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이 순간을 살자

나의 30대 회상. 14

by Simon de Cyrene

항상 미래에 대한 계획을 세우고 사는 편이었다. 우리나라 사람들 대부분이 그렇듯 고등학교 때까지야 그저 대학입시만 보고 살았고, 고3 때 여러 상황이 겹치며 부모님 기준의 '좋은 대학' 입시에 실패했지만 사실 개인적으로 입시를 다시 경험하고 싶지 않아서 관심이 있는 대학에 지원하려 했으나 부모님이 허락해주지 않으셔서 재수를 할 때까지는 내 인생에 대한 계획이 많지 않았지만 그 이후엔 항상 내 인생의 계획을 세우는 편이었다.


학부를 마치고 일반 병사로 군 복무를 하신 아버지는 군대는 최대한 빨리 가라며 입학하자마자 군입대를 알아보라고 하셨고, 재수 결정을 한 것도 그렇고 그때까지만 해도 (부모님 생각은 다르시겠지만 내 기준에서는) 부모님 말씀을 참 잘 듣는 아들인 편이었던 나는 참 순진하게 대학에 입학한 해 12월 5일에 논산훈련소로 향했다. 그리고 역시나 이때까지는 말을 참 잘 들었던 나는 부모님 요구대로 휴학하지 않고, 외국에 살다 왔으니 교환학생도 가보지 않고 3년 반에 졸업할 요건을 충족시킨 상태에서 4학년 2학기는 9학점만 들으면서 취업을 준비했다.


모든 것을 단순화시켜서 말했지만 내겐 다 계획이 있었다. 제대한 후에는 1년 정도는 우선 다시 사회에 적응을 하며 학교에 충실하자고 마음먹었고, 3학년이 되면 미래에 대한 고민을 하면서 여러 가지를 알아보고 경험하기로 계획했으며, 4학년에는 3학년 때 결정한 내 인생의 방향을 준비하기 위한 노력을 하기로 했다. 그리고 졸업하기 전에는 학점을 일정 수준 이상으로 만들어 놓기로 계획해서 내 선택의 폭을 넓혀 놓기로 했다.


학점은 내 목표치보다 0.03 낮았지만 근사치에 갔고, 3학년을 보내면서 (이때도 역시나 순진하게 남의 주머니에서 돈 빼먹는 게 얼마나 힘든지 알아야 한다는 부모님의 '전적으로 교육적인 목적'이라는 탈을 쓴 취지와 과외는 하지 말란 얘기에 순종하면서) 취재하고, 기사 쓰고, 영상 찍고, 사진 찍는 일로 용돈이 넘는 수준의 돈을 벌었고, 난 4학년 때 기자 준비를 했다. 하지만 이전 글에서 얘기했듯이 난 기자 시험은 대부분 필기에서 떨어지다 딱 한 곳, 그것도 하필(?) 지원한 회사들 중에 연봉이 가장 높은 곳만 붙고 나머지는 서류 및 1차 면접 광탈을 시연하면서 회사로 향했다. 지금 돌아보면 내 계획이 이때부터 살짝 틀어졌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취업이 되었단 사실에 흥분해서 그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던 것 같다. 내가 가장 가고 싶었던 언론사 면접은 가지 않고 취업시장에서 빠져나와 버렸던 걸 보면 나는 분명 그랬다.


하지만 회사생활은 역시나 내게 맞지 않았고, 나는 또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그래서 2년 차부터는 대학원 진학 준비를 해서 그해 말에 대학원에 합격, 3개월 후 퇴사를 시전 하면서 또다시 내 인생을 내 계획대로 살아갈 수 있게 되었다고 믿었다.


착각이었다. 그 이후 내 인생은 단 한순간도, 단 한 번도 내가 예상하거나 원하는 대로 흘러간 적이 없었고, 나는 30대를 통으로 그렇게 보냈다. 당연히 힘들었고, 우울해졌고, 인생의 실패자 또는 낙오자가 된 느낌이었다. 20대까지 내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고 어느 정도 성과를 내며 살았던 것은 한국 사회의 기준으로 또래 중에 '잘 나가는' 지인들을 엄청나게 많이 있게 만들어서 상대적 박탈감까지 심하게 느끼면서, 나의 30대를 보냈다. 뉴스에서 떠들어대는 억대 연봉들이 왜 내 앞에는 밟힐 정도로 많은지... 월세와 관리비 43만 원을 내야 하는 상황에서 통장잔고가 67만 원까지 떨어지는 것을 경험함과 동시에 지인들이 내가 들어갔던, 내가 가고 있을 수도 있었던 길에서 상당한 수준의 금전적인 보장과 안정을 누리는 것을 보는 건 꽤나 고통스러웠다. 최소한 30대 초중반까진 그랬다.


지금은 그렇진 않다. 내 잔고가 67만 원에 비해서는 훨씬 많지만 중고차를 사기 전에 추천을 받으려고 SNS에 올린 글에 회사 동기 자식이 댓글로 단 차종을 보면서 '이 자식은 정말 이렇게 눈치가 없구나...'라는 생각이 들며 이틀 정도 분노에 가득 찰 정도로, 무려 차를 사면서 100-200만 원에 손을 벌벌 떨 정도로 내 통장 잔고는 여전히 아주 여유롭지는 않고, 내 미래 수입도 불분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30대보다는 지금이 조금은, 아니 조금보다는 더 많이 행복한 느낌이다.


30대에는 지인들의 물질적인 풍요로움과 그들이 결혼했다는 사실, 겉으로 드러나는 사실들만 보였다. 그리고 30대 정도 되면 학부를 졸업하고 약간 세상 물정을 모르고 순수하고 순진했던 20대와는 달리 일에도 능숙해지면서 일이 재미있어지고, 어느 정도 이상의 연봉을 받으며 주위 사람들도 부러워할 뿐 아니라 돈으로 누릴 수 있는 많은 것들을 즐기며 보내기 때문에 그렇지 못했던 난 그들의 삶이 마냥 부러웠다. 그게 전부이고, 그게 계속될 것 같아 보여서 그들이 부러웠다.


하지만 그런 부러움은, 없어졌다면 거짓말이겠지만 30대 후반부터 조금씩 덜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일에 열심이던 지인들은 30대 초중반 이후로는 새로움이 상실되고 회사의 부품이 되어가는 듯한 본인의 삶에 권태로움을 느끼기 시작하고, 결혼과 가정을 꾸리는 것에 대한 깊은 생각을 하기보다는 적당한 스펙을 갖추고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결혼할만한 나이'에 만나고 있던 사람과 결혼한 사람들은 집 밖으로 돌기 시작하더라. 물론, 다 그런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이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는 훨씬 많고, 그러면서 내 주위에서는 절대 결혼하지 말라는 사람도 30대 중반 이후로 계속 늘어나고 있다.


결정적으로 30대 후반부터는 정말 뛰어난 지인들 중에는 회사가 주는 안정을 버리고 자신만의 일을 하기 위해 사업을 시작하거나 스터트 업으로 이직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것을 보며 어쩌면 내가 30대에 부러워했던 것들이 삶의 전부가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이가 들면서 정말 큰돈은 회사원들이 아니라 사업하는 사람이나 자신의 브랜드가 명확한 사람들이 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런 관점에서 보면 나도 손에 쥔 카드가 없는 편이 아니다 보니 30대에 나를 채우고 있던 열등감들이 사그라들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나는 내게 주어진 일들을 하면서 행복했고 그런 사람들이 많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내 삶에 대한 원망과 분노가 조금씩, 조금씩 가라앉았다.


나의 30대는 계획이 무너지는 시기였다. 그 시기에 내가 한 것은 단 한 가지, 버티는 것이었고 지금 돌아보면 그렇게 버티기를 잘했단 생각이 든다. 이는 지금 내가 손에 쥐고 있는 모든 카드들은 내가 그래도 그 시기를 버티면서 최선을 다했던 것들 덕분에 손에 들어온 것이기 때문이다.


아니, 돌이켜보면 나는 별생각 없이 그때 내 앞에 있는 것에 최선을 다한 것들이 장기적으로는 내게 어떤 형태로든 새로운 기회를 가져다줬더라. 학부시절에 과외는 하지 않되 용돈은 스스로 벌라는 부모님의 말씀에 순진하게 순종하며 했던 취재하고, 글 쓰고, 영상 찍고, 사진 찍는 경험들은 취업과정에서 내 스펙으로 이어졌을 뿐 아니라 그랬던 경험과 홍보실에서 일했던 인연들이 지금 내게 글 쓰는 일감을 물어다 주고 있으니까. 그뿐인가? 브런치에서 글을 쓰기 전에 SNS에서 길게 글을 썼던 것들을 읽어 온 학부 선배는 뜬금없이 본인이 기획에 들어가 있는 법조물에 나를 투입시켰고, 대학원에서는 본의 아니게 지도교수님 조교를 길게 하면서 쌓은 인연이 지금도 교수님과 함께 연구 프로젝트에 참여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줬다.


내 인생은, 특히 나의 30대는 단 하나도 내 뜻과 계획대로 된 적은 없지만 '일단 모르겠고 짜증 나고 힘들지만 최선을 다하자'는 마음으로 내가 그때, 그때 최선을 다했던 것들은 예상하지 못했던 인연과 조합으로 내게 다시 돌아왔다.


그 사실을 인지한 후부터 나는 거시적인 관점의 방향성은 세워놓지만 구체적인 계획은 세우지 않기 위한 노력을 부단히 하고 있다. 물론, 그게 쉽지는 않다. 내 몸에 배어있는 관성이 그렇지 않고, 주위에서도 내 나이에 그렇게 살면 안 된다고들 많이 하니까. 하지만 내 인생뿐 아니라 지인들을 봐도 인생은 절대 계획대로 되지 않더라. 결혼하지 않겠다던 사람들이 20대에 결혼하고, 애를 갖지 않겠다던 이들이 애를 셋 키우고 있고 또 반대로 현모양처가 꿈이라던 사람은 30대 후반까지 싱글로 열심히 일만 하고 있는 것처럼 자신의 생각과 계획과 인생이 완전히 반대로 흘러가는 사람들은 굉장히 많다. 때로는 대부분 사람들이 그렇게 살고 있다고 여겨질 정도로.


이에 대해서 혹자는 '너는 그래도 학부도 괜찮은 대학을 나왔고, 스펙도 나쁘지 않으니 기회들이 그렇게 주어진 것 아니냐'라고 반박할지 모른다. 틀린 말은 아니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나도 부인할 생각이 없고, 내게 주어진 것들이 100% 순수하게 나의 힘과 노력만의 결과가 아님을 알기에 과도하게 흥분하거나 오만해지지 않기 위해 매일매일, 순간순간마다 노력하며 살고 있다.


그런데, 사람 사는 모양새들은 대부분 비슷하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일단 주어진 것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에게는 자신이 생각하지 못했던 기회가 주어질 것이라고 믿는다. 그 나이 먹고 여전히 너무 순진한 것 아니냐고? 아니다. 내가 그렇게 믿는 것은 나이가 들고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다양한 업계를 들여다볼수록 [생각보다 주어진 것에 정말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 별로 없다]는 것을 알게 되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말이다.


그렇다. 많은 사람들은 현재에 최선을 다하기보다 현재에 대한 불만을 가지고, 그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미래에 대한 계획을 세우다 그 계획에 회의를 느끼거나 그 계획이 어그러지면 좌절하면서 현재를 방치하며 산다. 부끄러운 말이지만 사실 나 역시 박사학위를 받고 상당한 기간을 그렇게 보냈다. 미래에 대해 걱정하고, 계획을 세우다 좌절하기를 반복했기 때문에, 나와 비슷한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단 사실이 위로도 받았었기 때문에 그런 사람들이 굉장히 많은 반면 그런 것들은 일단 접어두고 현실에, 주어진 것에 최선을 다해서 들러붙는 사람은 많지 않다고 단언할 수 있다.


그런 사람들이 별로 없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그렇게 최선을 다하는 사람은 좋은 사람들 눈에 띄고, 좋은 사람들은 그렇게 최선을 다하는 사람을 신뢰하고 일을 맡기면서 새로운 기회를 준다. 이에 대해 '나는 열심히 살았고, 최선을 다했는데 기껏 나를 알아봐 준 사람은 사기꾼이었다'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을 텐데, 그런 사람들은 주어진 일은 하자 없는 수준에서 하면서 '어떻게 하면 빨리, 짧은 길로 성공할 수 없을까?'라며 잔머리를 굴리며 주위를 살펴보다 자신에게 주어진 떡밥을 무는 경우가 많다. 정석이 아니라 편법적으로 빨리, 크게 성공하려는 사람들은 그런 꼬임에 넘어가지만 정말 오롯이 현재에 집중하고 모든 것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은 그런 술수에 넘어가지 않는다.


물론, 너무 성실하기만 하고 미래에 대한 큰 그림은 갖고 있지 못함으로 인해 본인 앞에 주어진 기회를 놓치거나 사기를 당하는 사람들도 없진 않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마냥 최선을 다하는 것이 아니라 삶의 방향성,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 등에 대한 고민은 계속하고 중심을 잡고 있어야 한다. 이는 그래야 우리 앞에 기회가 나타났을 때 그에 대한 제대로 된 판단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시선'만' 멀리 두고 손, 발과 몸은 철저히 현재에 둔 상태로 지금, 이 순간에 두는 사람들에게만 새로운 기회가 온다. 일확천금을 할 수 있는 기회까지는 아니더라도 먹고살 수 있을 정도의 기회는 계속해서 올 수밖에 없다. 그렇게까지 현재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은 많지 않고, 그렇기 때문에 좋은 사람들은 그렇게 최선을 다하는 사람을 알아볼 수밖에 없다.


이것이 우리가 지금 자신에게 주어진 일에 일단 최선을 다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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