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ETC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imon de Cyrene Dec 21. 2021

내가 아침에 걷는 이유

프리랜서로 사는 순간들. 4화

'걷는 건 운동이 되지 않는다'. 무슨 말인가 싶겠지만 대부분 운동 유튜버들이 하는 말이다. 틀린 말은 아니다. 그렇다고 100% 맞는 말도 아니다. 그 사이에 빠진 부분이 있다. 우리는 이 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들이 말하는 '운동'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해야 한다.


운동 유튜버들은 대부분이 '몸을 만드는데' 초점을 두고 있다. 그것도 잘, 효율적이고, 효과적으로. 다이어트에 대해 얘기할 때도 마찬가지다. 잘, 효율적이고 효과적인 게 가장 중요하다. 그런 맥락에서 봤을 때 걷기는 분명 엄청나게 운동이 되지는 않고, 당연히 걷는 것보단 달리는 것을 추천하는 게 맞다. 달리는 건, 속도에 따라 다르긴 하겠지만 일반적으로 걷는 것보다 두 배 전후로 칼로리를 소모하고, 자전거는 그보다 조금 더 많은 칼로리를, 줄넘기는 그것보다도 더 많은 칼로리를 소모하니 걷는 건 분명 효율적이거나 효과적인 운동 방법은 아닌 것으로 보일 수 있다. 운동하는 데 사용할 수 있는 시간이 한정되어 있는 우리 시대에는 더더욱 그렇다.


그런데 운동 유튜버들이 놓치고 있는 것이 있다. 그건 모든 사람들이  뛰거나, 자전거를 타거나, 줄넘기를   있는  아니란 것이다. 달리는  걷는 것보다   정도 칼로리를 많이 소모하면 뭐하나? 아무리 달리는  칼로리를  소모한다고 해도 10 뛰는 것보단 30 걷는   많은 칼로리를 소모한다. 자전거는  줄도 알아야 하고, 줄넘기도   사람은 알겠지만 운동을 어느 정도 이상 해본 경험이 없는 사람들은 30 동안  수가 없다. 걷기와 다른 운동을 비교하는 건 운동을 이미 어느 정도 이상 하는 사람들에게만 의미 있는 얘기다.


나도 달리는 걸 좋아하던 시절이 있었다. 회사에 다니면서 한창 운동 많이 하고 6개월에 거쳐서 17킬로 정도를 감량했을 때 나는 평일에는 매일 1시간 정도 웨이트를 한 후에 30분 정도 러닝머신에서 뛰고, 주말마다 1시간 정도를 달리곤 했다. 그렇기 때문에 달리기가 얼마나 중요한 운동인지도 알고, 달리고 나면 느껴지는 상쾌함과 성취감도 잘 안다. 그렇게 1년을 살고 나서 대학원에 가서도 한 동안 기숙사에 살면서 아침마다 캠퍼스를 한 바퀴씩 뛰고는 했으니까.


하지만 일상이 바빠지고, 운동량이 전반적으로 줄었을 뿐 아니라 살이 다시 서서히 오르면서 뛰는 게 힘들어졌다. 그렇게 힘들어지자 뛰는 건 물론이고 운동도 하기 싫어지더라. 그러다 어느 순간 위기의식이 느껴져서 다시 운동을 시작해서 헬스장, 수영장과 둘레길을 찾았지만 달라기는 재개하지 못했다. 달리는 것에서 느껴지는 쾌감이 있긴 하지만 격렬하게 달린 후에는 기본적으로 어느 정도 쉬어야 하는데 그 쾌감보다 힘들었던 기억이 더 크기도 했고, 개인적으로는 웨이트를 충분히 들면 그런 쾌감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에 굳이 뛸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대신 근력 운동할 때 드는 무게를 늘려 나가기 시작했다. 운동 유튜버들은 본인이 어느 정도 이상 운동을 하고, 이런 과정을 겪은 적이 없기 때문에 너무 쉽게 '걷기는 운동이 아니다'라고 단언하고 뛰거나 자전거를 타라고 하는 게 아닐까 싶다.


걷기는 우리가 생각하는 '인위적인 체력단련'적인 측면에서는 효율적인 운동은 아니지만 앉아 있거나 실내에 머무는 것보단 칼로리 소모량이 많기 때문에 분명 운동이 된다. 그리고 걷기는 달리기처럼 옷을 갖춰 입고 시간을 따로 빼서 뛸 만한 곳을 찾아야 할 필요도 없고 출퇴근 길에 한 두 정류장 전에 내려서 걸어도 되기 때문에 일상에서 실행할 수 있는 가장 간단하고, 효율적인 운동이기도 하다. 결정적으로 걷기가 운동이 된다고 장담할 수 있는 건, 내가 까미노를 걷고 온 후에 살이 굉장히 많이 빠졌었기 때문이다. 하루 세 끼를 다 먹으면서도 하루에 20-40km 정도를 한 달 정도 걸으니 살은 빠지더라. 다른 건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하지만 내가 걷기를 좋아하는 가장 큰 이유는 다른 데 있다. 달리기를 제대로 하면 숨이 차 오르고, 내가 어디까지 얼마나 뛰어야 한단 생각 때문에 운동 자체에만 집중해야 하고 이는 자전거를 타거나 등산을 해도 마찬가지다. 걷기는 다르다. 걷기는 덜 힘들고 칼로리 소모가 덜한 만큼 걸으면서 생각을 할 수 있다. 내가 까미노에서의 시간을 엄청나게 좋아했던 여러 이유 중 하나는 머리가 엄청 복잡했던 시기에 찾은 까미노에서 걷는 시간은 오롯이 내 안에, 그리고 내 생각에 집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도심에서는, 현실에서는 아무리 시간이 많아도 옆에서 치고 들어오는 것들 때문에 오롯이 내게 집중하기가 힘든데 까미노에서는 그게 무려 한 달 동안 가능했다.


걷기가 그런 '생각'에 도움이 된다는 건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사실이다. 박사학위 논문을 쓰는 과정이 여러 이유로 많이 힘들었고, 시간이 지체되기도 했는데 그때 가까웠던 교수님께서 해주셨던 의외의 조언이 있었다. 그 교수님께서는 '너 써 오는 거 보면 이미 자료는 충분히 봤어. 이 정도 심사받으러 오는 애들은 더 이상 볼 자료는 없어. 그러니까 더 이상 자료 보려고 하지 말고 걸어. 걸으면서 생각들을 정리해. 그러다 보면 돌파구가 나올 거야'라고 조언해 주셨었다. 너무 절박했기에 일단 교수님들의 조언은 들어야 했고, 그렇게 걷다 보니 실제로 내 논문의 흐름이 정리되기 시작했고 나는 다음 학기에 학위논문 심사를 통과했었다.


내게 걷기는 운동이자 하루를 정리함과 동시에 오늘을 준비하는 중요한 루틴이다. 하루를 정리하는데 왜 아침에 걷냐고? 일이 많으면 저녁에 하루를 정리할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회사원들은 퇴근을 해서 집에 오면 늘어지고, tv를 보거나 가족과 대화를 나누면서 하루를 정리하고 감정을 추스를 시간이 있지만, tv를 모닥불 삼아서 멍 때릴 수 있지만 프리랜서들은 일이 많으면 그게 불가능하다. 프리랜서들은 저녁을 먹은 후에도, 밤늦게까지, 때론 새벽까지 납품하기 위해 일을 해야 한다. 그러다 보면 바쁠 때는 일을 하고 하루를 정리하거나 마음을 추스를 에너지가 남아있지 않아서 그대로 침대에 시체처럼 뻗을 때가 꽤나 많다. 특히나 나처럼 밤에 집중이 잘 되는 사람들은...


그런 상태로 뻗은 후에 아침에 일어나 곧바로 일을 할 수 있을까? 물론 가능할 때도 있다. 하지만 사람은 모두 어느 정도의 쉼이 필요하고, 특히 프리랜서들은 옆에서 누가 틀이나 일정을 잡아주지 않기 때문에 자신이 계속 자신을 돌아보면서 살아야 한다. 자신의 정신적, 신체적 건강도. 어느 정도 이상 규모가 되는 회사들은 1년에 한 번씩 건강검진도 시켜주지만 프리랜서는 그 모든 게 오롯이 본인의 부담이고, 정신과 신체적 건강은 순간순간 돌보지 않으면 그 피로가 누적되어 언젠가 한 번에 크게 터지게 되어있다. 그래서 프리랜서들도 가능하면 주기적으로 자신의 정신과 신체적 건강을 돌아보고 돌보는 시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프리랜서들은 그걸 본인의 계획과 의지대로 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나 같은 경우 일종의 '납품'을 하는 일을 하다 보니 데드라인이 '갑' 또는 '을'님이 '월요일에 출근했을 때 확인할 수 있게'로 정해지는 경우가 많고, 이는 주말에 일해야 한단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 보니 주말은 오롯이 쉴 수 있는 경우가 많지는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도 주말에 최대한 쉬기 위해 노력은 하지만 주말을 100% 쉰 적은 거의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렇기 때문에 평일에도 나 자신을 돌 볼 시간이 필요한데, 저녁에는 그게 담보되지 않으니 나는 보통 아침에 일어나서 가능하면 공복 상태로 걷는다. 걷기 전에 커피가 필요한 것도 공복 상태에 카페인을 몸에 넣고 걷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의 차이가 상당히 크기 때문이다. 지난 주말만 해도 아침에 벌벌 떨면서 걸으러 나갔는데 버거킹에서 커피 한 잔을 마시고 나섰더니 몸이 한결 따뜻해져서 걷기가 편해지더라.


그래서 난 아침에 걸으면서 생각을 정리한다. 어제 한 일들을 돌아보고, 오늘 해야 할 일들을 정리하며, 중장기적으로 해야 할 일들과 일의 우선순위에 대해 생각한다. 그러면서 내 마음을 돌본다. 괜찮다고, 잘 가고 있다고. 그렇게 1시간에서 1시간 반 정도 걷고 나서 집에 들어와서 씻고 나면, 곧바로 전투 모드로 전환이다.


하지만 아침마다 걸을 수 있는 건 아니다. 때로는 전날 정말 너무 일을 많이 했거나 며칠간 에너지 소모가 많아서 아침에 도저히 일어나 지지 않을 때가 있다. 내가 버거킹 커피를 구독해 놓고 걸을 유인을 소소하게나마 만들어 놓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어나 지지 않을 때가 있다. 그럴 때는 우선 몸을 추스르고, 해야 할 일들을 한 후에 오후 즈음에 한 번 걸으러 나선다. 코로나가 확산된 이후에는 그런 시간이 더더욱 필요하게 되었는데, 이는 그러지 않으면 집에서 한 발도 밖으로 내딛지 않는 경우가 생기고 그게 이어지면 우울감이 찾아오기도 하기 때문이다.


회사가 내 체질에 맞지 않다는 걸 알지만, 난 기본적으로 내 생각을, 나 자신을 표현하며 살아야 하는 사람임을 알지만 회사가 그리워질 때가 가끔 있다. 회사에 다닐 때는 나를 힘들 게 하는 선배도, 짜증 나게 하는 다른 부서 사람도 있었지만 함께 그런 사람들을 욕할 선후배, 동기들이 있었다. 점심을 먹으면서 그러기도 하고, 상황이 되면 중간에 잠시 내려가 커피를 마시면서 대화를 하기도 했다. 그런 시간들이 내가 회사생활을 버티는 데 큰 도움이 되었고, 특히 입사동기들과 그런 시간을 가질 때면 공채로 회사에 입사한 게 얼마나 큰 특권이고 행복인 지를 느꼈다.


프리랜서는 일상에서 그럴 수 있는 상대가 대부분 없다. 기존에 알던 지인들도 프리랜서가 아니라면 프리랜서의 고충을 이해하지 못하고, 이제는 회사원이 아닌 나도 회사원의 감정에 잘 공감하지 못하기 때문에 지인들과 대화를 통해 공감대를 형성하는데도 한계가 있다.


내게 걷기는 그런 프리랜서의 한계를 극복하게 해주는 중요한 요소 중 하나다. 언제부터 걷는 걸 좋아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내가 기억하는 나의 가장 오래된 걷기는 2006년도에 삼성과 일간스포츠에서 대학생을 선발해서 올림픽 현장에 취재하도록 보냈던 '애니콜 리포터' 활동 시기였다. 당시에 나는 끊임없이 걷고, 걸으면서 토리노를 온몸으로 느꼈고 그 이후에도 여행을 가면 항상 그 도시를 걷는 걸 좋아했다. 뉴욕에 모의유엔 대회에 참여하러 가서도, 졸업 후에 스페인에 10일 정도 여름휴가를 가서도 나는 항상 걸었다. 심지어 회사에 다닐 때는 일주일 정도 휴가를 내고 그중 절반은 서울 시내를 걸으면서 이곳저곳을 다니기도 했다.


그 절정은 까미노일 것이다. 당시에 돈을 아끼기 위해 30일 in, out 일정의 저렴한 비행기표를 결제해서 떠나 까미노에서는 25일, 파리에서 5일을 보냈는데 난 그 기간 동안 걷고, 또 걸었다. 스페인에서도, 파리에서도. 그러면서 내 과거와 미래에 대한 많은 생각들을 했던 기억이 지금도 선명하게 난다. 까미노에서 돌아온 후에는 가끔씩 걸을 때 까미노에서의 느낌이 난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그 느낌을 느끼고 싶어서 걸을 때도 많다. 그런 느낌이 살아날 때면 마치 내가 과거에 들었던 음악을 들으면 그때의 감정과 기억들이 살아나듯이, 까미노에서 했던 생각과 경험들이 살아나고, 그 기억들이 내가 조금 더 버틸 수 있게 해 준다.


단순히 '그때 참 좋았었지...'라는 식의 생각과 기억이 아니다. 그렇게 걷다 보면 '까미노에서는 가방 하나 메고 한 달을, 그것도 비행기표 포함해서 월 300백만 원으로 그렇게 행복하고 살았는데, 그에 비하면 지금 나는 가진 게 얼마나 많은데, 내 앞에 가능성이 얼마나 많은데 이렇게 힘들어 하나...'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그런 생각들은 나를 일으켜주는 힘이 된다. 까미노로 갈 때 10년 넘게 넣어왔던 주택청약통장을 해지했지만, 그게 아깝지 않은 것은 까미노에서 보낸 시간이 그때부터 지금까지 무려 8년을 버틸 수 있게 해 줬고, 앞으로도 그럴 것을 알기 때문이다.


나는 그래서 걷는다. 걷는 게 몸과 마음에 모두 힘이 되기 때문에. 나는 걸을 수밖에 없다.


이 글을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브런치에서 다양한 주제의 글을 씁니다. 혹시라도 감사하게도 '구독해야지!'라는 생각이 드셨다면, 2021년에 제가 쓸 계획(링크)을 참조하셔서 결정하시는 것을 권장합니다. 브런치에는 '매거진 구독'이라는 좋은 시스템이 있으니, 관심 있는 매거진만 구독하시는 것이 나을 수 있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버거킹 직원들이 나에 대한 내기를 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