만 한다면 어떤 게 가장 힘든 부분일까?


개인적으로는 삶의 의미, 일상적인 기쁨과 즐거움의 상실 그리고 옆에서 지켜주는 사람의 부재가 더 고통스러울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는 사실 삶의 의미가 있다면, 내가 힘과 노력을 다해 누군가에게 기쁨과 즐거움이 될 수 있다면, 또 내가 그 존재 자체로 행복이 되어주는 존재가 있다면 경제적인 부분은 어떻게 해서든 먹고는 살기 위해 몸부림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실 고독사의 가장 궁극적인 원인은 경제적 궁핍이 아니라 정서적 고립과 외로움으로 보는 게 맞을 것이다.


가족은, 가정은 우리에게 기쁨을 주고 행복이 되는, 내가 책임짐으로써 또 기쁨과 행복을 받는 존재다. 아니, 최소한 그래야 한다. 안타깝게도 그렇지 못한 가정들이 너무 많고, 가깝다는 이유로 너무 함부로 대하는 경우가 많아서 남보다도 못한 가족이 된 경우가 너무 많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나마 희망은 가족에, 가정에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냥 추상적으로, 원래 그러니까 식의 얘기가 아니다. 가족은 상호 간에 필요를 채워주고, 이해관계를 공유하기 때문에 우리의 최후의 보루일 수 있다. 무너진 가정들을 들여다보면 그 이면에는 이름만 가족일 뿐이지 사실 이기적이고 자신밖에 모르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우린 발견할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린 어떻게 그런 관계를 형성할 수 있을까? 서로 다른 환경에서 태어나 자란 사람 둘이, 혹은 사람들이 공동체로 서로 그러기로 다짐하면 그게 될까? 이상적이고, 아름다운 성선설적인 이야기다. 그런데 문제는 둘 중 한 사람 또는 그 공동체 안에서 한 사람만 물을 흐리기 시작해도 그 관계가 깨어지게 되어있다는 데 있다. 이는 한 사람이 물을 흐리기 시작하고, 그로 인해 본인이 손해를 본다고 느끼는 순간 인간이란 존재는 공동체나 이타주의는 잊고 본인 것을 먼저 챙기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그런 본성을 교육을 통해 억누르고 있을 뿐, 우리 안에는 사실 누구나 그런 마음이 어느 정도는 있다.


그 관계를, 그런 인간의 이기주의를 틀어줄 수 있는 유일한 존재는 사실 아기라고 나는 생각한다. 아기들의 순수함은 어른들에게 전염이 되기도 하지만, (사람 같지 않은, 짐승만도 못한 부모도 없는 것은 아니나)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의 아이를 가지면 그 아이를 위해서라도 이타적이 된다. 부모들은 아이를 통해 무한한 사랑과 위로를 받고, 그 아이를 위해서 자신을 기꺼이 희생하게 된다. 그리고 (정상적인 부모라면) 아이를 매개로 부부도 더 가까워지고, 서로 공유하는 세계가 생긴다. 사실은 부모가 아이를 낳아'주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이 부모의 관계를 유지시켜주고, 부모는 그렇게 오랜 세월을 함께 지내다 보면 익숙해지고 정이 들어 관계가 깊어진다.


물론, 그 과정은 힘들고 고되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연애도 행복하고 즐거운 면이 있음과 동시에 힘들고 고되다. 사실 세상에 힘들고 고되지 않은 일이 하나라도 있을까? 어떤 이들은 잠들기도 힘들어하지 않나?


그런 아이를 잘 돌보고, 성장하는 과정에서 보살피고 좋은 관계를 형성하면 사실 그 아이가 성인이 된 후에는 노후대책이 되어준다. [그 아이가 경제적으로 도와줄 것]이란 의미가 아니다. 그런 면도 없지 않겠지만 사실 누구든 나이가 들면 가족 외에는 같이 어울릴 사람이 많지 않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착하게 잘 살아도 그렇다. 이는 사람들마다 살면서 경험한 것이 다르다 보니 50년 넘게 축적한 서로 다른 인생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상호 간에 이해하고 소통하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가족이 없으면, 일거리가 사라진 후, 회사에서 퇴직을 하거나 잘린 후에, 50-60대가 되어서 일할 유인이 얼마나 될까?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할까?


사람은 노년에 '사랑'으로 산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리고 사랑은 관계에서 오고, 관계 중에 가장 친밀한 관계는, 최소한 당위적으로라도 친밀해야 하는 관계 또는 친밀할 수 있는 확률이 그나마 상대적으로라도 높은 관계는 결국 가족이며, 특히 태어나서 지금 이 순간까지 항상 가족으로 존재했던 부모와 자녀라는 관계일 것이다. 궁극적으로 아이를 가질 필요가 있는 것은 그 때문이 아닐까?


이에 대해서 '그러면 노년에 죽기 전을 위해서 평생을 희생해야 하냐?'라고 묻는다면 '정말 육아과정이 힘들고 고통스럽기만 한 것 같나?'라고 물을 수밖에 없다. 정말 그렇다면 경제적으로 여력이 되는 사람들은 왜 아이를 여러 명 낳을까? 왜 아이를 한 명만 낳은 부부들 중에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음에도 둘째를 고민하는 사람들이 있을까? 그건 아이들만이 줄 수 있는 행복과 기쁨, 즐거움이 있기 때문이다.


나는 결혼도 못했고 아이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뻔뻔스럽고 당당하게 이런 얘기를 할 수 있는 것은 어머니께 충격적인 얘기를 들은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나는 사실 부모님께 엄청난 효자도 아니고 오히려 대들 때는 안 그래도 큰 목청을 최고치로 올려서 소리까지 지르며 윽박을 지르는 편인데 어머니께서 어느 날 그러시더라. 내가 어머니께 그렇게 해도 당신께서 나를 다시 품고 사랑할 수밖에 없는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본인에게 준 행복과 기쁨과 즐거움이 훨씬 크기 때문이라고.


나도 경험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 행복과 기쁨과 즐거움이 어떤 것인지는 모른다. 그런데 아이를 가진 지인들은 하나 같이 '아직까지 그 느낌이 뭔진 모르겠는데, 얼핏 이해는 할 것 같아. 아이를 낳아서 기르는 일은 정말 피곤하고, 버겁고, 힘든 일이지만 그보다 행복과 기쁨과 즐거움이 더 큰 것 같아'라고 하더라.


인간은 추억을 먹고살고, 인간은 관계에서 사랑받으며 삶의 의미를 찾는다. 가장 크고 좋은 추억과 사랑을 우리에게 선물할 수 있는 존재는 가족, 그리고 아이가 아닐까? 그런 가족이야말로 우리가 나이가 들어서도 사랑받고 줄 수 있는 노후대책 또는 노후보장이 아닐까? 그렇다면 우리가 지금 돈을 아껴서 노후를 보장하기 위해 적금을 넣듯이, 아이를 낳아서 양육하는 것도 노후를 위해 지금 조금의 수고를 더 하는 것일 수도 있을지 모른다. 노후[사랑] 대책 정도는 될 수 있을 듯하다.


물론, 그러기 위해선 과정이 중요하고, 좋은 부모가 되고 아이들을 이해하기 위해선 공부를 해야 한다. 그걸 전제로 하고 하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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