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찾아 나답게 살 이유

나의 30대 회상. 13

by Simon de Cyrene

아버지는 고등학교 시절 문학소년이셨다. 문학잡지에 글을 쓰고 상도 타곤 하셨다. 어머니께선 대학시절, 그 시절에 학보사 편집국장을 하셨다. 두 분은 결혼하면서 아버지는 소설을, 어머니는 동화책을 쓰며 살자고 하셨단다. 하지만 현실은 만만치 않았고, 아버지는 대학원을 그만두고 회사원이 되셨고, 어머니는 평생을 가정주부로 사셨다.


그런 부모의 자녀로 태어나서 내가 원하는 길을 고집하는 것에 죄책감을 느꼈다. 그래서 언론사 준비를 했지만 시험에 한두 개 떨어지는 과정에서 대기업 몇 군데에 지원했고, 취업이 쉽지 않다고 했던 시절이었는데 운 좋게도 내가 지원했던 회사들 중 가장 좋은 곳에, 아니 정확히 말하면 가장 연봉이 많았던 곳에 합격했다. 나는 내가 가장 가고 싶었던 언론사의 필기 합격 소식을 듣고도 면접을 포기했고, 나를 그보다 먼저 뽑아준 회사 홍보실에 입사했다.


당시에는 오롯이 독립적인 나의 선택이었다고, 최종면접은 한 번도 보지 못하고 1차 면접과 심지어 서류에서, 언론에서는 계속 필기에서 떨어지면서 지쳐서 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했다. 당시에는 정말 그렇게 믿었다.


그런데 아니었다. 그건 회사원의 아들로 태어나고 자란 사람이 관성적으로 제일 잘 아는, 아니 어쩌면 유일하게 아는 삶의 선택지를 선택한 것이었다. 그런데 어렸을 때, 가장 중요하다는 유아기와 청소년기를 미국 시스템에서 교육을 받았는지 몰라도 나는 나 답게 사는 게 너무 중요한 사람이었고, 나는 결국 4학년 1학기 때까지도 생각이 없었던 회사를 선택했던 나의 선택을 되돌려 대학원에 진학했다. 스물아홉 살의 선택이었다.


그 이후로 내 선택들은 오롯이 독립적일 수밖에 없었다. 평생을 회사원으로, 그리고 회사원의 아내자 두 아들의 어머니이자 가정주부이면서 교회 집사님으로 살아온 부모님이 모르는 길을 가야만 했으니까. 그래서 그 이후의 내 삶은 항상 가시밭길이었고, 누구에게도 이해받지 못하면서 가고 있다고 느끼면서 걸어가야 했다. 부모와 다른 삶을 사는 게 이래서 힘들구나, 이래서 가업이란 게 있구나, 부모의 삶을 그대로 따라가는 게 꼭 나쁜 것만은 아닐 수도 있겠단 생각을 삼십 대에 수 백, 수 천 번도 더했다.


많이 후회했다. 술이 머리 끝까지 차 있는 상태에서 내가 다녔던 회사 아래에서 눈물을 흘리면서 육두문자를 뱉으며 그 선택을 했던 나 자신을 원망하면서. 아주 솔직히 돌이키고 싶었던 때도 있었다. 그러다 정신을 차리면 나중에, 시간이 지나고 나면 그 회사를 그만둔 것을 후회하지 않을 수 있도록 살자고 마음을 다잡았다. 그 이후에도 안정적으로 사대보험을 받고, 어느 정도의 연봉을 받을 수 있는 직장이나 기회도 있었고 실제로 그렇게 회사에 들어갔던 적도 있지만 결국은 다시 내 성질머리를 따라 나와서 지금의 이 길을 걷고 있다.


법학박사이면서 현직 연구자이자, 홍보 및 마케팅 대행사 글을 쓰는 작가이자 드라마의 보조작가. 세상이 이렇게 희한하다 못해 이상한 이력이 있을까. 그런 나의 이력이 너무 이상하기도 했고, 주위 사람들은 모두 다 감당할 수 없다고 했고, 나 역시 나 자신을 수도 없이 의심하며 무엇을 버려야 할지에 대해 고민했다. 그러면서 나의 30대 후반을 전부 보냈다.


그러면서도 놓지 못하는 게 한 가지 있었다. 글이었다. 스스로 글을 잘 쓴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글을 쓰는 게 내게 어렵진 않고, 글의 소재도 끊이지 않는 나 자신을 발견하며 처음으로 나 자신을 믿어보기로 했다. 주위에서 뭐라고 하든지 나는 내가 제일 잘 아니까. 가끔은 나도 나를 모를 때가 있지만 그래도 다른 사람들보다는 내가 날 제일 잘 아니까. 과거에 그랬던 사람이 없었다고 해서 앞으로 그러는 사람도 없으리란 법도 없는데 심지어 대한민국 최초의 헌법학자였던 고 유진오 선생처럼 문학사에도 유의미한 족적을 남긴 사람도 있으니까, 그 정도는 아니어도 먹고살기 위해서라도 여러 글을 쓸 수는 있을 것이라고 나 자신을 믿어주기로 했다.


항상 행복한 것은 아니다. 힘들 때도 있다. [좋은 중고 자동차를 찾아서]란 시리지도 브런치에서 시작했지만 사실 중고 자동차를 고르기 위해 여러 사이트를 오가며 현타가 와서, 약간은 지금의 내 처지가 안쓰러워서 눈물을 흘린 적도 있다. 나도 사람인데 왜 물질에 대한 욕심이 없고, 왜 금전적인 여유가 싫겠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그리는 그림이 있기에, 그리고 잘 쓰는지 여부와는 무관하게 어쨌든 난 글을 써야 숨이 쉬어지는 사람이란 것을 알기 일단, 지금 이 순간엔 나의 그러한 욕구를 누르고 그보다 큰 나의 본질과 본능을 따르기로 했다. 그 선택이 당연하고 힘들지 않은 사람도 있겠지만 내겐 쉽지 않은, 아니 매우 힘든 선택이었고 돌이켜 보면 나는 30대를 내내 내가 알고 있던 성향을 누르고 살기 위해 노력하며 살았다.


앞에서 말했듯이 항상, 매일 행복하고 공중에 떠다니는 느낌으로 사는 건 아니다. 하지만 내가 생긴 이 꼬락서니를, 내가 할 때 행복한 것을 해야만 하는 성질머리를 예전보단 조금씩 받아들이고 있고, 그걸 더 받아들이고 지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내 일상에서 행복하고 평안함을 유지하는 시간이 길어지고, 스트레스받고 힘들어하는 시간은 짧아지고 있다.


우린 생각보다 많은 것에 세뇌되어 살아간다. 아니, 조금 거칠게 표현하자면 우린 모두 무엇인가에 미쳐서, 제정신이 아닌 상태에서 살아간다. 그리고 우리나라는 유독 그 미쳐있는 무엇인가가 돈, 명예, 권력인 경우가 많은데 그건 어쩌면 조선 말기에서부터 70년대까지 생계를 해결하는 것이 항상 최우선 과제였던 우리 조상들이 그럴 수밖에 없었던 환경 때문에 만들어진 성향이 환경이 엄청나게 바뀌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느낌이다. 평생 다 쓸 수 없는 돈을 쥐고도 돈을 더 벌려고 하는 사람, 좁아터진 방구석에 살아도 남들 시선을 의식해서 다른 사람들이 좋다고 인정해 주는 집에서 사는 사람, 밥은 편의점에서 먹으면서 남들이 봤을 때 입이 벌어지는 차를 할부를 연체하면서까지 끌고 다니는 사람.


그 안에 정말 내가 있기는 한가? 사실 남들은 나를 그렇게 신경 쓰지도 않는데, 남의 시선도 없는 곳에서 남의 시선을 의식하며 그렇게 살아가고, 지금의 행복은 제쳐놓고 미래, 미래만 외치며 현재는 포기하며 사는 게 과연 정상일까? 집을 한 채만 갖고 있다면 집값이 다 올라가면 내 집값이 올라간다 한들 그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내 집을 팔아도 내가 이사 갈 수 있는 곳도 마땅치 않고, 지금 집을 사는 30-40대들은 길어봤자 10-20년 정도 일하다 퇴직하면 결국 대출금을 갚기 위해서라도 집을 시장에 던져야 할 것이고 그 시기는 비슷한 시점에 오게 될 텐데, 빚을 갚고 나면 노후자금은 얼마 남지 않을 확률이 높을 텐데 사람들은 영 끌 해서 집을 사는 것일까? 종교활동에 열심인 사람들은 자신들은 다르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그들의 패턴도 면밀히 관찰하면 그들이 말하는 믿음과 신앙생활은 명예와 권력욕과 다른 사람들의 인정을 종교와 신으로 포장한 경우가 적지 않다.


굉장히 비판적으로 얘기했지만, 난 상당부분을 그런 것에 사로잡혀 살았던 시절이 있었고, 지금도 완전히 자유롭다고 할 수 없다. 나도 이 사회에서 똑같은 얘기들을 듣고, 보고, 강요받으면서 살았다 보니 머리로 그게 가장 중요한 게 아니란 것을 알아도 정신줄을 조금만 놓으면 나도 모르게 관성에 의해서 그런 것들에 시선과 손이, 마음이 간다. 나라고 내 소유의 집이 없는 게 안 불안하겠나?


그렇다 보니 사람들은 그런 현상을 보면서 마치 인생에 답이 있는 것처럼, 우린 비슷비슷한 것처럼 말하지만 사실 인간은 그렇지 않다. 우리는 일제강점기부터 이어져 오고 있는 군대식 교육에 의해서 우리는 모두 비슷하다고 학습되었고, 그렇게 살아야 한다고 강요받아서 그렇게 생각하게 된 것이다. 그렇다 보니 적지 않은 사람들은 어렸을 때부터 강요받고 세뇌된 가치관과 세계관을 그대로 갖고 자신을 잃어버리고, 찾을 생각도 하지 않고, 아니 자신을 알고 있다고 착각하면서 살아간다. 자신을 모르다 보니 진짜 행복도, 즐거움도 모르고 자극적인 쾌락에만 노출된 상태로.


다시 말하지만 돈, 권력, 명예가 나쁘단 것이 아니다. 그게 필요하지 않단 것도 아니다. 다만 인간이 그런 소유와 자극에만 익숙해지면 자신을 잃고, 그에 따라 진정한 행복과 즐거움에서도 멀어지기 때문에 그런 것들은 어디까지나 수단에 머물러야지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단 것이다.


나의 어둡고 어두웠던 30대는 그걸 머리로 깨닫고, 삶에 체화시키기 시작하는 과정이었으며, 거룩한 척 말하고 있는 지금도 난 그런 가치와 세계관에서 완전히 자유롭지는 않다. 물을 빼고는 있는데 그게 단기간에 되지는 않더라. 다만 달라진 게 하나 있다면, 앞에서 말했듯이 나답게 살아지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내가 더 행복해짐을 느끼고 있고, 그렇기 때문에 순간순간을 더 나답게 살기 위해 노력하게 되더라. 이젠 명예와 권력욕은 어렸을 때보다 확연하게 줄였고, 돈은 나 자신을 지키면서도 벌 수 있는 루트는 보이기 때문에 조금 돌아가더라도 그 방향으로 가보기로 했다.


결과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과정도 중요하다고, 아니 결과보다도 과정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게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결과는 한순간에 나오기 때문에 좋은 결과는 그 순간 반짝이지만, 과정은 결과를 받는 그 순간보다 훨씬 긴 구간을 거치게 되기 때문에 과정을 잘 보내면 그만큼 내 인생의 큰 부분을 더 잘 보내게 되는 거니까. 그래서 그 과정에 초점을 맞추고, 내 안에 있는 나답게 살아보기로 했다. 그 과정이 날 행복하고 숨 쉬게 해 줄 것을 알기 때문에.


30대라는 거대한 터널을 지나갈 때는 그보다 고통스럽고 괴로울 수 없었는데, 그 터널을 어느 정도는 지나오고 나니 내가 지나오지 않았다면 와있지 못했을 목적지에 와 있는 듯해서 40이 된 지금은 오히려 나의 30대가 어두웠던 게 다행이었다 싶을 정도로 나의 30대가 고맙다. 나답게 사는 게 그래도 더 행복하게 살 수 있단 것임을 알고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단 사실만으로도, 어둡기만 했던 나의 30대가 지금은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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