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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mon de Cyrene Dec 15. 2021

프리랜서로 살려한 건 아니지만

프리랜서로 사는 순간들. 1화

회사원의 아들로 평생을 살았다. 아버지는 10대 그룹까지는 아니어도 누구나 들으면 아는 대기업에서 평생을 회사원으로 일하다 정년퇴직을 하셨다. 회사원의 아들로 산다는 것은 엄청나게 부유하거나 사치를 부릴 수 있을 환경은 아니지만, 또 반대로 갑작스러운 어려움이나 궁핍을 경험하지도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버지께서 심지어 정년퇴직까지 하셨고, 정년퇴직하신 후에는 후배가 하는 작은 회사의 고문으로도 계셨으니 나는 운 좋게도 부모님을 부양해야 할 부담을 져 본 적은 없다. 


모두 그런 것은 아니지만, 성장하는 과정에서 굉장히 힘들었던 게 아니면 자녀들은 부모님이 간 길을 따라가는 경우가 많다. 사람은 자신의 부모가 했던 일을 가장 잘해 낼 수 있기도 하다. 이는 대부분 아이들이 성장하는 과정에서 보는 유일한 '어른'의 삶은 그 부모의 삶이기 때문이다. 그렇다 보니 많은 사람들은 부모처럼 살고 싶지 않다고 하면서도 결국 그 길을 따라가게 된다. 다른 길을 잘 모르기 때문에. 


부모님이 실패했거나 엄청나게 힘드시지 않았다면 그렇게 부모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게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그런 길을 가게 되면, 비슷한 길을 먼저 간 부모님이 조언을 해줄 수 있기 때문에. 그리고 내가 평생 봐온 일에 적응하기도 상대적으로 수월하기 때문에. 어렸을 때는 몰랐는데, 우리가 어느 정도 경험치를 쌓기 전까지는 옆에서 그렇게 조언을 해줄 수 있는 존재의 존부는 그 길에서 자리를 잡는데 꽤나 큰 도움이 되더라.  


대기업을 다니신 아버지의 아들이었던 나는 한 때 유학도 생각하고, 기자도 생각했지만 결국 사회생활을 대기업에서 시작했다. 그것도 아버지께서 다니셨던 회사보다 큰, 내가 입사할 당시에는 취준생들이 매우 선호했던 회사에서. 신입사원일 때 가족 식사 비용을 내가 내겠다고 하자 '네가 벌면 얼마나 번다고'라며 만류하시던 아버지께서 내 1년 차 보너스 금액을 들으시더니 그다음부터는 자연스럽게 내가 내는 것을 방관하실 정도로 아버지께서 다니신 회사와 내가 다녔던 회사는 처우가 많이 달랐다. 


아버지는 내가 그 회사에 남아 임원이 되었으면 하셨다. 부모님은 대학 입시 때부터 내가 경영학과에 진학해 좋은 회사에 취업하길 원하셨었다. 그런데 고집을 부리고 정치외교학과를 간 아들이 그래도 남들이 부러워하는 대기업에 들어갔으니 그 회사에서는 아버지께서 이루지 못하신 꿈을, 회사원의 별이라고 할 수 있는 임원이 되길 바라셨다. 아마도 본인이 최종 임원 후보로 3차례나 올라갔다가 사내 정치로 인해 그룹 차원에서 낙방을 하셨던 경험이 있으셔서, 아들들이 아버지의 꿈을 대신 이뤄주길 바라셨던 것 같다. 


그런 아버지의 바람은 내가 회사에 들아간지 2년 만에 좌절되었다. 내가 2년 2개월 만에 대학원에 합격하여 회사를 그만뒀기 때문이다. 대학입시 때도 아버지를 사내 정치에서 휘두르던 사람들 출신 대학에 진학했으면 하셨는데 그 대학에 합격하고도 다른 대학을 선택했고, 경영학과에 갈 수 있는 학점을 받고도 정치외교학과를 선택했던 것처럼, 난 또다시 내 길을 내가 선택했다.


그때까지도 내가 프리랜서로 살게 될 줄은 몰랐다. 로스쿨에 진학했으니 당연히 변호사가 된 후에는 변호사로 먹고 살 줄 알았다. 좋은 대학 로스쿨에 갔으니 취업도 쉬울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변호사시험에 합격하지 못했고, 그 후에는 박사학위 과정까지 마쳤다. 그때도 내가 프리랜서로 살 줄은 몰랐다. 그래도 한국에서 좋은 대학의 법학 박사학위를 받았으니 일단 어디라도 연구직으로 있다가 학교로 갈 줄 알았다. 학교로 가는 옵션은 지금도 열어두고 있지만, 박사를 받고 나서 3년이나 소속 없이 지금처럼 프리랜서로 살 줄은 몰랐다. 


난 그렇게, 비자발적으로 프리랜서가 되었다. 프리랜서를 꿈꿨던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프리랜서가 얼마나 힘든지를 학부생활을 하면서 이미 경험했기 때문에. 청개구리처럼, 내 멋대로 선택하고 살았던 내가 왜 그때는 부모님 말씀에 그렇게 곧이곧대로 순종했는지가 이해가 되지는 않는데, 학부생활을 하면서 난 '남의 주머니에서 돈 빼먹기가 얼마나 힘든지 알아야 한다'면서 '그런데 과외는 돈을 너무 쉽게 버니 안된다'는 부모님의 말에 그대로 순종하여 프리랜서로 일을 하면서 먹고 살았었다. 영어학원에서 원어민 강사로, 홍보대행사에서 대대행으로 사진, 영상, 글로 콘텐츠를 만들면서. 난 그때 이미 프리랜서가 얼마나 힘든지를 몸으로 경험했기 때문에, 단 한 번도 프리랜서로 사는 것을 꿈꾸지 않았다. 


그런데 박사학위를 받고 상황이 여러모로 꼬이면서, 아니 박사학위논문을 쓰던 중에도 나는 사실 일을 좀 해달라는 부탁을 받고 일을 시작했다. 파트타임 정도로 생각했지 본격적으로 프리랜서 일을 한다고 생각하진 않았다. 박사학위를 받고 나면 다 그만둘 예정이었으니까. 먹고살기 위해서, 지금은 돈을 벌어야 하니까 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박사학위를 받고 나서도 상황은 나아지지 않은 반면, 내가 예상하지 못했던 일들이 들어오면서, 나는 어느 순간부턴가 프리랜서로 일하고 있었다. 


박사학위를 받기 전부터 치면 벌써 3년 넘게, 나는 그렇게 프리랜서로 살고 있다. 


다른 프리랜서들은 다를까? 그런 사람도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다. 내가 경험한 바에 의하면 분명한 건 한 가지. 완전히 자리를 잡고 실질적으로 사업을 하는 수준의 사람이 아니라면 대부분 프리랜서들은 프리 하지 않단 것이다. 그렇다 보니 프리랜서들의 삶을 모르는 사람들은 '자유로워서 좋겠다'라고 말하지만, 프리랜서들은 다른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덜 자유롭다. 


그렇다면 난 프리랜서로서의 삶을 싫어하고, 어떻게든 벗어나려고 발버둥 치고 있을까? 그게 또 그렇지는 않다. 최근에 사업자등록까지 했으니 오히려 어느 정도 기간 동안은 프리랜서로 살아갈 각오를 한 상태라고 하는게 더 정확할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에게 함부로 프리랜서로 사는 삶을 권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프리랜서로 지속 가능한 먹고 삶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꽤나 많은 것들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들이 굳이 돈을 주고 찾을 능력, 일을 줄 인맥에서 짧으면 몇 주에서 길면 몇 달까지 입금이 안돼도 버틸 수 있는 멘탈까지. 프리랜서 4년 차로 살아가는 요즘, 개인적으로는 나의 멘탈에 칭찬을 자주 해주는 편이다. 


한 번씩 '내가 사업가나 예술가의 아들로 살았다면 프리랜서의 삶이 조금 덜 힘들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만약 그랬다면 수입이 불규칙하고, 새로운 영역을 오롯이 내 힘으로 개척할 때 옆에서 조언을 해주거나 토닥여 줄 가족이 있을 테니까. 내 주위는 어떠냐고? 내 주위에는 불확실하고 안정적이지 않은 일감에 불안하고 조마조마해하시는 어머니, 월급을 열심히 모으고 잘 투자해서 파이어족이 되는 걸 목표로 하는 동생과 회사원의 삶만 아시는 아버지가 있다. 


이 시리즈는 그렇게 회사원의 아들로 태어나 프리랜서로 살아가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다. 지금은 블로그에 옮겨 담은 프리랜서에 대한 나의 다른 시리즈에서 나는 온갖 철학적인 척, 아는 척, 힘든 척을 다했었다. 촌스럽게. 이 시리즈에서도 그런 지점들이 느껴졌으면 하는 소망함은 있다. 하지만 그런 지점들이 직구가 아니라 나의 일상과 소소한 에피소드들을 통해 자연스럽게 전달되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나와 마찬가지로 프리랜서라는 고된 길을 가는 동지들이 한 번씩 공감하고, 피식 웃을 수 있었으면, 그래서 내 글을 읽는 순간만큼은 잘 살고 있다고, 우린 괜찮다고 위로받을 수 있으면 좋겠다. 


그런 소망함을 담아, 쓴다. 

이 글을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브런치에서 다양한 주제의 글을 씁니다. 혹시라도 감사하게도 '구독해야지!'라는 생각이 드셨다면, 2021년에 제가 쓸 계획(링크)을 참조하셔서 결정하시는 것을 권장합니다. 브런치에는 '매거진 구독'이라는 좋은 시스템이 있으니, 관심 있는 매거진만 구독하시는 것이 나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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