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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mon de Cyrene Jan 02. 2022

남들의 점심, 내겐 아침

프리랜서로 사는 순간들. 5화

제천에 사시는 부모님은 아침식사를 꼬박꼬박 하신다. 당뇨 때문이기도 하지만 습관이시기도 하다. 어머니께서는 평생 아버지의 아침식사를 준비하셨고, 아버지는 정년퇴직하실 때까지 그것을 사뭇 당연하단 듯이 항상 아침식사를 하곤 하셨다.


아버지만 그러신 것이 아니다. 지금까지 내 인상에 가장 강렬하게 남아있는 '아침식사' 논쟁은 친할아버지의 아침식사셨다. 아주 어렸을 때, 내가 초등학생일 때 친할아버지와 몇 년을 같이 살았는데 그때 친할아버지는 아침식사를 항상 똑같은 것을 드셨다. 내가 기억하는 게 맞다면 마가린에 구운 빵에 마요네즈와 케첩에 버무린 양상추...라고 부르는 샐러드였다. 다른 사람들은 뭘 먹든지 친할아버지는 아침을 그렇게 드셨고, 친할아버지께서는 본인이 드실 음식 재료를 본인이 사 오셔서 어머니께서는 몇 년이 지나 아버지와 부부싸움을 하실 때면 지난 세월 중 섭섭한 것들을 쏟아내시면서 그 시간이 얼마나 힘들고, 버겁고, 부담스러웠는지 말씀하시는 걸 들었던 기억이 있다.


그렇다고 해서 또 아침밥을 먹지 않는 게 어머니를 편하게 하는 것도 아니었다. 군대에 가기 전에 아침으로 무엇을 먹었는지가 기억나지 않지만, 제대한 후부터 나는 아침식사를 거의 하지 않았다. 아침에 헬스장에 가서 운동을 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때는 공복 운동이란 개념도 잘 몰랐고, 그저 아침을 먹고 가면 운동이 잘 안 되고 힘들어서 아침을 먹지 않고 학교 안에 있는 헬스장에 가서 '쇠질'을 하고 나서 뭔가를 먹었다.


학부생일 때 아침으로 무엇을 먹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하지만 회사생활을 할 때부터는 어렴풋이 기억이 있다. 내가 다니던 회사는 사옥 지하 1층에 호텔시설 같은 헬스장이 있었고, 난 항상 6시 반에 일어나 회사에 7시 반이 조금 안되게 도착해서 1시간 조금 넘게 운동하고 사무실로 올라가곤 했다. 아침을 싸서. 샐러드류나 닭가슴살. 어머니는 '애가 회사 가서 이젠 뭐 해 먹일 일 없겠다 싶었더니 도시락을 싸서 다닌다'며 투덜거리셨다. 그래도 9개월 정도에 거쳐서 17킬로를 빼고 났더니 아무 말 없이, 기꺼이 도시락을 싸주시더라.


그 후엔 아침밥을 거의 먹지 않았는데, 아침밥을 먹지 않으면 먹지 않는 대로 어머니는 짜증을 내셨다. 아침을 먹어야 건강하다며, 아침을 든든하게 먹어야 한다며 말이다.


자취를 할 때 아침식사를 아예 안 한 것은 아니다. 회사를 다닐 때부터는 '아침 공복 운동'이란 개념이 자리를 잡아서 항상 공복에 가벼운 운동을 하고 나서 과일이나 빵 종류로 아침식사를 하곤 했다. 자취를 할 때는 꽤나 잘 챙겨 먹기도 했는데, 옥탑방에서 자취를 하던 시절에는 남자 여섯 명이 놀다 자고 난 다음날 아침에 내가 커피, 과일, 베이글, 계란 프라이를 해 먹여서 보낸 기억이 있다. 그때는 항상 아침운동으로 1시간에서 1시간 반 정도 걷고 와서 아침을 그렇게 해 먹었는데 당시에 자고 갔던 애들이 '왜 뉴요커 코스프레하냐'며 핀잔을 줬던 기억이 있다.


사실 아침식사를 안 하려고 안 한 것은 아니다. 그리고 냉정하게 얘기하면 내가 아침을 완전히 공복으로 버텨낸 시간은 거의 없다. 많이 어렸을 때는 커피로 아침을 대신하기도 했고, 보통은 과일에 조금 배가 고프면 빵까지 먹기도 했다. 하지만 회사에 다니면서 뺐던 살이 조금씩 원상회복을 하면서 아침식사를 하지 않는 날들이 많아졌고, 그때마다 어머니는 아침식사를 해야 살이 안 찐다는 기적적인 논리를 펼치시곤 했다.


틀린 말은 아니다. 아침식사를 하고, 그 포만감을 안고 든든하게 먹다 저녁을 안 먹거나 적게 먹으면 살이 덜 찌거나 빠질 수 있다. 일단 아침식사를 하면 점심도 포식하지 않을 확률이 높고, 점심을 포식하지 않고 배가 많이 고프지 않으면 저녁도 소식할 수 있으니까. 반면에 아침밥을 먹지 않으면 점심에 포식을 하고, 저녁에 배가 불러서 먹지 않다가 야식을 먹고 곧바로 잠드는 패턴이 생길 수 있다. 아침식사를 하는 게 살이 찌지 않는단 건 그런 원리에 의한 것이지 아침밥으로 먹은 건 살로 가지 않는단 건 아니다. 아침을 먹은 후 점심과 저녁도 많이 먹으면 살은 더 찌게 되어있다.


이랬던 나의 패턴은 박사학위 논문을 쓰고 프리랜서로 살면서 어느 순간 아침을 아예 거르는 형태로 자리 잡았다. 내가 워낙 저녁에 일이 가장  되는 스타일이다 보니 박사학위 논문을   나는 툭하면 새벽 2-3시까지 논문을 쓰곤 기 때문이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심사일정에 맞춰서 수정을 하려면 논문이 써질    있을 때까지 버텨야 했기 때문에. 그러다 보니 로스쿨에 가서까지도 아침형 인간이었던 나는 박사학위 논문을 면서 올빼미가 되었다.


박사학위를 받고 프리랜서로 살면서도 마찬가지. 마감이 있으면, 아니 마감이 없어도 글이나 영상을 만드느라 빨라야 1-2시, 늦으면 3-4시 정도에 잠이 들었고, 잠은 또 잘 자는 편이라 빨리 일어나야 8-9시에 일어나는 게 패턴이 되더라. 회사원으로 사신 아버지, 회사원의 아내로 평생을 사신 어머니와 항상 회사를 다녔고 최근에는 새벽 러닝에 중독된 동생과 살다 보니 왠지 모르게 나도 6-7시에 일어나 공복에 운동을 하고 싶긴 하지만 그런 시도를 할 때면 잘 버티면 1주일 정도 견디다 다시 패턴이 원상 복구되었다. 그러다 아침에는 일을 하지 않기로 마음을 놔 버리니 8-9시 사이 기상은 완전히 일상이 되어버렸다.


8-9시에 일어나도 가능하면 걸으러 나간다. 어머니 표현을 빌리자면 '남들은 다 일하러 갈 때 운동복을 입고' 쭐래쭐래 아파트 단지를 지나 버거킹으로 향해 모닝커피를 하고, 뒷동산을 살포시 올랐다 내려와 집에 오면 1시간 반. 그러면 10시 반에서 11시 사이. 대충 씻고 나면 남들이, 아니 나도 회사 다닐 때 점심식사를 하던 시간이다.


그때 아침식사를 한다. 때로는 집에서, 때로는 돌아오는 길 버거킹에서, 때로는 내가 사용하는 공유사무실 지하에 있는 구내식당에서, 약속이 있으면 지인을 만나서.


나와 같은 공간에서 식사를 하는 사람들에겐 점심식사겠지만, 내겐 엄연히 아침식사. 언젠가부터 나는 그렇게 꽤나 헤비 한 아침식사를 하며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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