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 불혹이란 거짓말

마흔에 보는 세상. 1편.

by Simon de Cyrene

불혹, 세상 일에 정신을 빼앗겨 판단을 흐리는 일이 없는 나이. 내가 미국 나이로까지 마흔이 되어서야 할 수 있는 말이지만 '불혹'이라는 말은 거짓말이다. 나는 만으로 마흔 살이 되었지만 여전히 무엇인가를 판단하는 게 어렵고, 작은 것에도 흔들린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니다. 나보다 먼저 마흔 살이 된 형, 누나들도, 형, 누나라고 부르기에 조금은 부담스러운 이미 '지천명'에 이르렀어야 할 나이의 지인들도 끊임없이 흔들린다. 아니, 모든 말을 객관적으로 듣고 이해할 수 있는 나이라는 '이순'의 나이의 부모님도 흔들리시는 것을 본다.


그렇다면 마흔이 되어서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을까? 그건 아니다. 사람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내 또래 지인들을 보면 공통점들을 적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그 가장 큰 공통점은 생물학적으로 노화되고 있다는 것을 느끼는 것이 아닐까 싶다. 물론, 운동을 꾸준히 한 사람들은 40대가 되어서도 관리를 하지 않는 20 대들보다 더 체력도, 외관도 훌륭하게 관리를 한다. 하지만 운동을 꾸준히 해 온 사람들은 자신의 운동능력이 20대는 물론이고 30대 때보다도 확연하게 저하되었음을 느끼고 운동 강도를 조절하게 되고, 운동을 하지 않은 사람들은 관리의 필요성을 느끼고 운동을 시작하게 되는 나이가 40대다.


그리고 세상 어떤 것에도 흔들리지 않거나 절대로 판단이 흔들리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개인적인 경험으로는 딱 마흔이 아니더라도 마흔 전후가 되면 사람들은 대부분 어떤 형태로든 안정기에 접어든다. 이 안정기가 꼭 좋은 것만은 아닌 게 어떤 이들은 모든 것을 포기하면서 그 자리에 머무르게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른 방식으로 자신만의 안정기를 찾는 사람들도 굉장히 많다. 자신만의 패턴, 인생의 방향을 잡고 옆으로 흔들리기보다는 자신이 가야 할 길에 집중하는 방식으로 40대에 인생의 안정기를 맞이하는 사람들이 많다. 여기에서 '안정기'는 '평생 먹고살 것이 해결되었다'는 의미가 아니라 '자신이 갈 길이 명확해진 것'을 의미한다.


이게 좋게 들릴 수도 있지만 꼭 그렇지 않은 것은 이는 40대들에게는 '새로운 가능성'이 많지 않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빠르면 고등학교를 졸업한 직후, 늦어도 대학원을 마치고 30대 초중반에는 사회생활을 시작하는데, 40대가 되면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이 30대까지 쌓아온 것을 발판 삼아서, 그것을 자산으로 삼아 나가야 하는 상황에 처한다. 물론, 갑자기 다른 일을 하는 사람들도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이 뉴스에 나오고 대단하게 여겨지는 건 대부분 사람들이 그렇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렇게 갑자기 다른 길을 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상당수가 그러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 처했기 때문에 그런 선택을 하게 되는 것이지 자의로 방향을 틀어버리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그 이유는 크게 세 가지를 들 수 있을 듯한데, 그 첫 번째 이유는 사람들은 자신이 20-30대까지 쌓은 것을 포기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자신이 지금까지 쌓아온 것을 0으로 돌리고 완전히 새로운 길로 들어서면 자신이 지금까지 해 온 것이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여겨지는 듯하다 보니 사람들은 대부분 40대가 될 때까지 자신이 쌓아온 것을 포기하지 못하고, 어떻게든 자신이 가는 방향으로 가는 경우가 많다.


두 번째 이유는 나이가 들수록 새로운 것을 시작하고 벌리기가 두려워지기 때문이다. 내가 마흔이 되어 이런 얘기를 할 줄 몰랐는데... 20대에는 상대적으로 잃을 것이 적다. 나도 내가 20대에는 내가 잃을 게 적은 줄 몰랐다. 당시에는 취업을 하기 전에는 취업을 하지 못하면 내 인생을 잃는 것 같았고, 회사생활이 맞지 않는단 것을 알았을 때는 대학원에 가지 못하면 평생이 괴로울 것 같았다. 당시 내게는 그게 '잃을 것'들이었다.


하지만 지금 돌아보면 당시에는 그래도 아버지께서 회사를 다니고 계셨고, 어머니도 지금처럼 무릎이 아프지 않으셨으며, 무엇보다 나는 나만 책임지면 되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사회에서는 20대는 어느 곳이나 찾는 연령대지만, 40대가 되어보니 나는 발을 내딛기 전부터 나이 때문에 배척당하는 영역이 훨씬 많아졌더라. 우리나라 사람들은 이를 두고 '우리나라에서 나이를 너무 많이 봐서 그래'라고 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다. 이력서에 사진과 나이는 쓰지 않지만 그 사람이 학교를 언제 다녔고 어디에서 언제 일했는지를 보면 나이가 짐작이 되고 그게 아예 작용하지 않진 않는다.


세 번째 이유는 체력적으로 새로운 것을 하기에 버겁기 때문이다. 운동도 해보지 않은 것을 시작할 때 사용하지 않던 근육을 사용하다 보니 가장 힘이 많이 들어가고, 연애도 시작할 때 에너지와 시간이 가장 많이 드는 것처럼 인생에서 자신이 하지 않던 것을 하는 방향으로 경로를 트는 것은 엄청난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 그런데 앞에서 설명했듯이 마흔 전후가 되면 어떤 식으로든 자신이 생물학적으로 노화가 이뤄지고 있다는 것이 몸으로 느껴지기 시작하다 보니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게 물리적으로 힘들어지기 시작한다.


나는 사실 30대까지만 해도 '늙어가고 있다'는 생각을 전혀 하지 못했다. 어렸을 때부터 농구와 수영하는 것을 좋아했고, 군대에 가서 웨이트 드는 법을 배운 후에는 1년 이상 공백을 둔 적은 없으며, 회사에 다니고 석사과정에 있을 때는 주 4회, 1시간 반 전후는 항상 운동을 하는 과정에서 강도를 조절하거나 회복 속도가 느려지는 것을 느끼지는 못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나의 회복 속도가 느려지는 게 느껴지더라. 예전에는 1-2주 정도 운동을 쉬면 일주일 정도 운동을 하면 똑같은 무게를 들 수 있었는데 그게 3주가 걸리더니, 이제는 한 달 정도가 걸린다. 운동 강도도 마찬가지. 한창 운동할 때의 강도를 회복하기 위해 지난 1년간 부단히 노력했는데 그 수준까지 회복되기 전에 몸이 아파버리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나는 이제 적당히 관리하는 수준으로만 운동을 하기로 했는데, 이제는 무리를 해서 아파진 몸이 잘 회복되지 않더라.


하지만 50대와 60대에 비하면 40대는 분명 아직 한창인 나이다. 그리고 사회에서 40대는 가장 중요한 역할을 많이 하는 나이기도 하다. 이는 아마도 20대와 30대를 거치면서 사회를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20대와 30대에는 경주마처럼 자신의 생각과 일이 전부인 것처럼 느껴졌다면 40대에는 다양한 경험이 축적되어 한 걸음 물러나서 다양한 변수를 볼 수 있게 되기 때문에 40대들이 의사결정을 함과 동시에 실무도 하는 관리직에 많이 있는 게 아닐까 싶다. 아 물론, 물리적으로 20대와 30대들 만큼 일에 집중할 수 있는 체력이 되지 않아서 본의 아니게 한 걸음 물러나게 되는 것도 있을 테고...


하지만 모든 40대가 그런 것은 아니다. 40대에도 경주마처럼 달리는 사람들이 있고, 자신밖에 모르는 사람들도 있다. 60대에도 그런 사람들은 존재한다. 사람은 타고난 본성과 자신이 경험하는 것에 따라 많이 달라지게 되어있고, 같은 상황도 다르게 해석하고 받아들이게 되기 때문에 특정 연령대가 되면 모든 사람들이 일정한 특성을 갖게 되는 것은 아니다. 생물학적으로 노화되어가고 있다는 사실 외에는 특정 연령대의 사람들이 100% 공유하는 특징 같은 건 존재하지 않는다.


그 차이를 만드는 여러 요소들이 있지만 그중에 가장 큰 요소는 '실패'를 어떻게 받아들이는지에 대한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다음 글에서는 나의 실패와 내가 실패를 받아들이고 해석한 방법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려 한다.