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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mon de Cyrene Dec 18. 2021

버거킹 직원들이 나에 대한 내기를 했다.

프리랜서로 사는 순간들. 3화

익숙하고, 심플한 것을 좋아한다. 난 10년 넘게 아디다스에서 나오는 '슈퍼스타' 스니커즈를 10년 넘게 신었었고, 회사 다닐 때 다니기 시작한 미용실을 10년 넘게 다니고 있으며, 비슷한 티셔츠를 2-3개씩 사서 돌려 입으며, 물건은 보통 사던 것을 사는 편이다. 커피는 에스프레소나 아메리카노, 조금 베리에이션을 줘 봤자 카페라테를 마신다. 그나마 라테도 까미노를 걸을 때 눈발이 휘날리던 중에 쉬기 위해 들어간 카페에서 마신 cafe con leche, 직역하면 우유를 넣은 커피, 즉 카페라테를 마신 후부터야 마시기 시작했다.


모든 것에 다 그런 것은 아니다. 가끔은 일부로 그런 것에 변화를 주기도 한다. 10년 넘게 신었던 슈퍼스타도 작년에 문득 '다른 신발을 신어볼까?'라는 생각이 들어 다른 신발로 갈아 탄 후에는 쳐다보지도 않고 있고, 식당들도 나름 고심해서 괜찮아 보이는 곳을 찾으면 그곳에서 느껴지는 새로움을 꽤나 좋아하는 편이다. 새로운 것과 새로운 곳을 찾아 하이에나처럼 헤매며 다니지는 않지만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데 거부감이 있는 편은 아니다. 그리고 사실 난 그렇게 찾아본 새로운 것이나 새로운 곳은 내가 익숙하고, 항상 찾는 대상으로 삼아버린다. 그렇게 새로움을 찾아서 익숙함을 만드는 것. 그게 내 삶의 재미 중 꽤나 큰 부분을 차지한다. 하지만 반대로 내가 아니다 싶은 곳은 절대 찾지 않는 고집스러운 면도 있다. 


가장 최근에 내가 찾기 시작한 곳, 내 삶의 일종의 루틴이 된 곳이 있다. 얼마 전에 우리 집 근처에 생긴 버거킹. 나는 음식에도 진심인 메뉴들이 있는데, 햄버거에도 조금은 예민한 편이다. 그래서 난 롯데리아는 가지 않는다. 맥도널드에서는 맥모닝, 사이드 메뉴와 빅맥, 그냥 햄버거 정도를 선호한다. 노브랜드 버거는 저렴한 맛에 먹을 수야 있지만 굳이 찾아가진 않을 듯하고, 치킨버거는 그래도 치킨 브랜드들이 만드는 햄버거가 나은 편이라고 생각한다. 햄버거야 수제버거를 전문으로 하는 곳들이 당연히 제일 맛있지만 가성비를 따져봐도 그런지는 잘 모르겠고, 이런 모든 요소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했을 때 내게 가장 완벽한 햄버거 브랜드는 버거킹이다. 그 버거킹이 집에서 도보로 10분 이내의 거리에 생겨 우리 집은 맥도널드, 맘스터치, 노브랜드, 버거킹이 모두 도보 10분 거리에 있는 '햄세권'이 되었다. 


이처럼 햄버거에는 나름 진심은 내가 버거킹에 대해 유일하게 아쉬운 점이 있다면 가격. 수제버거보다는 저렴하지만 가격이 센 편이고, 가성비로 봤을 때는 조금 아쉬운 면이 없지 않은 게 아쉽긴 하지만 방앗간이 생겼는데 참새가 찾지 않을 수 없지 않나... 버거킹을 좋아는 하지만 사람이 붐비는 건 싫어하다 보니 우리 집 근처 버거킹이 생기고 일주일 지난 후에 처음 버거킹을 찾았다. 


아쉬웠다. 오픈한 지 얼마 안 되어 직원들이 아직 서툴러서일까? 수요 계산이 안되어 너무 많이 만들어 놨던 걸까? 패티는 너무 딱딱했고, 프렌치프라이도 차가웠으며, 그 위에 얹어진 치즈는 모두 굳어있었다. 참사도 이런 참사가 없었다... 버거킹이 나를 실망시키다니...


그런 버거킹을 나는 일주일에 최소 3번 이상 찾는다. 햄버거 맛이 나아졌냐고? 조금은 나아졌지만 그 때문은 아니다. 한 앱에서 우연히 발견한 '버거킹 구독' 때문이다. 와퍼와 커피 구독이라니. 특히 커피 구독은 4,500원에 매일 당일 만료되는 아메리카노 쿠폰 하나를 발행해 주는데, 일주일에 2-3번만 가도 한 달이면 8-12번, 커피를 한 잔에 500원 정도에 마실 수 있으니 가성비로 따지면 이만한 구독이 또 있을까 싶을 정도다. 


물론, 버거킹 커피가 맛있는 편은 아니다. 버거킹 커피는 못 마실 정도이거나 숭늉 같은 느낌까진 아니지만 특별히 맛있진 않다. 그런데 한 잔에 1500원을 붙여놓고 거의 연중 1000원으로 할인 스티커를 붙여 놓은 커피가 엄청나게 맛있기를 기대하면 그게 이상한 게 아닐까? 커피에도 나름 진심이어서 홀빈을 사서 갈아 드립을 하거나 에스프레소를 추출하고, 여름에는 더치커피를 만들어 마시는 내 입장에서 버거킹 커피는 맛적인 측면에서는 아쉬운 면이 당연히 많다. 


이처럼 까탈스러운 내가 그나마 살 수 있는 건 '예민하지만 까다롭지 않기 때문'이다. 난 맛에도, 분위기에도, 환경에도 굉장히 예민한 편이지만 맛이 없어도 큰 불평, 불만 없이 연료를 넣는다고 생각하고 음식을 먹을 줄 아는 능력이 있고, 분위기나 환경이 마음에 안 들면 그 안에서 그나마 버틸 수 있는 영역을 찾을 수 있는 재능을 갖고 있다. 그런 능력이 없었다면 난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닐지도...


그런 내게 버거킹 커피는 나쁘지 않은 선택이다. 그 가장 큰 이유는 버거킹의 위치. 버거킹은 내가 걷기 좋아하는 산책 코스 입구에 위치해 있어서 내가 아침에 몸도 풀고 생각과 마음도 정리할 겸 1시간 정도 걸으러 나가서 그 코스에 진입하기 전에 잠시 머물러서 커피 한잔을 통해 공복 상태를 조금이나마 해소하고 카페인을 충전시켜 걸을 수 있는 에너지를 얻기에 완벽하다. 


여기에 더해서 버거킹은 다른 사람에게는 줄 수 없지만 내겐 선물해 줄 수 있는 완벽한 요소를 하나 더 갖고 있다. '미국 냄새'. 다른 사람들은 공감할 수 없을지 모르지만 햄버거를 매일 만들어 파는 버거킹에서는 내가 생각하는 '미국 냄새'가 난다. 어렸을 때 미국 교육시스템으로 운영되는 국제학교를 다녀서인지 나는 미국적인 느낌에서 편안함을 느끼는 편인데, 그 정점은 재수생활을 마치고 미국에서 당시에 햄버거 가게를 하시던 삼촌 집에 머무르며 함께 출근했던 햄버거 가게였다. 나는 아무도 들어오지 않은 가게에서, 삼촌이 빵을 만드는 소리와 기계 돌아가는 소리만 들리고 가게에 진하게 배어 있는 고기와 햄버거 냄새를 맡으며 느끼던 안정감을 지금도 기억하는데, 사람들이 거의 없는 버거킹의 아침엔 그 느낌이, 냄새가 난다.


원래도 한 번씩 그런 느낌이 좋아서 마찬가지로 집에서 도보 10분 이내에 있는 맥도널드에서 맥모닝을 먹고는 했다. 주말 아침에는 꽤나 자주. 그런데 맥모닝은 한 번만 먹어도 4천 원 전후, 버거킹 커피는 월 4,500원. 거기다 버거킹은 월 구독이다 보니 가면 갈수록 이익인 구조에다 한 번씩 걸으러 나가기 귀찮은 날에는 커피가 몸을 일으켜 나갈 유인이 되어주기까지하니 내가 버거킹을 사랑하고, 아끼며 계속 찾지 않을 수 없다. 그렇게 1개월 여를 평균 주 3회 정도 아침에 버거킹을 방문했다. 


보통 9시에서 10시 사이. 버거킹이 가장 한가한 시간이다. 그 시간에 모자 뒤집어쓰고 운동복 입고 들어오는 덩치 큰 남자. 언젠가부터 버거킹 직원들이 나를 알아보는 듯하더니 하루는 두 사람이 내가 들어와서 키득 거리는 게 아닌가. 살짝 불편하려고 하는데 내 주문이 자신들 모니터에 뜨기를 기다리던 그들은 내 주문이 뜨자 한 사람이 내게 들릴 정도로 '아싸! 맞지!'를 외치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 그들은 내가 무엇을 주문할지 내기를 했고, 그걸 맞춘 사람이 그리도 기뻐했던 것이다. 


피식 웃었다. 내 루틴이, 패턴이 누군가에게는 저 정도의 재미를 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조금은 승부욕이 발동된 나는 다음날 버거킹을 방문하여 커피가 아닌 와퍼를 주문했고, 당황한 직원은 '매장 내'를 선택한 내 주문을 포장으로 준비해 놓더라. 괜히 뭔가 이기고 한 방 먹인 느낌. 


그 후로도 난 버거킹을 계속 찾는다. 가끔은 커피를 마시러, 가끔은 와퍼를 찾아서. 이런 루틴을 만들 수 있는 위치에 버거킹이 생긴 게 고맙다. 


프리랜서는 마감이 걸리거나 일이 밀리면 새벽까지 일을 하다 보니 정해진 루틴이 없으면 일상이 망가지기 십상인데, 그런 루틴을 만드는 게 쉽지만은 않다. 운동을 꾸준히 해왔어도 일이 갑자기 밀리면 그 패턴이 망가질 수 있고, 때로는 일이 밀리지 않아도 내 기분이나 마음이 안 좋으면 모든 것이 망가지고 흐트러질 수 있는 게 프리랜서의 삶이다. 회사원들은 어쨌든 아침에 출근을 해야 하고, 출근을 하면 퇴근을 할 수 있으니 앞을 보고 붙들고 버틸 게 있지만 프리랜서들은 그런 게 없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그런 걸 만들어서 곳곳에 배치해야 버틸 수 있다. 


이 부분이 프리랜서들에 대한 가장 큰 오해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프리랜서들은 그냥 자유롭게 일하고 싶을 때 하고, 하기 싫을 때 하지 않는다고 생각하지만 그렇게 일하는 프리랜서는 살아남을 수 없다. 그렇게 하면 일이 절대 꾸준히 들어오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프리랜서이지 나와 일하는 상대도 일정이 프리한 것은 아니지 않나? 프리랜서들과 일하는 사람들이 항상 일정의 압박과 싸우기 때문에 프리랜서들도 항상 일정의 압박과 싸우며 살 수밖에 없다. 


그리고 프리랜서는 살아남기 위해 일을 해야 하는데, 일하는 것을 오롯이 100% 즐기는 사람은 없다. 아무리 좋아하는 것도 일로 하면 그 과정에서 느껴지는 행복감은 어느 정도 떨어지기 마련 아닌가? 더군다나 프리랜서들은 돈을 받고 일을 하기 때문에 자신이 하는 일을 100% 자신 마음대로 할 수도 없다. 이는 돈을 주는 '갑' 또는 '을'님들은 자신들의 입맛에 맞춰 수정을 요구하거나 보완을 요청하기 때문이다. 그러면 프리랜서들은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어느 정도는 맞춰줘야만 한다. 그래야 그 관계가 유지되고, 계속 일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그렇기 때문에 프리랜서도 모든 면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프리랜서들도 힘들 때 넘어지지 않고 버틸 수 있는 지점들을, 패턴을 곳곳에 만들어 놔야 한다. 어떤 상황이 발생해도 한 군데에서라도 중심을 잡고, 정신을 차릴 수 있게. 어떤 이들은 이를 위해서 스스로 출퇴근 시간을 정해 놓고 일하고, 어떤 이들은 운동을 규칙적으로 하며, 어떤 이들은 밥을 반드시 일정 시간에 먹는다. 아니, 이런 요소를 몇 가지 이상 갖고 있지 않은 프리랜서들은 보지 못했다. 그건 아마도 그렇게 여러 장치가 있어야 하나가 무너져도 다른 곳에서 다잡을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처럼 프리랜서들도 스스로를 어느 정도 '일적인 틀'에 맞춰야 본인의 생계를 해결하는 일을 감당할 수 있다. 프리랜서라고 하지만, 스스로 어느 정도는 구속을 해야 일이 지속 가능하다는 것이다. 어쨌든 돈을 받고 하는 일이 아닌가. 남의 주머니에서 돈을 쉽게 빼 먹을 수 있는 일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누가 자신의 돈을 그렇게 쉽게 내주겠나?


나도 그런 패턴들이 몇 가지 있다. 거기에 최근에 버거킹에서의 모닝커피가 추가됐다. 일어난 지 몇 분 되지 않아 비몽사몽 중에 바들바들 떨며 버거킹에 가서 사람도 거의 없는 미국 냄새나는 넓은 공간에서 공복에 커피 한 잔을 부어 넣으면서 따스한 햇살과 함께 깨어나는 그 순간이 아직까지는 하루 중에 가장 행복하다. 그렇게, 버거킹은 내가 프리랜서로서 하루를 버틸 수 있게 해주는 힘이 되어준다. 그것도 월 4,500원에. 이 얼마나 훌륭한 가성비인가?


버거킹이 계속 그곳에 머물러줬으면 좋겠다. 조금 더 일찍 열어주면 더 고맙고. 9시는 조금 애매하긴 해서... 이 와중에 참 바라는 것도 많다. 


이 글을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브런치에서 다양한 주제의 글을 씁니다. 혹시라도 감사하게도 '구독해야지!'라는 생각이 드셨다면, 2021년에 제가 쓸 계획(링크)을 참조하셔서 결정하시는 것을 권장합니다. 브런치에는 '매거진 구독'이라는 좋은 시스템이 있으니, 관심 있는 매거진만 구독하시는 것이 나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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