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30대 회상. 11
한국에서는 유독 '이타주의'가 강조된다. 너만 생각하면 안 된다, 다른 사람도 위해줘야지, 네가 그러면 다른 사람은 어떻겠니 등등등. 그렇게 다른 사람을 생각하라는 말이 아니라도 최소한 다른 사람의 시선을 신경 쓰라는 말을 하는 사람도, 또 실제로 다른 사람의 평가나 판단을 의식하는 사람들도 많다.
물론, 그에 대한 반발이나 반작용도 최근에는 적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본인부터 챙기겠다는, 본인에게만 일방적인 희생을 강요하지 말라고 하는 사람들이 점점 더 많이 생기고 있다. 심지어 평생 가족을 위해 본인을 희생한 부모에게 '난 당신처럼 살고 싶지 않기 때문에 결혼하지 않겠다'라고 면전에 선전포고를 하는 사람들도 있다.
전자는 '이타주의'로 포장되지만 사실은 '집단주의'이고 후자는 '개인주의'로 포장되지만 사실은 '이기주의'. 이 개념들은 같은 듯 다르고, 다른 듯 같다. '이타주의'는 '행위의 목적을 타인을 위한 선에 두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그러한 이타주의는 '개인과 개인' 간의 관계에서의 이타성을 전제하는데 우리나라에서 이타주의로 포장되는 집단주의에선 '개인'이 없다. 집단이 있고, 집단의 정체성과 이익이 있을 뿐이고 거기에 개인은 다 맞추도록 강요하는 것은 절대로 이타주의일 수 없다.
이런 상황에 대한 반발로 '개인'을 강조하는 사람들은 '개인주의'라면서 자신을 최우선에 놓고 사는 모습을 보이고는 하는데 그건 객관적인 의미의 '개인'이 아닌 '나'를 우선시하는 것으로 '이기주의'다. '개인주의'자는 개인으로서의 자신과 개인으로서의 다른 사람도 존중할 줄 안다는 면에서 이기주의자와 다른데 우리나라 사람들 중에서 개인을 중시하는 사람들은 은연중에 자신은 옳고 자신과 다른 사람들은 다 틀렸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 사람들의 가장 큰 착각은, '나는 나를 알아'라는 생각이다. 어찌 보면 맞는 것처럼 들린다. 나는 항상 나와 함께니까 나보다 나를 잘 아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싶을 수 있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 우리는 정말 우리는 아나?
집단주의에 대한 반발로 개인을 중시하는 사람들도 사실 우리나라 특유의 집단주의적인 문화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경우는 별로 없다. 어린 시절을 개인주의를 중요시하는 문화권에서 학교를 다닌 사람들은 조금 다르지만, 한국에서 태어나 한국에서만 산 사람들, 해외에는 사춘기가 지나고 자아가 어느 정도 형성된 다음에야 나가 본 사람들, 해외에 나가보긴 했지만 현지에서 살고 교육을 받아본 적은 없는 사람들은 필연적으로 우리나라 특유의 집단주의의 영향에서 완전히 자유롭지는 못한 것이 현실이다.
그렇다 보니 우리나라에서 '개인'을 중시하는 사람도 정작 '나'를 알아가는데 신경은 쓰지 않고 '나'와 '타인'의 대조 또는 비교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 사람들은 '나'를 있는 그대로, 자신의 내면을 성찰하고 들여보기보다는 다른 사람과의 관계 또는 집단 안에서만 규정지으려 하고, 본인을 본인으로 봐주지 않는 '집단'에 대한 불만을 표출하는데 시간과 에너지를 더 많이 사용하곤 한다. 그러다 보니 그런 사람들은 집단주의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들만큼이나 자신과의 '다름'을 존중하고 받아들이지 못하게 되는 경우도 많다.
우리나라 사람들 중 자신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이 별로 없는 것은 이 때문이다. 사회적으로는 모든 사람들이 똑같은 목표를 향해 달려가야 하고, 그곳에 행복이 있는 것처럼 강요받고, 자신을 자신의 내면이 아닌 다른 사람들에 대한 반발과 관계를 통해서 찾으려다 보니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는 파악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나'를 알기 위해서, 정말 '개인주의자'가 되기 위해선 끊임없이 자신도 모르게 자신이 하는 결정, 생각, 마음을 돌아보고 그에 대해 '왜?'라는 질문을 해야 한다. 그렇게 본인을 분석하고 돌아보다 보면 패턴이 보이고, 자신의 마음이 향하는 방향이 보이면서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알아가게 되는 것이다. 사실 이런 과정은 초중고등학교를 거치면서 교육과정에서 스스로를 발견할 수 있게 해줘야 하는데, 우리나라 교육제도는 그런 기능을 못하기 때문에 우리는 성인이 되어서라도 그런 고민을 스스로 해야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알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본인 내면만 들여다본다고 해서 자신을 알게 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생각보다 객관적이지 않고 세상을 자신의 필터로만 보기 때문에 자신의 내면만 주구장창 들여본다고 해서 자신의 객관적인 모습을 알지 못한다. 예를 들어 나는 글을 써야 숨을 쉬는 것 같고, 글 쓰는 게 그렇게 어렵지는 않은 사람이다 보니 모든 사람들이 다 그렇다고 생각했다. 글을 못 쓰겠다고 하는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리고 모든 사람들이 나처럼 잡다한 것에 대해 고민하고 생각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렇지 않더라.
이건 작은 예에 불과하다. 우리는 보통 자신이 좋아하는 걸 남도 좋아하고, 자신이 싫어하는 것도 남이 싫어한다고 생각하는데, 또 본인은 부드럽게 말했다고 생각했거나 자신의 생각을 명확하게 표현했다고 생각했는데 상대는 다를 수 있다. 그리고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보니 다른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드러나는 모습들, 그리고 나와 다른 사람들만 느끼고 잡아내게 되는 모습들이 우리 안에 있기 마련이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 자신을 알기 위해서는 내가 하는 결정, 생각, 내 안에 드는 마음들도 돌아보지만 나에 대해 다른 사람들이 하는 말들, 특히 나를 잘 알고 아끼는 사람들이 해주는 솔직한 이야기들은 진지하게 듣고 자신을 돌아볼 줄 알아야 한다. 내가 나 자신을 잘 모른다는 것을 전제하고. 그런 과정을 겪다 보면, 내가 하는 결정과 나의 마음에 대한 데이터가 축적되고, 나에 대해 다른 사람들이 하는 얘기들도 어느 정도 축적되면 우리는 우리 자신을 조금은 더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게 된다.
하지만 대부분 사람들은 이렇게 스스로를 돌아보고,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알아가는 과정을 갖지 못하거나 갖지 않는다. 그 첫 번째 이유는 상당한 시간과 에너지가 소요되는데 대부분 사람들은 생계를 해결하기 위해 일하거나 회사를 다니는 과정에서 에너지를 엄청나게 사용하기 때문에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질 수가 없기 때문이다. 멘토링이나 코칭을 단기적으로, 단편적으로 받는 것도 도움이 되긴 하지만 사실 멘토링이나 코칭은 방향을 잡아주는 역할을 할 뿐, 결국은 본인이 고민하고 생각하는 시간을 가져야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알 수 있다.
두 번째로 '나'를 안다 한들 어떻고, 모른다 한들 어떻냐고, 돈 많이 벌고 편하게 살 수 있으면 좋은 거 아니냐고 생각하거나 반박하는 사람들도 있을 수 있다. 그런데 30대를 지나면서, 그리고 내 지인들을 보면서 깨달은 것이 하나 있다면 사람들마다 본인에게 '필요한' 돈의 총량이 다르단 것이다. 어떤 사람은 수십 억 정도는 벌어서 한남동, 연희동 같은 곳에서 살 수 있어야 행복하다고 느끼지만 어떤 사람은 덜 벌어도 자유가 더 보장된 삶이 더 행복하다고 느끼더라. 아니, 그렇게 돈을 많이 벌어서 금전적인 여유가 있어도, 죽을 때까지 쓸 돈이 확보된 사람도 모두 행복한 것은 아니더라. 우리가 우리 자신을 알아야 하는 것은, 그걸 알아야 우리가 조금이라도 더 행복하거나 최소한 덜 불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30대에 내가 터널을 지나는, 앞이 깜깜했던 시간은 내가 스스로를 돌아보고 나 자신을 발견하는 시간이었다. 뭔가가 계속 잘되면 사실 사람들은 그런 생각과 고민을 하지 않게 되는데, 계속 실패만 반복하다 보니 그런 고민들을 할 수밖에 없게 되더라. 그리고 나의 현재가 불안정하고 불행하다 보니 어떻게 하면 조금이라도 더 행복하고 안정적이 될지, 진정한 안정이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과 질문을 하게 되더라.
내게 그런 시간이 필요했던 건 아마도 내가 전형적인 한국인 부모 밑에서 자랐지만 어린 시절은 해외에서, 미국식 교육 시스템 하에서 시간을 보낸 사람이기 때문일 것이다. 만약 내가 그저 전형적인 한국인 부모 밑에서만 자랐으면 나는 그저 집단주의적인 사람이 되었을 수도 있고, 또 내가 완전히 해외에서만 살았다면 외국에서 오래 살았던 이들이 많이 그렇듯 한국의 집단주의에 반감을 갖고 한국 사회 자체를 혐오하거나 폄하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애매한 중간자로 살아온 나는 그 어느 것에서도 완전히 자유롭지는 못했고, 본인을 모르고도 삶이 잘 살아지는 사람들과 달리 나 자신을 알아가는 시간이 필요했던 것 같다.
나는 나 자신을 꽤나 잘 아는 편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이런 생각과 고민을 30대에 해도 되는 건지에 대한 고민도 많았다. 하지만 그 길을 걸어와 보고, 40이 되어 지인들의 삶의 모습과 자신의 삶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얘기를 들어보니 30대도 그런 고민을 하고 나 자신을 알아가기에 절대 늦은 시기가 아니었고, 그런 고민을 할 수밖에 없었던, 당시에는 원망스럽고 고통스럽기만 했던 시간들이 감사하게 느껴졌다. 그 과정을 겪지 않았으면 나의 40대 이후가 최소한 행복하진 않았을 것이란 확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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