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행복한 '지천명'을 위하여

나의 30대 회상. 17

by Simon de Cyrene

'이립'이 사실이 아니었던 것처럼 '불혹'도 거짓말이다. 40이 되었기 때문에 당당하게 말할 수 있다. 세상 일에 정신을 빼앗겨 판단을 흐리지 않기는 개뿔. 나는 지난 일주일도 어떤 중고차를 사야 할지를 놓고 수시로 생각이 바뀌고 일상이 흔들렸는데... 서른 살이 지나고 나서도 얼마나 자주 마음과 뜻이 흔들렸는데...


그렇기 때문에 50이 되었다고 해서 하늘의 명을 깨닫는 지천명이 될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는다. 아니, 그렇게 되지 않는단 걸 50이 넘은 어른과 형님들을 보면서 너무 확실하게 알고 있다. 이 땅에서 50년보다 훨씬 긴 세월을 이 땅에서 보내신 분들도 돌아가실 때 하늘의 뜻을 모르겠다고 하시는데, 그렇게 도를 닦고 수련을 하신 스님들도 모르신다는데, 그렇게 모든 것이 헛되고 헛되고 헛되다는 말을 하는 종교인들이 많은데 더군다나 평균수명이 70이 넘어가는 세상에서 겨우 50살을 먹고 무슨 하늘의 뜻을 알겠나?


하지만 그런 생각은 한다. 오십이 된 나는, 최소한 지금보다는 조금 욕심이 덜하고, 조금 더 쉽게 행복해질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은 한다. 물론, 그 길로 가는 길에는 고난과 역경도 많고 힘들어서 또다시 죽고 싶단 생각을 할 수도 있지만, 그래도 지금보다는 조금 더 행복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니, 그런 길을 가기 때문에 더 행복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그렇게 생각할 수 있는 것은 30대의 내 삶이 나를 그렇게 만들어줬기 때문이다.


사회적으로나 객관적으로 봤을 때 20대의 나는 지금의 나보다 훨씬 많은 것을 가졌었다. 회사에서 퇴직할 때 어쨌든 29살에 통장 잔고가 1억을 찍었었으니까. 남들이 부러워하는 직장에도 다녔고, 다니는 회사 이름만 들으면 소개팅이 끊이지 않을 정도였으니까. 그리고 그때는 내 앞에 무궁무진한 가능성이 있는 것처럼 보였다. 실제로도 그랬다. 나와 같은 길을 가던 친구들은 지금 그 가능성을 펼치면서 인정을 받고 있기도 하니까.


그런데 지금의 내 통장잔고는 대학원 학비와 대학원에 다닐 때 생활비로 다 탕진했고, 지금의 내 잔고는 당시의 절반도 훨씬 안 되는 수준이다. 그리고 이젠 나이가 들은 것에 비해 가진 것이 너무 없다 보니, 실질적이고 현실적인 것을 갖고 있지 않다 보니 소개팅은커녕 사람을 만날 기회도 거의 없는 게 나의 현실이다. 그리고 지금의 나는 수많은 터지지 않은 카드들을 손에 쥐고 있지만, 그 카드를 손에 쥐었던 사람들 중에 풍요로운 삶을 산 사람들은 극소수에 불과하고, 이제는 그 카드를 다 놀리기에는 체력도 예전 같지 않은 것이 나의 슬픈 현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대 후반과 지금의 행복지수를 굳이 비교한다면, 내가 지금 훨씬 더 행복하다고는 감히 말하지 못하겠지만 최소한 그때보다 불행하지는 않다고는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지금이라고 힘든 게 전혀 없겠나... 위에서 내 상황을 설명하지 않았나. 하지만 또래 중에 꽤나 잘 나가는 편이었던 20대 후반의 내 삶도 그렇게 행복하지만도 않았다. 그때는 그때 나름대로의 고통과 아픔들이 있었다.


그렇다면 나이도 더 먹고 절대적으로 상태도 더 안 좋은 지금의 내 삶이 20대 후반의 삶보다 최소한 더 불행하지는 않고, 사실 많은 경우 더 행복할 수 있는 것은 왜일까? 행복과 삶에 대한 내 시선이 바뀌었고,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과거보다 더 잘 알고 그걸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나는 여전히 돈을 많이, 잘 벌고 싶다. 이건 20대 후반의 나도 마찬가지였다. 그때는 거기에 권력과 명예도 갖고 싶었고, 그럴 수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그 지점에서 조금은 다르다. 그리고 돈은 내게 여전히 중요하지만 그것보다 우선순위에서 더 위에 있는 것들이 생겼다. 이젠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알기 때문에 돈 때문에 희생할 수 없는 것들이 생겼고, 내가 말한 [카드]는 돈과 함께 내가 더 행복할 수 있는 요소들을 담고 있는 것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당장은 힘들더라도 그 카드들을 보며 내가 가는 길을 계속 갈 수 있는 듯하다.


그걸 어떻게 믿냐고? 그걸 설명하려면 조금 재수가 없어져야 하는데... 사실 4대 보험이랑 4-5천 이상의 연봉, 지금도 받으려면 받을 수 있다. 2년 전에 지인의 회사에 들어갈 때 제시 받은 연봉이 그 수준이었고, 얼마 전에도 원한다면 4대 보험에 가입시켜주겠다는 지인이 있었으니까. 그런 기회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이제는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게 있기 때문에 지금은 그 대가를 감당하면서 하루, 하루를 살고 있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알고, 장기적으로 내게 어떤 게 더 중요한지를 알게 됐기 때문에.


그런데 나는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것들을 내가 부서지고, 깨지고, 월세가 43만인데 통장잔고가 67만 원인 수준까지 내려가고 나서야, 그렇게 코너에 몰리고 나서야 알게 됐다. 당시에는 정말 죽고 싶었지만, 지금 돌아보면 그런 시간들이 없었으면 내 삶이 어땠을까 싶어 아찔할 정도다. 그런 길을 걸어왔기에, 50에는 지금보다 조금이라도 더 행복할 것이라는 확신이 있다.


인생에 대가 없는 선물이나 보물은 없다. 지금 힘들어 보이는 상황들도 시간이 지나고 나면 전화위복이 되는 경우도 굉장히 많다. 분명한 것은 무엇이 어떻게 되들었는지 간에 지금 주어진 것에 최선을 다해야 뭐가 돼도 된단 것이다. 잘 버티다 보면, 그렇게 버텨내는 사람들이 결국에는 웃더라. 다른 글에서도 말했듯이, 그렇게 최선을 다해서 버티는 사람들이 별로 없기 때문에.


이 시리즈의 글들이, 오늘도 힘겹게 버티는 누군가에게는 버틸 수 있는 힘이 되고, 버틸 이유가 되었으면 좋겠다. 내가 조금 더 나은 상황에서 이런 얘기를 한다면 조금 더 설득력이 있을 수도 있지만, 또 한 편으로는 내가 이런 상황에서도 현실을 이렇게 받아들일 수 있단 사실이 누군가에게는 힘이 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내가 이럴 수 있다면, 당신도 그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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