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에 생각하는 '행복'

나의 30대 회상. 16

by Simon de Cyrene

사람은 누구나 행복해지고 싶어 한다. 최소한 나는 그렇게 믿는다. 그래서 나는 항상 무엇이 나를 가장 행복할지를 놓고 고민했다.


그렇다 보니 가끔씩은 남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선택들도 했다. 대학교는 재수해서 고3 때 가장 가고 싶었고, 나와 가장 친한 친구들이 재학 중이었으며 집에서도 가까웠던 학교에도 합격해 놓고 비슷한 레벨의 다른 학교를 갔고, 전공을 선택을 놓고는 고민 고민을 하다가 돈이 안되고 먹고살기도 힘들단 전공을 선택했으며, 그렇게 유별을 떨더니 대기업에 입사를 했다. 하지만 아니나 다를까 2년 다니고 나서 퇴사를 하고 대학원에 간 이후로는 이성적이거나 합리적으로 생각하기는 힘든 선택들을 적지 않게 해오고 있다.


그때그때의 내 기준은 똑같았다. '내가 가장 행복할 것 같은 선택' 때로는 그 선택이 너무 이기적으로 느껴지기도 했지만, 그때마다 난 내 인생은 어차피 내가 사는 것이라 생각했다. 지금 돌아보면 참 어렸고, 철이 없었던 건데 나는 내 선택과 삶이 내 주변 사람들, 특히 가족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까지는 생각하지 못하고 오롯이 나의 행복만 생각했다. 그렇다 보니 때로는 과감한 선택을 하기도 했고, 주위에서는 어떻게 그렇게 살 수 있냐는 말을 듣기도 했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행복'이란 기준은 그대로 유지되었는데, 내가 선택하는 기준들은 계속해서 달라져 왔더라. 어렸을 때 나는 주위 시선도 의식했고, 사회적인 기준으로 높고 그럴듯한, 힘이 있는 자리에 가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당시에는 몰랐지만 지금 돌아보면 남들이 우러러보고 부러워하는 직장에 가고 싶은 마음도 있었던 것 같다. 정치외교학을 전공한 영향도 있었지만 어쨌든 학부 때는 그렇게 국제기구에서 일하고 싶어 했고, 언론사 시험을 준비한 사람이 연합뉴스 필기를 통과해서 면접을 앞두고 직전에 합격한 연봉 높은 대기업을 선택했단 것은 내가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잘 보여주는 예가 아닐까 싶다.


쉽게 말해서 '성공'이 우선이었다. 그리고 어렸을 때부터 결혼하고 싶다고 노래를 부르고 다녔지만 지금 돌아보면 그때의 나는 일을 해서 성취를 이루는 게 인생의 가장 큰 목표였고, 내 옆에는 내 리듬과 상태에 맞춰서 내 필요를 충족시켜줄 사람을 '갖고' 싶어 하고 있었다. 얼마나 자기밖에 모르는 괴물 같은 생각인가?


그 생각은 30대를 지나면서 조금씩,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 내가 가고 싶었지만 가지 못한 길을 가는 지인들이 생겼고, 당시에는 그들의 삶이 마냥 부럽고 내가 패배자가 된 느낌이었는데 시간이 지나고 보면 그들이 그걸 가졌다고 해서 삶이 완벽해지는 것은 아니더라. 내가 원했던 길을 간 사람들 중에는 그 길을 간 것 자체를 후회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가지 않았다면 오히려 더 행복했을 사람들도 있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행복'의 관점에서 무엇이 정말 더 '좋은' 일이었는지가 혼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내가 깨달은 것은 모든 사람들이 진정한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지점이 다르단 것이다. 그렇다. 사람들은 마치 인간은 동질적이어서 똑같은 것에서 똑같은 수준의 행복을 느끼는 것처럼 말하지만 그건 사실이 아니다. 누군가에게는 정말 행복을 줄 수 있는 일이 다른 사람에게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예를 들어 난 이렇게 글 쓰는 것에서 행복과 자유로움을 느끼지만 대부분 사람들은 글을 한 문단 이상 쓰는 것도 고통스러워하고, 유튜브를 보면 누군가는 몸이 고되고 돈을 쓸 시간이 없어도 수억 대의 자동차와 시계를 살 수 있으면 행복하지만 난 그렇지는 않더라. 이런 다름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다.


그리고 나는 또 주위 사람들을 보면서 대부분 사람들이 자신을 잘 모른단 사실을 알게 되었다. 사람들은 돈이 많아서 많은 것을 할 수 있으면 무조건 행복할 것처럼 말하지만 그건 사실이 아니더라. 물론, 돈이 많은 게 적은 것보다는 훨씬 행복할 가능성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아니, 사실 돈이 너무 많으면 그것도 불행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 때도 있다. 돈이 엄청나게 많으면 주위에서 그걸 보고, 그걸 노리고 몰려드는 사람들이 차고 넘칠 것이 아닌가? 그런 삶이 과연 행복할까? 아무도 믿지 못하는 삶이?


어쨌든, 돈이 없어서 극단적으로 궁핍한 것보다는 여유가 있는 것이 행복할 수 있는 가능성을 높여주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돈이 가져다주는 행복에는 한계가 있는 듯했다. 그렇다면, 돈이 사람에게 주는 행복에 한계가 있다면 우리는 우리가 어떤 것을 가졌을 때, 또는 어떤 상황에 있을 때 행복할지를 알기 위해서 나 자신을 잘 알아야 하는데 사람들은 그에 대한 고민은 별로 하지 않고, 자신을 잘 모르다 보니 행복한 법을 모르는 경우가 많더라.


여기에 더해서 사람들은 대부분이 [행복]과 [말초적인 자극]을 구분할 줄 모르더라. 나도 과거에 그랬고, 대부분 사람들은 지금도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를 모르며 산단 것을, 나이가 들어가고 주위 사람들의 인생을 관찰하면서 알게 되었다. 사실 행복과 말초적인 자극을 통해 느껴지는 좋은 감정은 구분하기가 굉장히 힘들다. 그래서 사람들은 엄청나게 맛있는 걸 먹고 행복하다고 하고, 스킨십을 한 후에는 행복하다고 하는데 사실 우리가 행복하다고 느끼는 그 느낌은 많은 경우 특정한 감각이 자극됨으로 인해 일시적으로 발생하는 호르몬 작용의 증상인 경우가 많다. 그리고 우린 그런 자극들에 쉽게 익숙해지기 때문에 비슷한 자극을 받기 위해서는 더 큰 자극에 노출되어야 하게 되는데, 그건 행복이 아니다.


우리가 행복감을 느끼게 해주는 것들은, 우리가 다시 그 상황에 노출되어도 똑같은 수준의 행복감을 선물한다. 그저 같이 있기만 해도 안정이 되고 좋은 사람과 시간을 보내는 것, 멍하니 바라보기만 해도 좋은 하늘과 바다, 맛있는 음식을 소중한 사람들과 먹는 것. 이런 소소하고 작은 것들은 우리가 아무리 익숙해져도 항상 행복감을 선물해 주더라.


이런 사실을 깨달은 후부터는 작은 것들이 소중하게 여겨지기 시작했다. 내게 소중한 사람과 함께 대화를 나누며 맛있는 음식을 먹은 시간, 걷기에도 너무나도 완벽한 날씨, 보고만 있어도 행복해지는 풍경. 이런 일상에서의 작은 행복들이 어느 순간서부턴가 더 소중하고, 감사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런 작은 일상적인 것들에서 행복감을 느낄 수 있게 되니 내 삶도 그만큼 쉽게 행복해지고, 많은 것들에 감사하게 되더라.


위에서 설명한 말초적인 자극 같은 것들이 아무 쓸모도 없거나 필요 없단 것이 아니다. 건강한 음식을 너무 먹다 보면 한 번씩 MSG가 들어간 음식들이 당기듯이 우리는 누구나 그런 자극적인 것에 대한 욕구와 욕망이 있다. 그리고 한 번씩 그러한 욕구와 욕망을 찾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니다.


다만, 그게 인생의 주된 목표와 지향점이 되는 삶은 행복에서 멀어질 가능성이 더 높아지는 듯하다. 그런 자극은 절대 지속 가능하지 않으니까.


30대를 지나면서 이런 소소한 것들이 더 중요하단 생각을 하게 되면서 인생의 거창한 목표들은 다 접어졌다. 사실 주위에서도 유튜브를 적극적으로 하라고 많이들 하는데, 내가 했던 경험과 생각들을 나누고, 잘못된 정보가 넘쳐나는 세상에서 누군가는 조금 고지식하고 꼬장꼬장하게 자기 얘기를 제대로 해야 하지 않겠냐고 하는데, 그리고 잘할 자신도 있는데 시작을 못하고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유명해지는 게 싫기 때문이었다. 과거에는 그렇지 않았는데, 유명해지고 싶고, 영향력도 커지고 싶고 그랬는데 어느 순간서부턴가 그런 것들이 주는 것이 있으면 그에 대한 반대급부가 있단 것을 알게 되었고, 그런 것들이 주는 자극은 일시적인 것이라는 거을 깨달은 이후로는 그런 것을 오히려 피해가게 되더라.


우리는 생각보다 쉽게 행복해질 수 있다. 이런 말을 하는 나도 지난 며칠을 몸 컨디션이 망가질 정도로 분노하고 혈압이 오른 상태로 지냈지만, 그래도 머리로나마 그 사실을 알게 된 이후에는 그렇게 분노에 찬 시간이 짧아지더라. 그리고 또 그렇게 조금은 나은 인간이 되어가는 모습을 발견하는 것도 사는 것의 묘미이고, 소소한 행복이 된다.


모든 흔한 말들이 그렇듯, 행복은 멀리 있지 않다는 흔한 말은 진리를 담고 있다. 30대의 나의 어둡고 힘들었던 일상을 지나고 보니, 그것 하나는 확실히 알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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