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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mon de Cyrene Jan 19. 2022

혼밥은 못했었는데 이젠...

프리랜서로 사는 순간들. 6화

혼밥을 할 일이 별로 없었다. 언제부터 본격적으로(?) 혼밥을 처음 했는지를 분명하게 기억할 정도로 난 누군가와 함께 밥을 먹는 것에 익숙했다. 그 전에도 가끔씩 집에서 혼밥을 한 적은 있지만 식당에서 혼밥은 대학원에 진학하기 전까지는 거의 한 적이 없었다.


학부시절에 나는 동아리 죽돌이였다. 수업이 있거나 도서관에 있지 않으면 나는 항상 동방에서 뒹굴대다 선후배들이랑 밥을 시켜 먹거나 학관에 가서 밥을 먹었다. 선배들이랑 먹을 때는 얻어먹고, 함께 밥 먹는 사람들 중 내가 선배축에 속하면 밥을 사주는 게 당연했고, 그게 상식이라 생각했다. 


회사에 가서도 마찬가지. 다른 사람들은 팀원들끼리 밥을 먹는 경우가 많았지만 간 큰 막내였던 나는 다른 팀에서 일하는 동기들과 돌아가면서 약속을 잡아서 항상 점심 약속을 따로 잡아놨었다. 나와 일하는 선배나 우리 팀 팀장님이 '저 자식은 뭐 저렇게 약속이 많아?'라며 짜증을 낼 정도로. 부득이한 상황에는 같은 부서 사람들과 밥을 먹었지만 가능하면 따로 약속을 잡고 먹었다. 내 달력은 항상 점심 약속으로 빽빽하게 차 있었다. 최소 향후 1-2주 정도는. 


학부시절에도, 회사에 다닐 때도 그 식사 시간이 유일한 낙이었다. 학부시절에는 밥 먹을 때만큼은 학점과 미래에 대한 걱정을 하지 않고 가벼운, 시시껄렁한 얘기들을 할 수 있어서 좋았고, 회사원일 때는 하루 중에 유일하게 숨을 쉬고 눈치 보지 않으면서도 가끔 팀 사람과 회사 욕을 편하게 할 수 있는 점심시간이 가장 행복했다. 무엇을 먹는지도 중요했지만, 그보다는 그 시간에나마 현실에서 일탈하고 공감하면서 대화할 수 있는 게 좋았다. 


그랬다 보니 학부와 다른 대학의 대학원에 진학해서 접한 그 학교의, 대학원의 문화는 충격적이었다. 식당에 왜 그렇게 이어폰을 꼽고 혼자 밥 먹는 사람들이 그렇게 많은지... 그리고 대학원 사람들도 본인이 할 공부가 바쁘다 보니 식사를 하면서도 대화다운 대화가 오가지는 못했다. 다른 전공 공부를 하는 것도 힘들었지만 돌이켜보면 숨 쉬고 긴장을 푸는 시간이 없어서, 밥을 먹는 시간마저 같이 먹어도 뭔가 혼자 먹는 기분이 들곤 했던 시간들로 인해 더 힘들었던 것 같을 때가 있다. 


그런 패턴은 박사과정에 와서도 마찬가지. 회사에 다닐 때는 그렇게 다양한 사람들과 밥을 먹었지만 이제는 사람이 그렇게 많지도 않았고, 각자 공부하고 글을 쓰는 패턴이다 보니 시간을 맞추기 힘들 때도 있었다. 또 항상 보는 사람들이, 똑같은 패턴으로 살다 보니 딱히 대화할 거리도 없어서 박사과정에서의 식사시간은 뭔가를 억지로 만들어 내는 것의 연속이었던 느낌을 받을 때가 많았다. 


그보다 혼밥이 더 힘들었던 시절이 있었다. 박사과정 중에 파트타임으로 일했던 마케팅 대행사에서 일했는데, 그 회사에서는 내가 피해야 하는 상사의 위치에 있게 되더라. 학부시절부터 알던 동생이 대표로 있는 회사다 보니 내가 나이도 제일 많았고, 직급과 직책적으로는 내가 넘버 쓰리인 덕분에(?) 나는 자연스럽고 당연하게도 밥을 같이 먹고 싶지는 않은 사람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같이 일하는 친구들에게 밥을 같이 먹는 것을 강요하는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았고, 그 친구들이 밥을 먹을 때만큼은 편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보니 거의 관리직에 해당했던 세 사람이 밥을 먹거나 혼자 밥을 먹게 되었다. 그 회사에서 보낸 1년 반 중에 혼밥을 할 때면 항상 마음이 복잡했던 기억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회사에서 일했던 기간이 많은 배움의 시간으로 남아있는 것은 대기업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던 내가 몰랐던 세계가 있다는 것을 그 회사에서 일하면서야 알았기 때문이다. 내가 그 회사에서 종종 혼밥을 하거나 그나마 밥을 같이 먹을 때도 관리직들끼리 자주 먹게 된 것은 다른 친구들이 도시락을 싸오는 경우가 많았던 영향도 있었다. 중소기업은 아무래도 임금이 적을 수밖에 없는데 그 회사는 강남 한복판에 위치해 있다 보니 밥값이 부담스러워서 항상 도시락을 사 오는 친구들을 보면서야 비로소 나는 내가 얼마나 많은 것을 누리면서 살아왔는지를 깨달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평, 불만으로 가득 차 있던 과거의 내 모습이 부끄럽게 느껴지더라...


지금 돌아보면 그때는 그나마 나은 편이었다. 그때는 '이보다 마음이 무거운 혼밥은 없을 거야'라고 생각했었지만 프리랜서로 살았던 지난 3년 간의 혼밥은 그때의 혼밥보다 더 힘들 때가 많다. 이는 그때는 혼밥을 할 때도 있었지만 관리직인 나머지 두 사람과 밥을 먹을 때도 있었고, 같이 일하는 친구들이 끼워주면 함께 밥을 먹기도 했기 때문이다. 프리랜서로 산 이후에는 혼밥이 예외가 아니라 기본이 되어버렸다. 


프리랜서라고 해서 다 그런 것은 아니다. 프리랜서들 중에서도 출근을 하는 곳이 있는 사람들도 있고, 사람들과 만나면서 오프라인에서 협업을 하는 사람들은 오히려 회사원보다 더 다양한 사람들과 식사를 하기도 한다. 그렇게 일하는 프리랜서들은 또 그 나름대로의 힘듬이 있을 것이다. 프리랜서가 함께 일하는 사람들과 밥을 먹는다는 것은 대부분 돈을 주는 사람들과 식사를 한다는 의미고, 그런 식사자리가 마냥 편하기만 할 수는 없으니까. 


그와 달리 모든 일을 결국 나 혼자 하는 프리랜서들은 일주일에 다른 사람들과 밥을 먹는 횟수가 극히 제한되어 있다. 이는 내가 하는 일들이 딱히 사람을 만나지 않고도 진행될 수 있는 게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드라마 작가팀 일의 경우 여전히 오프라인 회의를 하지만 나는 거의 원격으로 일을 하다 보니 카톡이나 이메일로 일을 주고받게 되는 경우가 많고, 마케팅 회사에서 의뢰받는 글도 이메일, 카톡이나 전화로 기획에 대한 얘기를 듣고 글을 주고받게 된다. 그나마 유튜브 촬영은 오프라인에서 하지만 그건 월 2회 정도만 촬영을 진행한다. 리서치와 연구는 내 전공의 특성상 업무가 분담되고 개인이 시간에 맞춰서 자신이 맡은 부분을 완성하는 형태로 진행된다. 


코로나로 인해 일들이 더 이렇게 진행되는 면도 있지만, 인터넷을 언제 어디에서나 할 수 있는 세상에서 프리랜서들은 혼밥이 일상이 될 확률이 매우, 매우 높다. 


사실 혼밥 자체가 큰 문제가 아니다. 20대 중반의 내게 '혼밥'에 대해 물어본다면 '그건 인성에 문제 있는 사람들이 하는 거 아니에요?'라고 되물었겠지만 사실 회사에 다닐 때도 나는 가끔씩 약속이 있다고 거짓말을 하고 혼자 밥을 먹은 적도 있다. '이 회사에 얼마나 다녀야 하나'라는 고민으로 머리가 가득 차 있고, 대학원 합격자 발표가 코 앞일 때는 누구와도 밥을 먹고 싶지 않아서 종종 그렇게 혼자 밥을 먹곤 했다. 그리고 이제는 혼자 천천히 밥을 먹으면서 생각과 마음을 추스를 수 있는 시간을 갖는 것의 효용성도 너무 잘 알기 때문에 혼밥 자체가 이상하거나 그 자체가 비참하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주로 혼밥을 하면서도 한 번씩 마음껏 혼밥을 할 수 있는 이 환경에 감사할 때도 있으니까. 


그런데 '주로' 혼밥을 한다는 것은 단순히 '밥을 혼자 먹는다'는 의미가 아니다. 주로 혼자 밥을 먹는다는 것은 곧 내 일이 막혀 있을 때, 내가 힘들 때 누군가와 그 이야기를 공유할 상대가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일을 하는 틀 안에서 누군가와 밥을 먹는단 것은 비록 제한적으로라도 그 사람과 일적인 면에서 공감하고 공유할 수 있는 게 있단 의미지만, 거의 혼자 밥을 먹는단 것은 일과 그 일에서 발생하는 감정들을 공감하고 공유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단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 보니 일하면서 억울하거나 짜증 나는 일이 생기면 비슷한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 전화를 걸어 불만을 토로하게 된다. 작년 연말에 갑자기 프로젝트가 날아갔다는 통보를 받은 후에는 그 통보를 하는 방식에 당혹스러워 프리랜서 작가로 일하는 형에게 전화를 걸어 '내가 이러는 게 이상한 거야?'라고 물었고, 드라마 작업 중에 속앓이를 하게 되는 일이 생겼을 때는 지난번 드라마 때 같이 일했던 분과 한참 통화를 하며 징징댔다. 또 연구를 하고, 논문을 쓰는 것에 대해서는 주기적으로 연락하는 형과 종종 통화를 하게 된다. 


'그럴 사람이 있으면 되는 것 아냐?'라고 물을지도 모르지만, 꼭 그렇지는 않다. 그렇게 누군가에게 쏟아내야 할 정도의 감정상태라는 건 이미 뭔가 많이 누적된 상태란 것을 의미하고, 그렇게 누군가에게 쏟아내고 나면 고마움과 미안함이 함께 생긴다. 솔직히 내 일을 이해해 줄 수 있는 사람은 또 나와 비슷한 상황에 있을 텐데, 거기에다 내 힘든 일을 쏟아내고 나면 보통은 미안한 마음이 더 크게 생긴다. 또 그렇다 보니 정말 큰 일, 감당하기 힘든 일이 아니면 보통 나 혼자 안고 감내하게 되더라.


그런데 그렇게 작은 것들이 차곡, 차곡 쌓이다 보면 나도 모르게 지쳐 갈 수밖에 없다. 작년 연말부터 지금까지 겔겔 대며 해야 하는 일도 제대로 못하는 시간을 좀 보내고 있는데, 그 과정에서 지난 3년을 돌아보니 이건 특정한 일이 문제가 아니라 그때그때 풀지 못하고 나도 모르게 야금야금 누적되어 왔던 피로와 감정이 한 번에 몰려온 듯하더라. 그렇다고 해서 그 과정에 내가 누군가와 그에 대한 대화를 하고, 공감을 받으면서 일상을 공유할 수 있었던 것도 아니다. 혼자 프리랜서로 하는 일들은 프리랜서로서 나만 아는 일들이니 내가 오롯이 혼자 책임질 수밖에 없다. 


혼밥을 먹는단 것은 이처럼 단순히 '밥을 혼자 먹는다'는 것을 넘어 '혼자 모든 것을 감당해야 한다'는 의미를 갖는다. 그리고 돌이켜보면 그나마 내가 두 번의 회사생활을 버틸 수 있었던 것은 혼자 밥을 먹을 때도 있었지만 함께 밥을 먹으며 '우리'가 공유하는 세계에 대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더라. 그때는 그게 감사까지 할 일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는데, 당연한 것이라 생각했는데, 아니 당연하다고 생각할 생각조차 하지 못할 정도의 일들이었는데 지금 돌이켜보면 그렇게 공유하는 삶의 영역이 있는 사람들과 공감하며 대화할 수 있는 시간들이 얼마라도 있단 것은 감사할 일이었다. 


그렇게 혼밥을 하지 못하고, 이해도 못했던 내가 프리랜서로 살면서부터 혼밥에 적응하는 것을 넘어 혼밥이 일상이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능하면 점심을 집에서 먹고 나가고, 저녁은 운동 후에 먹는 건 어쩌면 식당에서 매일 혼밥을 하는 삶은 너무 외롭게 느껴지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혼밥을 한다는 건 단순히 혼자 밥을 먹는 것이 아니다 보니 나도 모르게 내 마음을 그렇게라도 보호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 글을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브런치에서 다양한 주제의 글을 씁니다. 혹시라도 감사하게도 '구독해야지!'라는 생각이 드셨다면, 2021년에 제가 쓸 계획(링크)을 참조하셔서 결정하시는 것을 권장합니다. 브런치에는 '매거진 구독'이라는 좋은 시스템이 있으니, 관심 있는 매거진만 구독하시는 것이 나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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