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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mon de Cyrene Oct 07. 2022

글쓰기의 어려움

글을 자주, 많이, 다양하게 쓰는 편이다 보니 사람들은 이런 글도 써봐라, 이것도 해보면 어떠냐는 식의 이야기들을 종종 한다.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은 [글]이면 모두 같은 것으로 아는 듯해서 당혹스럽기도 하고 때로는 화가 날 때도 있다. 


그런 사람들만큼이나 당혹스럽고 화가 나는 건 글을 업으로 하는 사람들이 자신의 글쓰기 방식이 정답이라고 여기는 것. 아니, 사실 글을 쓰지 않으면서 글쓰기가 다 같은 글쓰기가 아니란 것을 모르는 사람보다 이런 부류의 사람을 더 싫어한다. 이런 사람들은 고집과 아집이 강해서 본인이 생각하는 글쓰기에서 벗어난 글쓰기는 틀린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전자는 설명을 하면 소통이 될 수 있는 것과 달리 후자는 애초에 말이 안 통하기 때문에 그런 사람에게는 벽을 치는 편이다. 그런 사람들은 본인 속에 빠져서 자신을 객관화시키지 못하면서도 본인은 객관화하고 있다는 착각에 빠져 있으면서 본인과 똑같은 사람이 아닌 다른 사람들에게 손가락질을 하는 경우가 많다 보니 좋아하기도, 존중하기도 힘들다. 


글쟁이들이 그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는 것은 사람들이 '글은 누구나 쓸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글은 무엇을 목적으로, 누가 읽기를 바라는지에 따라 사용하는 표현, 문장의 길이, 형식을 모두 달리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야구선수가 반드시 축구를 잘하지는 않고, 락커가 반드시 랩을 잘하지는 않듯이 한 종류의 글을 쓰는 사람이 다른 종류의 글도 쉽게 써낼 수 있는 건 아니다. 물론, 야구선수들이 운동신경이 좋기 때문에 일반인보다는 축구를 잘할 수도 있고 락커가 리듬감이 있으면 랩도 잘할 수는 있겠지만 그들이 두 가지를 선수나 프로처럼 잘 하기는 힘들다. 


그게 어려운 것은, 눈으로 보기에 글은 글자의 조합으로 표현되지만 사실 글은 글 자체가 아니라 그 안에 담겨 있는 그 사람의 생각, 시선, 사고체계, 세계관, 감성을 모두 담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 사람이 다른 대상과 형식의 글을 쓸 때는 자신 안에 있는 다른 요소를 다르게 조합해서 써야 하기 때문에 하나의 글을 쓰다 다른 대상이나 형식의 글을 쓰면 전환되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러한 전환을 아예 못하는 사람들도 굉장히 많다. 하나의 글쓰기 방식만 계속해왔거나 그 안에서 너무 오래 훈련된 사람들은 다른 대상에게, 다른 형식으로 글을 쓰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다양한 일을 하며 살고 있고, 그 일들은 모두 '생각과 글'이라는 공통점을 갖는다. 그런데 나는 어제는 이런 글을 쓰다, 오늘은 저런 글을 써야 하고, 내일은 또 다른 글을 쓰기로 계획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정책연구보고서와 학술논문의 글쓰기도 꽤나 다른데, 그것보다 조금 더 다른 브런치에서의 글쓰기도 해야 하고, 드라마 작업을 할 때는 또 그에 맞춘 글쓰기를 해야 한다. 영상을 편집하는 것도 또 다른 형태의 글쓰기라고 나는 생각하는데, 이는 영상은 철저히 이야기를 편집하게 되기 때문이다. 때로는 하루에도 몇 번씩 이런 글들을 오가며 작업을 해야 하는데... 그게 잘 안되고 버겁다. 그리고 그렇게 삐걱거릴 때면 대부분 사람들이 이러한 과정에서 경험하게 되는 고통을 알아줄 수가 없다는 사실을 알다 보니 이 세상에 나 홀로 고립되어 있는 느낌을 받기도 한다. 


댓글을 단 사람은 그저 스쳐 지나가듯 '톡' 찌른 것이겠지만 그 '톡'은 누군가에게 수술을 받은 것만큼 깊은 상처와 분노를 남길 수 있다. 이 글은 그 상처와 분노를 안고 또 한 번 완전히 다른 글쓰기를 해야 하는 상황에 처해 있다 보니 전환은 되지 않고 글이 써지지 않아 쓰는 글이다. 이 글은 브런치에서 쓰는 글과 완전히 다른 글을 오늘까지 마감해야 하는데 도저히 글쓰기가 워밍업이 되지 않아서 몸부림치는 것의 흔적이다. 


글을 쓰기 전에는 항상 나의 마음과 몸을 특정 주파수에 맞춰 특정한 상태에 만들어야 하는 편이다. 그래서 매일 출근하듯이 책상 앞에 나가 하루에 정한 분량은 일단 쓰고 퇴근하듯 그날의 글쓰기를 접었다는 하루키가 부럽다. 하지만 그건 그의 루틴일 뿐이고, 글 쓰는 것을 업으로 하는 사람은 모두 각자의 패턴과 루틴들이 있다. 그리고 그걸 바꾸기도 쉽지 않다. 이런 나 자신을 인정하고, 있는 그대로 존중하고 사랑하는 법을 배워야 글을 계속 쓸 수 있기에 오늘도 그래 보기 위해 노력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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