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30대 회상. 15
내 글을, 특히 이 시리즈를 읽으신 분이라면 제목을 보고 '이 인간이 미쳤나...'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자신의 30대가 어둡고, 힘들고, 고통스러웠다고 하더니 자신의 삶이 완벽하다니. 과연 제정신이면 할 수 없는 말이고, 조울증 환자인가 싶을 수도 있겠다.
항상 이렇게 생각해 온 것은 아니다. 아니, 나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대부분의 시간을 내 인생은 결핍으로 가득 차 있다고 생각하면서 살아왔다. 아주 솔직히 말하자면 지금도 이렇게 생각되어지지 않는 순간들이 적진 않다. 다만, 내 인생에 결핍되어 있는, 부족한 것들이 눈에 보이고 그로 인해 힘들어질 때면 나는 가만히 멈춰서 내가 그것들을 가졌다면 어떤 상태였을지를 반추해 본다. 그러고 나면 지금까지 내가 겪어온 것을 겪기를 잘했다는,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사람이 모든 것을 가질 수는 없다. 우리는 뭔가를 가지면 다른 것은 놓치게 되어있다. 돈을 많이 벌려면 사람들과 노는 시간을 줄여야 하고, 좋은 성적을 받으려면 다른 것을 하지 않고 공부에 집중해야 하지 않나? 이는 모든 영역에서 그렇다.
예를 들면 사람들은 좋은 대학 간 사람들을 부러워하지만, 전국에서 난다 긴다 하는 사람들이 모인 집단에 들어가 봤던 경험에 의하면 좋은 대학에 간 똑똑한 사람들, 정말 똑똑한 건 맞는데 대부분이 어딘가 한 군데씩 그 반대급부로 갖고 있지 못한 것들이 있었다. 그중에 정말 똑똑한 사람들은 심지어 본인이 무엇이 결핍되어 있는지도 아는데, 그들이 안다고 해서 그걸 가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공부를 잘하는 사람들은 많은 경우 이성이 엄청나게 발달되어 있어서 공감능력이나 사회성, 때로는 두 가지를 모두 갖지 못하고 있는 경우가 많더라. 그것도 아닌 경우에는 공부만 했기 때문에 세상 물정을 몰라서 철부지 같은 사람들도 있었다. 분명한 것은 모든 것을 가진 사람은 없단 것이다.
다른 글에서도 얘기했듯이 나는 모든 것이 애매하게 중간인 편인데, 이 부분에서도 그랬다. 나는 공부를 못하는 편은 아니었지만 정말 공부 잘하고 머리 좋은 사람들 사이에 들어가니 어중간한 사람이었고, 또 반대로 예술을 하는 사람들에 비하면 감성적인 부분이 약한데 다른 사람들이 봤을 때는 극단적으로 이성적임과 동시에 극단적으로 감성적이라고도 볼 수 있는 희한한 변종에 속한다. 그런데 반대로 그런 나의 희한한 변종적인 성향은 감사하게도 내가 양 극단에 있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 있게 해 주더라.
제한된 자원과 시간 속에서 인간은 필연적으로 완벽하고, 모든 것을 가질 수는 없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 삶에 대한 평가를 하기 전에 본인에게 무엇이 가장 중요한 지를 생각해서 기준을 명확히 세운 후에 판단을 내려야 한다.
내 삶은, 특히 30대는 물질적인 풍요로움과 사회적인 성취로 보면 낙제점, 아니 낙제점 보다 더 낮은 점수를 줘야 마땅하다. 그리고 대학원에 진학하기로 한 나의 20대의 선택은 인생에서 가장 하지 않았어야 하는 선택이었다. 내가 받았던 연봉과 나의 전반적인 씀씀이를 고려했을 때 그냥 회사에 다녔다면 30대 중반에는 약간의 대출을 받아서 집을 살 수 있었을 것이고 (실제로 내 회사 동기나 선후배들 중에는 대출을 일부 껴서 잠실 등에 집을 마련한 사람들이 있으니 망상은 아니다), 지금도 매달 코로나 지원금을 받지 못하는 상위 12%가 아니라 상위 5-6%에는 들 수 있었을 텐데 지금 내 통장 잔고는 나의 회사 1년 차 연봉보다도 적으니까.
돈, 물론 중요하다. 그런데 우리는 돈이 '왜' 중요한지를 생각해 봐야 한다. 사람들은 그냥 막연하게 돈은 벌어야 하고 많아야 좋은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과연 그럴까? 돈이 많아지면 무조건 행복할까? 아니다. 자수성가 한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자신의 삶이 행복했다는 말 보다 엄청나게 힘들었단 얘기가 먼저 나올 것이다. 자수성가한 사람들의 경우 본인이 아니라 본인의 가족이 행복해진다. 자수성가한 사람은 계속 일을 하는 반면 그 가족은 그 돈을 쓸 시간이 있으니까.
이런 구조를 보면 우린 돈은 그 자체가 아니라 돈이 있음으로 인해 누릴 수 있는 자유 때문에 필요하고, 중요하단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또 사실 돈을 많이 벌면 그걸 지키기 위해 그만큼의 노력을 들여야 하기 때문에 또 그로 인해서 우리의 심리적 자유도 다시 일정 부분 제한받을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돈이 일정 수준으로 필요하고, 수입에 대한 예측가능성이 주는 안정이 있는 것도 부인할 수는 없지만 돈이 그 자체로 줄 수 있는 행복에는 분명 한계가 있다는 것도 알고, 인정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삶이 얼마나 완벽한지는 단순히 물질적인 풍요로움 만으로 평가하고 판단할 수도 없고, 해서도 안된다. 개인적으로 돈은 인간에게 두, 세 번째 정도로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처럼 돈이 우리에게 자유를 선물해 줄 수 있지만, 돈을 많이 벌기 위해 그 자유를 필연적으로 포기해야 한다면 우리는 (1) 최소한의 경제적인 필요는 충족시키고 미래에 대한 최소한의 예측가능성은 있으면서 (2)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것을 갖고 있다면 그저 돈이 많은 것보다 행복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더 중요한 것]을 알지 못한다면 결국은 돈이 최고라고 여길 것이고. 그리고 대부분 사람, 특히 우리나라 사람들은 여기에 멈춰 있는 경우가 많은 듯하다.
돈이 가장 중요하지 않다면, 돈이 우리를 일정 부분 자유롭게 해주는 수단일 뿐이라면 사람에게 더 중요한 건 뭘까? 이걸 단순화시키는 위험하긴 하지만 그건 아마도 [사랑] 일 것이고, 우리는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사랑을 경험한단 것을 감안하면 결국은 사람일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사람을 믿을 것이 못된다'라고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그 또한 틀린 말은 아니지만 진짜 사랑은 사람을 바꾸기도 한다. 누군가 조건 없이, 자신의 이익과 상관없이 호의를 지속적으로 베푼다면 처음에는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거나 그 사람을 믿지 않던 사람들도 마음을 열지 않나? 그런 사랑을 누군가와 평생 할 수 있다면, 사랑을 통해 깊은 관계가 형성할 수 있다면 우리는 조금은 물질적으로 풍요롭지 못해도 최소한 불행하지는 않거나 아마도 높은 가능성으로 행복할 수 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사실 연애와 결혼, 가족이 가장 중요한 것도 그나마 그런 사랑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이 높은 테두리는 상호 간의 이해관계가 엮여 있고 서로 신뢰하기로 약속한 공동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간은 필연적으로 자기중심적인 존재여서 그런 공동체 안에서도 서로를 배신하고, 자신을 위해 상대를 이용하기도 하다 보니 사람들이 돈에 집중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그런데 사람을 잘 신뢰하지 않으면서도 그런 사랑을 어느 정도는 경험하고, 상처 받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이 있단 것을 어두운 터널을 지나면서 배웠다. 사람을 이해할 수 있게 되면, 사람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게 되면 상처를 받아도 그걸 받아넘길 수 있게 되고, 상대의 마음을 이해하면 분노하거나 짜증내기보다는 '에이, 그럴 수도 있겠다'라고 할 수 있게 되더라. 그러면서도 내 한계를 인정하면, 내가 모든 사람에게 완벽할 수는 없단 것을 받아들이면 다른 사람도 덜 판단하고 수용하고 품어줄 수 있게 되더라. 또 그렇게 되면 내 인생이 불가능한 것으로 여겼던 평안함과 위로하고 위로받는 관계로 채워질 수 있단 것을 경험적으로 알았다.
그리고 과거에 내 주위에 그렇게 해주는 사람이 없었던 건, 내가 그런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그랬단 사실도... 내가 조금씩 바뀌니 내 주위에 예전과 다른 사람들이 붙기 시작하는 것을 경험하면서 내가 사람을 믿지 않았던 것은 내가 그렇다 보니 내 주위에도 그런 사람들만 붙고, 보였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더라. 당신이 만약 염세적이고 사람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갖고 있다면, 그건 당신의 그런 성향으로 인해 그런 사람들이 주위에 많이 붙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물론, 그렇다고 내가 힘들거나 외롭거나 분노하게 될 일이 없단 것은 아니다. 다만 여러 일을 겪고 힘들어하다 보니 그랬다가도 그리 길지 않은 시간 안에 반등할 수 있는 힘이 내 안에 생겼음을 느낀다. 그리고 내가 힘들어 봤기 때문에, 진심으로 죽음을 묵상하고 극단적인 선택을 하고 싶었던 적이 있기에 예전과 달리 남들이 보기엔 작은 일로 크게 힘들어하는 사람들의 마음도 이해하고 공감해 줄 수 있게 되었다. 완벽하게는 아니어도 그전에 나보다는 훨씬 많이.
이런 나의 변화를 나는 [사람다워졌다]고 말한다. 30대의 어두운 터널을 지나기 전의 난, 당시엔 몰랐지만 경쟁적이고 나 밖에 모르고 공감능력은 덜 충전되어 있는 상태에서 돈을 많이 벌고 싶으면서 그렇지 않은 척하는 가식적이고 예민한 사람이었더라. 끔찍해 보이나? 그런데 당시에 난 내가 그런 사람인 줄 몰랐다. 그렇기 때문에 죄송하지만 이 묘사에 끔찍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면, 당신 안에도 그런 면이 있을 확률이 낮지 않다. 이는 사람에게는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그런 면들이 어느 정도는 있고, 자신 안에 그런 면이 있다는 것을 안 사람은 저 표현에 '맞아, 사람이 그럴 수 있지. 나도 그런 면이 있어.'라는 생각이 들 것이기 때문이다.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없다는 것을 아는 것. 그렇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결핍과 부족함을 품어줄 줄 알고, 나 자신의 부족함도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면서도 존중할 수 있는 것. 그게 진짜 사랑을 하기 위한 전제조건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리고 돈 보다 중요한 걸 단 한 가지만 꼽으라면 나는 그런 사람이 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는 그런 사람들은 더 많은 사람을 품고, 이해할 수 있고, 덜 분노할 수 있으며 불행한 시간보다는 행복한 시간이 많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건 돈으로 살 수도 없고, 안타깝게도 정말로 힘들고 깨져 봐야 알 수 있는 영역이다.
이 모든 걸 한 마디로 정리하면 [내적으로 강하고 공감능력이 있는 사람이 되는 것] 정도가 될 듯하다. 그런 사람이 될 수 있다면, 거기에 더해서 기본적인 생계를 해결할 수 있고 앞으로 확장해 나갈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면, 70-80년은 사는 이 시대에 30-40대에 그 정도 상황에 있을 수 있다면 그 삶은 모든 것을 손에 쥐고는 있지 못하지만 완벽에 가깝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겠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내 30대는 고통스럽고 힘들었지만 지금 돌아보면 그 과정 덕분에 난 그런 사람이 되어가는 과정에 있다. 그런 과정 없이 내가 회사에서 높은 연봉을 받으면서 계속 다녔거나 로스쿨을 졸업하고 곧바로 변호사가 되었다면 나는 인생에서 2-3 번째 정도로 중요한 돈만 좇으며 공격적이고, 예민하면서 돈 밝히며 공감능력이 지금보단 결여되어 있는 사람이 되었을 것이다. 어떻게 확신하냐고? 20대 후반까지 주로 성공만 하던 시절의 내 모습은 내가 가장 잘 알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말이다.
나는 분명 많은 것을 잃었지만, 그에 대한 대가로 더 중요한 것을 얻었다. 사람이 모든 것을 가질 수 없단 점을 감안했을 때 장기적인 관점에서 그건 나쁘지 않은 대가였다고 나는 생각한다. 물론, 그로 인해 모든 것을 잃고 미래에 어떤 가능성도 없었다면 이렇게 생각하지 못했을 수 있다. 그런데 나는 운이 좋게도 부자는 아니지만 (내 소유는 아니더라도) 서울에 살 수 있는 집이 있고, 내 생계는 내가 해결할 수 있을 정도의 수입은 항상 있었으며, 내가 열심히 하고 상황이 잘 풀리면 어쩌면 조금 더 여유 있게 자유를 누릴 수 있는 가능성도 갖고 있다.
이 정도면, 완벽하다고 하는 게 맞지 않을까? 완벽이란 게 모든 것을 가졌단 의미는 아니니까. 여기에서 더 많은 것을 바라면 그건 너무 큰 욕심인 듯하고, 그런 욕심을 갖고 있다면 아마도 다른 사람들의 상황에 공감을 덜 할 수 있을 가능성이 있단 것을 감안하면 40에 이 정도 위치가 딱 좋은, 적당한 느낌이다. 그렇다면 내 인생은 충분히 완벽하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본인의 인생이 어떤지를 판단하고 평가하기 전에 본인이 잃은 것과 그것을 잃음으로 인해 반대로 본인이 갖게 된 것을 찬찬히 돌이켜 볼 것을 권하고 싶다. 그것을 잃은 시점에는 모든 것을 잃은 것 같고, 아무것도 가진 게 없는 것처럼 느껴질 것이다. 나도 그랬으니까. 그런데 그렇게 무엇인가를 잃었던 것은 필연적으로 나비효과를 일으켜서 내가 그것을 잃지 않았다면 갖지 못했거나 알지 못했을 것을 갖고, 알게 해 주더라. 내 인생만 그런게 아니고, 다른 사람들의 인생을 들여봐도 그렇더라.
세상에는 그걸 알아보는 사람과 알아보지 못하는 사람이 있을 뿐, 항상 모든 것을 잃는 사람은 없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모두 각자 나름의 방법과 방향대로 어느 정도는 완벽한 삶을 향해 가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걸 알아보는 눈을 가진 사람과 알아보지 못하는 사람이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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