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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mon de Cyrene Mar 23. 2022

인간은 '원래' 이기적인 존재인가?

'인간은 원래 이기적인 존재야'


쉽게, 흔히, 많은 사람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사용하는 표현이다. 나도 내 글에서 그런 식의 전제를 하고 썼던 경우가 적지 않음을 알고 있다. 


그런데 문득, 인간은 정말 '원래' 그러니까 '타고나게' 또는 '본성이' 이기적인 것인지에 의문이 들었다. 


인간이 원래, 타고나게, 본성이 이기적이라면 진짜로 아무것도 갖지 않고 베푸는 것만으로도 행복을 느끼는 사람들은 어떻게 된 것일까? 이기적인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 '변화'하는 것일까? 그게 가능하기나 할까? 인간은 정말 이기적인 존재로 태어났다면 어떻게 사랑을 할 수 있을까? 어떻게 희생을 할 수 있으며 이타적인 모습을 보일 수 있을까? 물론, 그런 이타성을 통해서 본인이 다시 이익을 얻기 위해 그러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많다. 심지어 본인의 목숨을 내놓으면서도 다른 사람을 구하기 위해 뛰어드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 사람들은 어떻게 설명될 수 있을까? 인간은 정말 타고나게, 원래, 본성이 이기적이라면 우리는 왜, 어떻게 다른 사람의 아픔에 공감하며 함께 울고, 좋은 일에 함께 기뻐할 수 있을까? 


인간이 원래, 타고나게, 본성이 이기적이라면 그런 모습은 나올 수가 없다. 인간이 그렇다면 자신에게 이익이 되지도 않는 것에 감정 이입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지 않나? 그런 것들이 학습된다고 하더라도 인간의 원래 이기적인 존재라면 그걸 자신을 위해서 학습하고 사용해야 인간이 원래, 타고나게, 본성이 이기적이란 말이 성립된다. 


반면에 인간이 원래 이기적이지는 않아도 이기적이 되기는 어렵지 않다. 이는 '현실'은 냉혹하기 때문이다. 인간이 본래 이기적이지는 않아도 생존을 위해서는 본인을 먼저 챙길 수밖에 없고, 우리는 우리 자신과 늘 함께 있지만 다른 사람과는 하루에 길어야 몇 시간, 대부분은 몇 주나 몇 달에 몇 시간 정도만 보내니 내 중심이 될 수밖에 없는 환경에서 산다. 여기에 더해서 사회는, 세상은 '너부터 챙겨'라고 가르치니 이기주의는 살면 살수록, 경험이 축적되면 축적될수록 강화될 유인 밖에 없다. 


반대로 얘기하면 그러한 환경과 상황에도 불구하고 그걸 뚫어내고 이기적이지 않은 순간이 있다는 것은, 이타적인 삶을 사는 이들이 있다는 것은 인간이 원래, 타고나게, 본성이 이기적이지는 않다는 것이다. 우리는 자기중심적이 되기 쉬운, 아니 어쩌면 될 수밖에 없는 환경에서 그게 본성이라고 학습되고, 세뇌되어서 그렇게 살뿐이지 인간이 원래, 타고나게, 본성이 이기적이지는 않아야 [사랑]이란 것도 존재할 수 있다. 


인간의 본성 자체가 이기적으로 '타고난 것'은 아니란 것은 2021년에 진행된 행복이 어디에서 오는지에 대한 조사 결과에서도 알 수 있다. 만약 '모든 인간'이 타고나게 이기적이라면 조사가 진행된 17개 국가 중에 대부분 국가에서 1순위를 가족으로 삼은 게 설명될 수가 없다. 심지어 미국과 영국은 2순위도 친구로 조사되었다. 인간이 정말 자기중심적이기만 하다면 당연히 돈과 명예와 부가 1순위가 되어야 하지 않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8개 국가는 그런 것들이 3순위 안에도 들어가지 않았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에서는 왜 유독 '인간은 원래 이기적이야'라는 말을 자주 들을 수 있을까? 그건 '우리 사회의 사회적 분위기'가 그렇기 때문이다. 위에서 언급한 조사 결과에서도 그 흐름은 그대로 드러난다. 우리나라는 17개 국가 중에서 유일하게 물질적 풍요로움을 행복의 1순위로 꼽았고, 개인의 건강을 2순위, 가족을 3순위로 꼽았다. 심지어 친구, 취미나 일은 5순위 안에도 들어가지 않았다.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지만 우리 사회는 전 세계에서 물질만능주의적이고, 소유를 행복의 근원으로 여기며, 자신의 건강부터 생각하는 경향이 가장 강한 국가가 되었다. 그런 사회 안에 있으니 '인간은 원래 이기적이다'라는 명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원래 그랬나? 아니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우리나라 사람들은 이웃의 아이도 봐주고, 혈연이 없어도 삼촌, 이모로 부르는 사람들이 동네에 많이 있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힘든 시절을 겪으며 자신이 굶어도 자신보다 더 힘든 사람들을 챙기던 사람들이다. 오죽하면 다른 나라에는 번역되기조차 힘든 표현인 [정]이라는 말이 우리나라에 있을까? 우리나라는 금 모으기 운동과 같은 이례적인 일이 IMF 시절에 일어난 국가가 아닌가? 


개인적으로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IMF를 겪고, 또 그걸 이겨내는 과정에서 물질적인 결핍을 느끼면서 이기적이 되고 물질만능적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그전까지는 서로 챙기고 위해주는 문화가 뿌리 깊게 박혀 있었지만 시장 상황으로 인해 해고를 당하고, 경제적으로 풍요로워졌다고 갑자기 궁핍함을 겪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나부터 챙기자'모드가 시전 된 것이다. 그런 문화 속에서 20대를 보낸 사람들이 벌써 50대 이상이 되었고, 그들의 자녀들도 20대가 되었으며, 그 사이 세대는 그들이 만들어낸 사회적, 대학교의 분위기에서 교육을 받았다 보니 우리 사회는 급격하게 이기주의적이 되어간 게 아닐까 싶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이기적인 면'은 당연히 가지고 있을 수밖에 없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그건 이기적인 면이 아니라 '본인 중심적인 사고'라고 하는 게 맞을 것이다. 그걸 극복하기 위해서는 교육을 받고, 사고하고 토론하는 능력을 갖춰야 하며, 자신이 틀릴 수도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인정할 줄 알아야 할 뿐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다른 게 틀린 것이 아니고 사람이 살다 보면 좀 틀릴 수도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품어주는 관용적인 분위기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그런 분위기를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사람들은 틀린 것은 잘못된 것이고, 다른 것은 틀린 것이라고 생각하고 다른 사람의 말은 들을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작은 것에서도 경쟁하려 든다. 그렇다 보니 사람들은 '본인 중심적인 사고'를 하는 것을 넘어서 이기적이 되어가는 게 아닐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원래 이기적이야'라고 하는 것과 '원래 이기적이지는 않은데 그렇게 되어버린 거야'라고 하는 것은 구분할 필요가 있다. 이는 인간은 원래 이기적이라고 한다면 누군가가 이기적인 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넘어가게 되지만 그게 원래, 타고나게, 본성이 그런 것은 아니라고 전제하면 이기적인 것은, 자기중심적인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지적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게 당연한 게 아니라는 것을, 누구에게나 다른 사람을 위하고 사랑할 줄 아는 능력을 갖고 있다고 전제하는 것과 그렇지 않다고 전제하는 것은 사람을 대하는 데 있어서 꽤나 큰 차이를 만들어 낸다. 


이게 그리 큰 문제 같지 않아 보일 수 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우리 사회의 많은 문제들은 인간의 이런 이기적인 생각과 행동으로 인해 나온다. 젠더갈등은 자신의 성별만이 맞고 상대는 틀리다고 전제하기 때문에 생기고, 이는 세대갈등도, 말도 안 되는 정치적 결정이나 정책이 나오는 것도 그 때문이다. 인간이 원래, 타고나게 이기적이라면 그 모든 게 그냥 당연한 것이다. 


그런데 그런 게 정말 당연한 건가? 인간은 정말 그럴 수밖에 없는 존재인가? 그게 아니라는 것을 증명할 수 있는 사례들은 차고도 넘친다. 


혹자는 '별 것도 아닌 걸 가지고 뭘 그렇게 난리냐'라고 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세상은 '별 것 아닌 작은 것'이 야기하는 나비효과로 바뀐다. 우리는 별 것 아니라고 하는 것들이 누적되고 축적되어 큰 변화를 일으킨다. 모든 것이 그렇다. 그래서 프로페셔널 한 사람일수록 자신의 영역에서 작은 디테일들에 더 신경을 쓰기 마련이다. 글을 쓰는 사람은 단어 하나, 접속사 하나를 신경 쓰고 운동하는 사람들은 팔, 다리는 물론이고 손가락의 각도와 위치까지 심하면 몇 mm까지 신경 쓴다. 이는 작아 보이는 디테일들이 큰 변화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인간이 정말 이기적인지 여부는 우리 사회의 문제들을 바라보는 시선을 다르게 하고, 누군가의 말과 행동에 대한 평가를 바꿀 수 있기 때문에 작아 보일 수 있지만 큰 문제다. 원래 할 수 없는 존재인 것과 할 수 있는 데 하지 않는 존재인 것은 분명 다르지 않나? 


인간은 원래, 당연히 이기적인 게 아니다. 그렇게 말하는 건 자신의 이기심을 정당화시키려는 핑계에 불과하다. 사람들은 누구나 이기적이지 않을 수 있는 면을 안에 타고난다. 그게 사후적으로 영향을 받아 왜곡되고 뒤틀려 있을 뿐. 그렇다면 뒤틀린 건 스스로 바로잡기 위해 노력하는 게 '정상'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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