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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mon de Cyrene Mar 25. 2022

20대에 결혼 생각은 하면 안 됐어...

40까지 연애하며 알게 된 것들. 7화

서른 살에는 결혼을 해서 가정을 꾸리고 싶었다. 지금 돌아보면 왜 그랬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심지어 내가 왜 굳이 서른 살을 '콕' 집어서 결혼을 하고 싶은 나이로 잡았는지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런데 그때는 막연하게 그랬다. 30살이 넘어서 결혼하지 않은 형들을 보면 '노총각'이라고 생각했고, 나는 그들처럼 될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나는 40대 초반의 싱글이 되었다. 그 과정에서 누군가를 함부로 판단하면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게 생각하게 된 이유로 유일하게 꼽을 수 있는 건 '어머니의 세뇌'였다. 어렸을 때부터 서른 살 전에는 결혼을 해야 한단 얘기를 어머니께 반복해서 들었고, 그게 어느 순간 나의 생각인 것처럼 각인된 게 아닌가 싶다. 우리 어머니는 실제로 내 동생마저(?) 30을 넘어선 뒤에는 '두 아들이 모두 서른 살이 넘어서까지 결혼을 못하고 있을 줄 몰랐다'는 말을 반복하셨다. 우리 어머니는 이제 30대 중반까지도 결혼 못한 두 아들을 둔 어머니가 되셨다. 


나의 20대에 가장 돌이키고 싶은 생각이나 행동을 꼽으라면 그건 서른이 되기 전에 반드시 결혼을 하겠다는 생각이다. 20대에 결혼을 할 수는 있다. 하지만 20대에는 결혼에 대한 생각은 해서는 안됐다. 지금 돌아보면 서른 살 전에 결혼하고 싶다는, 아니 어쩌면 하겠다는 목표를 가졌던 것이 오히려 내가 가정을 꾸리지 못하게 되는 원인으로 작용했더라. 


그런 얘기를 어렸을 때 들은 적이 있다. 결혼을 하고 싶다, 하고 싶다고 외치고 빨리 결혼하는 게 목표인 사람은 노총각, 노처녀가 되는 반면 아무 생각 없거나 심지어 결혼을 안 하겠다고 하던 사람은 휙 가버린다고. 20대에 그 얘기를 들었을 때는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생각했는데, 나이가 들수록 그럴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겠지만 적지 않은 사람들은 실제로 그렇게 되더라. 


그 이유는 분명하다. 어렸을 때부터 결혼에 대한 생각이 많은 사람은 '이런 사람과 결혼하고 싶다'는 생각이 굉장히 많다. 어떤 이들은 심지어 상대의 조건과 결혼하고 나서 하고 싶은 일들의 목록까지 작성되어 있더라. 문제는 그걸 다 맞혀 줄 수 있는 사람은 절대로 없다는 데 있다. 누군가의 목록이나 이상형에 완벽하게 부합하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는 그 목록이나 조건은 '본인 중심적'이기 때문이다. 그런 환상 또는 이상형은 본인이 원하는 대로 움직여줘야 하는데 로보트가 아닌 인간은 100% 그 사람 마음대로 될 수가 없다. 그렇다 보니 결혼에 대한 생각이 많은 사람은 그 목록과 상대를 비교하다 꽤나 괜찮은 사람들을 탈락시키면서 자연스럽게 노총각, 노처녀가 된다. 


반면에 결혼에 대한 별 생각이 없거나 결혼을 하지 않겠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은 그런 목록을 가지고 있지 않다. 결혼에 대한 생각이 없으니까. 그러다 보니 그런 사람들은 그저 연애를 하고, 헤어지다가 문득 '어? 이 사람이랑은 계속 살아도 될 것 같은데? 편하고 재미있어'라는 식의 '필'이 꽂히면 결혼을 결심한다. 그들에게는 조건이, 리스트가 없기 때문에 상대와의 화학반응이 자연스럽게 결혼을 결정하게 만들어 주는 것이다. 


20대의 나는 결혼이, 가정을 꾸리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몰랐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니다. 대부분의 20대들이 그렇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대부분 사람들은 20대에 대학을 졸업하거나 사회초년생으로 사회생활을 하는 게 전부이고, 주위에는 결혼한 지인들이 거의 없다 보니 현실적인 결혼생활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기회가 별로 없을 수밖에 없다. 그렇다 보니 20대에 결혼을 꿈꾸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상대의 조건이나 결혼생활은 대부분이 환상에 불과한, 유니콘과 같은 것일 확률이 매우, 매우 높다. 


20대에는 그냥 연애를 했어야 했다. 마음이 가는 대로 고백도 하고, 거절도 당하면서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깨닫고 어떤 사람과 함께 할 때 행복한지를 알아갔어야 했다. 그 과정에서 실수도 하고, 시행착오도 겪어야 했다. 많이 울어도 보고, 웃어도 보고 엉망진창인 데이트도 해 봤어야 했다. 실수가, 실패가 나를 단단하게 해 주고 내가 좋은 배우자가 되게 해 줄 수 있다는 걸 그때는 몰랐다. 


20대의 나는 결혼 생각이 많다 보니 누군가에게 호감이 생겨도 고백을 하지 못했다. 그럴 수밖에 없지 않을까? 결혼인데, 평생을 함께 할 사람인데 어떻게 쉽게, 함부로 고백을 한단 말인가?! 그래서 나는 누군가에게 호감이 생기면 저 사람이 정말 괜찮은 사람인지를 한참 지켜봤고, 지켜보면서 파악할 수 있는 건 파악했다고 판단되면 그때 고백을 했다. 


이렇게만 들으면 '신중했네'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건 신중한 게 아니라 어리석고 멍청한 짓이었다. 누군가를 지켜보기만 한다고 해서 상대가 나에 대한 감정이 생기는 건 아니지 않나? 연애 경험이 많지 않던 시절에 나는 나름 상대에게 티를 낸다고 냈지만 상대는 그걸 그저 지인의 호의 정도로 여긴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같은 집단에 속한 사람에게 대놓고 티를 내면서 다가가는 게 조심스럽고 신중해서 그런 면도 있지만 내가 상대에게 정말로 호감이 있었다면 조금 더 상대와 1대 1로 시간을 보내면서 서로를 알아갈 수 있는 접점들을 다양하게 만들었어야 했는데 항상 결혼을 생각했던 나의 과도한 신중함이, 실수와 실패하지 않으려는 마음이 모든 걸 망쳤다. 


누군가에게 호감이 갔다면, 그 사람을 그저 지켜볼 게 아니라 둘 만의 시간을 만들고 가지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사소한 순간들이라도. 이는 그래야 상대가 나의 마음을 알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 사람이 다른 사람들과 있을 때와 1대 1로 있을 때는 다른 모습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두 사람만 있는 순간에 보이는 상대의 모습이 두 사람의 소위 말하는 케미스트리(화학작용)를 드러내고, 그게 좋을 때야 비로소 두 사람 사이에 호감이 좋아하는 마음으로, 거기에서 사랑으로 나갈 수 있는데 머리에 '결혼'만 가득했던 나는 20대 중반까지 그걸 몰랐다. 연애도 모르면서 결혼을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핑계를 대자면 댈 수도 있다. 20대 초반에 했던 이별이 너무 아프고 힘들었기 때문에 다시는 이별을 하고 싶지 않아서 '다음에 만나는 사람과는 무조건 결혼할 거야'라고 마음을 먹었으니까. 이별의 슬픔과 아픔은 겪을 각오를 해야 제대로 된 연애를 할 수 있다는 걸 그때는 몰랐다. 그걸 각오해야 더 과감하게, 감정에 충실하면서 사람을 만날 수 있는데 그걸 그때는 몰랐다. 


그렇다고 해서 20대에는 무조건 연애를 많이 해보라는 것은 아니다.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던 적도 있었는데, 사실 브런치에서 연애, 결혼, 사랑에 대한 글을 쓰던 초반에만 해도 그런 생각이 없지는 않았고 그래서 20대에는 연애를 무조건 많이 해보라는 글도 썼었는데 지금은 생각이 조금 다르다. 이는 잘못된 연애는, 그런 연애에서 받은 상처는 그 사람 안에 깊은 상흔을 남겨서 다음 연애를 못하게 만들거나 왜곡할 수 있다는 것을 이제는 알기 때문이다. 


20대에도 연애는 신중해야 하지만, 결혼에 대한 생각은 최소한 하지 않았어야 했다. 결혼은 목표로 삼고 갈 대상이 아니라 서로 사랑하고, 상호 간에 신뢰가 쌓였을 때 자연스럽게 해야 하는 것이라는 걸 20대에는 몰랐다. 결혼은 쟁취할 대상이 아니라 사랑과 신뢰를 통해 맺히는 열매라는 것을 20대에 알았더라면 나의 20대는 꽤나 많이 달랐을 텐데, 20대의 나는 그걸 몰랐다. 20대의 나에겐 결혼이 일종의 우상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서른 살에 결혼하지 못한 것을 후회하지는 않는다. 이 시리즈 서두에서 밝혔듯이 나는 그 목표를 달성했다면 지금은 이혼을 하게 되었을 것이다. 서른 살에 결혼을 하고 싶었음에도 불구하고 하지 못한 결과 그 후에 결혼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고, 그 과정에서 지인들의 결혼생활을 들으며 끊임없이 결혼은 무엇이며 가정을 꾸린다는 것은 어떤 의미이고 결혼하고 나면 현실에서 어떤 것들이 밀어닥치는 지를 생각하며 서른 살에 내 모습을 돌아보니 나는 가정을 꾸릴 준비가 전혀 되어있지 않았더라. 


나만 그런 것이 아니다. 20대에서 30대 초반에 결혼하는 사람들은 대부분이 결혼할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로 결혼식장에 들어간다. 경제적인 면에서 준비가 안되었다는 것이 아니다. 결혼하면 다가오게 될 현실들을 잘 모를 뿐 아니라 누군가와 함께 맞춰가면서 살 준비가, 각오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결혼을 하게 된단 것이다. 


그렇다 보니 소위 말하는 '결혼 적령기'에 결혼한 사람들 중 상당수는 최소한 행복하지는 않은 결혼생활을 한다. 아직 자신을 굽히고, 상대에게 맞출 줄 모르는 자기중심적인 두 사람이 가정을 꾸리니 다툼은 잦을 수밖에 없다. 그들이 이상해서가 아니라 가정을 꾸리면 당연하고 자연스럽게 다가올 것들을 모르고 결혼을 결심했기 때문에 그럴 수밖에 없다. 누군가가 그걸 옆에서 가이드하면서 설명해주고, 상담해주면 그 과정이 조금은 수월할 수 있겠지만 대부분 사람들은 그런 사람을 옆에 두고 있지 못하다. 심지어 본인 자식밖에 모르는 부모들이 넘쳐나다 보니 부부싸움을 하고 각자 부모에게 갔다 돌아오면 부부관계에 더해서 고부관계에까지 갈등이 더해지게 되더라.


나도 그랬을 것이다. 아니, 나는 더했을 것이다. 이는 20대의 나는 그 나이대에서 쟁취할 수 있는 건 거의 이룬 오만방자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상태에서 결혼을 했다면 나는 상대를 판단하고, 싸우고, 성질을 내다 이혼했을 것이고, 그 후에는 모든 것을 상대의 탓으로 돌리며 결혼은 역시 할 게 못된다고 말하고 다녔을지도 모른다. 나는 가정을 꾸릴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 상태에서, 결혼함으로써 감당해야 할 것들도 제대로 모르면서 결혼 자체를 그저 인생의 또 다른 목표로 여겼었다. 


그래서 서른 살에 결혼하지 못한 것을 다행으로 여긴다. 그리고 지금까지 결혼 못한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30대에 반복된 실패와 좌절에 나는 조금씩 둥글어졌고, 그 과정에서 결혼해서 가정을 꾸리고 아이까지 가진 사람들을 보며 가정을 꾸린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머리로나마 알 수 있게 되었고, 다양한 결혼생활에 대한 데이터를 지인들을 통해서 모을 수 있었다. 


내가 '좋은' 배우자나 아빠인지는 내가 판단하고 평가할 게 아니라 나와 함께 사는 사람의 주관적인 평가에 맡겨져야 할 영역이기 때문에 내가 그걸 장담할 수는 없지만, 만약 가정을 꾸리게 된다면 최소한 나쁘지 않은 배우자와 아빠는 될 수 있다는 확신 정도는 있다. 과거의 나보다는 조금 더 다른 사람과 맞출 수 있는 사람이 되었고, 예전보다는 나를 더 잘 알뿐 아니라 '미안하다'는 말을 더 잘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기 때문에. 


이 모든 게 20대 중후반에서 얼마 전까지 연애를 하는 과정에서 다듬어지고, 아프고, 힘들고, 슬펐던 경험들 덕분이다. 20대에 그 경험을 했다면 조금 더 일찍, 어렸을 때 그렇게 되지 않았을까 싶은 아쉬움이 없지는 않다. 그때는 결혼 생각을 하지 말고 그렇게 연애하고, 사랑해 봤어야 했다. 그때는 결혼에 대한 생각을 하지 않았어야 했다. 

이 글을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브런치에서 다양한 주제의 글을 씁니다. 혹시라도 감사하게도 '구독해야지!'라는 생각이 드셨다면, 2022년에 제가 쓸 계획(링크)을 참조하셔서 결정하시는 것을 권장합니다. 브런치에는 '매거진 구독'이라는 좋은 시스템이 있으니, 관심 있는 매거진만 구독하시는 것이 나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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