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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mon de Cyrene Dec 10. 2021

결혼, 대화, 그리고 속궁합

연애, 사랑, 결혼에 대한 글을 오래 써왔지만 스킨십과 관련된 얘기는 쓸 때마다 부끄럽고 민망했다. 보수적인 가정교육을 받고, 보수적인 환경에서 성장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적나라한 부분들은 우회적으로만 표현했고 직설적인 표현들도 사용하지 못했다. 이 글의 제목 중에 '속궁합'이란 표현은 그래서 뭔가 불편하면서도 어색하게 느껴지지만, 이 글은 그 표현을 쓸 수밖에 없었다. 이 글은 내 글 중에서는 그런 면에서 굉장히 적나라한 편이라는 것을 미리 말씀드리고자 한다. 


사실 이 제목으로 굉장히 긴 글을 쓰고, 저장해 놨다가 브런치에는 남기지 못하겠어서 내 공간임을 드러내지 않고 있는 블로그에만 옮겨 담았다. 내용이 조금은 산으로 간 면도 있고, 설명적으로 가서 주된 논의가 잘 드러나지 않는 느낌이어서 그렇게 했다. 


속궁합, 중요하다. 왜 안 중요하겠나. 부부간에 사랑을 나누고, 표현하는 건 굉장히 중요하고 서로의 몸을 통해서 사랑을 표현하는 궁극의 수단인 섹스가 즐겁고, 좋은 것은 분명 중요하다. 연인이나 부부간에 갈등이 있을 때 상대의 몸이 와닿는 게 싫은 순간도 있지만 사실 또 스킨십을 통해서 풀리고, 서로에게 너그러워져서 대화를 할 수 있게 되기도 한다는 점에서 속궁합이 중요하지 않다며 그 중요성을 폄하하는 것은 미숙하거나 현실을 제대로 모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보다 중요한 건 무엇이 그 '속궁합'에 영향을 주는 지다. 사람들은 속궁합을 얘기할 때 물리적인 측면과 기술적인 측면들을 주로 얘기하면서 '갖춰지고, 맞춰진' 사람과 만나야 한다고 주장한다. 길이, 두께, 모양, 각종 체위 등등. 물론, 그런 것들도 안 중요하진 않다. 우리가 물건을 살 때 디자인과 모양, 크기가 중요한 것처럼 서로가 갖추고 있는 물리적인 요소들이 스킨십에서도 일정 부분 영향을 미친다.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아무리 예쁜 자동차라고 해도 그 내부와 차량의 성능이 80년대에 생산된 국산차와 같다면 그 차를 사는 사람이 있을까? 산다고 해도 그걸 얼마나 몰고 다닐까? 


사람들이 '속궁합'이라고 부르는 것은 결국 섹스를 할 때 느껴지는 '쾌락적인 측면'을 강조하는 것인데, 스킨십에서는 단순히 그 쾌락적인 측면 이상의 감정과 느낌이 존재한다. 그러한 쾌락적인 측면을 계속 강조하다 보면 어디로 가게 될까? 인간은 항상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존재이다 보니 쾌락적인 측면과 방향을 추구하다 보면 그 연장선에는 변태적인 성행위들이 찾아올 수밖에 없다. 더 강한 자극을 찾게 되기 때문에. 그리고 그러한 쾌락적인 측면만 보게 되면 결혼생활은 절대로 유지할 수 없다. 서로에게 익숙해지고, 지루해질 뿐 아니라 대부분 사람들은 나이가 들면서 외모적으로 덜 매력적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같은 스킨십이어도 그런 쾌락적인 요소만을 목적으로 하는 게 아니라 그 과정에서 상대에게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면서 말 그대로 '사랑'을 느끼게 해주는 스킨십들이 있다. 물론, 그런 스킨십에서도 서로의 무리적인 요소와 기술 등이 더해지면 더 좋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스킨십에서 그런 요소들은 보조적이고 부수적인 부분에 불과하다. 서로가 서로를 사랑한다면 상대와 내 몸이 닿는 '과정'에서 말초적인 자극과 쾌락을 수반한 또 다른 감정, 느낌을 주고받을 수 있다. 사람들이 '황홀하다'라고 까지 표현하는 건 단순히 쾌락적이고 자극적인 부분이 아니라 그런 감정적 교감이 같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물리적이고 기술적인 측면만을 강조하는 사람들은 그런 경험을 해보지 못했기 때문에, 자신들이 경험한 수준에 머물러 있기 때문에 강한 자극을 찾아다니는 하이에나처럼 구는 경향이 있는데 스킨십의 핵심은 사실 [과정]에 있다. 


문제는 우리 사회에서는 그런 스킨십을 자연스럽게 배우고, 경험하고 익히기가 쉽지 않다는 데 있다. 스킨십을 그런 방법으로 할 줄 알기 위해서는 스킨십이 주는 안정감, 스킨십을 통해 느껴지는 사랑을 느낄 수 있어야 하는데 우리나라는 기본적으로 어렸을 때부터 부모와 자녀 간에도 스킨십이 없다 보니 그런 경험을 할 기회 자체가 많지 않다. 그렇게 성장한 남자아이들은 남성 호르몬이 넘치기 시작하는 사춘기 때 남자아이들과의 관계에서 성을 접하게 되고, 그러다 보니 적지 않은 남자들은 쾌락적이고 말초적인 자극을 스킨십의 전부로 여기게 된다. 반대로 여자들의 경우 그런 마초적인 남자들에게 피해를 받으면, 특히 어렸을 때 피해를 받으면 스킨십 자체에 대한 거부감과 두려움을 갖게 되기도 한다.


남녀관계에서 스킨십이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는 말로 표현되지 않는, 말로는 다 표현하지 못 한느 것들이 스킨십을 통해 표현되기 때문이다. 아버지와 첫 남자 친구에게 성적으로 좋지 않은 기억이 있는 사람과 만난 적이 있는데, 그 친구는 스킨십을 마음을 표현하는 수단으로 사용하지도, 받아들이지도 못하는 것을 느끼면서 당황했던, 그리고 그러다 보니 결국은 이별에까지 이르게 되었던 경험이 있다. 미안했지만 나도 힘들었던 것은, 스킨십으로 마음을 표현할 줄 모르는 사람을 만나니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상대가 나를 좋아하지 않거나 내게 마음이 없는 것 같단 생각이 들더라. 그리고 구구절절 글로 설명할 수 없는 여러 상황을 겪으면서 내가 감당할 자신이 없어서 헤어졌던 기억이 있다. 스킨십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두 사람의 관계를 더 깊게 만들어 줄 수 있다. 


개인적으로 결혼할 때 '속궁합'을 그렇게 강조하거나 결혼 후에 잠자리로 인해 불평불만을 토로하는 사람들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는 지점은 그런 사람들이 정작 배우자와 말로 대화하는 시간을 갖기 위한 노력은 하지 않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데 있다. 그래서는 안되지만 연애는 그렇다고 치자. 서로 감정이 끌려서 불타 올라서 실제 관계의 깊이보다 몸이 먼저 가까워질 수 있으니까. 연애는 그럴 수 있다. 특히 연애 초기는 그러는 경우가 많기도 하고,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결혼은 다르다. 결혼은 상대와 함께 가정이라는 공동체를 만들고 평생을 살아가기로 결단하고, 약속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결혼을 한 상대 배우자와의 관계에서는, 아니 결혼으로 가는 길에서는 두 사람 간의 대화가 가장 중요하고, 많아야만 한다. 두 사람이 서로를 직접 경험하는 데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고, 서로가 직접 경험하지 못하는 부분은 대화나 상대의 지인들과 만나면서 알아가는 수밖에 없으니까. [평생]을 걸고 하는 결단이자 약속인데 그런 과정 없이 결혼을 결정하는 건 어리석은 짓이다. 


그리고 그 대화는 결혼한 후에도 반드시 지속되어야 한다. 이는 두 사람이 결혼한 후에 딱 붙어서 깨어있는 시간의 절반 이상을 함께 보내지 않는 이상 두 사람은 대화 없이 서로의 삶을, 현재를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대화를 꾸준히 하면서 서로의 일상과, 상대가 어떤 일과 감정을 느꼈는지를 공유하지 않으면 결혼을 했다고 해도 두 사람은 멀어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사무실이나 직장에서 함께 시간을 많이 보내는 사람과 조금씩 깊은 대화를 하다 보면 외도를 하게 될 확률도 당연히 높아질 것이다. 


이 글에서 대화와 속궁합 얘기를 묶는 것은 대화를 많이 해서 서로에 대한 신뢰와 믿음이, 그리고 사람들이 소위 말하는 '의리'와 같은 마음이 있는 상태라면 (두 사람이 서로에게 최소한의 이성으로서의 매력을 유지만 한다면) 그 상태가 위에서 설명한 쾌락을 넘어서는 스킨십을 가능하게 해주는 기반이 되어주기 때문이다. 결혼 후에 스킨십이 없거나, 빈도가 적다고 하는 것은 사실 그전에 두 사람이 서로에 대한 이해, 믿음, 신뢰가 형성되어 있지 않은 영향이 클 가능성이 높다. 연애할 때는, 젊었을 때는 타오르는 에너지만으로도 쾌락적인 측면에서 스킨십으로 타오를 수 있었지만 여러 번 언급했듯이, 인간은 새로움에 반응하는 존재다 보니 상호 간에 깊은 신뢰와 믿음을 바탕으로 한 견고한 관계가 유지되면서 다른 단계로 전환되지 않는 이상 그게 똑같이 유지될 수는 없다. 그게 유지되는 부부들을 보면 관계에 깊이와 신뢰가 계속 더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더라.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이 그렇게 강조하는 '속궁합'은 사실은 성적인 측면에서 '속'을 넘어서 마음의 궁합이 맞춰져야 유지될 수 있고, 그 마음의 궁합은 대화하고 서로를 이해하면서 공감해주기 위한 노력 없이는 맞춰질 수 없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물론 물리적이고 기술적인 측면들까지 다 갖춰지면 더 좋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따지면 중요하거나 필요하지 않은 것이 어디 있을까? 당연히 모든 게 다 있으면 좋겠지만, 인생은 결국 어디에선가 타협점을 찾아야 한다. 그런 맥락에서 봤을 때 사실은 지속 가능하고, 깊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서로 대화하고, 이해하면서 공감해주는 게 더 중요하고, 필요하지 않을까? 사실 그게 잘 이뤄지면 스킨십적인 측면에서는 조금 덜 맞거나 지금 당장은 어색한 것들도 어느 정도까지는 서로 맞춰가고 보완할 수 있지만, 반대로 그게 잘 맞지 않으면 아무리 물리적이고 기술적인 면이 잘 맞는다고 해도 스킨십 자체를 하지 않게 될 것이 아닌가? 


다 갖추고, 다 맞춰서 완벽하게 결혼하는 게 불가능하다면 우리는 우선순위를 따져봐야 하고 결혼에서 그 우선순위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해야 하는 건 서로 대화하고, 이해하고, 공감해 주는 게 아닐까? 그게 아니라면 굳이 여러 가지 귀찮고, 번거로우며, 에너지가 소모되는 연애나 결혼이라는 관계를 형성할 필요가 없지 않을까? 사람이 사랑을 필요로 하는 가장 큰 이유는 영원한 내편이 서로에게 필요하기 때문이 아닌가? 그렇다면 그게 우선순위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게 정상이다. 그리고 상호 간에 믿음과 신뢰만 제대로 형성되어 있다면 나머지는 그 후에 자연스럽게 풀리게 되어있다. 


너무 단순화시킨 것 아니냐고? 사실 설명으로는 단순하지만 현실에서 이게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는 것을 경험해 본 사람은 알지 않을까? 서로 믿고, 신뢰할 수 있으며 대화하고, 이해하고, 공감해줄 수 있는 사람을 찾는 것도 쉽지 않은 데 그 와중에 다른 조건이나 전제를 더 까는 건... 너무 이기적인 게 아닌가...라는 생각을 해 본다. 그게 된다면 나머지는 사실 노력하면 맞출 수 있다. 연인과 부부간의 문제의 뿌리에는 대부분 그 기초와 기본에 금이 가 있더라.


마지막으로 '몸이 가까워지면 마음도 가까워진다'는 말에 대한 생각을 나누고자 한다. 틀린 말은 아니다. 몸이 가까워지면 마음도 가까워진 '느낌'을 받는 건 분명한 사실이다. 나 역시 조금 더 어렸을 때 그런 감정을 느낀 적이 있었다. 소개팅을 한 당일 한 가게에서 그 가게가 문을 닫을 때까지 대화가 이어졌고, 이틀 후에 본 다음 2주 동안 5-6번 만났을 정도로 서로에게 끌렸고, 그러다 보니 모든 면에서 관계가 강렬했던 적이 있다. 서로가 모든 면에서 너무 잘 맞아서 운명이라고 여기면서 만난 지 2-3개월 되었을 때 결혼 얘기를 했을 정도로. 


하지만 내 상황 때문에 일단 그 해에는 결혼은 아닌 것으로 둘이 결론을 냈고, 그다음부터 그 친구와 나는 데이트를 할 때마다 싸웠다. 큰 문제들이 아니라 데이트를 마치고 각자 귀가 후에 전화통화로 금방 풀 수 있을 정도로 작은 문제로 인한 다툼이었다. 그게 반복되면서 우리는 지쳐갔고, 내가 준비하던 시험이 있어서 '일단은' 헤어지기로 했었으며, 그게 우리의 마지막이 되었다. 


나중에 돌아보니 그 관계의 문제는 서로에 대한 호감과 몸이 시속 200km급으로 가까워지다 보니 서로의 작은 디테일들을 몰랐던 것이었더라. 서로 과거의 어떤 관계보다 빨리 가까워지다 보니 서로를 잘 안다고 착각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대가 나를 배려해주지 않는다고 느껴서 계속 다투게 되었던 것이다. 착각이었다. 서로의 생각이 잘 맞았다고 느꼈고, 몸은 엄청나게 빨리 가까워졌다 보니 서로 만난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서로를 잘 몰랐음에도 불구하고 무의식 중에 상대가 날 잘 안다고 착각해서 발생한 문제였다. 


몸이 가까워지면 마음도 가까워지는 면은 분명 있지만, 서로를 잘 모르는 상태에서 몸과 마음이 가까워지는 건 오히려 위험할 수 있다. 관계에 정답은 없고, 몸과 마음이 급속도로 가까워졌어도 관계가 잘 유지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일반적으로는' 서로에 대한 이해를 더해가면서 천천히 관계를 쌓아 올리면서 믿음과 신뢰를 바탕으로 관계를 단단하게 만들어지는 게 더 안전하고 견고한 관계를 쌓을 수 있게 해 준다. 물론, 예외도 있지만 보통은 그렇더라. 


사실 이 글을 수정했다 지우기를 반복했던 건... 민망하긴 한데 돌이켜보면 내가 브런치에서 연애, 사랑, 결혼에 대한 글을 쓰고 싶었던 가장 큰 이유가 이 얘기를 하고 싶었기 때문이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 글을 발행하면서도 뭔가 민망하지만, 그래도 한 번은 이 얘기를 해야겠다 싶었다. 


계란이 먼저냐 닭이 먼저냐와 같은 질문이라고 느껴질 수 있지만 '결혼'을 놓고 봤을 때 이 문제에는 분명한 답이 있다. 대화가, 소통이, 마음이 먼저다.   

이 글을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브런치에서 다양한 주제의 글을 씁니다. 혹시라도 감사하게도 '구독해야지!'라는 생각이 드셨다면, 2021년에 제가 쓸 계획(링크)을 참조하셔서 결정하시는 것을 권장합니다. 브런치에는 '매거진 구독'이라는 좋은 시스템이 있으니, 관심 있는 매거진만 구독하시는 것이 나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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