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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mon de Cyrene Dec 21. 2021

결혼의 본질, 그리고 그 외의 것들에 대하여

부모님께서 오랜만에 서울에 오래 머물러 계셨다. 네 식구가 살던 집에 지금은 동생과 내가 살고 부모님은 지방으로 내려가 살고 계신데, 내가 기억하기로는 내려가신 지 약 2년 만에 가장 오래 계셨던 것 같다. 내려가신 직후에 코로나가 터져서 동생과 내가 집에서 주로 일을 하다 보니 서울에 머무는 게 방해가 된다고 여기셔서 두 분은 길어야 3일 정도 머물다 가셨는데 이번에는 5일을 있다 가셨다. 


오래 계시다 보니 아무래도 대화도 많이 하게 되는데, 노총각 아들을 둔 어머니와 노총각의 대화에는 역시나 결혼이 빠질 수가 없다. 이제는 사람을 만나라, 결혼 언제 할래라는 대화는 하지 않는다. 그 단계는 이미 넘어섰기 때문이다. 그런 말은 모자 관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단 것을 아시기에 더 이상 그런 직구는 던지지 않으신다. 그리고 서른이 넘으면 노총각이라고 생각하시는 어머니 기준에서는 노총각 아들을 둔 어머니로서의 경력이 벌써 10년 차이시다 보니 변화구도 아주 각도 크고 날카롭다. 이번에도 너무 각이 커서 그냥 흘려보낼 수 있는 수준의 변화구를 구사하셨다. 


그런데 그 결이 조금 달라졌음을 느꼈다. 어머니께서는 나도 아는 지인의 자녀들, 나보다 어린 동생들의 결혼생활을 듣고 와서 한숨을 쉬시는 것이 아닌가? 아들이랑 며느리가 찾아오면 설거지를 아들이 한다며 아들이 안쓰럽단 얘기, 애를 친정어머니가 봐줘야 한다며 처가 근처로 이사 가서 처가와 교류가 훨씬 많아진 아들 얘기... 역시나 아들 둘을 둔 어머니답게 어머니 기준에 노총각인 두 아들이 결혼 후에 닥칠 수 있는 얘기들을 하나 가득 쏟아놓고 가셨다. '너희 부모는 네가 챙겨, 우리 부모는 내가 챙길게'라고들 생각한다는 얘기와 함께. 나만 그렇게 느낀 건진 모르겠지만 그 안에는 슬며시 '그런 면에서 네가 차라리 결혼 안 한 게 나은 것 같기도 하고...'라는 뉘앙스가 살짝 묻어나는 듯했다.


나도 알던 얘기들이다. 그리고 여기까지 들으면 여자분들은 '아니 그게 무슨...'이라고 생각할 것이라 생각한다. 그 마음, 이해한다. 그런데 우리 어머니와 그런 불만을 늘어놓은 어머니의 지인들도 이해한다. 그분들은 그분들 세대에서 당연하다고 여겨졌던 문화가 익숙하기 때문에, 그 틀에서 벗어나기 힘들기 때문에 그런 얘기를 하시는 것이다. 50년, 아니 60년 이상을 그런 게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이라 여기는 문화 속에서 살아오신 분들이 하루아침에 바뀔 수는 없고, 그것도 존중받아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사실 개인적으로 이 문제에 대해서는 30살에 나름의 답을 세팅해 놨고, 대화를 통해서 정해야 하겠지만 결혼을 하면 나의 배우자와 했으면 하는 패턴이 있다. 그건 우리 부모님 집에 가거나 만날 때는 나의 배우자가 설거지나 집안일을 하고, 배우자의 부모님을 만났을 때는 내가 설거지나 집안일을 하는 것이다. 부모님이 바뀌시기 힘들단 점을 감안했을 때, 그 관계를 원활히 하기 위해서는 부모님 세대의 사고방식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그 안에서 해결 방식을 찾는 게 맞다고 생각했고, 그렇다면 내가 처가를 방문했을 때 일을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합의했다고 하면, 내가 먼저 '저희 부모님 만날 때는 00가 하니까 장인, 장모님 뵐 때는 제가 하기로 했다'라고 하면 그걸 싫어할 사람이 있을까?


그게 두 사람 모두를 위한 일이라고 생각을 한다. 본인의 부모님을 만날 때 본인이 그나마 조금 더 편할 테니 그때 최대한 편하게 쉬고, 조금 덜 편한 상대 부모님과 있을 때는 섬기는 모습으로 점수를 따고. 그러다 보면 서로가 크로스로 딸이나 며느리, 아들이나 사위를 긍정적으로 여기게 되면서 관계도 가까워질 수 있을 것이라고... 이상적으로 생각한다. 어떤 부모님이냐에 따라, 어떤 배우자를 만나냐에 따라 이것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는 것을 30살에 결혼하고 싶었으나 40살의 노총각이 된 사람이면 알아야 한다. 그래야 정상이다. 


대화를 마치고 생각이 많아졌다. 개인적으로는 안타까웠다. 내가 보수적이어서 그런 면이 있기도 하겠지만 '결혼'의 본질에 비춰봤을 때 그렇게 양가와 관계를 형성하는 게 과연 맞는 것인지, 아니 바람직한 지에 대한 의구심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런 문화를 만든 것은 소위 말하는 우리의 '전통문화'의 영향이 절대적이고 누군가의 탓을 해야 한다면 그건 조선시대부터 우리 부모님 세대까지 이어져 온 남존여비와 유교적인 문화의 잘못이 가장 크다. 개인과 남녀평등이 기본이 되는 시대에 맞지 않는 수 백 년 전부터 있었던 문화는 바뀌는 게 당연하다. 


하지만 그런 문화가 바뀌는 와중에도 결혼을 해서 꾸리는 '가정'과 공동체가 필요한 이유를 고려해 보면 '너희 부모는 네가, 우리 부모는 내가'식의 접근이 맞을 지에 대해서는 의구심이 든다. 물론, 이 역시 그렇게까지 간 건 가부장적인 문화의 잔재를 그대로 몸에 담고 있는 남자들이, 나와 같은 성별의 사람들이 자신의 부모에게 잘할 것을 강요하듯 대한 것의 반작용 또는 정. 반. 합의 결과라는 것을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구심이 드는 건, 그렇게 살 것이라면 굳이 결혼을 할 필요가 있을까... 싶기 때문이다.


'가정'은 어떤 의미를 가질까? 치열하고 경쟁적인 세상 속에서 가정은 그 구성원들에게 가장 따뜻한 안식처가 되어줘야 한다. 이게 기본이다. 그렇다면 그 구성원들은 서로에게 그런 환경을 만들어 주기 위한 노력을 '같이' 해야 한다. 그리고 그 가족은 그 안에 '연대성'이 강할수록 서로에게서 편안함을 느끼게 된다. 이는 가족은 공동체고, 서로가 그 구성원이라는 인식이 있을수록 행복할 가능성이 높단 뜻이다. 


사실 그런 사고방식은 왜곡된 조선식, 조선 후기식 유교문화에 배어 있었다. 그것도 '남존여비'의 방식으로. 그리고 개인, 자유, 평등이라는 근대적 개념이 한국사회에도 자리 잡기 시작하면서 그에 대한 반작용으로 반대쪽 끝으로 가는 사람들도 생겼다. 그에 대한 타협점이 같이 살지만 따로 하는 영역을 넓혀가는 방식이었다. 그런데 이게 생각보다 힘든 게 '개인'을 중시하는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개인주의'와 '이기주의'를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개인'이 중요하다며 가정을 자신을 위한 도구 정도로 사용하려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부부 둘 중에 한 사람만 그래도 그 가정은 그러한 가정의 본질을 바로 세울 수가 없다 보니 사람들은 그냥 각자 이기적으로 사는 선택을 하고 마는 것이다. 최근 한 기관의 조사 결과(링크)에 의하면 한국사회는 가족보다 돈을 우선시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는데 그건 이처럼 '개인주의의 탈을 쓴 '이기주의'적 사고방식을 가지고 결혼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가족의 본질은 '생활 공동체'다. 그렇기 때문에 두 사람이 결혼을 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대화하고, 맞춰가고, 타협하고, 상대의 것을 소중하게 여길 줄 아는 능력이다. 두 사람 모두 그렇게 생각할 줄 안다면 상대와 자신의 부모가 잘 지내고, 본인도 상대의 부모와 잘 지낼 방법을 어떻게든 찾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그리고 상대가 그런 노력을 해주면 그게 당연한 것이라 여기지 않고 고마워할 것이고, 그러면서 두 사람 간의 신뢰가 깊어지는 게 부부이고, 결혼생활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경제권 역시 마찬가지. 두 사람이 버는 돈이 한 통장에 모일 필요는 없다. 각자 수입은 각자가 관리하고 생활비 통장을 만드는 것도 가능하다. 하지만 하나의 생활, 경제 공동체라면 각자의 수입이 어느 정도 되고 서로가 무엇에 어느 정도 쓰고 있는지는 공유하는 게 맞지 않을까? 가족이라고 하면서도 상대에게 공개하지 않는 수입의 관리 방식이 있다면 상호 간에 어떻게 신뢰가 생길까? 


혹자는 '내가 돈을 버는 걸 내 마음대로 쓰지 못하냐!'라고나 '상대가 못 쓰게 하지 않냐!'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런데 생각해보자. 두 사람이 결혼해서 함께 살다 보면 함께 감당해야 할 경제적 부분이 늘어나게 되어있다. 양가의 경조사가 있고, 아이가 태어날 경우 이 문제는 더욱 복잡해지며, 집을 사는 과정에서는 더 많은 문제가 대두될 수밖에 없다. 그때도 네가 번 돈, 내가 번 돈을 따지며 할 것인가? 서로 무엇이 공평하고 공평하지 않은지, 누구 돈이 더 들어가는 지를 놓고 싸울 것인가?


하나의 공동체라면 나의 부모를 챙기는 것만큼 상대의 부모도 챙기는 게 맞고, 아이는 두 사람이 함께 만든 것이기 때문에 함께 책임을 져야 하며, 집도 두 사람이 같이 사는 집이 아닌가? 결혼해서 가정을 꾸린다는 것은 이처럼 이해관계를 공유하는 영역을 확장해 나가고, 그 과정을 통해서 가까워지고 서로를 위할 수밖에 없게 되어나가는 것이다. 그게 결혼의, 가정의 본질이고, 그렇기 때문에 결혼상대를 선택할 때는 상대가 얼마나 맞춰가며 가정을 만들어 나갈 수 있는지를 보는 게 가장 중요하다. 또 결혼 전에는 서로가 절대 양보하거나 타협하지 못하는 지점에 대해 이성적으로 확인하는 과정도 가질 필요가 있다. 


이게 결혼의 본질인데 상당수 사람들은 상대의 조건, 감정, 속궁합 따위를 여전히 앞에 내세운다. 그게 중요하지 않다는 게 아니다. 서로 학력이나 성장환경이 비슷한 사람들이 아무래도 잘 맞춰갈 확률이 높고, 상호 간에 사랑이라 느끼는 감정은 두 사람 간에 벽을 허물게 해주는 촉매체가 되기 때문에 원활한 가정생활을 위해 필요하며, 앞의 글에서 설명했듯이 속궁합도 가능하다면 물리적이고 기술적인 면까지 맞는 게 더 좋다.


그런데 가능하면 있으면 좋은 건 굉장히 많다. 그 모든 것을 갖고 결혼을 하려 들면 평생 결혼하지 못할 확률이 높다. 그렇다고 해서 '몇 가지만 보고 결혼해'라며 마치 상대에 대해 알거나 따져야 할 것에 우선순위는 없는 것처럼 말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 글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말하기 위해 쓰고 있다. 


상대가 그렇게 맞춰갈 수 있는 사람인지는 첫 번째로 대화를 통해 확인하고, 두 번째로 상대의 부모가 사는 삶과 그에 대한 상대의 생각을 들어보고, 세 번째로 상대의 친한 지인들을 만나보면 큰 틀에서 그릴 수 있다. 그리고 사실 이런 확인 과정에서 이미 상대가 보이는 모습들이 상대가 어떤 사람인지를 잘 보여줄 것이다. 


상대가 외동이거나 막내라면 무조건 이렇다 저렇다는 말에 동의하진 못한다. 이는 그들이 갖는 어느 정도의 특성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자신의 그런 성향을 인지하고 있고, 그것을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느냐에 따라 그 사람은 함께 살만한 사람일 수도 있기 아닐 수도 있기 때문이다. 상대의 부모가 잘 지내지 못하거나 이혼했다면 좋은 배우자가 되지 못한다는 말에도 동의하지 못한다. 이 역시 그 과정에서 본인이 입은 상처와 부모의 이혼에 대한 생각, 부모님과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와 같이 그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보고 있느냐에 따라서 그 사람은 오히려 그런 과정을 경험하지 않은 사람보다 더 좋은 배우자가 될 수도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그 사람과 친한 지인들과 그들이 말하는 그 사람은 그 사람에 대해 꽤나 많은 것을 보여준다. 사람들은 어떻게 친구를 보고 사람을 판단하냐고 하지만, 그들은 완전히 똑같지는 않아도 어느 정도 이상의 면을 공유하기 때문에 친하게 지낼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감안해야 한다. 사람들은 상대에게 이미 호감이 있는 상태에서는 그 사람의 친한 지인들이 아니라 그 사람의 말을 믿고 싶겠지만, 시간이 지나 보면 사람의 말보다는 그 사람의 삶의 일부인 친구들이 더 많은 것을 보여준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말은 당장 지어내고 번드르르하게 할 수 있지만 관계는 그렇지 않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보다 어느 정도는 예민한 편이다. 사람과 상황에 대해서 모두. 그렇다 보니 박사학위 논문 작업이 여러 이유로 밀리는 과정에서 꽤나 많이 힘들고 외로워졌었다. 사람들을 만나지도 않고 연구실에 박혀 혼자 글을 쓰고 논문들을 읽고 고민하는 게 삶의 전부인 상태로, 그리고 그 전에는 몇 년간 변호사시험을 혼자 준비하면서 지냈으니까. 그 상태에서 자취를 하고 있었다 보니 어느 순간 내가 조금 정서적으로 위험한 상태가 되어가고 있다는 것을 느꼈고, 그때 본가로 다시 들어왔다. 그리고 몇 년간 독립해서 살다가 본가에 들어와 부모님과 예전보다도 더 많이 부딪혔음에도 정서적으로 안정되어가는 것을 느꼈다. 


내가 예민해서 그런 감정들을 예민하게 느낄 뿐이지, 사람들 안에는 그런 감정들이 배어있게 되어있다. 사람들이 SNS에서 적극적으로 자신의 모습을 보이는 것도 사실은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자신이 외로워서 그런 경우가 적지 않다. 그런데 둔한 사람들은 그걸 순간, 순간은 느끼지 못하지만 그 안에서 이미 진척되는 그러한 지침의 상태는 충분히 누적되면 어느 순간 폭발하게 되어 있다. 사람은 누구나 감정적으로 수용받고, 서로의 편이 되어주는 존재가 필요하단 것이다. 특히나 세상은 경쟁적이고 적대적이기 때문에. 온전히 신뢰하고 믿을 수 있는 사람을 찾기가 얼마나 힘든 세상인가? 


평상시에는 몰랐다가 부모님께서 서울에 오시면 내게 채워지지 않던 감정적 공백이 있었음을 느끼고, 부모님께서 다시 내려가시면 그 공백을 느낀다. 그때마다 현실적으로, 이성적으로 내게 결혼이, 또 다른 가정이 필요함을 깨닫는다. 너무 이성적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현실이 그렇고, 그렇다고 해서 상대에 대한 감정이 생기지 않는데도 결혼을 위한 결혼을 할 생각도 없다. 아니, 예민한 편이라 그렇게는 또 하지 못한다고 표현하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나를 잘 알던 동생의 표현을 빌리자면 나는 '극단적으로 감성적이고 또 극단적으로 이성적인 편'이어서 그 균형을 잡아야 하는 사람이고, 아마도 그래서 지금까지 결혼을 못한 노총각으로 살고 있는 듯하다. 


결혼해서 가정을 꾸리는 것은 그런 사람과 공동체를 꾸린다는 의미를 갖는다. 상호 간에 그런 존재가 되어준다는 것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상대에게 요구만 할 뿐 아니라 자신도 상대에게 그런 존재가 되어줘야 하고, 상대가 내게 섭섭함을 표현하면 상대가 과한 것을 요구하는 것인지 본인이 상대편이 충분히 돼주지 못하고 있는 지를 객관화 하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 아니, 이런 패턴은 사실 두 사람이 일단 감정적 호감이 생겨 연애를 하면서 서로 확인을 하고 서로의 패턴을 확인한 후에 결혼을 결정해야 한다. 


결혼은 적당한 조건을 사람과 적당한 나이에 그냥 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에 대한 호감이 있고 서로를 알아가다 하나의 공동체를 꾸려도 될 정도의 신뢰가 생겼을 때 하는 게 맞다. 그리고 그 신뢰가 생기지 않는다면, 무너지는 것을 느낀다면, 상대에 대한 의심이 생긴다면 연애를 계속하는 건 몰라도 결혼은 일단 하지 않는 게 맞다. 결혼하면 그런 패턴은 심화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혹자는 뭘 그렇게 까탈스럽게 구냐고 할지도 모르지만, 결혼만큼 한 사람의 인생을 완전히 바꿔놓을 수 있는 게 있을까? 결혼상대를 결정하는 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결정에 속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한 결정에 신중하지 않는 게, 조건 몇 가지 따지고 다른 이해관계를 이유로 망설여지거나 내키지 않는 결혼을, 때로는 감정에 휘둘려서 하는 게 더 이상한 게 아닐까? 어느 순간엔가 '이 정도면 결혼하기 전에 확인할 건 다 확인한 것 같애'라고 할 수 있겠지만, 그런 마음이 들 때까지는 확인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러려면 얼마나 연애를 해야 하냐고? 사실 연애기간이 그렇게 중요하진 않다. 내가 얼마나 사람을 알아보는 눈이 있고 예민한 편인지, 그리고 어떻게 연애했는지가 더 큰 변수이고 오래 연애했다고 해서 상대를 반드시 더 잘 아는 것은 아니다. 이는 오래된 연인은 사실 일정 기간 이후에는 서로를 알아가기보다 그냥 만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래된 연인들은 오히려 연애하는 중에 상대가 변하거나 바뀌는 면들을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결혼 전 연애기간에는 답이 없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족보다 돈이 우선이라는 조사 결과를 보고 갑갑함을 계속 느꼈다. 그때부터 쓰고 싶었던 이 글을 누르고, 누르다 쓴다. 


이 글을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브런치에서 다양한 주제의 글을 씁니다. 혹시라도 감사하게도 '구독해야지!'라는 생각이 드셨다면, 2021년에 제가 쓸 계획(링크)을 참조하셔서 결정하시는 것을 권장합니다. 브런치에는 '매거진 구독'이라는 좋은 시스템이 있으니, 관심 있는 매거진만 구독하시는 것이 나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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