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ETC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imon de Cyrene Dec 26. 2021

마흔, 이제야 가정을 꾸릴 준비가 조금 됐다

경제적인 얘기를 하려고 쓰는 글이 아니다. 부모님께 물려받은 게 많지 않은 이상 요즘 물가와 집값에 결혼할 경제적 준비가 된 사람이 얼마나 될까? 더군다나 아직 자리 잡지 못한 프리랜서로 있고 내년 여름에는 만으로도 40대가 되는 내가 어떻게 경제적으로 결혼할 준비가 되었다고 할 수 있을까?


경제적으로는 앞으로 뭐가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잘 되면 내가 지난 10년 간 처음 다녔던 회사에 다녔을 때 벌었을 돈 보다 훨씬 많은 돈을 향후 10년 간 벌 수도 있는 카드들은 있지만, 프리랜서나 사업으로 하는 모든 일이 그렇듯, 될 때까진 된 게 아니지 않나. 사실 지난 며칠간 번아웃 증후군 같은 상태가 되어 글을 쓰지도, 영상을 편집하지도 못하는 상태로 지내면서 마음과 머리가 복잡했었다. 이런 내가 어떻게 경제적으로 결혼할 준비가 되었다고 할 수 있겠나.


이 글에서 내가 준비되었다는 건 마음과 인격적인 면에 대한 얘기다. 갑자기 무슨 소리냐고?


결혼과 사랑과 연애에 대해 쓴 나의 마지막 시리즈에서 나는 '결혼을 못한' 사람이라고 했다. 그런데 내가 정말 못한 것일까...라는 생각이 최근 며칠간 들었다. 물론, 항상 결혼을 하고 싶었던 것은 맞다. 그리고 결혼을 못한 게 부끄럽기까지 한 일은 아니라고 생각하기에 결혼을 못했다고 했었다. 하지만 최근 얼마간 지인들과 대화하면서, 그리고 아이를 가진 지인들이 지난 몇 년간 살면서 겪었을 것들에 나 자신을 대입해 보면서 나는 어쩌면 결혼을 피하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다.


그 시작은 이번 달 초에 새로 만든 유튜브 채널 영상을 홍대표와 찍으면서부터였다. 아니, 정확히는 그 영상 밖에서 둘이 한 대화의 영향이었다. 내게 '너는 결혼이 맞지 않는 애야'를 연신 외쳐대는, 나를 11년 넘게 알았던 홍대표가 그렇게 말하는 것을 보면서, 그에 대한 대화를 나누면서 나 자신에게 진지하게 묻기 시작했다. '내가 정말 결혼을 원했을까?'라고.


결혼을 욕구하고, 욕망하기는 했다. 하지만 돌아보면 내가 욕구하고 욕망한 결혼은 이기적이었다. 내가 하고 싶은 일, 원하는 건 다하면서 옆에 내가 필요할 때 보조적인 역할을 할 존재를 원했던 것은 아닌지... 를 돌아봤다. 아니, 솔직히 결혼을 하고 싶어 하면서도 내 마음을 돌아보면 내가 그런 역할을 할 존재를 원하는 상태인 듯해서 '연애할 때가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어 아무리 힘들어도 싱글로 지냈던 시절이 있었다. 연애와 결혼생활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알지만 내가 그렇게 관계를 형성할 자신이 없어서 싱글로 지냈던 시절이었다.


사실 브런치에서 연애, 사랑과 결혼에 대한 글들을 쓰면서 가장 마음에 걸렸던 건 나와 만났던 친구들이었다. 이 안에서는 이상적으로, 답을 얘기하지만 연인으로서 나는 그렇게 훌륭한 사람만은 아니었다. 아니, 사실 브런치에서 내가 연애, 사랑과 결혼에 대한 글을 많이 쓸 수 있었던 건 내가 연애에서 많은 실수를 했기 때문이었다.


타고난 재능이 뛰어난 야구선수들이 좋은 코치나 감독이 못 되는 경우는 그들은 그저 하면 되었기 때문인 것과 마찬가지로 타고나게 건강한 자아나 이성을 매료시키는 매력이 있는 사람들은 연애, 결혼, 사랑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이렇게 구구절절 그에 대한 생각들을 정리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난 많은 실수와 잘못을 했고, 미숙했다. 당시에는 몰랐지만 돌아보니 그랬더라. 그랬기 때문에 글로 풀어낼 내용이 많았던 것 같고, 그래서 '내가 만났던 친구나 썸으로 관계가 정리된 친구들이 읽으면 [웃기고 앉아 있네]라고 하겠다' 싶었다.


내가 했던 가장 큰 잘못들은 한 마디로 요약하면 '모든 게 내 중심이었던 것'이었다. 그런 내가 그런 상태에서 결혼을 했다면 어땠을까. 내가 지인들에게 가끔 농담처럼 말하는 '30대 초반에 결혼했으면 지금 돌싱이거나 불행한 결혼생활을 이어가고 있었을 거야'는 사실 농담이 아니었다. 난 가정을 꾸릴 준비가 되지 않은 사람이었다.


내가 결혼해서 아이가 있었다면 30대에 어떤 삶을 살았을지, 무엇을 아쉬워했을지에 대해 생각해 봤다. 30대의 나는 그런 걸 감수하면서도 결혼한 것을 후회하지 않을 수 있었을지에 대해서도. 나는 내가 포기한 것을 아쉬워하지 않을 수 있었을까? 내 성격상 나는 아마도 아이를 위해서, 배우자와 한 약속을 위해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포기하고 안정적인 수입을 위해 회사에 다녔을 것이다. 가족 누구에게도 표현은 하지 않으면서. 내가 그걸 다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이었는지에 대해 지난 얼마간 꽤나 진지하게 고민했다.


아니었다. 30대의 난 내가 하고 싶은 일, 가고 싶은 길에 모든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그걸 포기했다면 난 결혼한 것을 후회하고, 지인들에게 결혼하지 말라고 했을 듯했다. 그제야 20대 후반에서 30대 중반에 결혼한 지인들 중 상당수가 결혼하지 말라고 목소리 높여 외치는 얘기들이 완전히, 머리가 아닌 마음으로 이해되기 시작했다. 꽤나 오랫동안 머리로만 이해되던 것들에 공감이 되기 시작한 것이다.


내가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해서 판단하긴 쉽다. 그래서 소위 말하는 '결혼 적령기'에 결혼한 사람들은 싱글들이 다 본인보다 행복하다고 생각한다. 내가 마지막으로 쓴 가족과 사랑과 결혼에 대한 시리즈는 그에 대한 나의 항변이었다. 그런데 돌아보면 나도 그나마 머리로 이해한다는 이유로 먼저 결혼해서 싱글들에게 지적질하고, 가르치려 드는 사람들에 대해 '너희가 모르는 세상도 있어'라며 반박만 하려 했던 것 같더라. 그들이 그러는 것을 마음으로 받아들이진 못했던 것 같다.


30대의 내겐, 싱글로 혼자 사는 것이 가장 행복했다는 것을 얼마 전에야 깨달았다. 너무나도 나 중심적이고, 하고 싶은 게 많았기 때문에. 그런 생각과 마음에 변화가 생긴 지는 1-2년 정도밖에 되지 않았고, 그런 변화가 생기기 시작하면서야 비로소 나는 조금씩 가정을 꾸릴 준비가 되어갔던 것 같다.


최근에 소개팅 아닌 소개팅 같은(?) 만남이 있었다. 30대 중반 이후로 '절대 만나지 않겠다'라고 생각했던 연상인 분이셨만 만나기 전에 마음의 변화가 있었고, 편하게 만났다. 나이에 대한 벽은 이제 없어진 것을 느꼈다. 인연이 어찌될지는 모르나 좋은 분이었고 그 분이 나이가 아니라 그냥 있는 그대로 그 분으로 보였다.


최근에는 스스로를 시험해 보고 싶어서 '내가 결혼을 하면 회사에 다니거나 조금 더 안정적인 생활을 위해 내 일을 타협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해봤다. 가능하다면 내 모습을 있는 그대로 존중하고 사랑해주는 사람, 조금은 불확실해도 응원해 줄 수 있는 사람을 만나고 싶다. 그게 솔직한 마음이다. 하지만 함께 있을 때 서로의 편이 되어줄 수 있단 신뢰가 생기고, 상대도 내게 의지하고 나도 상대에게 의지할 수 있다면, 이제는 내가 하고 싶은 일들을 일정 부분 타협할 수 있겠다는 놀라운, 번아웃 상태로 컴퓨터 앞에 앉으면 가슴이 막힐 정도로 갑갑해질 정도로 일을 좋아하고 많이 하는 나로서는 거의 말도 안 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건 사람을 만나고 대화해보면서 맞춰보고 따져봐야 할 부분이긴 하다. 내가 정말 그게 될 수 있을지는 나도 장담할 수 없다. 또 어떤 사람을 만나느냐에 따라 그건 달라질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 같은 사람에게 이건 엄청나게 큰 변화다. 내 것, 내가 중요하게 여기는 것을 상대와 꾸리는 가정을 위해서 포기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드는 것 자체가 나처럼 나 자신이 중요한, 굉장히 개인주의적인 사람에겐 거의 기적 같은 일이다.


어쩌면 이제야 조금은 가정을 꾸릴 준비가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이 글을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브런치에서 다양한 주제의 글을 씁니다. 혹시라도 감사하게도 '구독해야지!'라는 생각이 드셨다면, 2021년에 제가 쓸 계획(링크)을 참조하셔서 결정하시는 것을 권장합니다. 브런치에는 '매거진 구독'이라는 좋은 시스템이 있으니, 관심 있는 매거진만 구독하시는 것이 나을 수 있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결혼의 본질, 그리고 그 외의 것들에 대하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