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ETC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imon de Cyrene Sep 29. 2022

설민석의 방송 복귀를 보며...

학위논문도 표절하고, 어설픈 지식으로 아는 척하다 진짜 전문가들에게 잘못된 내용들을 수도 없이 지적당한 설민석이 방송에 복귀한다. 사람들은 그에 대해 설민석을 비난하고, 그의 복귀를 추진한 방송국을 비난하지만 개인적으로는 그 비난의 방향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한다.


그 비난의 화살은 첫 번째로 그런 설민석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추종하는 사람들을 향해야 한다. 설민석은 방송에서 퇴출된 후에도 잘 나갔다. 그가 쓴 책들은 여전히 잘 팔렸고, 그는 여전히 인기 있는 강사였다. 그런 현실이 연구적인 측면과 전문가적인 측면에서 윤리적이나 도덕적으로도, 지식적으로도 부족한 그를 믿고 신뢰하는 사람들이 결국 그의 복귀를 이끌었다. 만약 그에 대한 문제가 터진 후에 책도 절판되고, 아무도 사지 않았다면 방송국은 그를 찾지 않았을 것이다. 


방송국에 잘못이 없다는 것은 아니다. 방송국이 조금 더 '공익성'을 생각했다면 그를 다시 불러내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이게 조금 방송국들에게는 더 아픈 얘기일 수도 있는데, 안타깝게도 우리나라 방송국들 중에 그런 공익성을 고려하는 곳은... 거의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 안에서 고군분투하는 피디와 작가들이 있는 것은 알고, 그들을 존중하고 존경하지만 방송국에서 가장 위에서 의사결정을 내리는 사람들에겐 공익성은 중요하지 않고 수익과 자신의 명예, 권력이 중요한 게 현실이다. 그리고 방송국 안에서 방향성은 그들이 정한다. KBS의 수신료 인상에 국민들이 극구 반대하는 것은 그만큼 방송국들이 공익적인 측면에서 신뢰를 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죄송하지만 나는 더 이상 방송국들에 공익적인 내용을 다룰 것이란 기대를 크게 하지 않고, 오히려 공익에 부합하는 보도를 하거나 그런 프로그램을 제작할 때면 오히려 깜짝 놀라곤 한다. 방송국들이 유튜버의 콘텐츠를 표절해서 프로그램을 만들어 문제가 되는 세상에 설민석이 방송으로 컴백하는 건 그렇게 놀라운 일은 아니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게 옳다는 것이 아니다. 그건 분명히 잘못된 결정이다. 하지만 기대치 자체가 낮고 '수익'적인 측면만 고려한다면 설민석을 컴백시키는 것이 이해는 되기 때문에 굳이 방송국을 비난하고 싶지는 않단 것이다. 


설민석 본인 역시 마찬가지. 사람들은 그에게 '양심이 있다면'이란 기준을 들이대겠지만, 당신이 설민석이라고 생각해보자. 당신은 명예회복을 하고 싶지 않을까? 그가 방송에 출연할 수 있는 건 그를 찾아주기 때문이다. 그에게 기회가 주어졌는데 그가 그걸 거절하라는 것은 너무 선비적인 마인드가 아닐까? 그의 결정이 이해가 안 되지는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사실 가장 큰 문제는, 가장 잘못된 사람들은 [학자]들이다. 우선 분명히 해야 할 부분이 있는데, 나도 [학자]로 분류될 수 있는 사람이다. 연구원에 적이 있고, 법학박사학위를 가지고 있으며 연구과제들을 매년 수행하면서 논문도 쓰고 있기 때문에 나는 분명 '학자'로서의 정체성도 갖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학계와 학자들의 세계와 그 분위기를 어느 정도는 알고 있기 때문에 이 현상의 가장 큰 문제는 학자들이라고 하는 것이다. 


나는 우리나라 학자들이 크게 세 부류로 나뉜다. 정말 연구실에 박혀서 자신의 연구만 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 자신의 사회적 지위를 사용해 자신의 이익을 취하는 것이 주된 목적인 사람들, 그리고 자신이 연구하는 분야를 가지고 세상을 조금이라도 낫게 만들고 싶어 하는 사람들. 


세 번째 부류의 학자들이 많아지고 그들이 존중받으면 우리 사회는 더 좋아지겠지만 안타깝게도 앞의 두 부류의 학자들이 많아 보이는 게 현실이다. 두 번째 부류의 사람들은 학교 안에서 학장이나 총장 같은 위치에 올라가거나 정부나 기관 관련 외부 일하는 것에 더 관심이 많아서 자신의 본업이어야 하는 연구는 소홀히 하는 경향이 있고, 그들 중 일부는 폴리페서라고 불린다. 첫 번째 부류의 분들은 그래도 순수하고 순진한 분들이 신데 문제는 그런 분들은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있고 사회성이 부족해서 현실과 완전히 동떨어진 연구들만 하고, 교수로 있을 경우 강의에서도 학생들의 입장과 수준은 고려하지 않고 본인이 관심 있고 하고 싶은 얘기만 하다 중요한 내용은 수박 겉핥기식으로 넘어가는 경우가 많단 것이다. 


개인적인 경험에 의하면 폴리페서가 되는 분들은 처음부터 그렇게 괴물이 되는 경우는 많지 않다. 그렇게 되는 분들은 보통 자신은 굉장히 중요하고 의미 있다고 생각하는 연구를 하는데 세상은 자신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주지 않고  자신의 생각들이 현실에 반영되지 않으니 그것을 실현시키기 위해 걸음을 내디뎠다가 망가지는 경우가 많다. 그들이 그렇게 되는 건 첫 번째 부류의 학자들과 마찬가지로 그들도 순수하고 순진한 면이 있기 때문이다. 학자들은 적어도 30대 중반, 적지 않은 이들은 30대 후반에서 40대까지 사회생활은 하지 않고 공부만 했다 보니 나이에 비해 순수하고 순진하며 세상 물정 모르는 면들이 많은데 그렇다 보니 사회에 발을 내딛는 순간 그 바람에 휩쓸리게 되는 것이다. 


이 모든 것에 대해 남 탓을 하자면, 전문가를 존중하지 않는 사회적 분위기를 탓할 수 있다. 사실이, 현실이 그렇다. 우리나라만큼 전문가가 자신의 전문성이 존중받지 못하는 나라가 얼마나 될까? 자신의 생존을 위해 다른 사람을 짓밟는 경우가 우리나라에 워낙 많아왔기 때문인지 우리나라 사람들은 다른 사람을 잘 신뢰하지 않는 경향이 유독 강하고 그런 분위기는 전문가들에게도 그대로 적용이 된다. 자신과 다른 것은 곧 틀림이라는 생각하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생각은 공평하게도(?) 전문가들에게도 그대로 적용되는데, 사실 이건 공평한 게 아닌 게... 평등은 같은 것은 같고, 다른 것은 다르게 대하는 것인데 전문가들은 비전문가들과 같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전문가들을 누구도 존중하지 않는다. 정부도 연구용역을 전문가에게 맡기지만 그걸 참조하는 공무원이나 정책결정자들은  많지 않은 느낌이고 인사권자가 잘  아는 사람에게 자리를 맡기면 그 사람 마음대로 일이 돌아가는 느낌이 강한 면이 있는데, 그런 사람들은 '전문가'라는 이름을 붙이고 본인 마음대로 일을 하다 망치는 경우가 많다 보니 사람들이 전문가를 신뢰하지 않는 느낌이다. 기업들의 경우에도 '컨설팅이나 자문받아도 결국은 오너 마음대로 할 것'이라는 분위기가 강하다 보니 사회 전반적으로 전문가들의  의견을 경시하는 분위기가 있다. 


그렇다면 '전문가'들은 조금 허들을 내려놓고 자신이 아는 정보를 모르는 사람들이 소화할 수 있게 포장해서 전달하기 위한 노력을 할 필요가 있다. '정보의 시대'가 아닌가. 정보의 시대에 전문가들은 자신의 생각이 사람들에게 알려지고 받아들여지기 원하면 그 정보를 어떻게 상대의 눈높이에 맞춰서 상대가 좋아하는 방식으로 풀어서 전달할지를 고민해야 한다. 


이는 학자들도 마찬가지다. 사실 학자들, 특히 인문. 사회과학자들은 자신의 전문성을 가지고 일반 대중에게 소통을 해야 자신의 존재가치를 증명할 수 있다. 최소한 지금, 우리가 사는 이 시대에는 그렇다. 인문. 사회과학은 과학기술처럼 곧바로 적용 가능한 게 아니라 사람들에게 정보를 소화 가능하게 전달함으로써 그 사람의 가치관과 세계관에 영향을 주는 방식으로 작용하는데 오늘날의 학자들은 정보화 시대 이전에 종이로 모든 것을 뽑아서 읽어야 하는 시대와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으로 살아간다. 


학자들 중에 대중과 소통하며 자신이 전문성을  가진 영역을 확장하려는 사람들은 오히려 '날라리'처럼 취급받기도 하는데, 오늘날에는 그런 사람들이 늘어나야 그 영역의 존재가 증명이 되고 그 영역이 유지될 수 있다. 학령인구가 줄어들어 지원하는 학생이 없는 학과와 대학은 폐지되는 세상이 아닌가. 그런 세상에서 학자들은 자신과 자신이 전문성을 가진 영역을 살아남기 기 위해서 몸부림을 쳐야 한다. 자신과 자신의 전공의 존재 이유를 증명해야 한다. 


인문. 사회과학에서 그것을 증명하는 방법은 대중과의 소통을 늘려나가는 것밖에 없다. 그러기 위해서는 소통하기 위한 스킬을 늘려나가거나 그런 스킬을 가진 사람들을 유치해서 공부를 시켜야 한다. 그런데 그런 학자들이 없거나 많지 않으니 학위논문도 표절하고 역사도 어설프게 아는 사람이 여전히 방송에서 불려 나가고, 책을 팔면서 큰돈을 번다. 


이게 누구의 잘못인가? 어떻게 보면 방송국도, 설민석도 잘못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또 어떻게 보면 그들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한 현상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대부분 학자들이 연구를 하면서 대중과 소통하려는 의지도 없고 노력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설민석이 다시 방송을 하는 것을 보며 학자들은 뒤에서 방송국과 설민석을 비난할 것이 아니라 왜 그런 현상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지를  고민하고 반성해야 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사랑에 대한 글을 써온 이유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