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과 가족에의 이유. 13편
서른 살에는 결혼하고 싶었다. 특별한 이유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어렸을 때부터 어머니께서 서른에는 결혼이라는 얘기를 스치듯, 습관처럼 말씀하셨고 그게 뇌리에 박혀있었다. 20대 때까지만 해도 인생의 계획을 촘촘하게 세우고 다음 목표를 위해 몰입하는 편이었고 내게 결혼은 그 타임라인 안에 있는 또 하나의 목표였다. 그러다 보니 결혼한 형, 누나들의 얘기를 들으며 20대 후반에 결혼식은 이렇게 하고 결혼한 후에는 처가와 우리 집과의 관계를 어떻게 형성하고 살아갈지에 대한 내용까지 다 생각해 놨었다.
하지만 한국 나이로 서른을 넘어, 만으로 서른도 넘었고 후배들이 결혼하기 시작했다. 심지어 7살 어린 동생도 나보다 먼저 결혼을 했고, 친구는 물론이고 동생들도 아이를 낳았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고 흘러 나는 어느새 결혼하고 싶었던 나이에서도 강산이 한 번 변하는 나이가 되었다.
시리즈 초반에서 밝혔듯이 난 결혼을 '못'한 사람이다. 항상 결혼하고 싶었고, 어렸을 때는 결혼을 생각하며 너무 신중했다 보니 연애를 잘 못했고 그 후에 연애를 할 때도 항상 결혼까지 생각했다. 그러다 보니 내가 상대에게서 품을 수 없을 것 같은 모습을 보면 단호하게 이별을 통보했다. 철이 없었고, 이기적이었다. 결혼을 하고 싶다고 말하고 다녔지만 결혼해서 가정을 꾸리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도 제대로 몰랐고, 가정은 서로 양보하며 맞춰나가면서 배우자와 함께 성장하는 것이란 개념도 없었다.
내가 그것밖에 안된단 것을 깨달은 후 얼마간 그런 내가 싫어졌던 시절이 있었다. 그런데 그런 상태에서 주위를 보니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의 사람들은 상당수가 그런 모습을 하고 있더라. 인생의 과제인 것처럼, 상대와 대화하고 맞춰갈 줄 모르면서 그저 결혼하는 게 이상하지 않은 나이에 만나고 있는 사람이 있어서 그 사람이랑 결혼하는 사람들은 생각보다 많았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은 결혼한 후 1-2년 후에는 내게 똑같은 말을 하더라. 결혼하지 말라고, 자유롭게 살라고. 본인은 결혼이 이런 건지 몰랐다고.
사람들은 결혼을 '못'한 게 날 못나게 보이도록 만든다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내가 당당하게 나는 결혼을 안 한 게 아니라 못한 것이라고 하는 건, 개인적으로 결혼을 못한 게 다행이란 생각도 있기 때문이다. 20대 후반에서 30대 초중반까지의 내 모습을 갖고 결혼을 했다면 난 지금 어떻게 살고 있었을까? 아마도 다시 싱글이 되어있었을 것이다. 이는 지금 돌아보면 당시에 나는 나 자신을 너무 몰랐고, 상대와 대화를 통해 맞춰나가는 법도 몰랐기 때문이다.
그런 상태에서는 성인군자가 아니고서는 나와 함께 살 수가 없었을 것이다. 성인군자를 만나면 되지 않았겠냐고? 난 성인군자는 만나지 못했을 것이다.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의 나는 사람을 보는 눈이 없었고, 어떤 사람이 나와 맞을지도 몰랐다. 당시엔 내가 모른단 사실을 몰랐지만, 지금 돌아보면 당시의 난 무지하고, 무지하고도 무지했다.
내가 사람을 보는 눈이 없다는 것을 자신 있게(?) 얘기하는 것은, 그 시기에 만났던 사람에게 이별을 통보한 것을 한참이 지나고 나서 꽤나 자주 후회했기 때문이다. 당시에 난 그 사람과 내가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고, 상대가 얼굴 보고 다시 한번 얘기하자는 것도 매몰차게 거절했는데, 시간이 지나고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어느 정도 알게 되고 나니 그 사람과 나는 닮아야 할 부분에서 닮았고 달라야 할 면에서 달랐더라. 헤어진 지 10년도 더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난 아직까지도 그 사람만큼 나를 순수하게 사랑해 준 사람을 만난 기억이 없는데, 당시의 난 그게 얼마나 고마운 것인지도 몰랐다. 이 정도면 사람 보는 눈이 없었단 걸 인정받을 수 있지 않을까?
그렇다고 지금까지도 나의 실수가 아쉽단 건 아니다. 당시의 나는 부족했고, 그 사람과 더 만나거나 결혼을 했어도 그 관계는 아마도 나의 이기적인 성향 때문에 좋게 끝나지 못했거나 서로에게 상처를 준 상태로 가정이 억지로 유지되었을 것이다. 당시의 난 가정을 꾸릴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고, 그래서 난 결혼을 못한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내게 30대는 진흙탕이자,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두운 터널이었다. 당시에는 그 시기가 죽고 싶을 정도로 힘들었고, 실제로 극단적인 생각도 자주라고 하기엔 가끔, 가끔이라고 하기엔 자주 했었는데, 지금 돌아보면 그 시기만큼 내게 의미 있고 소중한 시간들은 없었다. 오만방자했던 나는 그런 시기를 거치면서 많이 다듬어지고 조금은 둥글둥글해졌고, 그 과정에서 결혼을 안 한 것이 아니라 못하게 되면서 연애, 결혼과 가정에 대한 생각을 아마도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깊게 했었던 것 같다. 박사과정에 있으면서 안 그래도 사고하는 법을 훈련받고 있었다 보니 그 사고체계가 연애, 결혼, 가정에도 그대로 적용되었고, 사실 브런치에서 지금까지 내가 30대 중반부터 지금까지 4년 반 넘게 쓰고 있는 연애, 결혼과 사랑에 대한 글들은 그런 과정에서 다듬어진 생각들의 결과물이다.
이제는 좋은 배우자가, 좋은 아빠가 될 수 있겠단 생각을 종종 한다. 완벽한 배우자, 완벽한 아빠가 될 자신이 있단 게 아니다. 나도 남편이, 아빠가 처음일 때는 실수도, 잘못도 할 것이다. 하지만 최소한 그 실수와 잘못을 인정하고 다시는 반복하지 않을 자신이 있고, 이제는 나와 다른 생각도 듣는 귀가 생겼기에 맞춰갈 수 있겠단 자신이 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렇게 생각하기 시작할 때부터 이별 통보를 받는 입장이 되더라. 어렸을 때는 워낙 단호한 성격 때문에 내가 항상 이별을 통보하는 입장이었는데, 나이가 들어서 연애를 하다 보니 상대도 아니면 빨리 정리해야 한단 생각에 관계를 먼저 끝내더라. 내가 조금 더 노력해 보고 싶은 상태가 되었더니 이젠 나이 때문에 서로 단호해지는 아이러니라니... 30대 중반까지 냉혈한 같았던 나의 이별통보들이 떠오르며 미안하고, 또 미안해지기를 반복했다.
나는 더 좋은 사람이 되었는데, 더 좋은 배우자와 아빠가 될 준비가 되었는데 나이가 드니 사람을 만날 기회가 줄어들었다. 나만 그런 게 아닐 것이다. 결혼에 대한 생각이 있는 사람들은 상당기간을 싱글로 지내면 '나는 왜 이렇게 사람을 못 만나지? 결혼을 못하지?'란 생각을 하게 되고, 그런 과정에서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반성하면서 더 둥글둥글해지고 어렸을 때보다는 좋은 사람이 되어간다. 그런데 그렇게 나이가 들어가면 남녀를 불문하고 사람을 만날 기회가 줄어들고, 아이는 갖기가 힘들어진다.
사람들은 이런 식으로 아이를 갖는 것과 나이를 얘기하면 여성의 가임기부터 얘기하는 경우가 많은데 개인적으로 그건 잘못되었다고 생각한다. 물론, 여성이 나이가 들수록 임신을 하기가 힘들어지고 위험해지는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그건 남자들도 마찬가지다. 남자들도 나이가 들수록 정자의 활동성과 숫자가 영향을 받는다. 그리고 아이를 갖는다고 생각하면 아이를 낳은 후까지 생각해야 하는데, 나이가 있는 남자가 어린 여자를 만나서 아이를 낳았다고 해도 '나이 든 아빠'가 갖는 한계는 분명하다. 아이를 봐주는 데는 엄청난 에너지가 드는데 나이가 들어 아이를 가진 남자들은 상당수가 그 에너지를 감당하지 못해서 아이에게 해주고 싶은 것을 못해주는 경우가 많다. 그렇기 때문에 사실 아이를 가질 생각이 있다면 남녀 모두 최대한 빨리 결혼하는 게 낫다.
문제는 어렸을 때 결혼을 하는 사람들은 나와 마찬가지로 20대에서 30대 초반까지는 대부분이 결혼과 가정에 대한 개념이 없다는 데 있다. 그리고 상당수 사람들은 30대 초반까지 자아가 굉장히 강한 데다 에너지도 넘쳐나다 보니 빨리 결혼한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부부싸움도 과격하게, 자주 하게 된다. 나이가 든 사람들은 피곤하고 힘들어서라도 그냥 넘어갈 것들이 그들에겐 부부싸움의 대상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그렇다 보니 일찍 결혼한 사람들 중 적지 않은 이들은 서로에게 상처를 주면서 결혼생활을 하고, 그러면서 주위에 싱글들에게는 결혼을 하지 말라고 한다. 그런 상처들이 회복되기 위해서는 두 사람 간의 대화가 많아야 하는데 그것도 쉽게 이뤄지지 않는 경우가 많고, 상처는 상대에게 또 다른 상처를 내면서 부부관계가 소원해지기도 한다. 그런 부모를 둔 아이는, 행복할까?
모든 사람들이 다 그렇단 것은 아니다. 젊었을 때 결혼해서 행복하게 잘 사는 사람들도 있고, 나이가 들어서 결혼해서도 엉망진창으로 싸우다 이혼하는 사람들도 있다. 반대로 결혼을 빨리 했어도 아이가 잘 안 생기는 부부도 있고, 나이가 들어서 결혼을 해도 아이가 쉽게 생기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평균적으로 봤을 때는 나이가 들어서 결혼한 커플들은 아이를 갖는 데 어려움을 겪지만 조금 더 무던한 결혼생활을 하고, 어려서 결혼한 커플들은 아이는 계획하지도 않았는데 생길 정도로 어렵지 않게 생기지만 아무래도 많이 부딪히게 되더라.
물론, 본인이 건강한 자아를 갖고 있고 잘 맞춰갈 수 있는 사람을 잘 선택했다면 어린 나이에 결혼을 하는 게 가장 좋다. 그런데 또 그것도 결혼만 놓고 보면 그런 건 사실인데, 내 경우를 보면 나는 결혼을 못한 덕분에 30대에 오롯이 내 안에 집중하고 내가 해보고 싶은 건 다 해봤더라. 그리고 또 30대를 그렇게 보냈다 보니 더 이상 나를 위해서 특별히 하고 싶은 게 없고, 이제는 결혼하면 오롯이 가정에 집중할 수 있겠단 생각이 든다.
이처럼 '결혼하기 좋은 나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인생은 필연적으로 한 가지를 얻으면 한 가지를 잃게 되어있지 않나? 결혼을 일찍 하면 일찍 하는 대로, 늦게 하면 늦게 하는 대로 누리는 것과 잃는 것이 있다. 그렇다면 중요한 건 지금 내 상황을 통해서 나의 행복을 극대화시키는 방법을 찾는 게 아닐까?
결혼을 안 할 수도 있는 것 아니냐고? 그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내가 써 온 이 시리즈의 글들로 답변을 대신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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