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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mon de Cyrene Dec 17. 2021

아침엔 일을 하지 않기로 했다.

프리랜서로 사는 순간들. 2화

가장이 평생 회사원으로 산 가정은 아침이 일찍 시작된다. 최소한 우리 집은 그랬다. 어머니께서는 '아버지께서 돈 벌러 나가는데 어떻게 애들은 침대에 누워 있냐?'라고 생각하시는 분이셨고, 결혼하시기 전에 본인도 그러셨는지는 모르겠으나 어머니께선 8시 이후에 누군가 침대에 누워 있는 걸 용납하지 못하셨다. 


다 그렇게 사는 줄 알았다. 나 역시 학교에 다닐 때는 6-7시 정도에 일어나서 학교 헬스장에 가서 운동하고 하루를 시작했고, 회사에 다닐 때도 회사 지하에 직원 전용 헬스장이 있어서 6시 반에 집에서 나와 운동을 하고 사무실로 올라갔다. 내 동생도 마찬가지. 내 동생은 특히 요즘에 러닝에 꽂혀서 매일 9-10시 사이에 잠들어서 4-5시 사이에 일어나 아침에 러닝을 한다.


모든 사람들이 그렇지 않다는 건 대학원에 가서 알았다. 나는 회사 다닐 때처럼 7시 정도에 일어나 운동을 하고 학교로 갔는데 9시에 딱 맞춰서 자리에 와 있는 사람은 나 밖에 없더라. 시험기간 때야 6시에 오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매일 그렇게 학교로 출근하듯 오는 사람들은 거의 없었다. 사람들은 내가 부지런하다고 했는데, 나는 그저 어렸을 때부터 해오던 패턴대로 살고 있을 뿐이었다. 


그런 패턴은 박사과정에 가서, 특히 박사학위 논문을 쓴 2년 동안 완전히 무너졌다. 나는 원래 공부도 아침과 저녁 시간에 잘 되고, 낮에는 산만해지는 편이었는데 논문을 쓸 때 그 성향이 심화되더라. 그리고 논문은 한 번 써지기 시작하면 쓸 수 있는 데까지 진도를 뽑아야 하다 보니 내 평균 취침 시간은 새벽 3시 정도가 되었다. 평균이 그 정도니까 2시에 잠들 때도 있었고, 4시에 잠들 때도 있었단 얘기다. 물론, 심사가 임박할 때는 밤샘도 종종 했고...


평균 새벽 3시에 잠들면서 7시에 일어날 수는 없다. 그러다 보니 나의 기상 시간은 조금씩, 야금야금 밀려서 8시, 9시까지 갔고 심지어!! 10시 넘어서 일어나는 날들도 있었다!! 아니 10시 기상이라니!! 이런 천인공노할 짓을 하다니!! 독립해서 자취를 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다. 왜인지 모를 죄책감을 느끼면서도 어쩔 수 없었다. 논문을 써내고, 수정하는 게 가장 중요했기 때문에. 그게 1순위였기 때문에. 


그렇게 2년을 지내고 나니 그 패턴이 굳어버렸다. 여전히 6-7시에 일어나지는 날들도 있었지만 보통은 8-9시에 일어나 졌고, 10-11시에 잠드는 날도 있었지만 보통은 빨라도 새벽 1-2시에 잠이 들게 되었다. 출퇴근하는 회사원이 아닌 프리랜서로 살다 보니 그런 패턴은 계속 유지되었다. 그러다 보니 여러 이유로 다시 본가에 들어와 살게 된 이후에 갈등이 생기는 건 당연지사. 지금은 부모님께서 지방으로 내려가셔서 갈등이 일어날 일이 없지만 그전까지는 아침이 고통스러웠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 아침 8-9시에 일어나는 패턴으로 지내니 아침이 애매해졌다. 원래 아침에 일어나서 가볍게 운동을 하고 나면 집중이 잘되었는데 그렇게 하면 곧 10시가 넘어가서 점심시간이 되었고, 프리랜서의 삶 역시 논문을 쓸 때와 마찬가지로 퇴근이 있는 게 아니다 보니 마감을 맞추기 위해 새벽까지 일하는 경우도 많았다. 특히 글을 쓰는 일을 하다 보니 보통 마감을 월요일 오전으로 잡고 주말에는 새벽까지 달리고 글을 던지는 패턴이 생겨서 기상시간을 당기기도 쉽지 않았다. 


프리랜서로 지낸 3년 여 중 2년을 넘게 그렇게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살았다. 스스로를 게으른 사람처럼 여기면서, 다른 사람들은 일하고 출근하는 시간에 일어난다는데 죄책감도 느끼며 2년 넘게 살았다. 아침 일찍, 해가 완전히 뜨기 전에 쌀쌀한 공기를 맞으며 걷는 걸 좋아하기 때문에 나도 일찍 일어나고는 싶었지만 그게 또 일을 하다 보면 그렇게 안되더라. 며칠은 그렇게 해도, 결국엔 마감에 치이고, 일이 밀리거나 몰리면 다시 새벽까지 일해야 하는 삶이 계속되었기 때문에.


프리랜서는 그럴 수밖에 없다. 누군가에게 일을 받는 입장이기 때문에. 소위 말하는 '을'이나 '정'이기 때문에. 때로는 나와 연락을 하는 사람도 어쩔 수 없이 내게 일을 쪼는 경우도 있다. 그 역시 '을'의 입장에서 '갑'의 일정과 요구에 맞춰야 하기 때문에. 그렇다고 일을 가려 받을 처지도 아니다. 언제, 어떤 일이 들어올지 모르기 때문에 여력이 된다면 조금 무리를 하더라도 일단 일을 받아야 하고, 일을 받으면 마무리도 잘해야 한다. 그래야 다시 일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그렇다 보니 아침을 내가 살고 싶은 대로 살기는 힘들어졌다. 하지만 아침에 일어나 잠시 멍 때리고, 평안함을 누리는 순간을 너무 좋아하다 보니 그런 패턴에서 점점 지쳐가던 중에 문득 '왜 아침에 일해야만 하지? 난 남들이 퇴근하고 일 안 하는 밤에도, 새벽에도 일하는데, 주말에도 일을 하는데 난 왜 아침에도 일해야 한단 강박에 시달리는 거지?'란 생각이 들더라. 그렇다. 사실은 다른 사람들만큼, 때로는 그 이상으로 일하면서도 나는 스스로를 코너로 몰고 있었다. 


그 사실을 깨달은 후, 아침엔 일을 하지 않기로 했다. 어차피 저녁식사 후에도, 새벽에도 일을 할 때가 있으니 내게 점심식사 전까지의 시간은 선물로 주기로 했다. 


사람이 참 단순한 게, 그렇게 마음먹고 나서 보내는 아침 시간은 꽤나 행복하다. 남들이 일 안 하는 시간에 혼자 일하면서도, 남들은 이미 출근한 시간에 산책을 하고 멍 때리며 커피 한잔을 하는 기분이 그렇게나 좋더라. 아침엔 일을 하지 않기로 한 후부터 9시 전후에 느긋하게 일어나 눈을 비비고, 이미 세상이 돌아가기 시작할 때 혼자 운동복을 입고 뒷산으로 가서 천천히 걸으며 오늘 하루의 일과와 내가 할 일들에 대한 생각을 하면서 걷는 그 시간이 하루 중에 가장 행복한 시간이 되었다. 


그리고 아침을 그렇게 보내고 나면 오후부터는 조금은 충전이 된 상태가 되어서 더 열심히, 덜 쉬고 집중하면서 일을 할 수 있게 되더라. 그렇게 열심히, 진이 빠질 때까지 일하고 나면 그래도 새벽 2-3시까진 가지 않고 1시 전후에는 잠이 들기도 하고, 평생 오후에는 공부도 일도 잘 안되던 사람이 오후에도 일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신묘막측한, 전혀 예상하지 못한 변화들이었다. 


프리랜서라면 조금 더 나 자신에게 프리 하게 해 줄 수도 있었을 텐데 그러지 못하고 스스로를 옥죈 나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졌고, 지금이라도 스스로를 느슨하게 놔줄 줄 알게 되어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다.  


이 글을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브런치에서 다양한 주제의 글을 씁니다. 혹시라도 감사하게도 '구독해야지!'라는 생각이 드셨다면, 2021년에 제가 쓸 계획(링크)을 참조하셔서 결정하시는 것을 권장합니다. 브런치에는 '매거진 구독'이라는 좋은 시스템이 있으니, 관심 있는 매거진만 구독하시는 것이 나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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