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 반 넘게 브런치에서 연애와 사랑과 결혼에 대한 글을 썼다. 열심히, 많이 썼다. 그 흔적은 지금도 이 공간에 남아있고, 구독자가 브런치에서 많은 편인 것도 사실 연애와 사랑과 결혼에 대한 글들의 영향이 절대적이었다. 그 주제에 대해 나처럼 진지하고, 논리적이고, 딱딱하게 쓰는 사람이 없어서인지 브런치와 카카오에서 내 글들을 다양한 곳에 자주 노출시켜줘서 조회 수도 꽤 많이 나온 편이었다. 지금까지 모든 글의 총 누적 조회수가 480만이 넘었고, 2년 정도는 매일 조회수가 3천 명이 넘을 정도였으니까.
그런데 그 과정에서 뭔가 모를 공허함을 느꼈다. 올해 상반기에 연애와 사랑과 결혼에 대한 글을 더 이상 쓰지 않겠다고 공지를 한 후에 왜 그런지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봤다. 꽤나 오랫동안 고민했다. 그리고 깨달았다. 내가 4년 넘게 '머리'로 글을 썼지만, '내 이야기'는 들어가 있지 않다는 것을. 공부하고, 고민하고, 관통하는 논리가 있는 글을 쓰는 게 업이다 보니 내가 쓴 글들은 나름 치밀하고, 논리적이었지만 그 안에 '경험'과 '주관성'이 없다 보니 매력도, 설득력도 덜하다는 것을 연애와 사랑과 결혼에 대한 글을 그만 쓰겠다고 공언한 후에야 깨달았다.
그 사실을 깨달은 후에도 얼마간 고민을 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이 시리즈를 쓰겠다고 공지를 올리고 나서도 고민을 했다. 두려웠기 때문이다. 내 속내를 누구나 읽을 수 있는 공간에, 내 치부까지 다 드러내는 것이 두려웠다. 하지만 내가 정말로 이 주제에 대한 마무리를 잘하고 싶다면, 날것 그대로의 내 모습과 생각들을 공유하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그렇다 보니 이 시리즈의 글들은 내 다른 글들보다 길고, 내 삶이 훨씬 많이 들어가 있다. 그리고 글도 거친 편이다. 내 안에 있는 결혼과 가족에 대한 논리를 반박이 올 수 있는 지점들을 재반박하면서 공격적으로 썼기 때문에. 그래도 마무리를 하고 나니, 올해 초에 느꼈던 아쉬움은 남지 않고 이 시리즈를 쓰길 잘했다 싶다.
연애와 사랑과 결혼에 대한 글을 써온 일종의 마무리를 결혼과 가족으로 한 것은 결혼과 가족은 우리 인생과 직결되는 문제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사실 연애에는 답이 없고, 연애를 잘하는 건 중요하지만 모든 사람의 연애는 다르고, 연애야말로 직접 경험하면서 느껴야 알 수 있는 지점들이 많다. 그리고 연애는 실수를 해도 괜찮다. 아니, 실수는 연애할 때 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연애에 대해서 이렇게까지 차갑고, 논리적이고, 정답을 제시하는 글을 쓸 수는 없다. 아니, 그런 글은 써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연애는 원래 엉망진창인 거니까. 되돌이킬 수 있고.
하지만 결혼과 가족은 다르다. 결혼도 되돌이킬 수 있지만 그 파급력이 연애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크고, 결혼과 가족은 죽을 때까지 우리를 물고 늘어질 대상이다. 그에 대해서도 답이 없다고 생각했다면 이 시리즈를 쓰지 않았겠지만, 인간의 본성과 특징에 비춰봤을 때 답은 있다고 생각했고, 그 생각이 30대를 거치며 나름 정리되었다고 느꼈다. 그게 이 시리즈를 쓰게 된 이유다.
곳곳에서 스스로도 비인간적이고, 차갑고, 냉혈한처럼 느껴질 정도의 이성만 있는 부분들이 있다. 그렇게 하는 게 맞는지가 고민되었지만 그렇게 한 것은 결혼은 하는 게 낫고, 아이도 가능하면 가지는 게 좋다는 주장이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소수설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소수가 주장하는, 아니 느낌적으로는 아무도 적극적으로 주장하지는 않거나 못하는 입장에서 주장을 펼치기 위해서는 더 치밀하고, 냉정하고, 논리적이 되기 위해 노력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결혼과 가족이란 게 어디 그렇게 논리와 이성으로 되는 부분인가? 결혼과 가정은 상당 부분이 감정적인 요소를 갖고 있기 때문에 논리로 설명될 수 없는 부분들이 훨씬 더 많다. 그렇기 때문에 일면 합리적으로 보이는 주장들을 누구도 적극적으로 반박하지는 못해온 느낌이 있었다.
그 '일면 합리적'으로 보이는 건, 당장 눈에 보이고 측정 가능한 게 숫자밖에 없다 보니 그런 얘기들은 모두 경제적이고 물질적인 부분들에 무게를 두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주장과 생각들은 '인간에 대한 이해'를 결여하고 있고, 단기적인 문제들에 대해서만 얘기한다는 한계를 가졌다. 그런데 우리에겐 현재의 행복도 중요하지만 그 행복의 지속가능성도 중요하고, 지속 가능한 행복은 사람에 대한 이해가 전제되어야 논할 수 있다. 이 시리즈의 가장 큰 목표는 사실 그 지속 가능한 행복의 중심에는 가족과 사랑이 있단 얘기를 하는 것이었다.
사실 아이를 갖기는커녕 결혼도 못한 주제에 이 주제에 대한 글을 쓰는 게 맞을지에 대한 고민도 많았다. 4년 반 동안 이 주제에 대한 글을 쓰면서 결혼한, 아이가 있는, 또 일부는 돌싱이 되어 혼자 아이를 키우시는 여러 분들이 '너는 어떻게 아이를 갖기는커녕 결혼도 안 한 애가 이렇게 결혼, 이혼과 아이에 대해 잘 알아?'라고 말씀해 주신 게 용기를 낼 수 있게 해 줬다. 내가 경험하지 않은 세계에 대해 쓰는 건 항상 조심스러운데, 그 경험을 하신 분들이 그렇게 얘기해주시니 완전히 틀린 것은 아니고, 그렇다면 써도 괜찮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역시나 공부하고, 생각하는 게 업인 사람답게 내가 어떻게 경험하지 않은 것을 경험한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게 쓸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고민해봤다. 그건 역설적이게도 내가 경험하지 않고 한 걸음 물러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본인이 불구덩이 안에 들어가 있으면 그 상황을 객관적으로 보지 못하기 때문에, 그리고 결혼과 가정의 형태와 양상은 백이면 백이 다 다른데 직접 경험한 사람은 자신의 경험을 일반화시키기 때문에 이런 시리즈를 쓰기가 쉽지 않을 수 있겠다 싶더라. 그런데 20대 때부터 결혼 생각이 충만한데 결혼은 하지 못하고 있다 보니 모든 것에 생각이 많은 사랍답게(?) 이 주제에 대해서도 생각을 필요 이상으로 하다 보니 그런 글을 쓸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싶다.
여기에 더해서 내가 공부하고 생각하는 게 업인 사람인 것이, 이 주제를 한창 박사학위 논문을 쓸 때 쓰기 시작한 것도 영향을 미쳤다. '박사학위 논문'이란 현실을 회피하기 위해 논문을 쓰는데 써야 하는 '이성적 사고'를 이 주제에 할애한 것이다. 감성적이고 말랑말랑한 주제를 이성적이고 차갑게 써낼 수 있었던 것도 그 때문인 듯하다. '법학'이라는 이론 학문은 실험이나 다른 자료 없이 오로지 전제를 바탕으로 한 논리로 자신의 생각을 입증해야 하는데, 돌이켜보니 나는 그걸 이 주제에 대해서 하고 있었더라.
그렇기 때문에 이 시리즈의 내용이 완전한 정답이란 것은 아니다. 아니, 나는 정답이라고 생각하긴 하는데 그걸 현실에서 그대로 살아내는 건 다른 문제다. 학문이란 게 그렇지 않나? 이성적인 사고를 바탕으로 가장 높은 이상을 그려내는 게 학자들이다.
최소한 지금 이 시점에는, 난 이 시리즈에 답을 담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현실은 만만치 않기 때문에 그 이상을, 정답을 살아내기 위해서는 수많은 노력과 고통과 갈등이 수반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시리즈를 쓴 건 어렸을 그런 노력과 고통과 갈등을 피해 갈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과 달리 살다 보니 인생은 어떤 형태로든 힘든 면이 있을 수밖에 없더라. 그렇다면 정답에 가까운 선택을 하는 게 조금은 더 행복하고 최소한 조금은 덜 불행할 수 있게 해 줄 것이라 생각하기에 이 시리즈를 썼다.
이젠 정말 직접 결혼과 육아를 경험해보기 전에는 이 주제에 대한 글을 쓰지 않을 듯하다. 아니, 못할 듯하다. 이젠 정말 소재와 생각이 다 떨어졌고, 이 시리즈 안에는 내 삶과 생각이 오롯이 담겼기 때문에.
이 글을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브런치에서 다양한 주제의 글을 씁니다. 혹시라도 감사하게도 '구독해야지!'라는 생각이 드셨다면, 2021년에 제가 쓸 계획(링크)을 참조하셔서 결정하시는 것을 권장합니다. 브런치에는 '매거진 구독'이라는 좋은 시스템이 있으니, 관심 있는 매거진만 구독하시는 것이 나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