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30대 회상. 12
이 시리즈 앞의 글에서 설명했듯이, 나는 30대를 지나면서 진짜 '나'를 아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를 여실히 느끼고 깨달았다. 그런데 사실 이 부분까지는 많은 사람들이 이미 알고 있거나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핵심은 사실 [내가 어떻게 나 자신을 알 수 있는가?]에 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알고 싶어 하지만 자신을 알아가는 방법을 모르고, 또 그래서 방황하거나 현실에 대한 막연한 불안과 불만을 갖고 살아간다.
내가 [나를 알아가는 방법]을 말하면서 이 글의 제목을 ['나'와 '당신'에 대하여]라고 지은 것은 우리는 우리 자신을 발견하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들과 부딪혀 보는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아무리 방구석에 앉아서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고민하고 내 적성을 알아보려 해도 우리의 적성을 알 수가 없다. 성격검사나 적성검사를 해볼 수는 있지만 그 검사 결과가 100% 정확하다고 해도 그게 우리의 모든 면들을 알려주지도 못할 뿐 아니라 그런 검사들은 미세한 영역까지 잡아내지는 못하기 때문에 우리가 어떤 사람을 만나거나 어떤 일을 해야 할지를 정해줄 수도 없다.
연애를 놓고 생각해보자. 우리가 방구석에서 자신이 매력을 느끼는 사람을 상상하고, 조건들을 만들어서 이상형을 완벽하게 만들어서 그런 사람을 현실에서 만난다면 우린 행복할까? 아니다. 이는 인간은 굉장히 섬세한 존재여서 몇 가지 특징을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 사람들도 다른 특징들과의 조합이 어떻게 되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존재가 되고, 내가 생각하는 면을 일부 갖고 있는 사람도 어떤 다른 면들을 갖고 있느냐에 따라 내가 생각하는 사람과 다른 사람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똑같은 에스프레소에 물을 넣으면 아메리카노, 우유를 넣으면 라테, 거기에 무엇을 첨가하느냐에 따라 그 맛이 완전히 달라지는 것처럼.
대부분 사람들이 '나는 000가 맞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는데 그런 사람을 만났는데도 힘들었어'라고 느끼는 것은 상대의 그 부분이 본인과 맞지 않기 때문도, 그 사람이 그런 면이 없기 때문도 아니다. 그런 사람을 만났음에도 결국 헤어지기로 결정하게 되는 것은 대부분 연애를 시작할 때는 그 지점을 확대해서 보고 있다가 만나는 기간이 길어지면서 그 사람의 그 부분이 아닌 다른 부분들도 보이고, 또 그런 면들이 본인에게 영향을 미치게 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런 과정을 통해서 우리에게 어떤 것이 가장 중요한지를 배우고, 깨달아간다.
혹자는 '그런 거를 꼭 연애를 해야만 알 수 있냐?'라고 물을지도 모르겠다. 그에 대해서 난 '[꼭] 그런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경우는 그렇다'라고 답하겠다. 사실 우리가 [친구]라고 부르는 사람들에게 우리 모습의 얼마를 보여주나? 우리는 [친구]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나? 사람들은 누구나 속을 까서 다 보여줄 정도의 극소수의 친구들이 아닌 다른 사람들에게는 우리 속에 있는 모습들을 극히 일부만 보여준다. 그리고 그게 나쁘다고 할 수도 없다. 사회생활을 하고 먹고살기 위해서는 그래야 하는 부분들도 있으니까.
상황이 이렇다 보니 우리는 연인이나 아주 어렸을 때, 상대에게 방어막을 치고 알아가기 시작하기 전에 알게 된 친구나 어떤 계기로 말도 안 되게 빠르고 깊게 친해진 극소수의 친구들이 아니면 벽을 내리고 우리의 솔직한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는 벽을 내리고 내 안에 있는 모습을 그대로 끄집어 내 봐야 우리의 진짜 모습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그러한 [우리 안에 있는 모습]들은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다른 사람과 환경의 영향을 받기 때문에 우리는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벽이 내려지고, 속내를 드러내는 경험을 하지 않는 이상 우린 우리 자신을 알 수 없다. 방구석에서 아무리 우리 속을 현미경으로 들여다봐도 보이지 않는단 것이다.
연애가 우리가 우리의 모습을 알 수 있게 해주는 긍정적인 방법이라면, 반대로 부정적인 방법도 있다. 우린 엄청나게 힘들어지고, 극한의 상황에 처하면 우리 안에 있던 것들이 폭발하는 것을 경험한다. 그런 폭발은 보통 우리 안에 있는 상처가 짓눌릴 대로 짓눌려서 터져 나오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우리는 그럴 때 우리 안에 어떤 상처와 아픔이 있었고, 우리가 왜 특정한 지점에서 과격하거나 과민하게 반응했는지를 알게 된다.
문제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감정이 그렇게 폭발하게 방치한 후에 그에 대해서 남 탓을 하기만 한다는데 있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알기 위해서는 폭발한 후에도 내가 어떤 것에 예민하게 반응했는지, 어떤 기재가 날 그렇게 만들었는지를 고민하고 추적해 나가야 우리 자신을 조금이라도 더 잘 알 수 있고, 사람들은 대부분 경우 스스로 그렇게 돌아보기는 힘들기 때문에 정신과나 심리상담을 통해서 자신을 찾아가는 과정을 경험한다. 하지만 정신과나 심리상담받는 것에 대한 부정적인 선입견이 있는 우리나라 사람들은 폭발하고, 다른 사람을 탁하는데 멈추는 경우가 많아서 자신을 찾아갈 기회를 잡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와 달리 우리가 우리 자신을 발견할 수 있는 부정적이지도, 긍정적이지도 않은 중립적인 방법도 있다. 그건 무엇이라도 일단 해보는 것이다. 좋아하는 맛이나 음식을 알기 위해서는 다양한 음식을 먹어봐야 하듯이 내가 어떤 것을 좋아하거나 어떤 성향을 갖고 있는지를 알기 위해서는 다양한 경험을 해야 한다. 그리고 사실 공교육 제도는 초중고등학교는 학교라는 틀 안에서 다양한 경험을 하면서 나 자신을 알아갈 수 있도록 해줘야 하는데 우리나라의 공교육 제도는 공교육이 아니라 입시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 보니 우리나라 사람들 중에 성인이 되기 전에 자신의 성향이나 취향을 아는 사람들은 매우, 극히 드물다. 그렇다 보니 대부분 사람들은 성인이 되고, 사회생활을 하면서 현실에서 시행착오를 겪게 된다.
이처럼 우리는 긍정적인 방법이든, 부정적인 방법이든 외부의 자극이나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통해서만 우리 자신을 알게 될 수 있다. 그리고 내게 30대는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나열한 방법들 중에서 부정적인 방법으로 나를 알아가는 과정이 많았다. 나는 계속 실패했고, 그로 인해 극한으로 내몰렸으며, 그 결과 나도 몰랐던 내 안에 30년 넘게 축적되어 있던 상처들이 터져 나왔다. 가족들도 애처럼 왜 그러냐고 했지만, 그만하라고 했지만 내가 거기에 브레이크를 걸지 않았던 것은 내가 그런 내 모습까지도 사랑하고 소중하게 여기지 못하면, 나의 그런 부족한 면들까지 품어줄 수 없으면 내가 남은 인생을 '잘' 살아내지 못할 확률이 높단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이 시리즈의 앞의 글에서도 설명했지만 난 사실 운이 좋은 편이다. 어렸을 때 해외에서 살았고, 그 덕분에 다양한 경험을 해서 나 자신을 꽤나 빨리, 많이 알아간 편에 속했다. 그리고 30대 중반까지는 남들보다 유별나게 많지도, 적지도 않은 연애와 다양한 활동을 하면서 만난 다양한 사람들과의 관계를 통해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알아갈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나 자신을 꽤나 잘, 객관적으로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알고 있는 나 자신을 받아들이지 못했고, 내 모습 그대로가 아닌 내가 원하는, 아니 조금 더 정확히 말하면 부모님이 원하고 사회가 강요하는 모습이 되고 싶어서 안달이 나 있었더라. 나는 내가 그러고 있다는 것을 30대에 힘든 시간을 보내며 깨달았고, 그걸 깨달은 후에도 그런 경향성을 바로잡아 가는데도 꽤나 오랜 시간이 걸렸다. 아니, 사실 40이 된 지금도 나는 매일, 매일, 순간, 순간마다 그런 경향성과 싸우며 버텨내야 한다. 나답게 살기 위해서.
이처럼 '나답게' 사는 건 생각보다 힘든 일이다. 우리는 누구도 사회와 주위 사람들의 평판에서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에. 내가 나 자신을 알아도 그렇다. 그런데 하물며 우리나라 사람들은 자신을 잘 아는 경우도 드물고, 코로나로 인해 사람을 만나지 않고 개인이 고립되는 경향이 급속도로 빨리 심화되었지만 우리나라에는 그전부터 사람을 만나고, 관계를 형성하는 게 피곤하고 힘들다는 이유로 관계 자체를 만들지 않으려는 문화가 만들어지고 있었다.
우리 사회의 진정한 아이러니는 사회적으로는 '나답게'를 강조하면서도 사람들은 힘들고 피곤하단 이유로 연애도 안 하고,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형성하고 싶지도 않다고 하는 데 있다. 그런데 그게 피곤하고 힘들단 이유로 부딪히는 것을 경험하지 않으면 우린 우리 자신을 영영 알 수가 없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무엇을 좋아하는지 모르겠다고 하면서 방구석에만 있으면 자신을 어떻게 알게 된단 말인가?
우리는 언젠가 나 자신을 조금 몰라도 그냥 대충 남들이 말하는 좋다고 하는 것에 따라 살 것인지, 아니면 조금 피곤하고 힘들어도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찾아가기 위해 부딪히고 치열하게 고민하며 살 것인지를 선택해야 한다. 어떤 것이 옳다거나 낫다고는 하지 못하겠다. 나는 후자의 선택을 했다는 것만 알고, 그런 선택을 하지 않는 사람과 나는 다를 뿐이지 그 사람이 틀리지는 않았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이제 40이 되어 나 자신을 어느 정도는 알고, 나답게 살기로 결정하고 노력하고 있는 지금, 나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모르거나, 알고도 부정하면서 살았던 때보다 지금 더 행복하다고는 말할 수 있다. 금전적으로는 더 궁핍하고, 불확실한 상황에 처해 있음에도 불구하고. 선택은 각자의 몫이다. 각자의 인생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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