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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mon de Cyrene Jan 28. 2022

프리랜서의 약속 잡는 법

프리랜서로 사는 순간들. 7화

30대 초중반까지는 주말마다 약속이 있었다. 심지어 중요한 시험을 준비할 때도 주 1회는 사람을 만났다. 아니, 그때는 특히 그랬다. 다양한 활동을 했고, 속했던 곳이 많아 아는 사람들이 많기도 했지만 일주일 동안 말을 몇 마디 하지 않고 책 보고, 운동하고, 자는 게 전부인 삶을 살다 보니 사람을 만나지 않으면 우울증에 걸리거나 정신질환에 시달릴 것 같아서 약속을 반드시 잡았다. 


그런데 30대 중반이 넘어가면서부터 약속을 잡기가 힘들어졌다. 가장 큰 이유는 지인들이 결혼을 넘어서 아이까지 갖게 되었기 때문이다. 친구들이 결혼을 했어도 그나마 아이가 없을 때는 한 달 전에 약속을 잡으면 만날 수 있었다. 그렇게 약속을 잡아도 갑자기 캔슬이 될 때도 있었지만 그래도 그런 식으로라도 친구와 지인들을 종종 만났다. 그런데 친구와 지인들이 아이까지 갖게 되면서 만나기가 힘들어졌다. 주중에는 모두 일하다 보니 주말만큼은 육아를 부부가 함께 하고, 가족끼리 외출을 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그게 아쉬웠지만 그 아쉬움은 그리 오래가진 않았다. 새로 만날 사람이 생겼기 때문이 아니다. 나이가 들수록, 서로 다른 길을 가게 될수록 친했던, 가까웠던 사람과도 대화가 점점 통하지 않게 된단 것을 알게 됐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면 그럴 수밖에 없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중심적이고, 자신의 생활에 가장 영향을 많이 받을 수밖에 없다. 그리고 자신의 삶에서 보고, 듣고, 느끼고 접하는 것에 대해 관심도 더 많고 익숙할 수밖에 없다. 연인이나 부부, 가족이 다툼이 나는 것은 연인, 부부, 가족이라는 틀이 존재만으로 서로를 가깝게 엮어주는 것이 아닌데, 특별한 관계로 틀을 만든 만큼 서로 더 관심을 갖고 일상을 공유하며 대화를 해야 가까운 관계가 유지될 수 있는데 그런 노력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나마 연인, 부부, 가족은 그런 노력을 할 이유나 유인이라도 있지, 친구나 지인들은 그런 유인도 상대적으로 작다. 그렇다 보니 다른 업계에서, 다른 패턴으로 사는 사람들은 점점 대화를 나누고 공감할 지점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그렇다 보니 사람을 만나는 게, 노는 게 덜 재미있을 수밖에 없다. 일단 기혼자와 싱글은 주된 관심사부터가 다르다. 기혼자는 배우자, 본인과 배우자의 부모님, 육아가 될 수밖에 없는 반면 싱글들은 자신의 일, 조금 더 확장되면 연애와 결혼 정도가 주된 관심사일 수밖에 없다. 그렇다 보니 기혼자와 싱글이 만나서 즐겁게 하는 대화는 자신들이 공유하는 과거에 국한되는 경우가 많다. 아마 최소 몇 번에서 많으면 수 십 번은 했을 얘기들을... 그리고 기혼자들끼리 만나면 결혼생활, 싱글들은 연애와 결혼 정도 외에는 서로 공감하며 대화할 소재가 점점 줄어든다. 같은 업계에서 일하면 거기에 일 얘기 정도. 그런데 우리가 친구나 지인을 일 얘기하려고 만나는 건 아니지 않나? 


이런 상황에서는 주말 약속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안 잡는 것 반, 못 잡는 것 반 정도의 이유로. 


하지만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고, 극단적으로 내향적인 사람이 아닌 이상 우리는 다른 사람, 친한 사람과 만나서 현실에서 잠시나마 이탈해서 대화를 하고, 어울려야 할 니즈가 있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내 경험에 의하면 사람은 그래야 외로움과 우울증에 시달리지 않고 긍정적인 호르몬 작용이 작용하여 충전해서 다시 본인 일에 더 집중할 수 있더라. 일주일 내내 말을 거의 안 했던 수험생 시절에는 지인들을 만나면 나도 모르게 계속 말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곤 했고, 그러고 나면 만난 사람들에 대한 미안함과 고마움이 교차하곤 했다. 


그런데 프리랜서 생활도 비슷하다. 일하는 사람들 외에는 사람을 만날 일이 거의 없고, 그나마도 코로나로 인해 같이 일하는 사람들도 볼 일이 거의 없다. 여기에 더해서 내가 하는 일은 거의 온라인으로 메일, 카톡, 잘해야 전화로 커뮤니케이션을 하면 되다 보니 일부로 약속을 잡지 않으면 수험생 때와 비슷한 수준으로 거의 말을 하지 않으며 산다. 이런 삶을 사는 사람은 본인의 정신건강을 위해서라도 약속을 잡아야만 한다. 


그러나 앞에서 설명했듯이 지인들이 거의 결혼을 한 후에는 주말이나 저녁에 약속을 잡는 게 쉽지 않다. 특히 아이까지 있는 사람들은. 그래서 약속을 주로 평일 점심에 잡고, 내가 그 사람에게 맞춰서 움직인다. 나는 노트북만 있으면 어디에서든 일을 할 수 있으니까. 


그렇다 보니 약속은 길어야 1시간에서 1시간 반 정도.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모르겠지만 이제 서로 조금은 많이 달라진 지인들과는 그 정도 시간이 적절하다. 서로의 근황을 묻고, 과거를 짧게 추억하면서 너무 멀지 않은 미래에 다시 만날 걸 기약하면 딱 그 정도 시간이면 되니까. 


그 정도 시간이면 적절할 수 있는 또 다른 이유는 사실 그렇게까지, 내가 상대 사무실이나 거주지 인근으로 이동하면서까지 만나는 사람들은 보통 어느 정도 이상 좋아하고, 보고 싶고, 신뢰관계가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서로 편하기 때문에 오랜만에 만나도 즐겁고, 편하기 때문에 그 시간 안에 가드를 내려놓고 서로에게 부담스럽지 않을 만큼 현실의 힘듬을 털어놓으면 길게 설명하지 않아도 알아듣는 사람들. 나이가 들고, 시간이 갈수록 그런 사람들을 주로 계속 보게 된다. 어렸을 때는 매주 약속이 있는 게, 다양한 사람을 많이 아는 게 좋았는데 이젠 그렇게 편한 사람들을 만나는 게 좋아지더라. 만났을 때 새로움을 느끼고 배우기보단, 편하게 쉬는 느낌을 주는 사람이 좋아서. 


약속 시간이 길어질 때도 있다. 오랜만에 만나는 굉장히 친했던 지인, 친구, 후배를 만나면 약속 시간이 길어진다. 얼마 전에도 그랬다. 이직이 확정된 후배가 1달 정도 쉬고 있었고, 이제 곧 두 아이의 아빠가 되는 후배에게 '애아범들은 모르는 성수 구경시켜줄게'라며 성수에서 보기로 했다. 나는 늘 가는 익숙한 곳이었지만 회사, 집만 오가는 후배에게 코에 바람을 좀 넣어주고 싶었다. 아니나 다를까 후배는 낮술을 하고 싶었다며 텐동에 맥주를 한 잔 한 후, 성수에서 핫한 카페의 시그니처 음료를 마시고 3시간 머물다 집에 갔다. 술을 잘 마시지 못하다 보니 취기가 오른 상태로.


그런 경우가 아니라면 좋아하는, 정말 가까운 사람과 대낮에 만나 꽤나 오랜 시간을 진지한 대화를 나누기도 한다. 아주 가끔이긴 하지만, 정말 친하고 서로 아끼는 사이에선 그런 약속을 잡는다. 역시나 대부분 평일 낮에. 


다만 그런 약속들은 정말 좋아하는, 보고 싶은 사람들이 아니면 잡지 않는다. 이는 그렇게 만나고 나면 그만큼 일이 밀리고, 주말에 일을 더해야 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얼핏 '평일 낮에 사람도 만나고 좋겠네'라고 할지 모르지만 그렇게 약속을 잡는 건 그날의 노동 시간을 그만큼 늘릴 뿐, 절대 일이 줄어들지 않는다. 해야 할 일은 항상 있고, 일은 기일에 맞춰서 해야 다음 일도 들어올 수 있기 때문에. 


그래서 사실 이렇게 약속을 잡는 일이 많지 않다. 정말 바쁠 때는 사람을 만나는 시간은 물론이고, 오가는 시간도 부담스러워서 사람을 만나지 않고 한두 달을 보내기도 한다. 사람을 만나서 충전하는 스타일이라면 다르겠지만 기본적으로는 혼자 있으면서 충전이 되는 편이라 정말 바쁠 때는 일을 하고, 드러누워 있거나 책 읽고 OTT나 유튜브를 보고 있게 되더라. 오가는 데 쓰는 시간과 에너지가 모두 부담스러워서. 


그런 프리랜서의 약속은 결코, 가볍지 않다. 


이 글을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브런치에서 다양한 주제의 글을 씁니다. 혹시라도 감사하게도 '구독해야지!'라는 생각이 드셨다면, 2022년에 제가 쓸 계획(링크)을 참조하셔서 결정하시는 것을 권장합니다. 브런치에는 '매거진 구독'이라는 좋은 시스템이 있으니, 관심 있는 매거진만 구독하시는 것이 나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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