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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mon de Cyrene Mar 05. 2022

'섹스' 얘기가 불편한 지점들

브런치에서 글을 쓴 지 만으로 5년, 곧 6년차에 접어든다. 처음부터 지금까지 가장 오래 쓴 주제는 연애, 결혼과 사랑이다. 그 중에서도 많이는 아니어도 거의 주기적으로, 연 1-2회는 쓰게 되는 글이 스킨십과 관련된 내용이다.


이제는 목차를 잡고 글을 많이 쓰지만 처음 3년 정도는 목차를 잡지 않고, 어떤 주제에 대한 생각이 머리를 가득 채워서 넘치면 그에 대한 글을 썼다. 지금도 그런 방식으로 글을 쓰는 매거진들이 있고, 이 글도 그렇게 쓰고 있는데, 유독 이 주제에 대해서는 이런 방식으로 글을 쓰게 되는 건 왜일까?


그때마다 이유가 다르지만, 가장 큰 이유는 아마도 스킨십, 특히 섹스에 대해서 가슴을 갑갑하게 만드는 콘텐츠가, 특히 유튜브 영상이나 글들이 많기 때문일 것이다. 이번 글도 마찬가지다. 개인적으로는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나 그런 내용을 다루는 영상, 글들을 일부로 찾아보는 편이다. 주제와 무관하게 나와 다른 생각이나 성향을 가진 사람이 만든 것이라면. 이는 그래야 내 생각이 치우치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종교도 불교, 이슬람교, 천주교의 내용을 들여다 보기도 했다.


스킨십, 특히 섹스에 대한 내용과 요지들은 거의 비슷하다. 문제는 그 내용이 점점 자극적으로 가고, 연애를 하면 남녀 간에 섹스는 무조건 해야 하는 것을 전제로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데 있다. 누구도 섹스가 왜 중요하고, 어떤 ‘마음’을 가지고 해야 하며, 무엇이 그것에 영향을 미치는 지를 입체적으로 살펴보지 않는다. 그런 콘텐츠들은 대부분이 마치 물리적이고 기능적인 요소가 전부인 것처럼 다룬다.


왜 그럴까? 그게 쉽고, 편하며, 자극적이기 때문이다. 복잡한 얘기, 어려운 얘기, 고민을 하게 만드는 얘기는 조회수가 잡히지 않으니 그에 대한 얘기는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자, 연애를 하면 무조건 섹스는 하는거야'를 전제로 소개팅 첫 날에 섹스를 할 수 있는지, 어떤 체위를 어떻게 해야 만족을 할 수 있는지 등에 대한 얘기를 시작한다.


부부의 성적인 문제를 다룬 콘텐츠들은 아주, 매우 구체적으로 들어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는 부부에게 스킨십은 또 다른 차원의 얘기고 우리나라는 부부관계에서 스킨십이 부족한 편이기 때문이다. 내가 봤던 부부의 성관련 콘텐츠들은 단순히 체위, 기술, 크기가 아니라 두 사람의 '관계'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는데, 그런 콘텐츠들은 더 많이 만들어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는 결혼한 부부의 관계에 성적인 문제는 굉장히 큰 부분을 차지하고, 많은 것들을 부드럽게 넘어갈 수 있게 해주며, 성관계를 건강한 가정을 꾸리는 중요한 매개체로 사용할 수  있고 스킨십이 단순한 쾌락이나 욕정을 충족시키는 행위가 아니란 것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하는 비뇨의학과 선생님들의 얘기들 역시 마찬가지. 최근 유튜브에는 '꽈추형'이라는 이름으로 활약(?)하시는 선생님이 계신데 그 분이 하시는 얘기들은 성적인 문제를 터부시 여김으로 인해 알아야 하는 최소한의 지식들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된다. 그 분은 다양한 채널에 나와서 다양한 얘기를 하시고, 본인의 채널도 만드셨는데 우리나라는 그런 얘기들이 조금 더 양지로 나올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처럼 유튜브에도 성과 관련해서 필요하고 도움이 되는 콘텐츠들이 많다. 하지만 성과 관련된 상당수, 어쩌면 대부분에 해당할지 모르는 콘텐츠들이 불편한 것은 미성년자들도 보는 채널에서 '연애를 하면 섹스는 일단 하는거야'를 전제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성은 아름다운 것이고, 스킨십은 말과 행동만으로 전할 수 없는 감정을 전할 수 있는 좋은 커뮤니케이션 수단이다. 하지만 섹스와 스킨십은 그런 감정과 의사소통의 매개체로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쾌락과 욕구, 욕망의 수단으로 사용할 경우 단 한 번의 경험으로 한 사람의 인생을 완전히 파멸로 이끌어 갈 수도 있는 위험한 면도 있다. 혹시라도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아이가 생기면 그 사람은 물론이고 생긴 아이의 인생도 고통으로 가득 찰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경우에도 마음이 열리지 않은 상태에서 한 섹스는 평생 지워지지 않는 마음의 상처로 남을 수 있다.


한 지인은 아버지로부터 성추행을 당했고, 첫 남자친구가 만날 때마다 성관계만 가지려고 했다보니 섹스는 물론이고 스킨십을 즐기지도 못하게 되었다고 했다. 여기에서 '성추행'이라고 하면 어떤 이들은 '성폭행'을 생각하겠지만 그 분이 경험한 건 성폭행까지는 이르지 않지만 성추행에 해당하는, 법적으로 문제가 되기에 애매할 수 있는 행위들이었다. 딸한테 던진 성적인 말 한 마디, 2차성징이 끝난 딸의 특정 신체부위를 만지고 지켜본 것은 그 사람이 평생을 스킨십을 사랑의 표현으로 느낄 수 없게 만들어 버렸다.


내가 속했던 집단들의 특성상 항상 여자가 더 많았고, 수다를 잘 떠는 편이다 보니 남자임에도 불구하고 여사친이 많았던 시절이 있었다. 학교 대표로 한 대회에 참여한 후에 함께 묵었던 게스트하우스 도미토리에서 내가 침대에 누워있는 동안 여자 후배들끼리 Victoria's Secret 속옷 쇼핑한 걸 서로 얘기하길래 '나 여기 있다~'라고 했더니 '에이~ 우리끼리 왜 그래요~'라고 말할 정도로 오빠가 아니라 언니처럼 포지셔닝이 된 적도 많았다.


그런 입장에서, 어쩌다 보니 친한 여자 동생들의  경험 얘기를  차례 들었던 경험에 비춰봤을   경험이 엄청나게 황홀하거나 좋았던 사람이   명도 없었던 것은 충격적이었다.  지점에서 여자분들 중에는 '당연한  아냐?!'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대부분이겠지만 상당수 남자들은 그런 생각을 하지를 못한다. 이는 남자들  상당수, 어쩌면 대부분은 섹스를 '임신이   있는 행위'이기 이전에 '욕구와 욕망을 해결하는 통로' 인지하기 때문이다. 본인이 임신을 하지 않을 것이다 보니 임신가능성 그렇게  문제로 생각하지 않는 남자들이 많은 것이 현실이다. 실제로 내가 '여자들 중에  경험이 황홀하거나 좋았던 사람보다는 두렵고, 긴장되고 떨려하는 사람이 훨씬 많은  아냐?'라고 물었을  돌아온 대답은 대부분이 '니가 그걸 어떻게 아냐?'였다.


조금만 생각해보면 그럴 수밖에 없다는    있다. 피임을 한다고 해도 완벽하게 피임을 했을 때의 임신가능성은 2%.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피임을 '완벽하게' 하지 못한다. 몰라서 그러는 경우도 있지만 관계를 하다보면 그게 그렇게 안될 때도 있다. 그렇다면 대부분 성관계는 임신가능성이 2% 이상일 수밖에 없다. 2% 숫자놀음일 뿐이고, 본인이 2% 해당하면 그건 그냥 100%인거다. 더군다나  경험을 하는 나이가 어려지고 있는 상황에서는 그런 지식조차 없는 상태에서 첫경험을 하는 사람들이 많아질 것이다. 그런 상태에서 첫경험을 하게 되면 두렵고 무서운 것은 당연하지 않을까?


여기에 더해서 청소년들의 경우 피임기구를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는  눈치도 보이고 쉽지 않은  현실이다. 그런데 청소년들은 경험이 어서 덜 능숙하기도 하고, 생물학적으로도 임신될 가능성이 훨씬 높다. 그런 현실을 고려했을 , 최소한의 공감능력만 있어도 여성의 입장에서는  경험이 편하지는 않을 확률이 매우 높아는 것을 아는  '상식적'이다.


물론,  경험이 두렵기만 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을  있다. 그런데  경험이 두렵지 않은 사람들은 성관계의 대가나 임신가능성에 대한 위기의식이 희석되어있을 가능성이 매우 고, 그런 사람들은 역설적으로 피임에 소홀함으로 인해 임신을  확률도, 정말로 본인을 아껴주는 사랑의 의사소통의 수단으로 스킨십과 섹스를 경험할 확률그렇게 높지는 않다. 기본적인 기준선과 위기의식 자체가 없기 때문에. 그렇게 되면  사람에게 성관계는 사랑의 표현이 아니라 쾌락을 위한 행위로 전락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런 사람들은  섹스에 대해 그런 생각을 갖게 되었을까? 그런 생각에는 '연애하면 당연히 섹스는 하는 거지'라거나 '섹스가 별거야?'라고 전제하는 수많은 콘텐츠들이 영향을 미쳤을 확률이 매우, 매우 높다. 별것 없다고, 임신은 그렇게 쉽게 되지 않는다면서 말하는 콘텐츠들 말이다. 이런 얘기를 하면 '어쨌든 피임을 철저히 하고, 경구피임약도 먹으면 되지 않냐'라고  수도 있는데 완벽한 피임법은 없고, 경구피임약을 복용한 후에 몸에 오는 반응들에 대한 이야기를 여사친들에게 들으니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그런 경험을 주기적으로 하게 만들고 싶지는 않더라.


'혼전순결을 지켜야지!'라는 말을 하고 싶은  아니다.  글들에서  차례 말했지만   표현도 싫어한다. 도대체 무엇이 순결하고, 무엇이 더럽혀지는 것이란 말인가?  표현 자체가 사실은 '순결한 여성'이라는 남성중심적인 사고 방식을 담고 있기 때문에  표현도 좋아하지 않고, 스킨십에 규범적으로 선을 긋고 무엇은 되고 안된다고 정의하는  자체를 좋아하지 않는다. 상호 간에 인간적, 정서적인 신뢰가 자신의 모든 것을 상대에게 오픈할 정도로 생겼고, 두 사람이 모두 스킨십을 통해서 감정을 표현하지 않고는 못 참을 정도라면 결혼을 하지 않았더라도 스킨십에 선을 정해놓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물론...  전에 '상대를 내가 온전히 신뢰할  있는가?'라는 질문은 스스로에게 던져 봐야  것이다.


스킨십은 무조건 상대를 사랑하고 아낀다는 표현으로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본인들도 좋으면서 내숭떠는 것이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 누군가 당신의 허벅지나 엉덩이를 당신이 불편함을 느낄 정도로 만지거나 주무른다고 생각해보자. 당신은 어떤 느낌을 받겠나? 10여년 전에 당해본 입장에서 말해자면 매우, 매우 불쾌하더라. 그리고 그런 스킨십에 대한 침묵이 동의가 아닌 것은, 나도 그때 '뭐하는 짓이에요!'라고 말하지 못하겠더라. 분위기를 망치고 싶지 않아서라도. 하지만 그 불쾌함은 10년이 넘은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다. 술만 취하면 남자한테 키스를 하는 팀장님에게 '키스'를 당한 불쾌감도 마찬가지로 지금까지 남아있고, 그걸 당한 고기집에는 가고 싶지가 않아지더라.


남의 몸에 손을 대는 건 상대의 명시적인 100% 동의가 있을 때만 해야 한다. 침묵이 동의인 것도 아니고, 설득을 해서 쥐어짜낸 '그래'도 동의가 아니다. 자유로운 의사표현을 할 수 있는 상태에서 상대가 최초로 표현한 것이 상대의 의사이고, 상대의 몸에 하는 행위는 설득을 통해 할 것이 아니라 상대의 자유의지로 허락해야 할 수 있는 것이다.


반대로 '싫다'라고 하면 본인을 떠날  같거나 헤어지게   같아서 두려움이 있다면, 그런 사람은  문제가 아니어도 이기적인 이유로 이별을  사람이니 헤어지는게 낫다. 그러니 이별이 두려워 마음이 내키지 않은 터치를 허락하지는 말자.


다시 말하지만 결혼 전에 성관계를 하면 안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소개팅을 통해 처음 만난 사람과 그날 끝까지  수도 있다고도 생각한다. 원나잇스탠드를 하는 것에 대해서도 사실 도덕적이지 않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스킨십을 오락처럼, 즐거움과 쾌락만을 위해서 사용하겠다는 개인의 생각을  수도 있는 거니까. '상호간에 분명한 동의' 있다면, 그리고 본인이  결과에 책임을 지겠다고 한다면 누가 뭐라고   있을까? 자신의 몸과 마음을 자신이 알아서 하겠다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킨십은 너무 빠른 것보다는 느린 것이 낫다고는 생각한다. 이는 스킨십과 섹스가 관계에서 먼저 오게 되면 거기에서 오게 되는 쾌락과 자극이 너무 커서 그 관계가 스킨십과 섹스에 잡아먹힐 수도 있기 때문이다. 스킨십과 섹스가 먼저 온다는 것은 필연적으로 두 사람 간의 신뢰가 형성되기 전에 자신의 욕구를 발산한단 것인데, 신뢰를 기반으로 한 관계 전에 오는 스킨십과 섹스는 관계를 보조하는 역할이 아니라 주도하는 기능을 하게 되고, 그렇게 스킨십이 끌고 가는 관계는 서로의 여러 면들을 확인하고 알아차리지 못하게 함으로써 건강한 관계에 도움이 되지는 않는다.


'맞는 지 여부를 확인해 봐야지!'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다. 그런데 그건 스킨십과 섹스를 기능적이고 물리적인 것에 한정짓고 있기 때문에  그런 것일 확률이 매우 높다. 쾌락적인 스킨십과 섹스적인 측면에서는 당연히 그런 것들이 중요하고, 그런 맥락에서 그런 주장들은 틀린 말이 아니다.


하지만 스킨십은 단순히 물리적이고 기능적인 게 아니라 종합예술과 같을 수 있다. 아니 그래야 한다. 그리고 서로의 마음을 나누고, 그런 마음에서 시작된 감정을 스킨십으로 표현을 하다보면 완벽하게는 아닐 수 있어도 기능적이고 물리적인 면들을 어느 정도는 극복할 수 있다. 기능과 물리적인 요소를 계속 강조하는 것은 그런 스킨십을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개인적으로 스킨십이 너무 빠르기보다는 천천히, 본인들의 마음이 열리는 속도에 맞춰서 가는 게 맞다고 생각하는 건 빠르게, 기능과 물리적인 요소를 중심으로 스킨십을 접근하게 되면 마음에서 시작되는 스킨십은 경험하기 힘들 수 있기 때문이다. MSG를 통해서 맛을 끌어올리고 자극적인 음식에 익숙해지면 슴슴하지만 깊은 맛의 음식은 누릴 수 없게 되는 반면, 건강한 맛을 먼저 접하고 나면 MSG가 들어간 음식은 또 그 나름대로 즐길 수 있게 되듯이 스킨십도 처음부터 깊게, 사랑을 표현하는 수단으로 경험하게 되면 자극적이고 쾌락적인 스킨십도 경험할 수 있는 반면 그 반대는 쉽지 않다.


스킨십과 섹스를 '정서적인 측면'에서 먼저 다가가야 하는 또 다른 이유는 그래야 스킨십이 지속가능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성관계를 한 달에 1회 이하로 하는 섹스리스 부부가 30%가 넘는다는 설문조사도 있고, 섹스를 '쾌락'적인 측면에서만 접근하다 보니 외도를 아무렇게 여기지 않는 사람들도 적지 않은 느낌인데 그 시작점은 [스킨십=욕구, 쾌락, 욕정]으로 여기기 때문인 듯하다. '잠자리 문제가 결혼생활에 중요하지 않다'라고 생각하는 것도 잠자리를 감정의 표현이 아니라 쾌락을 추구하는 수단으로만 여기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말이 아닌가? 스킨십의 정서적인 측면을 이해할 수 있다면, 그렇게 다가갈 수 있다면 대화할 때 상대에게 상처를 주지 않는 표현을 하는 것이 중요한 것만큼이나 스킨십을 자주, 잘 하는 것도 중요하다는 것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스킨십과 섹스의 세계는 생각보다 깊고, 신중하게 해야 할 측면들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너무 많은 사람들이 이 문제를 너무 가볍게 넘어가는 말을 하고, 글을 쓰며, 영상을 만든다. 성인들이야 그런 얘기들을 가볍게 듣고 넘기거나 예능적으로 소화할 수도 있지만, 그런 이야기들이 미성년자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를 생각해보면 그런 내용의 콘텐츠는 만들어져서는 안된다.


이 글을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브런치에서 다양한 주제의 글을 씁니다. 혹시라도 감사하게도 '구독해야지!'라는 생각이 드셨다면, 2022년에 제가 쓸 계획(링크)을 참조하셔서 결정하시는 것을 권장합니다. 브런치에는 '매거진 구독'이라는 좋은 시스템이 있으니, 관심 있는 매거진만 구독하시는 것이 나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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