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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mon de Cyrene Mar 22. 2022

우정보다 사랑을 택할 이유

40까지 연애하며 알게 된 것들. 6화

아직까지도 유튜브에서 자주 다뤄지는 주제다. 사랑이냐, 우정이냐. 유튜브 채널이나 방송에서는 친구의 전 여자친구와 연인이 된 사람의 이야기를 다루며 그 친구를 '나쁜 놈'이라고 부른다. 20대의 내게 이 질문을 했다면 나 역시 그에 동의했을 것이다. 


지금은 생각이 조금 다르다. 친구가 연애를 하고 있는 동안 그의 애인을 적극적으로 빼앗기 위해 노력하는 것에는 반대한다. 이는 그건 친구에게도 할 짓이 아니기도 하지만 그렇게 시작한 연애는 결국 오래가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연애를 하고 있는 사람을 누군가에게서 빼앗은 사람은 상대가 또 다른 사람에게 환승을 할 수 있을 것이란 불안감 때문에 건강한 연애를 하지 못하는 시기가 오게 되어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이 갖고 싶다고 해서 누군가를 빼앗아 오는 연애는 하지 않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미 친구가 헤어진 후에,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후에 친구의 전 애인과 만나는 것에 대해서는 생각이 바뀌었다. 이십 대에는 '미친 것 아니냐'라고 반응했을 것이고, 삼십 대만 하더라도 적극적으로 '그 사람을 반드시 잡아!'라고는 말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 사십이 되어보니 '고민을 하고, 하고 또 해 봐도 그 사람을 놓치고 후회할 것 같다면 상대가 누구든지 반드시 잡아'라고 조언을 하겠다. 


그저 가볍게 호감이 생기는 정도로라도 마음이 가기만 하면 접근하란 것이 아니다. 상대에 대한 마음이 많이 크다면, 일단 그 사람을 잡으란 것이다. 친구에게 허락을 받아야 하냐고 묻는다면, 굳이 허락까지 받을 필요는 없다고 하겠다. 친한 친구의 전 애인이라면 자신의 마음을 친구에게 먼저 얘기는 하는 게 맞겠지만 사 십의 아저씨가 된 지금은 굳이 그럴 필요도 없다고 생각한다. 


영원한 우정은 없는 반면, 사랑은 쉽게 찾아오지 않기 때문이다. 


10대에서 20대까지는 우정이 영원할 것만 같았다. 나도 그래서 이 고민을 10대에서 20대까지 걸쳐서 진지하게 했던 적이 있다. 정말 친한, 내가 정말 좋아하는 친구의 여자 친구와 나는 종종 같이 어울렸고, 그 친구가 아니어도 친구의 여자 친구는 내 상황을 보면서 종종 챙겨주고는 했다. 우리도 친한 친구였으니까. 그렇게 같이 보내는 시간이 늘어나다 보니 내 안에서도 호감이 생겼지만 그때는 당연히 고백하지 못했다. 친구의 여자 친구였으니까. 


하지만 두 사람은 헤어졌고, 그 친구와 내 친구의 전 여자 친구는 모두 재수를 했다. 우리는 종종 통화했고, 어쩌다 보니 바로 옆에 붙은 학교에 합격을 했으며, 우리는 1학년 때 상대 학교 도서관에 없는 책을 본인 학교에서 빌려주면서 종종 만났다. 이 와중에 내 친구는 술을 조금만 마시면 전 여자 친구가 그립다며 울부짖어댔고, 그때마다 내 가슴은 찢어지는 듯했다. 내 마음은 남아있는데, 그 마음을 표현할 수는 없었으니까. 


나는 그렇게 고민을 하다 입대를 했다. 입대하기 전에 마음이라도 표현하고 싶었지만 그건 친구에게도, 친구의 전 여자 친구에게도 할 짓이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그 와중에 송별회를 마치고 술이 하나 가득 취한 상태에서 나도 모르게 그 친구에게 '내가 너 정말 좋아하는 거 알지?'라고 말해버렸다. 사람이 가득한 만원 버스 앞 문에 낀 상태로. 그 순간 술이 화들짝 깼고, 나는 '그러니까 친구로, 친구로 정말 좋아하는 거 알지?'라며 얼버무렸지만 그 친구는 내 마음을 알았을 것이다. 


제대한 후에도 우리는 한 번씩 봤지만 난 여전히 마음을 표현하지 못했다. 그 친구가 연애를 하고 있을 때도 있었고, 아닐 때도 있었지만 가능하면 그 친구와 따로 보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내 안에 감정의 씨앗이 남아있었기 때문에. 그랬던 그 친구를 나이가 조금 더 들어 몇 년 후에 만났을 때는 그 친구 옆에는 우리 셋을 모두 아는 친구가 남편으로 서 있었다. 


우리는 어색하게 인사했고, 지금도 그 순간을 떠올리면 마음이 아려오곤 한다. 


10대에서 20대까지, 어쩌면 30대 초반까지도 친구가, 우정이 엄청 중요하게 여겨진다는 것을 안다. 여자들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남자들은 그렇다. 그런데 그 우정, 생각보다 오래가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우정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 아니다. 우정은 그 과정 자체로 의미가 있고, 그 순간에는 누구나 어느 정도의 친구들이 필요하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 들수록 영원할 것 같았던 우정은 희석되어 갈 수밖에 없다. 나만 그런 것 아니냐고? 아니다. 뉴스에서 친구에게 사기당한 사람들의 이야기에서부터 살해당한 이야기까지 나오는 걸 보면 영원히 지속되는 우정은 분명 매우, 극히 드문 듯하다.


그 이유도 분명하다. 우리는 20대까지는 그나마 비슷한 삶을 산다. 고등학교 때까지는 입시에 찌든 삶을 살며 친구들끼리만 공유할 수 있는 현실과 감정들이 있고, 20대에는 무엇을 하며 먹고살지를 걱정하며 대학교 안에서 생존하기 위한 고민을 우정과 함께 나눈다. 


하지만 사회에 첫 발을 내딛고 난 후에는 그 공감, 유대감이 꽤나 빨리 증발된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같은 대기업에서도 연봉 수준, 사업하는 사람과 회사원, 금수저와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난 사람들은 180도 다른 현실을 마주하고, 그렇게 다른 현실 속에서 '친구'들이 공감할 수 있는 건 10대에서 20대까지의 삶 정도밖에 남아있지 않는다. 심지어 서로의 현실을 내놓기라도 하면 자신의 의도와는 무관하게 상대에게 상처를 주거나 받기도 한다. 그러면서 친구들은 꽤나 빠르게 멀어진다. 그걸 30대에 경험했다. 


누군가가 나빠서가 아니다. 인생의 무게가 무겁고, 힘들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자신의 인생의 무게도 감당하기 힘들다 보니 다른 사람의 인생까지 짊어지고 갈 수 없다 보니 그렇게 된다. 마음속에는 미안함도, 관계가 달라진 것에 대한 안타까움도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인생을 돌보기도 벅차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거나 공감하지 못하게 된다. 친구들은, 그렇게 영원할 것 같았던 우정은 그렇게나 빨리 해체되더라. 


반면에 진정한 사랑은 찾기가 힘들다. 현실의 무게를 느끼기 시작하면서 사람들은 연애와 결혼에 있어서도 마음을, 사랑을 우선순위에 두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가장 앞에 내세운다. 심지어 사랑 같은 것은 포기하고 상대를 자신의 쾌락의 도구 정도로 여기기 시작하는 사람들도 늘어나고, 현실에 상처 입은 마음의 근육은 갈수록 굳은살이 배겨 사랑을 느끼지 못할 지경에 이르기도 한다. 나이가 어느 정도 이상 든 사람들이 '이제 사랑은 못할 것 같아'라고 말하는 건, 현실의 무게가 그만큼 무겁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시리즈 앞의 글에서도 설명했듯이 사랑은 밥을 먹여준다. 사랑은 우리가 더 열심히, 잘 일할 유인과 이유가 되어주고, 우리가 일에만 미쳐 살지 않고 주위를 돌아보게 만든다. 개인적으로는 인간의 여러 가지 특성에 비춰봤을 때 인간은 결국 사랑하기 위한, 사랑해야만 살 수 있는 존재라고도 생각한다. 아무리 사악한 사람도 자신이 사랑한 사람들에게는 좋은 사람으로 남으면서 그들에게는 사랑을 받고 싶어 하지 않나? 인간이 사랑이 반드시 필요한 존재가 아니라면 그런 현상들이 설명되지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이 감정이 생긴 상대가, 사랑하는 것 같은 상대가 친구의 전 애인이었다고 해도 그 사람을 놓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나이가 들수록 사랑은 하기 힘들고, 그 사람을 놓친 후에 그런 사람을 다시 사랑을 할 수 있을지는 아무도 모르기 때문에. 


그렇기 때문에 사랑하는 사람이 나타나면, 사랑할 수도 있을 것 같은 사람이 나타난다면 다른 조건은 보지 않고 일단 잡아야 한다. 그게 설사 친구의 전 애인이었다고 해도. 


이 글을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브런치에서 다양한 주제의 글을 씁니다. 혹시라도 감사하게도 '구독해야지!'라는 생각이 드셨다면, 2022년에 제가 쓸 계획(링크)을 참조하셔서 결정하시는 것을 권장합니다. 브런치에는 '매거진 구독'이라는 좋은 시스템이 있으니, 관심 있는 매거진만 구독하시는 것이 나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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