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에 보는 세상. 3편.
앞의 글에서도 설명했지만 모든 사람들이 실패를 선물로 받아들이게 될 수는 없다. 실패를 경험한 사람에게 그것을 선물로 받아들이라고 해서도 안된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때로는 실패가 오히려 우리를 더 나은 길로 인도해주고, 우리를 더 좋은 사람으로 만들어주기도 한단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특히 그런 것은 우리나라는 굉장히 획일화된 가치를 강요하고, '성공'의 공식을 정해놓고 아이들에게 강요하는 경향이 굉장히 강하기 때문이다. 지금은 조금 달라졌다고는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그 '경로'의 다변화는 일어났지만 본질적인 변화는 일어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돈을 많이 벌고, 사람들의 평판에 의존하며 주위에 자랑할 수 있는 명예와 권력을 갖는 것을 성공으로 여기는 문화는 우리나라에 여전히 만연해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여기에서 질문을 해 봐야 한다. 그런 '성공'을 이룬 사람들은 행복한가? 유명한 연예인이 되는 꿈을 꿨던 사람들은 유명해진 지금 과연 행복한가? 그런 사람들도 있겠지만 아닌 사람들도 있다. 무한도전을 끝낸 후에 다시 재개하려고 할 때 일부 멤버들이 사양한 것은 '국민예능' 속에 많은 관심을 받으며 사는 것이 감당이 안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다른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하지만 유명해지니, 목표를 이루고 나니 허무해졌다는 연예인들이 얼마나 많이 존재하는가? 그것만 봐도 우리는 목표를 이루는 것 자체가 행복을 보장해주지 못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나는 조금 더 가깝게 내 주위에 있는 사람들을 보며 목표지향적이고 성공하는 것이, 사람들이, 우리 사회가 말하는 성공이 반드시 그 사람의 행복을 담보해주지 못한다는 것을 발견한다. 내가 20대에 거쳐왔던 환경들로 인해 내 주위에는 30대 초중반에 억대 연봉을 받기 시작한 사람들이 말 그대로 '널렸다'. 나는 잔고가 67만 원을 찍었을 때 나와 같이 회사를 다니고, 대학원을 다녔던 사람들은 대부분이 억대 연봉을 찍고 상당수는 서울에 집도 마련한 상태였다. 그 시점에 나는 내가 세상에서 가장 불행하고 그들은 모두 행복할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내가 조금씩 터널에서 벗어나 그들을 만나보니 그건 나만의 착각이었음을 알게 됐다.
물론, 돈은 없는 것보다는 있는 게 낫다. 사회적인 지위와 명예도 바닥인 것보다는 어느 정도는 되는 것이 사는데도 도움이 된다. 그런 것들이 전혀 필요 없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다. 지금도 내가 하고 있는 일들 중에 장기적으로 돈을 더 많이 벌 수 있는 게 무엇인지를 놓고 계산기를 두드리는 내가 그렇게 생각할 리가 없지 않은가? 다만, 우리 사회에서, 어렸을 때부터 주입하고 강요하는 바를 달성하는 사람들은 그것을 달성하고 나서 그게 모든 것을 보장해주지 않는단 것을 깨닫게 되더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을 뿐이다.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 사람들은 보통 자신이 주입받은 목표를 향해 열심히 돌진해서 그 지점에 이르러 허무함을 느끼면 거기에서 사회에서 다른 목표를 주입받고 그 목표를 향해 달린다. 그 패턴을 60-70대까지 반복하며 말 그대로 '엘리트 코스'를 달리는 사람들이 세상에는 적지 않게 있다.
그런 사람들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그런 사람들 중 상당수는 자신이 해온 것이 항상 옳았고, 자신이 목표로 한 것은 항상 달성해 왔기 때문에 자기 확신에 갇혀 주위를 객관적으로 보지 못하게 되고, 다른 사람들과 공감할 줄 모른다. 그럴 수밖에 없지 않나? 본인은 항상 성공했고, 목표를 달성했으니 그 사람의 관점에서는 본인이 가장 대단한 사람인 게 당연하다.
하지만 그런 상태에 이른 사람들 주위에는 보통 사람이 없고, 적이 생기고, 늘어나게 된다. 속된 말로 재수 없지 않은가? 그렇다 보니 그 주위에는 그 사람을 이용해서 본인도 성공하려는 사람은 많아 사람이 많아 보이지만 마음을 나누고 공감해주고 이해해주는 사람들은 많을 수가 없다. 그리고 평생을 목표를 향해 달리고 경쟁하는 게 습관이 된 사람은 모든 순간을 그렇게 살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는 필연적으로 다른 사람을 경계하는 게 몸에 벨 수밖에 없다.
그렇게 사는 것을 성공이라 여기는 사람은 아마도 진정한 공감과 이해를 받는 경험을 못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은데, 내가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것은 20대까지 내가 그랬기 때문이다. 뭔가를 이루고, 달성할 때는 아드레날린이 분비되는 것처럼 내가 받는 상처들을 느끼지 못하고 계속 달려갈 힘이 생기는데, 그런 상태는 한 번의 큰 실패를 맛보게 되면 그 자리에서 무너지게 되더라. 나도 그랬지만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들 중에 한 번의 실패가 그 사람을 나락으로 이끌어 다시는 회복할 수 없게 만드는 경우가 적지 않은 것은 그 때문이다.
경쟁이 치열한 사회에서 세상이, 사회가 요구하고 강요하는 성공, 명예, 권력과 부를 취득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필연적으로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고 상처를 입을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실패를 하지 않고 그 길을 오래 간 사람일수록 그 사람 안에 누적된 상처들은 많을 수밖에 없고, 그게 많이, 오래 누적된 사람들일수록 한 번 이탈을 하게 되면 회복할 능력이 없을 수밖에 없는 것은 다른 이유들도 있지만 생물학적으로 노화가 이뤄져서 그 감정을 극복할 에너지가 많이 남아있지 않기 때문이다. 대기업 임원까지 하신 분들이 회사를 그만두거나 정치계를 떠난 사람들이 외적으로 갑자기 늙는 것은 그러한 원리가 작용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렸을 때 작지만 감당 가능한 실패를 경험한 사람들은 그 실패를 극복하는 근육이 어느 정도는 만들어져 있다 보니 회복탄력성이 더 높은 경우가 많다. 물론, 작은 실패를 극복하지 못하고 넘어지는 사람들도 있는데 그것은 그들이 실패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여전히 사회에서 강요받고 주입된 목표에 대한 욕구와 욕망에 사로잡혀 경주마처럼 그 길만 보고 있기 때문이다. 실패에 대한 회복탄력성이 생긴 사람들은 보통 실패를 하고 나면 다른 길을 찾고, 시선을 다른 방향으로 돌린다. 그러다 보면 새로운 길이 보이는데, 이러한 과정을 반복하다 보면 우리는 예상하지 못한 곳 어딘가에는 도착하게 되어있다.
실패가 선물이고, 축복이 될 수 있는 것은 그렇게 실패를 반복하는 과정에서 눈을 다른 곳으로 돌리면서 하는 선택들은 반복되면 될수록 '나에게 맞는 선택'을 하게 되기 때문이다. 나의 경우 내가 실패하지 않았다면 절대로 하지 않았을, 아니 한두 번 실패를 했을 때도 망설이고 가는 게 두려웠던 선택을 하고, 그 길들을 가고 있다. 나는 박사학위를 받고 나서 학계 선배들의 시선이 두려워 다른 일들을 하는 게 망설여졌고, 주위에서도 그렇게 조언을 했지만 먹고살아야 하다 보니 들어오는 일들을 받았는데 그 일을 하다 보니 그게 내게 더 잘 맞았고, 돌아보니 나는 비슷한 곳을 맴돌면서도 내가 살아온 경로 때문에 그 지점만 피하려 하고 있었더라.
이처럼 실패하고 일어나서 다음 선택을 하는 과정을 반복하다 보면, 그 과정에서 여러 고민을 하고 다양한 가능성을 놓고 계산을 하다 보면 우리는 결국 우리가 가장 잘하고, 우리에게 맞는 길을 찾아가게 되어있다. 그 시간은 몇 주나 몇 달이 아니라 보통 최소 몇 년은 걸리게 되다 보니 힘이 들 수밖에 없다. 하지만 마흔이 된 지금 사회적으로 성공이라 여기는 것들을 이루며 지금까지 살아온 지인들보다는 내가 조금은 더 행복하게 느껴지는 것은 그들 중 상당수는 계속 성공만 했다 보니 자신이 어떤 사람이고, 자신에게 어떤 옷이 맞는지는 모르는 상태로 자신이 입고 있는 옷이 맞지 않는다는 것만 알면서 살아가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발견하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도 사회적으로 주입된 가치관과 세계관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보니 단기적으로 볼 때 실패는 그저 실패일 뿐이고, 누구나 실패는 아프고, 힘들 수밖에 없다. 하지만 사람은 모두 다르기 때문에 사회에서 주입한 목표와 성공이 누군가에게는 행복을 줄 수 있겠지만 대부분 사람들에게는 그럴 수가 없다. 주위를 둘러보면 사람들이 서로 얼마나 다른가? 그런데 행복에 공식이 있는 게 말이 되나? 우리는 서로 다른 만큼 행복을 다른 지점에서 느낄 수밖에 없고, 그렇기 때문에 행복에는 정답도, 공식도 있을 수가 없는데 사회는, 세상은 그에 대한 공식과 정답을 주입한다.
실패는 그 경로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기회가 될 수 있다. 사회적으로 설정된 목표는 달성할 수 없게 되었기 때문에 우리는 경로를 이탈할 수 있게 되고, 사람들은 누구나 경로를 자신의 방식으로 이탈하게 된다. 그렇게 경로를 따라가다 보면 우리는 또다시 실패도 하고, 실수도 하지만 포기하지만 않는다면, 계속 고민하면서 신중하게 그 길을 걸어가며 최선을 다하다 보면 그 끝에는 우리에게 가장 맞는 길을 찾게 될 것이다. 이는 하나의 선택에는 나의 성향과 기준에 여전히 내게 남아있는 주입된 기준의 흔적이 남아있을 수 있지만 그 선택이 반복될수록 나의 성향과 기준이 크게 작용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 길은 쉽지 않다. 그리고 그 방향을 찾은 후에도 그냥 주어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어쩌면 그 길을 가는 게 엄연히 말하면 행복한 게 아니라 그저 조금 덜 불행한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버티고 가다 보면 조금이라도 덜 불행한 길을 찾을 수 있다면 그 길은 가 볼만하지 않을까? 그런데 내 경험에 의하면 그 길을 발견하게 되면 덜 불행한 게 아니라 힘들면서도 행복하게 되더라. 그렇다면 그 길은 더더욱 가볼 만한 길이 아닌가?
이처럼 실패는 그 후에 여전히 주입된 목표와 성공에 대한 욕망과 욕구에 구속되어 있으면 우리를 나락으로 몰아갈 수도 있지만, 우리가 조금만 시선을 돌려볼 수 있다면 장기적으로는 선물이 될 수도 있다. 여기에 더해서 실패가 주는 또 다른 선물이 있는데, 그에 대해서는 다음 글에서 다루도록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