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ETC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imon de Cyrene Mar 22. 2022

친구가 없어지는 나이가 됐다

썸 비슷한 것을 끝냈을 때였다. 아니, 썸이라고 해도 될 것이다. 한 달 넘게, 두 달까지는 되지 않는 기간 동안 매일 카톡을 하고, 주 3-4회는 저녁 11시를 넘어서 통화를 한 시간 전후로 하곤 했으니 그게 썸이 아니면 썸일 수 있는 게 있을까? 그래, 그렇게 썸이 끝난 후였다.


치열하게 연락했고, 열심히 서로를 알아갔으며, 끝에는 아니라는 확신이 들어 마침표를 찍었기에 아쉬움은 없었다. 지인이 아닌 소개로 알게 된 사람들과의 만남 이후에 서로가 아닌 것으로 확인이 되면 하게 되는 루틴까지 마무리한 상태였다. 상대와 인연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상대의 전화번호를 가지고 있는 게 불편해서 번호를 지우고, 지인도 아닌 상대가 내 일상을 아는 게 불편해서 프로필을 비공개로 돌리던 것이 어느새 루틴이 되어 있더라. 그 루틴까지 완벽하게 했으니까 그 관계에 아쉬움은 전혀 남아있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허전했다. 그럴 수밖에. 거의 두 달 동안 틈이 나면, 상대가 뭘 하는지가 궁금하면 매일 연락을 하며 살았는데 그렇게 연락을 할 사람이, 두 달 동안 루틴이 되어버린 일상이 삭제되었으니까 허전한 게 당연했다.


그 허전함을 채우기 위해 전화번호부를 뒤적이기 시작했다. 이건 내게 꽤 오랫동안 있는 일종의 습관이었다. 30대 초중반까지는 이별을 하고 나면 마음에 있는 헛헛함을 이기지 못해 친한 친구에게 연락을 해서 그 친구는 내가 전화만 걸면 '헤어졌나?'라고 하기도 했고, 그럴 때가 아니어도 뭔가 허전하고 외로울 때면 나는 지인들에게 전화를 걸어 수다를 떨고는 했다. 그리고 그 상대는 보통 여사친들이었다.


여자들은 잘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지만 남자들 간의 대화는 꽤나 간결하게 끝나는 편이다. 서로 공유하는 현실과 공감할 지점이 특별히 많지 않은 이상 남자들의 대화는 10-15분을 넘어가기가 힘들고 그 대화마저도 대부분이 감정과 공감하는 패턴이 아니라 사실관계를 전달하는, 마치 생사를 확인하는 듯한 이야기가 오가는 게 전부인 경우가 많다. 그렇다 보니 뭔가 허전하고 수다를 떨 필요를 느낄 때는 보통 여사친들에게 전화를 걸고는 했다.


여사친들이 꽤나 많았던 시절이 있었다. 내가 속한 모든 집단들에 기본적으로 여자들이 많기도 했고, 어렸을 때부터 그런 집단들 속에 있었다 보니 수다를 떠는 게 어색하지 않았다. 때로는 여사친인 동생이나 친구, 누나들이 나를 언니나 여동생 취급할 때도 있었고, 내 주위에는 10시나 11시에 통화를 해도 서로를 전혀 이성으로 보지 않는 친한 여사친들은 항상 몇 명씩 있었다.


그런데 그렇게 썸을 장렬하게(?) 내고, 주소록을 내려가면서 가슴이 내려앉기 시작하는  느꼈다. 전화를   있는 사람이 , , 다에서 시작해서 영어 카톡 아이디만 남을 때까지 내려가도  사람도 없더라.


주소록을 처음부터 끝까지 내려가는 의식(?)은 꽤나 오랜만에 한 것이었다. 11시에 전화를 해도 어색하지 않았던 마지막 여사친이 작년 초에 결혼을 한 이후에는 모든 삶의 무게를 혼자 짊어지고 사는 모드여서 누군가에게 전화를 할 마음의 여유조차 없었고, 그나마 전화나 카톡을 오래 하는 건 나와 비슷한 상황에 있는 형과 일을 같이 하는 형뿐이었다. 거의 1년 만에 주소록을 스캔해 보니 통화를 할 사람이 남아있지 않았던 것이다.


그렇게 공허함을 느끼며 문득 내가 마지막으로 [완전히 사적인 약속]을 한 게 언제인지도 돌아봤다. 지난 1년 을 돌아보니 일과 전혀 관련 없는, 주기적으로 연락하는 나와 비슷한 상황에 있는 사람들이 아닌 사람과의 약속은 2-3달에 한 번 밖에 없었더라.  


친구가 원래 없는 편이었냐고? 아니다. 회사를 다닐 때는 물론이고 방구석에 박혀 시험 준비에 집중하고 있었던 30대 중반까지만 해도 나는 주말에는 항상 약속이 하나 이상 있었고, 한 달 후의 약속까지 보통 잡아놓고 지내던 사람이었다. 하지만 지인들이 대부분 결혼하면서 한 달 후에 약속을 잡는 건 내 약속들 때문이 아니라 상대의 가정 상황 때문인 경우가 늘어났고, 아이가 생긴 사람들이 늘어나면서부터는 정말 친한 사람들도 1년에 한 번 이상 보면 잘 보는 게 되었더라. 코로나 이후에는 특히나 더.


언제까지인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저 사람들을 만나고 어울리는 것만으로도 스트레스가 풀리고 행복해지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만나던 사람들과 인생의 궤적이 달라지면서 그런 자리에서 오가는 대화들이 물과 기름처럼 겉돌기 시작하더라. 여기에 더해서 결혼하고, 아이가 생긴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만나기가 힘들어졌고, 연락하기도 조심스러워졌다.


그보다 더 근본적으로 나처럼 싱글인 사람과 결혼한 사람과 아이까지 생긴 사람들은 세상을 보는 시선도, 일상의 관심사도 완전히 달라지다 보니 공감할 수 있는 지점들이 줄어들면서 자연스럽게 만남의 자리도, 연락도 줄어들기 시작했다. 더군다나 여사친들의 경우 남편들이 나를 어느 정도 이상 아는 경우에도 아주 예외적인 경우가 아니면 따로 연락을 하기도 힘들어지더라. 만나는 것도 어지간한 관계가 아니면 단 둘이는 보지 않게 되고. 어렸을 때는 남녀도 친구가 가능하다던 나의 확고했던 생각도, 남녀 사이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바뀌게 되더라.


나이가 든다는 건 어쩌면 이렇게 외로워지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 길을 함께, 밀고 당기고 끌어주면서 공감하며 갈 수 있는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살만한 인생이 아닐까.  

 

이 글을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브런치에서 다양한 주제의 글을 씁니다. 혹시라도 감사하게도 '구독해야지!'라는 생각이 드셨다면, 2022년에 제가 쓸 계획(링크)을 참조하셔서 결정하시는 것을 권장합니다. 브런치에는 '매거진 구독'이라는 좋은 시스템이 있으니, 관심 있는 매거진만 구독하시는 것이 나을 수 있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인간은 '원래' 이기적인 존재인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