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에 보는 세상. 4편.
살면서 정말 똑똑한 사람들, 천재라고 할 수 있는 사람들을 적지 않게 만났다. 그중에 감탄하게 만들었던 사람은 단 한 명. 그 교수님은 너무 똑똑해서 학생들이 어떤 지점에서 왜 이해를 못 하는지까지 알아서 그에 맞춰서 수업을 진행해주실 정도로 타고난 지능과 재능이 탁월하셨다. 그 교수님이 엄청나게 느껴졌던 것은 자신의 세계를 뛰어넘어서 자신이 경험하지 않은, 아니 경험하지 못한 세상에 대해서도 머리로 이해하고 그에 맞춰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다른 천재들은 대부분 그 경지에는 이르지 못하고 자신 안에 갇혀서 '이걸 도대체 왜 이해 못 하지?'라는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
대부분 사람들은 그렇다. 대부분 사람들은 본인이 경험한 것만 알고, 자신이 경험하지 못한 건 알지 못한다. 자신이 경험하지 않은 것에 대한 이해가 생기기 위해서는 그 문제에 대해 굉장히 깊이, 오래 고민하는 시간을 가져야 하는데 '빨리빨리'가 강조되는 우리나라에서는 세상이 그런 고민을 하고 있도록 놔두지를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사람들은 꽤나 용감해서(?) 자신이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해 함부로 아는 척하고, 가르치려 드는데 그건 상대에 대한 폭력이 될 수 있다. 정말 겸손하고 건강한 자아를 가지고 있는 진짜 똑똑하고 탁월한 사람들은 자신이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을 구분할 줄 알고, 자신이 모르는 것에 대해 함부로 말하지 않는다.
이는 실패도 마찬가지다. 실패하고 좌절한 사람의 마음은 본인이 실패하고 좌절해 본 사람들만 안다. 아니, 사실 그런 사람들도 지금 실패하고 좌절해 있는 사람의 마음을 완전히 알 수는 없다. 이는 본인이 실패하고 좌절했었지만 그것을 극복해냈다면 당시의 감정과 기억들은 그 이후의 경험으로 희석되었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다만, 본인이 실패를 했을 때 다른 사람으로부터 손가락질을 당하고, 그로 인해 다시 힘들고 고통스러운 시간을 지냈던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이 본인의 실패와 상처받은 마음을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을 안다. 그렇기 때문에 그 경험을 한 사람들은 섣불리 실패해서 좌절한 사람들에게 조언이나 위로를 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가 봐도 힘든 시간을 보낼 수밖에 없는 실패를 경험한 사람들은 그 경험을 하지 못한 사람들보다는 실패하고 힘들어서 좌절한 사람의 마음을 잘 이해할 수 있다. 그때의 기억과 감정들이 마음에 남아있기 때문에. 그렇다 보니 실패를 경험하고 힘들어 본 사람들은 그런 경험을 하지 못한 사람들보다는 힘든 사람들과 더 많이 공감하고, 위로를 해줄 수 있게 된다. 이는 본인이 그런 마음이 들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상대도 자신만큼이나 힘든 시간을 보낸 사람에게 마음의 문을 더 쉽게 열기 때문이다.
실패를 반복하기 전까지 나는 사실 다른 사람의 아픔과 상처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당시에는 내가 그런 사람이라는 것을 몰랐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지인들이 해준 얘기들과 내가 다른 사람을 대했던 방식과 말을 돌아보면서 내가 그랬다는 것을 알게 됐다. 나를 잘 안다고 생각하지 못했던 후배가 몇 년 전에 내게 많이 유해졌다면서 내가 학부시절에 '스스로에 하는 일과 결정들에 안쓰러울 정도로 높은 기준을 갖고 있고, 다른 사람에 대해서는 그 기준을 완화하긴 하지만 여전히 다른 사람들의 기준보다는 높은 잣대를 가지고 평가하고 판단하던 사람'이었단 얘기를 들으며 반성하고, 또 반성했다.
계속 실패하고 어두운 터널을 지나 조금씩 빛이 보이기 시작할 때야 비로소 그때 내 지인들에게 미안한 마음도 생기고, 내가 많은 사람들에게 상처를 줬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생각나는 사람들에게는 오랜만에 연락해서 사과를 하기도 했고, 그 후로는 덩치는 큰데 소심한 사람이 되어버렸다. 가능하면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지 않기 위해 노력하기 시작한 건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힘들고 상처를 받은 다음 후부터였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니다. 대부분 사람들이 그렇다. 어떤 형태로든 본인이 힘들었던 사람들은 그런 힘듦을 겪는 사람을 그런 경험이 없는 사람들보다는 더 잘 이해하고, 공감해 줄줄 알며, 위로해 주는 법도 안다. 본인이 경험했기 때문에. 한창 힘들 때, 실패해서 좌절했을 때는 누구도 그럴 여유가 없지만 시간이 지나고 그런 문제들이 회복되면 힘들어 본 사람들은 다른 힘든 사람들을 이해하고, 위로해 줄줄 알며, 자신이 해줄 수 있는 것을 해주고 싶어 한다. 그 사람이 얼마나 힘든 지를 100%는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는 알기 때문에.
실패하고 힘든 사람들이 모두 그런 것은 아니다. 아직 자신의 아픔을 완벽하게 극복하지 못한 사람들은 더 강해 보이고 있는 척하기 위해 더 세게 지적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자신이 실패의 아픔을 잘, 건강하게 극복한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아픔에 공감해주고, 그 사람이 더 이상 힘들지 않을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 싶어 하게 된다. 그 상태가 얼마나 고통스럽고 힘든 지를 경험적으로 알기 때문에.
그런데 그렇게 누군가와 공감해주고, 도움을 주다 보면 우리는 어느 순간 사실은 그 과정에서 상대에게 주는 것보다 내가 받는 게 더 많다는 것을 알게 된다. 구체적으로 어떤 메커니즘으로 그 작용이 일어나는지는 모르겠지만 누군가와 공감해주고 그 사람을 위로해주다 보면 그 공감하는 과정 자체로 인해 자신이 위로를 받는 경험을 하게 되는데, 그 감정과 느낌은 경험하지 않은 사람은 알 수가 없을 것이다. 애초에 누군가와 공감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은 일인데 내 경험으로 인해 누군가와 공감을 하는 경험을 하는 것 자체가 힐링이 되는 것일까?
내가 아는 것은 나는 실패하기 전까지는 누군가와 공감하고, 이해하는 대화를 잘하는 사람은 아니었는데 실패하고 힘든 시간을 지나고 나서 그럴 수 있게 된단 것이다. 그리고 그런 대화가 인생을 얼마나 풍요롭게 만들고, 오히려 위로가 되는 지를 느끼면 다시 한번 그 힘든 시간을 경험할 수 있었던 것과 그 상태를 극복할 수 있었던 것에 감사하게 된다.
그렇다고 해서 일부로 실패를 해야 한단 것은 아니다. 실패를 하지 않으면 이런 경험을 할 수는 없겠지만, 실패를 하는 것 자체가 주는 고통이 엄청나게 크기 때문에 가능만 하다면 어떤 실패도 하지 않는 것이 가장 좋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그 구조상 실패를 단 한 번도 하지 않기는 쉽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모두 그러한 감정을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살면서 몇 번은 부여받는다. 그 기회를 잡아 자신의 상처를 넘어서지 못하거나 그것을 기회로 보지 못해 지나쳐서 기회를 놓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있을 뿐이다. 그 실패가 나처럼 길고 인생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이어야 하는 것도 아니다. 작은 실패를 통해서도 '나도 이렇게 힘든데 다른 사람들은 어떨까'라고 생각하며 자신이 경험한 선에서만 조심스럽게 공감하고, 위로할 줄 알게 되는 사람들도 있다.
분명한 것은 우리가 다른 경험에서도 그렇듯,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공감하고 위로하는 것도 그 과정을 경험한 사람만 그럴 수 있단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실패해서 힘들고 고통스러웠던 경험도 잘 버텨내고 나면 그게 오히려 다른 사람과 많이 공감하고, 이해하게 될 수 있는 선물이 되어줄 수 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과 공감하고, 많은 사람들을 이해할 수 있게 되는 삶은 꽤나 풍성하고, 풍요롭다. 그건 아마도 다른 사람과 공감하고, 위로하고 이해하는 것도 넓은 의미의 '사랑'에 속하고, 인간은 사랑이 필요한 존재이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거의 다 지나갔으니 할 수 있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