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가질 이유에 대하여

결혼과 가족에의 이유. 14편

by Simon de Cyrene

그 여행지를 다녀온 후에 '험난하긴 했지만 그 길과 풍경은 너무 아름다웠어. 사진 안에는 담을 수 없을 정도로'라고 하는 사람들이

결혼해서 아이를 가져야 할까? 결혼하지 않은 사람들은 물론이고 결혼한 사람들도 상당수 아이를 반드시 가져야만 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하고, 갖는다고 해도 한 명 이상은 자신이 없다고 말한다. 경제적인 이유, 그리고 아이가 생기면 포기해야 하는 것들 때문이다. 아이를 낳으면 가장 좋은 것을 해주고 싶은데 우리나라의 육아 현실이 만만치 않고, 또 아이는 마음대로 되지 않는 반면 한 생명을 책임져야 하는 부담감이 내 것을 포기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데 그게 싫단 것이다.


이 시리즈를 쓰는 내내 '그렇게 결혼할 필요 없다는 얘기가 주류를 이루는 듯한 세상에서 이러고 있는 게 맞는 걸까?'라는 생각을 해왔다. 그리고 이 글이 그 정점을 찍을 듯하다. 이는 난 결혼을 했다면 아이를 갖는 게 낫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읽는 사람이 많지 않아서) 이 시리즈가 파급력이 많지 않을 뿐이지 이 시리즈에서 내가 쓴 글들은 상당히 논쟁적인 면이 많은 듯한데 그중에서도 이 글이 가장 논쟁적이지 않을까 싶다. 지금까지 이 시리즈에서 그랬듯이, 이 글에도 역시 냉혈한 같이 이성적이고 논리적이기만 한 측면도 포함시킬 예정임을 미리 양해 부탁드려야 할 듯하다.


아이를 갖게 되면 잃는 것들은 분명하다. 아이를 갖지 않겠다고 하는 부부들도 많은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결혼도 못했고, 아이도 없는 입장에서 당장 아이를 낳아서 기르는 것을 생각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비용은 '유모차'다. 워낙 고가의 유모차에 대한 얘기가 인터넷에 많지 않은가? 그런데 아이가 성장하는 과정을 생각해 보면 그 비용은 훨씬 더 크고, 많아진다. 모유수유를 할 수도 있지만 여러 상황으로 인해 못할 수도 있기 때문에 분유값도 들어갈 수 있고, 그 후에도 이유식에 빨리 성장하는 아이에 맞춰 옷을 계속 사야 하고, 유치원 비용, 조금 더 크면 학원 비용까지. 집값도 올라가는데 아이에게 드는 천문학적인 비용을 과연 감당할 수 있을지가 고민되는 건 당연하고 자연스러울 것이다.


여기에 더해서 아이를 가지면 인생에 제약이 엄청나게 생긴다. 아이가 크기 전에는 밤에 깨서 울면 부모는 잠도 제대로 못 자서 좀비처럼 회사에 나가야 하고, 금전적 부담을 감당하기 위해 맞벌이를 하면 아이를 못 봐주는 게 마음에 걸릴 것이다. 거기다 면역력이 약하고, 환경과 계절의 변화에 따라 성인보다 훨씬 쉽게 아플 수밖에 없다 보니 병원도 수시로 들락거려야 한다. 그런데 또 나이가 들면 말을 듣지 않기 시작하니 아이는 갖지 않는 게 상책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말도 안 되거나 이상하진 않다.


그렇기 때문에 아이를 갖지 않겠다고 결정한 것이 잘못되었거나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분명히 일리가 있고 '어느 정도는'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결정이다. 그런데 한 번 생각해보자. 아이가 없는 결혼생활이 장기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칠까? 신혼생활은 초기에 모든 게 새롭고, 즐겁고, 알콩달콩 하지만 서로가 긴장감이 풀리고, 결혼생활에 익숙해지면 갈등이 생기기 시작한다. 그 갈등이 엄청나게 크고 대단한 것이 아닐 수도 있다. 연애할 때와 신혼 초기에는 함께하면 즐겁고 재미있는 것들이 많았겠지만 두 사람이 함께 하면서 흥미를 느끼고 엔돌핀이 도는 것들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인간은 본인이 관심이 가는 새로운 것에서 즐거움을 느끼는데 그 새로움은 시간이 지나면서 희석되기 마련이니까.


권태기는 그럴 때 찾아온다. 취미쟁이들은 함께 취미를 하면서 권태기가 찾아오는 시기를 미룰 수 있겠지만, 권태기는 언젠간 찾아올 수밖에 없다. 오랜 연인들이 서로에게 애정표현을 안 하고, 서로에게 소원해지듯이 부부도 그렇게 된단 것이다. 그런 시기에 부부 사이에 남는 유일한 이해관계는 경제적인 것밖에 없어지는데, 경제적인 것은 흥미롭고 새롭기보단 압박을 받는 측면도 크다 보니 그런 상태에서 두 사람은 다양한 형태의 갈등을 경험할 수밖에 없다. 그러다 일터나 사적인 모임에서 매력이 느껴지는 사람이 있으면 배우자에게 최선을 다하던 사람도 외도를 하게 될 수 있다.


아이의 존재는 그런 관계에 새로움을 불어넣어 준다. 아이가 태어나면 신경을 쓸게 얼마나 많은가? 정상적인 책임감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면 아이가 태어나고 나서 최소한 4-5년 정도는 일하고, 아이 보고, 집안일하는데 집중할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아이는 부부에게 경제적인 부분 외에 또 하나의 '공통의 이해관계'가 된다. 아이에게 좋은 것을 먹이고, 입혀주고, 행복하게 해주는 것 말이다. 여기에 더해서 아이는 두 사람이 태어나서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새로움을 계속 불어넣어 준다. 임신했을 때부터. 아니, 임신한 것 자체가 남편이 아내를 챙기고 신경 쓸 수밖에 없게 만들지 않나? 아이를 갖는 건 그래서 사실 부모를 더 가깝게 만드는 효과가 있다.


이에 대한 반박들이 있을 수 있다. 어머니들은 임신을 하는 순간부터 24시간 동안 아이와 함께 하다 보니 모성애가 대부분 자연스럽게 형성되지만 아버지들은 아내와 있을 때만 의식하다 보니 아이에 대해서 그렇게까지 생각하지 않는 경우가 있고, 아내가 임신한 것과 아이 때문에 잠을 설치는 것으로 인해 아내와 집을 멀리하게 되는 남편들이 있다는 식의 반박들 말이다. 틀린 말은 아니다. 여기에 더해서 모든 여성들이 다 무조건 모성애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은 아이가 아니었어도 언젠가는 자기중심적인 사고방식과 행동으로 관계에 문제를 일으켰을 사람들이다. 그런 부류의 사람들은 뭐가 어떻게 되어도 결혼생활에 문제를 야기했을 것이기 때문에 그런 이기적인 사람들의 존재를 아이를 낳지 않을 이유로 대는 것은 조금은 덜 합리적이다. 그런 사람들에 더해서 예상하지 못했던, 원하지 않은 임신을 한 경우에 그런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도 있는데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아이를 갖게 되면 당연히 당혹스럽고 부정적으로 반응할 수밖에 없다. 이 글에서는 아이를 가질지 여부에 대한 결정에 대한 내용을 다루고 있고, 난 아이가 모든 부부관계의 문제를 해결해 줄 만병통치약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내가 이렇게 밖에 반박하지 못하는 것은 내가 아이가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내 주위 사람들을 예시로 들어서 아이를 갖는 것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에 대해 반박해보겠다. 기성세대들은 '노총각'이라고 부를 나이가 되어보니 내 주위 대부분 사람들은 결혼을 했고 그들이 아이를 낳고, 아이에 대해 어떤 시선을 갖게 되는 지를 관찰하게 된 것만으로도 충분히 아이를 가질 이유를 설명할 수 있을 듯하다.


내 주위에 있는 남자들 중에 결혼하기 전부터 아이를 반드시 갖고 싶어 했던 사람은 없었다. 여자들 중에는 결혼은 하지 않아도 아이는 갖고 싶단 사람들이 있지만, 남자들은 아이를 갖고 싶지 않단 생각을 하거나 아이에 대해 아무 생각도 없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장담할 수 없어서 '대부분'이라고 하는 것이지 느낌적으로는 모든 남자들이 그랬다. 나와 내 지인들 중 내가 가장 아이를 갖고 싶어 하는 남자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이젠 거의 나만 아이를 갖지 않고 있지만.


그렇다 보니 결혼한 후에도 아이를 가질지 여부를 놓고 얘기를 하면 부정적인 의견들이 대부분이었다. 아이를 가지면 선호하는 성별에 대해서도 다들 생각 없는 사람처럼 모르겠다고 하거나, 내가 남자다 보니 남자는 못 믿겠어서 딸이 있으면 너무 불안할 것 같고, 아들이 있으면 강하게 키우고 잔정은 주지 않겠다고 하더라. 열이면 열이 이런 식의 반응을 보였다.


그런데 그랬던 사람들이 자신의 아이가 태어난 후에는 180도 바뀌었다. 카톡 프사를 몇 년간 똑같은 사진을 쓰던 형은 한 달에도 몇 번씩 아이의 사진으로 프사가 바뀌었고, 아이에게 관심 없는 것을 넘어서 다른 사람의 일에 딱히 관심이 없던 형은 아이를 가질 생각이 없으면 굳이 결혼을 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고 할 정도로 딸바보가 되었다. 아들이 태어나면 강한 남자로 키우겠다던 형은 아들 바보가 되더라. 가슴 아픈 얘기일 수도 있지만 그들은 뉘앙스와 표현이 달랐을 뿐, 그 본질에 있어서는 모두 똑같은 얘기를 하더라. 아내를 사랑해서 결혼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아내와 하는 결혼생활은 좋은 것도 많지만 연애하는 것보다 힘든 것도 많아서 결혼을 꼭 해야 한다고 생각하진 않는데, 아이는 갖지 않았으면 후회했을 것 같다고.


아이를 가진 적 없는 나는 그 마음이 어떤 마음이고, 어떤 면에서 그런 생각이 드는 지를 알 수 없다. 이는 아이를 갖는 것에 부정적인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아이를 가져보지 않은 사람들이 아이를 갖는 것에 대해서 무조건 부정적인 것은 마치 사람들이 '험난하긴 했지만 그 길과 풍경은 너무 아름다웠어. 사진 안에는 담을 수 없을 정도로'라고 말하는 여행지를 사진만 보고 '너무 험난한 것 같아서 여기로 여행은 가지 않을 거야'라고 다짐하는 것과 같다.


물론, 아이를 가진 사람들은 육아가 얼마나 힘든지에 대해 불평, 불만을 많이 말한다. 그런데 그렇게 불평을 표현하는 사람에게 '그래서 아이를 가진 걸 후회해?'라고 물어보면, 10명 중 8-9명은 그렇지 않다고, 힘들긴 하지만 아이가 주는 선물이 너무 크다고 답하더라. 그리고 나머지 1-2명이 후회하는 건, 아이를 갖지 않은 삶도 완벽하지 않고 그 나름대로의 힘듬이 있단 것을 모르기 때문이다. 나도 아이를 가져본 적이 없기 때문에 아이의 어떤 면이 그런 행복을 주는지는 나도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결혼하지 않은 형제와 부모가 모였을 때의 적막감과 SNS에서 지인들의 아이를 볼 때 나도 모르게 미소 짓게 되는 것을 보면 아이들이 주는 선물이 어떤 것인지를 아주 조금은 알 수 있을 것 같단 느낌을 받는다.


이 즈음되면 '아이를 보는 게 얼마나 많은 힘과 노력이 드는 줄 아냐! 아이에게 초점을 맞추다 보면 부부관계는 망가지고 상대를 아이 아빠, 아이 엄마로만 여기게 될 수 있다!'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을 듯하다. 그럴 수 있다. 그런데 냉정하게 얘기해서 그건 그들이 서로 노력하지 않기 때문에 그런 것이고, 그렇게 노력하지 않는 사람들은 아이가 없었어도 서로에게 익숙해지면서 상대에게 이성적인 매력을 유지하기 위한 노력을 하지 않게 되었을 것이다.


아이를 갖는 건 오히려 부부의 데이트에 활력을 불어넣어 줄 수도 있다. 이는 아이가 없으면 주말 나들이나 취미생활을 같이 안 하는 게 관계를 소원하게 만들지만, 아이가 있으면 두 사람만의 시간을 갖는 게 엄청나게 소중하게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내가 어떻게 아냐고? 앞에서 말했듯이 내 지인들은 대부분이 결혼해서 아이도 있는데, 그들은 단 한 명도 예외 없이 배우자와 단 둘이 데이트를 하면 옆으로 계속 넘겨봐야 할 정도의 사진들을 SNS에 올리더라. 오랜만의 데이트가 설레이고, 행복했고, 자유로웠다면서 말이다.


인간은 엄청나게 모순된 존재다. 똑같은 것도 희소성이 있을 때 그것의 가치를 더 느끼고, 그것에 감사해한다. 그렇지 않고 감사의 항상성을 유지할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인간은 그렇지 않고 자신이 가진 것에 익숙해지면 그에 대한 효용가치를 잊어버린다. 소중한 사람이 세상을 떠나고 나서야 후회하는 것도, 엄청 좋아했던 취미생활에 시들해지는 것도, 그렇게 갖고 싶었던 차도 산 지 짧으면 몇 달, 길어도 몇 년이 지나면 그에 대해서 무덤덤해지는 것도 그 때문이다. 아이의 존재는 그렇게 항상성이 없는 인간에게 변수를 됨으로써 부부가 소소한 것들에 감사할 수 있게 해 준다.


이렇게만 말하면 마치 부부가 행복하기 위해 인위적으로 힘들어져야 한단 것처럼 들릴 수 있단 것을 안다. 그런데 그 '힘듦'에는 부모가 되어야만 알 수 있는 아이가 주는 선물이 있단 것을 기억하자. 아이를 가진 사람들이 힘들긴 하지만 후회하지 않는단 것은 플러스 마이너스를 따져봤을 대 아이를 갖는 것은 일단 플러스란 의미다. 거기에 더해서 일상에서의 자유를 누릴 수 있는 순간에 대한 소중함을 느끼고 배우자와의 관계가 애틋해질 수 있다면 아이를 갖는 건 행복의 총합에서 우상향 곡선을 그리게 해주는 변수임은 분명해 보인다.


아이를 키우려면 잘 해주기 위해 돈이 필요하고, 그걸 못해줄 바에야 아이는 갖지 않는게 맞다고, 세상이 너무 엉망진창이어서 이런 세상에 아이를 낳는 것은 아이에게 하지 못할 짓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사실 부모들이 큰 돈을 들여서 해주는 건 아이에게 정말 필요해서가 아니라 본인들이 좋은 부모라고 느끼고 싶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수 백만원 짜리 유모차와 저렴한 유모차의 차이를 돈으로 느끼지 않는다. 본인이 더 편한 유모차와 그렇지 않은 유모차가 있을 뿐이다. 아이들은 오히려 영어유치원을 힘들어하고 싫어하고, 과외받는 것도 싫어한다. 그리고 영어유치원을 나오고 과외를 하는 게 그 아이의 성공과 행복을 담보해주는 것도 아니다. 아이가 건강한 자아를 갖고 살 수 있게 해주는데는 부모의 사랑이 더 필요하고, 중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돈이 없어서 뭔가를 못해줄 것이기 때문에 아이를 갖지 않겠단 생각은 사람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기 때문에 하게 되는 생각이다. 조금 부족하게 자랐어도 건강한 자아를 갖고 훌륭한 성인이 된 사람들은 충분히 많다.


그리고 이 세상이 엉망진창인 것은 맞는데, 세상이 전반적으로 엉망진창이라고 해서 모든 영역이 엉망진창인 것은 아니다. 우리가 '국가주의적 사고'를 갖고 있는 면이 있어서 그렇게 생각할 수는 있는데, 우리 개인의 삶을 곰곰이 생각해보자. 우리는 그렇게 엉망진창인 영역과 '직접적인 이해관계'를 얼마나 갖고 있나? 강남에 부동산이 없는 사람은 강남 부동산 가격이 오르는 것과 직접적인 이해관계를 갖지 않고, 비리가 만연한 영역이 있어도 내가 그곳과 이해관계가 없다면 난 그 영향을 받지 않는다. 세상은 많이 연결되어 있지만 또 생각보다 분리되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세상이 아무리 엉망이어도 내가 아이가 건강한 자아를 갖고 살 수 있도록 잘 양육하면 그 아이는 충분히 행복할 수 있다. 이렇게 엉망인 세상 속에서도 행복한 사람들은 적지 않게 존재한다.


여기까지는 순수하게 아이와 부부의 관계만 다뤘다면, 이제는 조금 '삶의 이유'에 대한 얘기를 해보고 싶다. 30대에 어두운 터널 안에 있는 진흙탕에서 허우적대다 조금은 빛이 비치는 곳에 나와 보니 인생의 허무함을 머리가 아니라 가슴으로 느낀 기억이 있다. 무엇인가를 그렇게 갖기 위해 몸부림쳤는데, 내가 갖고 싶었던 것을 가진 사람들의 삶을 보며 허무함을 느꼈다. 그들도 행복하지 않더라.


그때부터 심리적 방황이 시작되었다. 일을 열심히 해서 뭔가를 성취한단 게 어떤 의미를 가질까? 나도 일로 성취를 이룬 적이 있지만 그 행복과 성취감은 얼마 가지 못한다. 자신이 원하는 목표를 이룬 후에 오히려 우울증에 빠진 잘 나가는 사람들은 실제로 엄청나게 많다. 지금 즐거움을 느끼는 것의 효용도 시간이 지날수록 떨어질 텐데, 돈이 저렇게 많고 잘 나가는 사람들도 허무함을 느끼는데, 무엇보다 엄청난 금수저가 아니라면 돈을 많이 벌기 위해서는 그만큼 힘들게 일을 해야 하는데 미래의 불확실한 행복을 위해 계속 현재를 희생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더라. 그리고 우리는 결국 죽게 될 것 아닌가?


일하고, 노력할 이유가 필요했다. 개인적인 욕심과 욕망을 충족시키는 것이 주는 효용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단 것을 수많은 케이스들을 보며 머리와 가슴으로 깨달은 이후에는 내가 치열하게 노력해야 할 이유가 사라지더라. 그래서 사실 굉장히 진지하게, 우울감으로 인한 것이 아니라 굉장히 이성적으로 '사는 것이 주는 행복도 있지만, 그에 상응하는 불행도 있다면 그냥 자살하는 게 효율적이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행복은 불확실한 반면 힘듬은 보장되어 있는 게 인생 아닌가? 한 가지 변수만 없다면 난 그 생각이 여전히 유효하다고 생각한다.


내게 그 변수는 '사랑'이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 말이다. 그렇게 어두운 터널을 지나면서, 진지하게 극단적인 선택을 하고 싶었던 시점들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그걸 실행에 옮기지 않은, 또는 못한 것은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 때문이었다. 내가 그런 선택을 하고 나면 부모님이, 내 가까운 지인들이 얼마나 큰 상처를 품고 살아야 할지를 생각하니 내가 아무리 힘들어도 극단적인 선택은 하지 못하겠더라.


지금은, 장담하건대 누구보다 살고 싶은 의지가 크다. 돈도 많이 벌고 싶다. 왜? 내 가족과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사랑하는 사람들과 더 많은 것을 누리고 싶어서. 그렇다 보니 내 가장 간절한 기도제목 하나를 꼽으라면 그건 '내가 안정되고 부모님께 좋은 것을 드릴 수 있을 때까지 두 분이 건강하게 살아계신 것'이고, 그 다음 기도제목을 꼽으라면 '내가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가진 후에 아이가 나의 부모를 기억할 수 있을 나이까지는 부모님께서 살아있게 해 주세요'이다.


사람은 사랑을 먹고 산다. 아무리 극악한 사람도 자신의 가족에게만큼은 사랑받고 싶어 하고, 흑화 된 사람들은 대부분 물질적 풍요로움과는 별개로 사랑과 인정을 받지 못한 성장배경을 갖고 있단 것이 이를 보여준다. 그리고 인간은 필연적으로 자기중심적이기 때문에 가장 순수한 사랑에 가까운 사랑은 가족 안에서 찾게 될 수밖에 없다. 자녀에 대한 부모의 마음만큼은 아니지만, 자녀들도 기본적으로 본인의 부모에 대한 애틋함, 최악의 경우에도 애증 정도는 갖고 있는 것이 이를 보여준다.


사람이 아이를 갖는 것은, 자신과 사랑하는 사람 사이에서 새로운 생명체가 태어나는 것은 나의 일부가 떨어져 나간 느낌을 주기 때문에 보통의 사람은 그 아이를 사랑할 수밖에 없고, 그 아이에 대한 그러한 사랑은 부모가 치열한 세상에서 살며 잊어버렸던 순수한 사랑을 회복할 수 있게 해준다. 자신의 자녀에 대한 사랑보다 더 순수한 사랑이 세상에 있을까?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갖는 것은 이처럼 사랑을 회복하고 사랑의 관계를 연장시킨다. 내가 부모님께서 내 아이가 자신의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기억할 수 있는 나이가 될 때까지 살아계셨으면 하는 것도 세상의 이치에 따라 두 분이 나보다는 먼저 세상을 떠나시는 게 맞고, 두 분이 떠나시면 두 분이 시시때때로 그리울 텐데, 내 가족이 아니면 두 분을 함께 기억하고 그리워할 사람이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아이의 존재는 분명 사랑의 연결고리가 되어준다. 그리고 아이를 갖지 않겠다고 하는 사람들은 아이를 키우는데 드는 에너지와 자원의 얘기만 하는데, 아이를 키우는 사람들 중 상당수는 내가 아이를 키우는 것이 아니라 아이가 나를 키운다고 하기도 하더라. 아이가 자신의 거울이 되어준다고.


무엇보다 사회적으로도 아이를 가진 사람들이 많을 필요가 있는데, 이는 단순히 인구의 많고 적음 때문이 아니다. 세상 일에 전혀 관심이 없던 사람들도 아이를 갖고 나면 사회적인 이슈들에 굉장히 관심을 많이 갖기 시작하더라. 우리 사회가 더 좋게 바뀌어야, 자신의 아이가 더 나은 세상에서 살 수 있기 때문에. 그래서 아이를 가진 후에는 이타적인 마음이 아니라 '내 아이의 환경이 더 좋게 만들어졌으면 하는 바람'으로 기관들에 기부하고, 자신이 사는 지역에 관심을 더 갖게 되는 지인들을 나는 계속 보고 있다.


인간은 완전히 이타적이 될 수 없다. 인간은 결국 자신과 접점을 가진 이해관계 때문에 움직이고, 행동한다. 그런 면에서 아이를 갖는 것은 작게는 부부관계에서, 조금 더 크게는 가족, 더 크게는 사회적이고 국가적으로 나의 이해관계를 확장시키는 역할을 한다. 그리고 나의 이해관계가 확장된단 것은 내가 조금 더 열심히, 잘 살 이유가 생긴단 의미이기도 하다. 아이를 갖는 게 좋다고, 아니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내가 계속 살, 열심히 살 이유가 생기는 것이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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